어제가 아버님 기일이었습니다.
2월 25일,
25년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해 막내동생이 동국대를 졸업을 했는데 27일이 졸업식이라고 이녀석 기다린다고 5일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처럼 장례예식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시골서 연탄불 피워놓고 연일 밤을 새려니 죽을 지경이었는데...
고성친구들이 여러 사람 와서 도와줬습니다.
당시 마산에 누님이 계셔서 마산 공원묘지에 제일 좋은 자리를 사서 묘를 썼습니다.
그리고 삼오날,
동생들이랑 산소에 갔다가 오면서 이런 얘길 했습니다.
"명당이란 우리가 만드는 거다. 우리 형제들이 의좋게 지내고 다들 잘 산다면 아버님 산소는 명당이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지관이 명당이라 해도 그건 명당이 아닌거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명당도 아니고 그냥 그런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3년전 윤달 들었던 해에 이장을 했습니다.
조부모님,아버님을 다 합쳐서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공원으로 이장을 했지요.
가장 중심을 둔 것은 아들녀석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고성부근에 있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1년에 몇번이라도 고성에 갈 것이니까.
그러나 내 죽고나면 나를 고성에 묻을지 서울근방에 묻을지 고민할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 좋을 것 같으냐?"
"가기 쉬운 곳이요."
간단히 그렇게 답을 하더군요.
지난 번 삼산면에 갔을 때 이삼수 친구가 요즘 명당은
"좌택시 우버스"
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저 가기 쉬워야 가지 힘들면 안간다는 얘기인데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좌청룡 우백호면 뭐합니까?
자식들이 안찾아 무고장 되면 말짱 헛것이지요.
어제 동생들,아들딸,조카들,누님 와글와글 산소에 가서 가불로 성묘를 하고 저녁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온갖 맛있는 것 다 차려놓고.
아버님 좋아하시던 오징어,어머님 좋아하시던 가오리 말린 것,좋아하시던 맥주,막걸리,중국동생이 사온 고량주 등.
2년전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 동생들을 모아놓고 명을 했습니다.
"아버님 제사는 둘째가,어머님 제사는 세째가,조부모님 제사는 사촌동생이 모신다"
그리고 명절제사만 우리 집사람이 준비합니다.
30년 제사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한 것 일부면제를 시켜줬습니다.
다들 술 좋아하는 집안이라 음복술에 엄청 취했습니다.
그래도 조상이 흐뭇해하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첫댓글 친구네 가족들의 우애가 참으로 부럽습니다. 하늘나라 계신 조상님들 께서도 귀하의 결정엔 찬사는 몰라도
묵시적 찬성은 하셨지 않았겠나 쉽습니다. 기일마다 형제간 집집으로 윤회하며 조상을 기리고 음복도 하고서
정겨운 대화도 나누고. 정말 부럽습니다. 흔치 않을 겁니다.요즘 세상에...감사하며.
아 !!!!!!멘...
집집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고 원주에 종가격인 집이 있습니다. 원주본사의 3층에.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 기거하시던 곳이지요. 여기서 각종 제사를 지냅니다. 결국 차리는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는 것으로 형제들 분담을 시켰습니다.
박회장님.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 아시나요 ? ㅎㅎㅎㅎ 글 만 읽어도 맘, 푸근해집니다. 참, 듣기 좋습니다.
형님이 잘모셔왔기 때문에 계수님들은 좀 힘들것이고, 그만큼 형님고생도 이기회를 통하여 교육도 시킬겸사
잘하셨네요. 부럽소이다,
나는 분담시킬 처지도 안 되니 마눌님에게 충성을 바쳐야겠네.
나도 처음엔 부모님 제사를 우찌 이산 가족으로 만드시나 했지만 남의 제사에 함부로 끼어 들 수도 없고...오늘에사 정답을 보여 주시네.
제사?진짜 정성으로 모시면 될텐데 탈도 많고 말도 많고.....에휴. 마누라님 고생시킨 것 생각하면 업어 줘야 될텐데.외동한테 시집 온 지 팔자지 뭐....
회장님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명당이 바로 형제간의 우애라고.....
나는 형제가 없어 독신이라 사촌들 하고 계도모으고 잘 지낸담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안봐도 비디오 마자요~ㅉㅉㅉ효,우애,..감동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