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입니다)
북유럽이 다문화 정책의 롤 모델이라고 하는데, 요즘 이 북유럽의 유권자 중 3~40%는 다문화 정책에 제동을 거는 정당에 투표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 박애주의와 보편적인 가치로서 평등주의는 일종의 경험에 따른 것입니다.
나라가 커지고, 교류하는 문화와 인종이 커질수록 편협한 종파주의와 인종주의로는 한계가 따르죠.
그래서 미국도 흑인 해방을 하고, 유럽에서도 인종적 다양성에 따라 다문화를 옹호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국가 유지와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것도 그런데 전제가 '경제적 호황기'에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들어오는 이민자와 망명자들을 내국인 고용 후 남는 범위에서 수용해야 탈이 없는데, 불황기에는 그게 안됩니다.
게다가 복지 분야에서 다문화에 대한 혐오는 불황기에 터지지요.
이민와서 노동하고, 그 돈 받아 세금내서 내국인과 동등한 복지 혜택을 누린다면 누가 뭐라하겠어요?
하지만 불황기에는 그게 아니고, 대부분 이민자들은 실업상태에서 실업급여를 받아가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비록 프랑스에서 좌파 정부가 승리했지만 꾸준히 이민에 대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건 이 때문이지요.
일단 우리나라 케이스만 봐도 국가 유지와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의미가 조세 납부 외에도 국방의 의무가 있습니다
.
국방의 의무 때문에 같은 내국인인데도 남녀 갈등이 첨예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조세 납부(의료보험비 - 최근까지 헛점 뚫려서 외국인들이 한국인 민증번호 대고 의료혜택 받아가도 최근에 보완되었죠) 및 노동 공급 시장에서 내국인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요소로서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 + 국방의 의무까지도 엮여 들어가면 외국인에 대한 무작정 다문화 어쩌구 하는게 합의될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의 의무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야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게 모든 사회의 첫번째입니다.
드라마 "워킹데드"만 봐도 그렇죠. 다문화니 인종주의를 떠나 그 집단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구성원이 되려면 자신이 하는 역할이 있어야 하고, 적어도 원래 있던 공동체 구성원을 공격할 일은 없어야 안심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문화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죠.
경제적 호황기에 유럽에서는 이게 가능했고, 지금은 이게 불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다문화주의는 솔직히 그들이 잘못했다기보다 자본가들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죠.
그래서 외국인을 혐오하기 이전에 자본가들의 못된 장난질을 더 미워해야 정상이긴 합니다.
스웨덴 총선 광고에서 복지 급여를 받으러오는 스웨덴인 앞으로 차도르를 쓴 아랍 여성이 카트를 들고
새치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게 사실 포인트죠.
최근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 아랍 이민자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그들의 공동체 의식이 매우 편협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복지 혜택은 스웨덴인으로서 평등하지만 정작 아랍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는 아랍 출신만 고용한다거나 하는 문제, 자신들만의 집단 거주지역을 형성해 배타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는게 지적 대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아랍인 공동 마을에 있던 학교에서 스웨덴 학생을 전학시켜달라는 청원까지도 넣을 정도니
스웨덴 사람들이 학을 뗄만하죠.
왜 굳이 동아시아 지역 이민자도 아니고 아랍인들이 문제 되는지는 이 점 때문입니다.
라마단 기간에 합법적인 유급 휴가를 달라고 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좋은 제도를 가진 나라로 이민을 와서 혜택은 동등하게를 주장하면서
그쪽에서는 통용되기 힘든 자신들의 지역 문화를 100% 수용해달라는 형태로 나오면
당연히 원주민 입장에서 좋을리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솔직히 다문화를 빙자한 호구짓을 하니까 문제죠.
대학교 연구실에 타국 학생들이 들어오는데, 가끔은 교수들이 외국인 배려차원에서 랩 업무를 좀 줄여주죠.
그런데 영악한 외국인 학생들은 일부러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척하기도 하고, 그러면 일을 적게 시킨다는걸 알죠.
그 후에 자기들 실적만 쌓는 행태도 있습니다.
해변가에서 여성을 성추행해놓고 "우리나라에서는 괜찮은 일이다", "이게 죄가 되는 줄 몰랐다", "한국어 잘 모릅니다" 드립 날리는건 이런 행태의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즉, 다문화주의 속에 편입되려는 외국인 중에서는 이런식으로 교묘하게
"사회적 신뢰"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으니 문제가 되겠지요.
이자스민 의원이 결의안 발의할 수도 있습니다.
모국이 필리핀이니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결의안을 하기 전에 했어야 할 일이 있지요.
코피노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필리핀에서 미결 살인 사건에 대한 것들도 이야기해야 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를 찾는 일도 해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자스민 의원은 철저히 한국에 꽂아둔 빨대 마냥 필리핀 국익에 걸맞는 주장만 하죠.
코피노 문제도 그렇고, 이번 태풍 피해도 그렇고.
그렇다고 다문화주의에 걸맞게 다른 아시아지역의 구호에 신경 쓴 흔적은 없습니다.
오로지 필리핀 문제에서만 다문화주의를 표방해왔다는 것이지요.
외교문제도 그렇고 모든건 상호 호혜주의입니다.
내가 베푼 만큼 그쪽에서는 신뢰를 주는 것입니다. 다문화주의도 호혜주의죠.
원주민과 이주민이 동등해지는게 목적이지 적응을 빙자해서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다문화주의는 호혜주의를 떠나 이주민 우선주의까지 나가는 정책이 가끔 보이죠.
세 사람이 서로 1/3 의 가격을 내고 빵을 사먹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들어와서 조금 도와달라고 그럽니다. 사회적 약자니까 처음에 도와주었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좀 괜찮아지고, 동등한 시민이 되었음에도
과거의 약자 기억을 떠올리며 의무를 하지 않고 1/3을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장하준 교수가 그랬다죠? 복지는 공동구매라고.
다문화 복지도 공동구매입니다.
대한민국 일반 국민은 우리 시민이 아닌자를 위해 이미 공동구매비용을 냈죠. 세금으로..
그런데 그 공동구매 비용이 적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외국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알아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적어도 국내에서 세금 잘 내는 외국인들이라면 상관할 일이 아니죠.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원주민도 공동구매 비용 내고, 법도 잘 지키는데 그걸 호구 취급하는 사람 때문에 생기죠.
공동구매 비용을 내기 전에 형성되는 사회적 자본. 즉, 신뢰의 문제를 갉아먹는 기회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자스민은 딱 그 수준이지요. 그래서 문제입니다.
정 돕고 싶다면 필리핀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문제에 다 신경썼던 모습을 보였던가
그것도 아니고 매번 필리핀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니 이 사람의 정체가 의심스럽죠.
이미 본인이 한국인임을 잘 인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는지도...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하는 미국 하원의원도 있고, 시의원도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그들도 발언하지만
공개적으로 한국인에게만 무비자 혜택을 주는 이민법을 발의하거나 결의안을 채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문화의 표준이라는 미국에서도 정체성을 의심받으니까요.
솔직히 이자스민 결의안 보면 그냥 우리나라가 호구 잡힌게 맞습니다.
철저히 필리핀의 국익으로 한국 의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지요.
다문화 가정 중에서 우리가 중점적으로 봐야 할 사람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한국국민이 된 다문화 가정"입니다.
전자를 위해 의정활동하는건 외국인을 위한 의정활동이죠. 설사 외국인 인권을 위해 한다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선행적 조치는 보기 흉하죠.
무슨 오지랖을 ....
필리핀에 대한 결의안이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미 나간 예산도 있고, 더 하는데 증액을 결의한다라..
미안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한국인 관련 범죄 미결 수사를 공조해준다는 외교적 딜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해준다? 호구죠.
게다가 절차도 어기고 결의안 통과되기도 전에 필리핀 대사에게 결의안을 준다라..
이건 거의 "난 필리핀인"임을 선언한거죠.
첫댓글 다문화는 절대악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굳이 선악을 구분한다면. 다문화는 절대악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