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시절...평범한 농민들은 박대통령을
'하늘이 낸 지도자'라고 거침없이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그런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국의 처어칠수상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정치제도"라고...
그럼 우리는 왜 민주주의를 하고 또 하려 하는가?
그것은 현재 그것을 대체할 마땅한 정치제도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서 보듯이 민주주의는 인간의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한 여러 정치수단중 하나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듯이, 지난 15년을 지나면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6공이후 서구적 민주주의가 실천되면서 우리 국민들은
과연 행복해졌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서민들은 이제
희망을 버렸다고 말을 합니다.서민들의 자살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서구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하고 국민들의 행복하고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서구적 민주주의를 하면서 가장 크게 혜택을 본 사람들은
국민을 말로써 선동하기 좋아하는 언론인, 지식인, 정치인들일
것입니다.특히 좌파 언론인, 정치인들...
해방이후 서구적 민주주의 하다가 볼짱다본 나라가 우리나라
아닙니까? 6.25때 북한군에 몰려 부산까지 쫒겨간 상태에서도
정치싸움 한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치인들 아닙니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일의 우선순위를 모르고 서구적 민주주의만
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잘살게 될 것으로 믿고 교조적으로 서양식
민주주의를 모방했지만 결과는 어땠나요?
과학기술과 경제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꽁보리밥 먹은후 검정고무신 신고 투표하러 가는 격이므로
그러한 민주주의는 실제 그 가치(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잘 깨닫지 못하면 극히 편협하고 편향적인 시각을
갖게 되어 해방후 한국 현대사를 독재로 얼룩진 시기로만 보는
것입니다.
자유-공산 냉전기시절 남한의 반공지도자들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모두 독재자로 몰아부치는 그들은 과연 어떤 사상을
지녔던 자들일까요?
옛날 왕조시대의 힘없는 백성들은 못입고 굶주리면서도 왕과 귀족의
절대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절대왕정 시대에 백성들이 자신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난 것이 바로 민주화운동(혁명)인 것입니다.
혁명에 성공한 백성들은 그후 왕으로부터 주권을 빼앗아 국민에게
귀속시키고 또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 3권으로 분리시켜 지배귀족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민주화운동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해방후 이미 왕이 없이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만 있는
공화제 국가였고 권력도 3권으로 이미 분리되어 있었고 그후로도
계속 그랬으므로 해방후 일어난 민주주의 운동은 엄밀히 따지면
민주화운동이라 볼수 없는 것입니다.좀더 완벽한 민주주의를 향한
운동이라고 볼수는 있겠지요.
또한 박정희같은 지도자는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농민을
착취하고 탄압한 것이 아니라 서민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소수
반정부적 지식인을 억압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박대통령은 당시 국민의 대다수(70%)를 차지하던 서민과 농민의 영웅
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난세에 필요한 지도자와 평화시에 필요한 지도자의 덕목과
조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우리나라의 5~80년대와 같은
난세에는 군사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군인 또는 그와 비슷한 조건을
갖춘 지도자가 우리실정에 적합했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평화 시기에는 문민정치도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이 그렇게 평화로운 시기는 아니지만 당시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죠.
서양은 산업화를 한후 민주화가 되었고 그후 공산주의가
발생했지만 한국은 산업화를 하기도 전에 서양에서 민주주의가
수입되었고 그와 거의 동시에 공산주의도 수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방후 몇십년 동안 서양보다 3배 더 사회적 혼란을
겪었던 것입니다.
근세 동양의 지도자들은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오직 독재자로
보이지만 그것은 동양의 사상과 정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
입니다.
동양에는 옛부터 왕도정치라 하여 훌륭한 왕은 인과 덕을 쌓아
백성을 잘 보살피는 민본주의 애민사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약한 백성을 착취하고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는 서양의 독재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동양의 근대화시기 지도자중 이러한 동양의 전통사상을 잘
배우고 자란 지도자라면 비록 그의 정치가 서구적 민주주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해도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서양인의 관점으로 보면 세종대왕도 독재자이고 절대군주
이지만 세종은 서양의 독재자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주의가 근세 동양에 처음 들어오면서 동양인도
서구인의 관점으로 지도자를 평가하고 정치도의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의 민주주의를 막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근세
동양의 과도기적 정치 상황을 무시한 태도입니다.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본인이 관찰한 결과에 의하면 박정희를 욕하는 자들은 극좌 공산주의
잔당인 친북 좌익세력과 그 심정적 동조자들이 대부분이다.
또는 시야가 편협한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 그들처럼 시야가
좁아진 사람들도 박대통령을 나쁘게 평가한다.
참으로 걱정된다.사물을 한편에서만 관찰하면 전체를 알수 없는
것이다.건물의 옆모습만 보고는 건물의 전체 가치 또는 전모를
알수 없는 것이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앞,뒤에서 보기도 하고 멀리서
조망해 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단편적인 사실을 들어 그 잘못만 강조하면 인물전체에 대한
평가를 올바로 할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유감스럽게도 자기의 좁은 시야로 큰 업적을
이룬 우리 민족의 인물을 욕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박대통령을 단순히 한쪽에서만 바라보면 독재자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특히 집권 후기를 볼때..그러나 그 시대 이념적으로 분단된
나라 한국이 처한 안보환경이나 빈곤한 경제현실,아시아적 유교 전통
등을 생각하면 그렇게만 볼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서양에서도 수백년의 진퇴를 거듭하며 완성된 민주주의가
2천년 왕권통치 국가인 아시아 유교국가 한국에 처음 들어와
몇 십년도 않된 당시(6~70년대) 상태에서 서구적 민주주의를
단번에 완벽하게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러한 서구 개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와 무경험
그리고 가난문제와 공산화 위협문제가 현실을 짓누르는
상태에서 완벽한 서구적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쉽겠는가?
반공투사 대만 장개석 총통은 우리보다 더 심한 계엄통치를
했습니다.그래도 대만 사람들은 그가 죽자 장개석 기념관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습니다.당시 시대상황으로 보아 이해할만
하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박대통령의 72년 유신체제가 사이비 민주체제이고 독재라고요?
국민의 90%가 찬성한 헌법인데요? 당시 투표에 참여했던 장년층은
지금 칠순 팔순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되었습니다.
무장간첩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남북의 이념적 극한대립
상황 속에서 당시 못살던 대다수 국민들의 소박한 바램은 무엇
이었을까요? 정치의 완전한 서구적 민주화였을까요?
아니면 국방의 안정과 민생고의 해결이었을까요?
민주주의운동 하는 사람들도 당시에 존재할 필요는 있었겠지만
한국이 당면한 더 급한 문제인 공산화위협 문제와 가난문제,
근대화(산업화,공업화)문제를 처리할 세력이 당시에는 더욱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설익은 이상주의자들은 경제의 발전단계나 국가 안보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완전한 자유와 민주를 주장합니다.
어느 누가 완전한 자유와 민주를 싫어합니까?
문제는 그런 자유를 누릴 국민경제 수준과 국민 교육수준 그리고
안보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같이 공산주의가 망해 미쏘 냉전이 사라지고 안보위협이
현저히 줄어든 시점인데도, 그리고 남한의 경제가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해 인간의 기본욕구가 대부분 해결된 안정적인
사회인데도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를 소화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상대당 후보에 대한 막가파식 비방과
폭로, 반대를 위한 반대, 끝없는 친인척 비리,천문학적 부패,
여당의 분당사태 등등,그리고 그것을 보고있는 국민들의 아찔한
현기증...
이런 것을 보고 있노라면...
외국 기자들이 5~60년대 남한을 보고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래야 한다"고
말한 이유를 알것만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남한과 서독을 대등하게 비교하며 남한의 과거정권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60년대 남한입장에서 보면 서독은
차치하고 필리핀도 우리가 우러러보는 선진국이었습니다.
60년대 당시의 농업인구가 7~80%가 넘는 농업국가 상태로는
가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수 없었던 것입니다.가난문제와
공산화 위협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나 다른 그 어떤 문제
보다도 급했던 것이다.
60년대 중반까지도 "보릿고개"는 여전했다.양식이 다 떨어져
굶주리며 풋보리가 익기만을 기다린다는 그 "보릿고개"를
지금 젊은이들이 상상이나 할수 있을까?
나라가 이런 상태에 있는데도 당시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이러한 고통은 나몰라라 하고 정치싸움만 했던것 아닌가?
서구적 민주주의 한다고 해방후 15년 동안 보릿고개 하나 해결
하지 못한 자들이 한국의 정치인들 아닌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당시에 무엇이 시급한 문제였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박대통령은 수천만 서민의 굶주림을 해결한 실용주의적 정치인
이었던 것입니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1년 했다고 친일파라고 하면 일본군
장교를 5년이나 한 독립군 사령관 이청천장군은 무엇인가?
한국해방시 28세에 불과했던 박정희가 친일행위를 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그 야단인가? 박정희는 대구사범 시절에도 이순신 전기를
읽다가 책을 일본사감에게 빼앗긴 일이 있는 슬픈 약소국 조선의
청년 아니었던가?
박정희는 60년대 미국의 원조로 겨우 연명하던 비참한 조국 한국을
지금의 세계열강 수준으로 만든 지도자이다.그당시 한국은 필리핀
태국 그리고 북한보다 가난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필리핀은 5~60년대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4번이나 교체했는데
왜 저렇게 아직도 못살고 있나? 근대화는 않고 서구적 민주주의만
하면 다 잘살게 되는가?
국가질서,법의 지배,의무와 책임,헌신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국가적
에토스(국민의식)를 확립하지 않은채 서구적 자유 민주정치를
도입, 실시한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박대통령의 사소한 잘못은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것입니다.현재 중국에는 박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연구단체가 5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박대통령은 확고한 안보 국방강화 정책으로 한반도 공산화를
방지하여 수백만 국민의 생명을 구했고,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는 후진국 한국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당시 우리
민족을 지배하던 패배주의(엽전의식)를 몰아낸 지도자입니다.
박대통령의 17년 장기집권을 문제삼는 사람이 있지만...
필리핀도 마르코스가 장기집권 독재를 21년간 했고
인도네시아 수하르토는 30년, 싱가폴의 이광요는 27년,
대만의 장개석은 25년 계엄통치(독재보다 심함)를 했습니다.
한국은 대만보다 훨씬 민주주의에 가까운 통치를 한 나라
입니다.60년대 우리 기자들이 대만 기자들에게 '당신들의
독재정치는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하면 대만 기자들은
'그런소리 마시오.당신들이 공산당의 악랄함을 아시오?'
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박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 자유세계 국가들은 왜 이렇게
서로 약속이나 한듯이 장기집권 독재 비슷한 것을 했을까요?
우연일까요? 아니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60년대 월남에서 발생한 10여차례의 군부 쿠테타와 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공산쿠테타를 제압하기 위한 수하르토의
역 군부구테타 그리고 6~70년대 태국에서 발생한 10차례가 넘는
군부쿠테타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지금 그런 나라에서
군부 구테타가 발생하나요?
그러한 나라에서 쿠테타가 발생하지 않고 정치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시점은 공산주의 종주국가 쏘련이 멸망하는 80년대 후반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우리나라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바로
그 시점입니다.
쿠테타는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일이라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공산주의적 헌정질서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쿠테타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것도 나쁜 일일까요?
군부의 정치개입은 공산화를 막기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공산권 지도자들은 자유세계 지도자들보다 수천배 더심한
독재를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그들이 칼을 가지고 덤비는데
우리는 붓을 가지고 싸우란 말입니까?
지금은 공산주의가 망해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지만 6~70년대는
공산주의의 단점(결점)이 나타나기 전이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남한에 많았습니다.
80년대 후반까지도 대학가에는 좌경이념써클이 즐비했고 이들은
공산주의식 폭력혁명을 부르짖으며 틈만 나면 데모를 하며
국가혼란을 부채질했습니다.
당시는 이념적 혼란기였고 가난문제가 더해져 국가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박대통령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17년 장기집권을 한것은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박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않했으면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태국처럼 13차례의 쿠테타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거나 월남이나 캄보디아처럼 공산화되어 무고한 국민 수백만이
학살당했을 것입니다.
폴포트의 캄보디아 공산정부는 공산화후 자국국민의 1/3 즉,2백만명을
학살하여 그 유명한 킬링필드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민주주의 운동을 하던 사람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좌익 이념에
현혹되어 있었고 북한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당시 운동권 출신
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잘알수 있습니다. 당시 대학가는 이념적으로 매우
혼란스런 상태였습니다.
공산주의(사회주의)이념이 진보적이고 평등하며 좋은 사상이라고
믿는 정치인,지식인(교수, 종교인, 언론인 등)도 많았습니다.
당시(75년)는 월남이 공산화되는 등 공산주의가 말그대로 잘나가고
있었고 일부 지식인 및 판사들까지도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사람
들이 있었습니다.
70년대 초까지도 남북의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공산주의 중 어느 체제가 더 좋은지에 대해 일부 지식인
들은 혼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통제를 하지 않으면 월남처럼 공산화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일 아니겠습니까?
북한 간첩(무장공비)들은 틈만나면 지하에 숨어들어 암약을 일삼았고
국민들은 매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김신조 간첩일당은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하여 우리를 괴롭혔고 대통령 부인은 북한 간첩에 의해
암살당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68년 간첩 김신조,74년 간첩 문세광)
*김신조사건
북괴 제124군 소속 김신조외 간첩 30명이 대통령관저 폭파, 요인암살
미대사관 폭파, 육군본부 폭파,서울교도소 폭파 ,북한간첩 대동월북을
목적으로 황해도 연산을 출발하여 1968.1.17일 서울로 잠입한 사건으로
서울 청문동까지 침투함.12일간의 작전기간 동안 전과로 생포1명
사살 29명, 피해로는 대령1명 경찰서장1명 민간인5명이 사망함
그 시대는 이렇게 무장공비들이 서울 한복판에 출몰해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그런 살벌한 시대였던 것입니다.어린 학생들은 간첩과
무장공비를 식별하는 방법을 매일 배워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국민통제 한 것을 지금 입장에서 보아 욕하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장발단속, 금지가요...이런 것들은 국민정신이
반항적 퇴폐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유신헌법 당시(72년)는 자유월남과 공산월맹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로 미국은 7사단을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등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었고, 중공 소련 모두 공산주의체제 국가였고 그 두 강대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한이 느끼는 안보 불안감은 이루
말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우리가 살기위해 국민의 정신무장을 권장한 것
뿐이었는데 그것을 지금 입장에서 보아 장발단속이나 했던 탄압정권
이라는 식으로 말하면 되겠습니까?
공산주의가 인류에게 저지른 죄악은 이루 열거할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김구선생이 중국내 임시정부 시절 왜 공산주의자들과
극구 손을 잡지 않았는지 참고해야 합니다.
지금은 망한 유물론적 공산주의를 신봉하던 공산정권 독재자들은
인간을 공산주의 사상과 체제의 노예로 만들고 반대하면 학살 숙청하고
그 미치광이 공산주의 사상이 좋다고 무력 폭력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의 무고한 양민 수백만명을 죽게 만들었습니다.(6.25참고)
또 경제실패로 자국 국민 수백만을 굶겨죽이고(북한의 경우) 인권유린
,거주이전의 자유 말살,언론 말살,종교 말살,육십년 장기 세습독재,
사법제도 없이 인민재판이란 이름으로 인간을 무수히 처형 하는 등
공산주의자들이 그동안 우리민족및 인류에게 저지른 죄악 만행은 이루
다 말할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정치범 수용소가 다섯군데나 있고 20만명이 감금되어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굶어 죽어간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북한에서는 94년이후 굶어죽은 서민인구가 2백만명에 이른다고
프랑스의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밝힌바 있습니다.
지금은 북한을 제외한 공산주의가 다 망했고 세월이 흘러 젊은이들은
그시절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이점을 이용해 젊은이들에게 왜곡된
역사지식을 심어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느 정권이나 잘못은 있게 마련이고 완전한 지도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일부 부분적 잘못을 들추어 강조해 전체인양
호도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가 신이 아닌이상 열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다 잡을수
있겠습니까? 10마리중 8마리 잡았으면 잘한것 아닙니까?
10마리중 2마리도 못잡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그 시대 야당 과 지식인 등 반정부 인사 몇명의 인권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공산도배들의 침략위협 앞에 떨고 있는 수천만
국민의 인권과 생존권이었습니다.
공산화되면 자유니 민주주의니 뭐니 모두 불가능한것 아닙니까?
첫댓글 탁월한 식견이십니다. 님께 존경이 갑니다.. 충~성!
예.좋습니다.전제가 마련 되었다면 이제는 논리,사상,철학을 기반으로 ....증명.그리고 해법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