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의 봄인지, 봄 속의 겨울인지. 우수, 경칩 진작에 지나고 춘분까지 넘겼는데 영하 추위는 쉬 물러갈 줄 모른다. 그러면서도 봄이 보내는 신호를 일찌감치 감지하는 것이 혀, 미각이다.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그릇/ 풋나물무침에/ 신태(新苔·햇김)/ 미나리김치…혀에 그득한 자연의 쓰고도 향깃한 것이여/ 경건한 봄의 말씀의 맛이여’(박목월 ‘소찬·素饌’). 두보(杜甫)도 ‘입춘’에서 이미 ‘소반에 담긴 풋나물(生菜)’을 예찬했다.
▶봄은 시린 발목으로 청보리밭을 밟는 감촉에서도 온다.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정희성 ‘답청·踏靑’). 황동규는 ‘봄밤’에서 봄비 냄새를 맡는다. ‘…비릿한 비냄새/ 겨울난 화초들이 심호흡하며/ 냄새 맡기 분주하다’. 대지의 온기를 전해주는 새순들은 ‘땅 위에서/ 무수히 일어서는 촛불’(노창선 ‘땅’)이기도 하다.
▶봄은 무엇보다 화신(花信)이 제대로 알린다. 복수초, 동백, 매화, 산수유가 눈 속에서도 맨 먼저 봄 소식을 전한다.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전북 장수 산서면에서 교편을 잡았던 안도현은 ‘3월에서 4월 사이’를 꽃으로 노래했다.
▶이 봄엔 꽃들이 유달리 더디 온다. 매화·동백·산수유 같은 첨병들부터 멈칫거리는 바람에 남녘 꽃축제들이 울상이다. 만개(滿開)는 축제 중에 볼 수 없거나 끝물에 겨우 기대할 정도라고 한다. 기상청이 서귀포에 16일 상륙하리라 예보했던 개나리도 어제까지 개화 소식이 없다. 사나흘 뒤 진달래가 피고, 다시 사나흘 뒤 벚꽃이 핀다는 봄꽃 예보는 순연(順延)될 처지다. 기본적으로 날이 춥기 때문이라 한다.
▶꽃들의 사보타주는 지구 온난화로 가뜩이나 짧아지는 봄의 수명을 더욱 재촉한다. 하긴 자연의 조화를 인간이 예측하고 기다리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것일지도 모른다. 도종환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흔들리며 피는 꽃’)라고 했듯, 봄도 꽃도 산고(産苦) 끝에 온다. 그러다가도 봄은 뭉쳤던 피가 돌듯 하루아침에 문득 온다. 늘 그랬듯 홀연히 온다. 살아 있다는 기쁨과 살아가야 한다는 슬픔을 함께 뿌리며 온다.
첫댓글 봄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내 마음에 봄은 언제나 돌아올련지.............
봄은 너무 지나친 생기로 인하여 젊은 피는 밖으로 밖으로 뻗치고 우리 늙은이 들은 지례 기진하고 만다우 ㅎㅎ 조은 하루 되세요~
봄은 저아래 밑으로 부터 온다고 볼수 있기에, 섬진강 부근 봄맞이로 광야 매화축제를 사진촬영 갔던분의 말에 의하면? 너무 많은 인파속에 허덕이며 몹시 힘들었단 안타까움에 우리가 자연을 보러 갈때만큼은 우선 여유로움을 지녀야만 참된 감동을 누리리란 생각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