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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리환love
지금도 자주 조혜련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그녀의 어린시절은 '대단히' 가난했다. 딸부잣집 다섯째로 태어난 '딸'.
그녀가 태어나던 날, 그녀가 딸이라는 사실에 할머니도 울었고, 어머니도 울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자마자 그 옛날 농담처럼 진짜
밭을 매러 나가야했고 그녀를 비롯한 다섯명의 딸들에게는 할머니의 구박이 가해졌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탄식과 슬픔에 묻혀 태어난 이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채소 장사를 시작했다. 몸 약하고 무능한
아버지 대신에 모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곁에 그녀는 유일한 러닝 메이트였다. 경상도 고성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채소 장사를 시작했던
어머니 옆에서 어린 조혜련은 크게 소리쳤다. "싱싱한 쑥갓, 채소 사세요!" 라고.
단속반이 뜨면 어머니 보다 먼저 부리나케 채소를 싸들고 도망가면서 시장통에서 억척스럽게 채소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그곳에서 지긋지긋한 '가난' 보다 '사람' 과 '웃음' 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그녀는 스스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는지 장사 수완이 아주 대단했었다' 라며 자평하기도 한다.
"삶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마는 쉬지 않고 일했다. 당시 산본은 개발이 안되어 여기 저기에 밭이
많았다. 우리 집 역시 고모가 빌려준 밭을 부쳤다. 우리 여섯 딸들은 본격적으로 엄마를 도와 농사를 했다. 밭으로 나가 일렬횡대로 앉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밭두렁의 잡초를 뽑는 일, 채소를 갈무리 하는 일 따위도 모두 우리 몫이었다.
그러나 그 힘든 농사일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은 남녀차별이었다. 우리가 밭에 나가서 힘들게 논을 갈고 있을
때 막내는 노란 유치원 모자를 쓰고 하드를 물고 있었다. 우리 여섯 딸들이 바가지를 뒤집어 쓰고 머리를 자를 때 지환이는 멋진 미용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잘랐다. 어린 마음에도 그 놈의 고추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때마다 다짐했다. 그 놈의 아들보다 훨씬 나은 딸이 되서
여보란 듯 복수하겠다고."
어린 시절 '죽도록' 공부가 하고 싶었던 조혜련은 힘든 일상 속에서도 상위권의 성적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조혜련이 여상을 가기를 바랬다. 이유는 '취직이 잘되서' 였고 조혜련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반대 속에서도 그녀는
인문계에 원서를 넣었고 안양여고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모든 공부를 자신의 힘으로 해나갈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지만 조혜련은 자력으로 고등학교를 당당히 졸업했다. 그녀의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어머니를 비롯해 모든 가족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하나. 어쨌든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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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은 “나 대학 들어갔다고 두들겨 맞았다. 쓸데없는데 갔다고 했었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집에서 지원 전혀x 직접 돈벌어서 대학 다님
연극영화과는 조혜련에게 가장 어울리는 전공이었지만 장밋빛 미래를 마련해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가난한 현실과 엄청난 대학
등록금의 벽에 다시 한번 부딪힐 수 밖엔 없었다. 밤새운 아르바이트 때문에 학업에도 뒤쳐지기 시작한 그녀는 1년만에 대학을 휴학하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장에 취직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매일 12시간씩 일하면서 그녀는 하루일당 1만 2천원을 벌었다.
야근수당까지 다 합쳐 한달 월급 40만원도 안되는 돈을 쥐고 그녀는 8개월 동안 죽어라 일했다. 놀러가지도 않았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공장 기숙사에서 잠만 자고 일어나면 바로 일하는 이른바 '공순이' 의 생활을 반복한 것이다. 그렇게 8개월 동안
그녀는 2백 5십만원을 모았고 대학에 다시 복학할 수 있었다. 인간 조혜련이 일궈낸 또 한번의 승리였다.
복학하자 마자 그녀는 김국진, 금병완과 함께 코미디언이 되기로 결심했다. 뛰어난 재능에도 때를 만나지 못했던 이들은
힘을 합쳐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모두 보고 다녔다. 첫 대사만 하고 바로 쫒겨나는 일이 비일비재 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은 1992년
대학개그제에 당선되면서 여의도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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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혜련은 자신이 딸 여섯에 아들 하나인 집안에서 자라났다고 말했다. 그녀는 "딸 여섯에 아들 하나라 딸들은 푸대접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조혜련은 "언니들과 저는 밭에서 자란 채소로 만든 반찬들만 먹었는데 동생 조지환은 조기와 고기를 아버지와 함께 먹었다"고 당시 느꼈던 서러움을 토로했다
이어 "또 딸들은 학교가기 전에 밭일을 하고 갔어야 됐는데 지환이는 노란 가방메고 유치원으로 갔다. 그러면 부럽게 쳐다봤다. 지환이는 황태자였다"고 덧붙였다.
이 글을 쓰게 된 어제자 충격적이었던 조혜련 어머니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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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혜련의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앞에 딸을 네 명을 낳았는데 다섯 째도 딸이었다. 그러니깐 그게 좋겠냐”고 입을 열었다.
이어 "딸을 낳은 게 너무너무 싫어서 죽으라고 이불에다가 엎어놨다"며 "지금은 이불이 가볍지만 예전엔 솜이불이라 이불이 무거웠다. 이불에다 조혜련을 엎어놓고 그 위에다 또 이불을 올려뒀는데 안 죽고 살아있더라"고 말해 패널들을 경악하게 했다.
최복순 여사의 말을 듣고 있던 조혜련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는 소리만 들으면서 자라서 내 자식들에겐 살갑게 못하는 거다"며 상처 많은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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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케이블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한 조혜련은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집안에 '씨받이'까지 들였던 충격적인 과거사를 고백했다.
"집에 씨받이가 들어왔다.그 당시에 그런 게 성행했다. 그러나 그 분도 딸을 낳아 같이 집을 나가셨다"라며 과거를 고백한 조혜련은 "어머니가 결국 여덟 번째에 아들을 낳았다. 당시의 기억들이 나에게 도전하는 힘의 원천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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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때부터 콤플렉스 투성이여서 원래 태어났을 때 부터 잘못 태어났죠"
조혜련의 부모님은 이번만큼은 아들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사내아이라 생각하며
사내아이에게 들려주는 기도와 소망을 담아 태교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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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태교나 여러가지 것들을 아들로 했기 때문에 성격도 아들이고 목소리도 아들이고 근육도 아들이고 머리통 크기도 대장이고.. 막 이런데 본성은 여자인거죠. 막 이게 언발르서죠. 그 안에서 부모님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조혜련이 태어난 후 사내아이가 아니라는 충격에 휩싸인 부모님은 아예 조혜련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사내아이처럼 길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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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조혜련의 과거 발언이나 행동들 쉴드할 맘 1도없고
정당화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해요
단지 어제 조혜련 어머니 발언 기사 보고 충격받아서 검색해보니까
과거 이야기들 많이 나오는데 이게 비단 조혜련만 겪은건 아닐거라고 생각해서
우리나라의 남아선호사상이 이렇게 심각하구나 하고 찐 글입니다
나도 언니 있고 남동생 있는데 할머니가 차별하는거 몰랐는데 둘이 싸우면 난 무조건 파리채로 맞았는데 동생은 안맞음ㅠㅠ 그리고 뭔년 뭔년 하면서 욕하시는거 보고 우리 할머니도 다른집 할머니들이랑 똑같구나라고 느낌...휴
성리학씨발 유교씨발
조혜련이 참 대단한게 지금 일어도 정복하고 중국어도 정복해서 강의도 하고.. 워낙 공부 욕심도 많은데 다만 집안 상황때문에 공부를 원없이 못한게 안타까움 이혼하고 나서도 가정에 소홀했네 어쨌네 얘기 나오는 거보고 왜 이혼은 남자 여자 둘이서 한건데, 이런 얘기로 사람들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는지 이해가 안됐음. 조혜련이 남자였으면 집안에 소홀하네 일밖에모르는 무정한 사람이네 이런얘기가 나왔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의 행보를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의욕도 많은듯. 대단한거 같음
조혜련 엄마 제정신이 아닌것 같다.
어떻게 딸 앞에서 저런 말도 안되는 말을 내뱉을 수가 있지?
ㅁ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