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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눈엔 오직 서방님만 보이니 어찌하옵니까?
(부제 : 내 눈에 너무 섹시하게 놀란 니가 보여 사극ver.)
‘어떤것이 슬프시겠습니까.’
‘예?’
‘만일 말입니다. 아주 만약에 제가 화를 당한다면 말입니다.’
‘당치않습니다! ..어찌...어찌..만약이라 하시더라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농이었습니다.. 노여움을 거두세요.’
‘생각하기도 싫습니다...가당치도 않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앞서가는 귀공을 부르지 못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귀공께서 저를 그냥 지나쳐 가신다면...’
‘그런 근심은 잊으십시오, 내 어찌 그대를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혹시나 보고보고 또 보다가 귀녀께서 닳아없어질까 염려되어 요즘 눈을 감고도 귀녀를 볼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런 말은 다신 입에 올리지 마셔야 합니다. 약조 해 주시겠습니까?’
‘괜한 소리로 그대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습니다. 약조하겠습니다.’
‘꼭, 꼭입니다.’
‘알겠습니다. 내 사내의 이름을 걸고...꼭 지키겠습니다.’
'형....제기랄, 야! 저안에 가온이....’
‘가온아! 민가온!’
‘작은 주인어른! 불길이 뜨겁습니다! 일단 화기부터 잡으시고..작은 주인어른!’
‘대답해봐! 어딨어! 가온아! ’
‘
'야! 강호수!! 어딜 들어가!!’
“꽃이 참 예쁘죠? 작은 마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참 어여쁜 꽃이네요. 그렇죠?”
“응?”
“어딜 그렇게 넋을 놓고 보세요, 몸이 안 좋으신겐가요?”
“아니 꽃...”
“꽃이요? 아, 꽃이 예쁘셔서 넋을 잃으신 거군요. 작은 마님도 참..”
“명월아, 이게 무슨 색이지?”
“아이구! 작은 마님도 참, 어울리시지도 않게 농이 웬말이시렵니까. 그리 진지하게 말씀 하시면 쇤네...”
“쟃빛이 나는 꽃은 처음 보는구나. 자태는 모란과 꼭 같은데 색깔이 이러니 못 알아 볼 뻔했어.”
“자...작은 마님.”
“들어가자, 하늘은 흐린데 햇빛이 따갑구나.”
요즘엔 왜 이리 하늘이 흐린지 모르겠습니다.
근래 들어 하늘이 매일같이 잿빛이라 제 마음 조차 우중충해 지는 것을 서방님은 아십니까?
“작은마님! 큰 마님이 찾으십니다!”
다급한 갑돌이의 말에 황급히 일어서나 모란꽃이 툭 떨어지고 그 꽃을 얼른 주워 뒤를 따르는 명월이.
#.안 채_
“그래, 몸은 괜찮은게니?”
“소녀가 부족하여 집안 어른들께 큰 누를 끼쳤으니 면목이 없습니다.”
작다 못해 가녀리기까지 한 그녀 목소리와 함께 고개가 숙여지자 맞은편에 걱정스런 표정의 시모가 조용히 그녀를 당겨 안는다.
“아가, 어찌하여 그리 야위어 가는 것이냐. 호수도, 너의 시부도 너의 웃음을 보지 못하니 다들 기력을 되찾지 못하는 듯 하구나.”
“소녀 부족..”
“말해보거라.”
시모의 낮지만 너무나도 다정한 목소리에 한동안 시모를 넋을 잃고 보던 그녀의 고개가 숙여짐과 동시에 마치 손에 닿으면 부서질 듯 한 야윈 어깨가 한없이 떨린다.
“아가...”
“...세상이.....세상이...”
그 커다란 눈에선 쉴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와 시모의 손등을 적신다,
“..꽃이..하늘이...새가...시문이....서방...님이...”
“.......”
“...보이지 않사옵니다.”
결국 본인이 직접 느끼게 될 시기까지 오고 말았다. 시모가 평온을 되찾고자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리하여 그리 근심 가득한 얼굴로 가족들의 심기를 어지럽혔더냐.”
“어머니..저는...”
“무엇이 그리 무서운게야..”
한 없이 따뜻하다,
시부께서 가장 아끼시던 옛 성인들의 서책도 시모께서 정성스레 한자 한자 적어 훗날 손자가 태어나면 손수 가르치 시겠다던 필사책도
심지어 혼인 전 그녀의 남편이 시부모 몰래 많은 서책들 사이에 남겨두었던 그녀를 위한 시문까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원인은 그녀 자신이다.
그녀의 부주의로 그녀의 작은 실수로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건만 작은 책망도 없이 그녀를 감싸안는 시모가 야속하기까지 하였다.
‘어찌하여 저를 이리 작게 만드시는겁니까. 호되게 꾸중이라도 하신다면...박복한 니 년이 들어와서 집에 화를 냈다며 꾸짖음을 하신다면 이리 죄책감이 들진 않을겁니다. 헌데 어찌..어찌..’
“너의 잘못이 아니란다 아가야.”
“저의 잘못입니다!.. 모두 저의 잘못인데...어찌하여 호통 한마디 없으신 겁니까!...숨이 막힙니다. 이렇게 저를 옭아 메시려는 겁니까..?”
“아무도 그리 생각한 적도 하지도 않을 것 이란다 아가야.”
“소녀...가난하고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처음부터 시부의 심중을 어지럽혔사온데, 또 이리 일을 치다니요...이건은 분명...”
“지금 중요한건은 나와 너의 시부에겐 하나 뿐 인 며느리, 내 아들 호수에겐 하나 뿐인 아내일 뿐이야,
어찌 그것을 몰라주는겐지...네 몸도 안 좋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이 어민 네가 야속하기만 하구나.”
거짓이 아니였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라져 버릴 듯 여리고 착하기 만한 어여쁜 며느리가 우는 것이 안타까웠다.
누구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알았던 그녀의 눈에 잿빛이 가득 하단 소리만으로도 가엽기 그지없는데,
혹여나, 심성이 착하다 못해 자신을 헤아릴 줄도 모르는 자신의 며느리가 나쁜 마음을 먹을까봐 야속하였다.
“약조해주겠니, 어떠한 경우가 있더라도 내 곁을...아니, 호수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조해주려무나.”
대답없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맑은 빛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던 맑음도 청아함도 깊음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화재가 있던 날 밤, 의원이 그녀의 눈을 덮었다던 잿가루는 어느 덧 그녀의 모든 것을 덮어버린것만 같았다.
결국, 그녀는 그날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약조를 하지 않았다.
#.그날 밤_
드르륵, 방문이 열리고 기척을 하며 들어오는 그를 맞이 할 수 없었다.
그 또한 잿빛으로 보일 까 두려웠다, 그저 잠시 눈꺼풀을 덮고 있던 잿가루 때문이라는 의원의 말은 거짓이었다.
앞으로 평생..그녀는 조금 더, 내일은 그다음 날은 조금씩 더 잿빛 세상만을 보다...아니, 어쩌면 그 세상마저 보지 못 할 것이다.
눈물이란 녀석은 야속하게도 멈추지 않고 주책맞게 넘쳐 흐르기만 하였다.
눈물이란 녀석 말고도 이 작은 몸뚱이는 서러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들썩이여 잠들었다는 작은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왜 우는 것입니까.”
평소의 그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반듯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그의 목소리에도 한 줄기 안심이란 녀석을 할 수 있던것은
그의 목소리에 가득 담겨있는 애틋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하여 알아 버리신겁니까, 그리 먼저 깨닫는 것을 원하시더니...기어이 그런 일 마저 스스로 먼저 깨달아 버리고 마신겁니까.”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자신의 시부도 알고 있을것이 뻔하였다.
“자결을 하는것이 옳을까요, 죽은 듯 살터이니 첩을 두시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요, 제가 어찌해야 서방님께..”
털썩, 소리에 놀란 그녀가 고갤 돌리자 주저앉듯 문 앞에 자신을 향하여 무릎을 꿇은 그가 보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멋지...아니, 저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반듯하며 강직하고 기품있는 그의 어깨에 슬픔이 내려 앉았다.
그의 한없이 넓어 보이기만 했던 어깨가 오늘따라 한 없이 쳐져있어 그녀의 마음이 아리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내 아내를, 내 사랑을, 내 자신을 지키지 못해 괴롭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괴로움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지아비의 무능함에 원망하였습니다. 헌데...헌데....너까지 그렇게 말하면, 날더러 어쩌라고..어찌하라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모든 난관을 헤치고,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너 힘겹게 당도한 행복이기에
다시는 슬프지 않을 것이라고 두 번 다시는 울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하였다.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에게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그의 아버지에게까지 인정 받을 수 있는 사랑스런 며느리가..부인이 되겠다고,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그와 닮은 아이를 낳아 그와 같이 키울 자신도 있었다. 사랑스러울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
가뜩이나 자신으로 인해 그와 그의 아버지인 시부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세와 체면에 먹칠을 한 것도 그녀를 힘들게 하였다.
요번 화재로 인해 그녀를 둘러싼 수도 없는 소문들이 또 이 하늘 높은줄 모르는 가문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할 것이다.
잊으려 떨치기엔 그녀의 눈에서 조차도 보이는 호수의 목에 커다란 화기의 상처가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런 말만 하지마. 무슨말을 해도 믿어 줄테니까, 차라리 거짓말을 해. 떠나겠단 말만...내 옆에서 사라지겠다는 말만 하지마..제발.”
애처로웠다, 숨이 막히게 슬픈 목소리가 그녀의 몸을 그에게로 이끌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를 감싸안은 그녀가 전과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달랬다.
“누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아버님의 길도 서방님의 길도 막고 싶지 않습...”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무섭게 그가 그녀를 자신의 안에 가뒀다.
“안 들을거야, 니 말...안 들어. 안 들려 하나도. 니가 어떤 기분인지 몰라 난.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고,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욕해도 괜찮아. 막아줄게, 그럼 되잖아.. 내가 니 옆에 있을게, 아무데도 안가고..지켜줄게. 약속했잖아, 안 떠나겠다고..가지마, 제발..제발 가지마. 그러지마...”
술 기운 탓인지 심하게 갈라진 그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인것 같았다.
쓰러지듯 그녀의 무릎을 파고는 그를 내려다 보는 그녀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점점 흐릿해 지는 시야가 눈물 때문인지 잿가루 때문인지 헷갈렸다.
‘어찌해야 합니까, 저의 욕심을 채우고자 서방님 곁에 남는것이...진정 잘하는 짓일까요.
그러면 아니 되는 것을 알지만 자꾸 욕심이 나니 큰일입니다.
힘들게 올라온 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저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해가 밝아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리 평생을 멈춰있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달님은 가벼운 눈인사도 없이 매정하게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_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호수.
잠시 관자놀이를 짚더니 이내 목이 아픈 듯 잠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순간 멈칫 하다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일어나셨습니까? 물이라도 올릴까요?”
계집종의 부름에 잠시 문 쪽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고갤 돌리는 호수.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내 방을 나선다.
문을 열자마자 튀어 들어오듯 안으로 그를 밀어 넣는 호영.
“너 죽을래? 저 늙은이를 설득하는데 삼일 밤낮을 써도 모자랄 판에 술을 쳐 먹어? 너 때문에 저 기집애가 얼마나 질질 짜고 다녔는지 모르냐? 엉? 니가 그러고도 지아빈지 니아빈지냐?”
자신보다 엄연히 2살이나 많은 그이지만, 아랑곳하지않고 거침없이 막말을 해가며 멱살을 잡아채는 호영.
아무런 표정없이 그의 손을 풀러내고는 입을 열려다가 이내 흠칫 하며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그를 보고는,
“염병할! 그 놈의 무게는 언제까지 잡고 있을껀데? 요번에도 ..”
그의 입가에 손가락 한 개가 조용히 세로로 세워지자 입을 꾹 다물더니 욕설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 호영의 흐트러진 도포자락을 잡아채는 호수.
그의 말을 잠자고 듣고있던 호영의 표정에 묘한 변화가 일어나더니 이내 세차게 그를 노려보고 방을 나가버린다.
#.정자_
마주보고 앉은 그녀와 그녀의 시부.
묵묵히 차를 마시던 시부가 맞은편에 앉아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를 언짢은듯 쳐다보다 이내 찻잔을 내려놓는다.
“어쩔 생각이냐.”
“.....예?”
“너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것을 이젠 니가 더 잘 안다니, 무슨 방도라도 생각해 둔게 없느냐?”
“바..방도라 하시면...”
“한심한 것.”
혀를 쯧쯔 차며 접선을 펼치려다 이내 다시 옆에다가 내려놓고 소맷자락에서 뭔가를 툭 던져주는 시부.
“이..이것이 무엇..”
“어찌 마음에 드는 것이 이리 하나도 없단 말이냐! 이래서 본 데없이 자란 아이는 함부로 들이면 아니 된다 하였거늘...
내 아들의 몸에 가벼운 화기만 있었기에 망정이지 더 큰일이 있었다면 용서치 않았을게다.”
매서운 시부의 말에 눈물 가득한 큰 눈을 어찌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는 그녀를 아주 잠시 동안 쳐다보던 시부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자를 내려간다.
그제서야 비로소 눈물을 떨궈 내고는 시부가 던진 종이에 쌓인 무언가를 펼쳐보는 보고 그 자리에 쓰러져 울음을 토해내는 그녀.
작은 종이포장에서 나온 것은 그녀와 잘 어울리는 분홍빛의 작은 노리개.
쌀쌀맞지만 따뜻한, 매섭지만 정다운 시부의 마음이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_
그녀의 품에 쓰러져 잠든 밤 이후 그녀를 찾지 않는 호수.
마주치지도 작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호수를 찾지도 부르지도 못한채 방안에서 소리없이 앓고 있던 그녀였다.
‘벌써 잊으신건가요, 아니면 질리신건가요. 아무런 도움도 되어드릴 수 없는 제게 지치신건가요....’
드르륵_쾅!
“야! 들어간다.”
퉁퉁 부은 눈의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세차게 열린 문 사이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호영.
“뭘봐, 씨! 눈도 멍청이 같은게 쳐다보지 말아라 역겨우니. 가뜩이나 못난 얼굴 이러니 그녀석도 안...찾...”
순식간에 맺혀 버리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는 입술을 꾸욱 깨물더니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는다.
“슬프냐.”
퉁명스러운 호영의 말투에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그녀를 바라보는 호영의 눈빛이 변한다.
“뭐가 그리 좋냐.. 재미도 없고...재미도 없고...그래 재미없는 놈인데 뭐, 얼굴 뜯어먹고 살라 그러냐.”
“...........”
“제기랄, 병신 육갑 한다는게 이것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군.”
잠시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호영이 이내 눈빛을 거두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버린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 눈물 때문인지 잿가루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조차 흐릿해진다.
한번만 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욕심인건 알지만 다시는 자신을 찾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의 준비를 끝낸후에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오랜시간 그를 담아두고 싶었다.
그렇다면 영영 자신을 찾지 않아도 평생 그를 보지 못해도 조금이나마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 그날 밤_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달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그를 떠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참 고우셨지요, 처음에 봤을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내가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그 중 가장 빛나는 분이실 꺼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참 냉정하시던 분이었지요, 그래서 가끔 절 보고 웃어 주실 땐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 할때가 많았습니다. 보기엔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얼음장 같은 분이셨지만 손은 참 따뜻한 분이셨지요, 한 발 두발...다가가기는 어려웠지만 그다음부터는 하도 따뜻해 한없이 기대고 싶었지요.”
“그러셨습니까.”
멈칫_ 그녀의 작은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작게 떨리더니 조심스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갤 내민다.
창문 바로 옆 담벼락에 기대 서 있는 그를 보고는 또 다시 거짓말처럼 눈물을 떨궈내는 그녀.
“매일 밤 이곳에서 기다렸는데..불러주기를, 말하지 않아도...전과 같은 그 고운 목소리로 불러주길 기다렸건만..결국 내가 당신을 불러야..그제서야 나를 봐주는겁니까.”
원망일까, 서운함일까, 알수없는 목소리로 담벼락을 짚고 일어나 그녀와 마주보는 그.
전과 같이 깊은 그의 눈동자에 슬픔이 서려있다. 그리고 불안.
한 없이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던 그가 작게,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연다.
“이별을...말하려 왔습니다.”
쿵_ 그녀에게만 들리는 커다란 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꽉 채운다.
흐릿하게 보이는 그를 똑바로 보기위해 눈물을 닦아내며 눈을 부릅떠본다.
“오늘부터 그대를 찾지 않을 것 입니다. 보지도 않을 것 이고, 아마 보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어쩌면 처음부터 그저 연모가 아닌 동정으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대의 밝은 모습이, 티 없이 깨끗한 그 마음이, 내겐 없는 그 환한 웃음이 맑은 목소리가 신기해서...
....그리하여 사랑한다고 착각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당신의 그런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어서..
....그리하여서라도 이 답답하고 어두운 삶을 조금이라도 밝혀보고 싶어서...”
그녀의 눈물이 서서히 말라간다, 그녀의 가녀린 두 손에 가려져 있던 입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머뭇거림이란 없는 분께서 어디서든 굽힘없이 단정하시던 분이...어찌그리 횡설수설 하십니까.
차라리 처음 뵈었을 시처럼 그리 냉정히 말하시면 차라리 그리 하셨으면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속아 드릴 수 있었을텐데..’
“믿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뜻을...따르겠습니다.”
그녀의 웃음기 있는 작은 목소리에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다 이내 슬픔 가득한 미소를 띄우며 고갤 끄덕인다.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웃음이라기엔 한 없는 슬픔이 담겨 오히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호영의 마음 한구석이 시려온다.
“끼니는 거르지 마십시오. 거처 또한...이 곳에서 계속 머무르셔도 됩니다. 가끔...저희 부모님께는 가끔이라도 좋으니 찾아뵈어주십시오. 약조...해주시겠습니까?”
“내일도 모레도 같은 하늘 아래 숨 쉼에도..가뜩이나 커다랗게 보였던 이 집이 삼천리 쯤 되는듯 합니다...서...아니 도련님의 그림자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그리 숨은듯 살겠습니다..부디 걱정은..”
“한없이 나약하여...끝없이 부족하여...미안합니다...부디...”
말끝을 흐리며 돌아선 그가 그녀에게서 멀어져 간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휘어잡으며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차오르는 눈물이 떠나는 그의 모습을 가릴새라 쉴새없이 눈물을 닦아내며 어둠속으로 점점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앞을 호영이 막아선다.
“그만 울어 이 찌질아.”
마치 호영의 몸을 관통하여 멀어지는 그가 보이는듯이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그녀.
“나약해 빠진 놈, 멍청한 놈, 못난 놈, 병신같은 놈, 우라질육시랄 놈, 고자 되어 마땅할 놈!”
“이쪽은 달빛이 없어 서방님을 뵙지 못했습니다만...도련님께서 계신 곳에선 잘 보이셨겠지요?”
“뭐가, 그 염병할 놈 말이냐? 보다마다! 하도 역겨워 내 고개를 돌려서 못봤지만 서도 찰나의 순간 그 뻔뻔한 낯짝 잘도 보이던군. 왜 그 녀석이 울기라도 하길바랬더냐? 울음커녕..”
“야위시진...않았더이까?...행여 그 고운 얼굴에 작은 그늘이라도 지진 않았더이까?..”
순간, 입술을 꽉 깨문 호영이 그녀의 열려있던 창문을 쾅 닫으며 소리친다.
“이런 병신! 야위어? 니깟꺼보다 훨씬 이쁜 새 첩을 들일 생각에 정신이 나갔는지 새털처럼 가벼이 가더라!
벌써부터 그 계집년 얼굴이 아른거리는지 소매로 쉴새없이 눈을 부비며 훠이훠이 가더라!
니까짓거 벌써 다 잊어버렸는지 두 번도 뒤돌아보지 못...하고 가더라!
그러니 너도 얼른 그 궁상맞은 표정일랑 집어치워버리란 말이다!”
호영의 호통에서야 초첨을 찾은 그녀가 조용히 닫힌 창문에 기댄 호영의 그림자에 손을 올린다.
“닮으셨습니다...도련님 역시 그분과 꼭 닮으셨습니다..그래서 한없이 마음이 아렸지요..제가 무슨 복을 타고났기에...
또 제가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이리 아름다운 분들께 분에 넘치는 정을 받았는지...
이리 고운 분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말았는지..”
“그 녀석이 떠난건! 니가 이렇게 멍청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머저리나 이 머저리나! 이런 염병할!!!!!!병신들둘이 아주! 잘 놀고있어! 아주 잘!!!!어차피 둘다 병신이 되버릴...!!...”
덜컹_!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지금!..무엇..”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저 하얗게 질려 있을뿐...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리는 입술로 호영을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치는 그녀.
“염병, 귀는우라지게 잘 뚫려있나보군.”
“...병신이 된다니요!!! 둘다 라니요!! 서방님께 그 무슨..!!”
“그것을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단호한 목소리, 호영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호수의 목소리 또한 아니였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그녀와 껄렁한 자세로 작게 고갤 숙이고 뒤로 물러나는 호영.
“네가 원하던게 이런것 아니였느냐?”
“....아버..”
“내가 아직 너의 시부였더냐?”
시부의 호통에 작게나마 들었던 고개를 다시 푹 숙이는 그녀.
“그만하십시오! 왜 아버님까지 이 아이에게 그리!!..”
“다물거라.”
호영에게도 호수에게도 찾아 볼 수 없는 압도감이 호영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그녀의 숨을 더욱더 조여온다.
“내가 얘기 할것도 없이 그 녀석이 모두 말한 것 같구나. 더 할 말 이 있느냐?”
“......”
“쯧. 그렇겠지, 니가 원하는대로 하거라. 이 집에서 없는 듯 산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또한 니가 이집을 나가고 싶다면 생계부지를 할 정도의 노잣돈 정도는 쥐여주마...그것도 마다한다면...너의..”
“염병!!!!”
참다 못한 호영이 뒤돌아서 쪽문을 박차고 나가버리고, 그런 호영의 뒷모습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채 고개 숙인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내뱉는다.
“가진것은 없어도 맹랑하고 영특한 아이인 것은 알고있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과제이니 잘 생각해 보거라 어떤것이.”
“........”
“너의 시모를 너의 지아비를 ... 너의 마지막 가족들을 생각하는 일인지.”
놀란 눈으로 시부를 올려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돌아서 가버리는 그녀의 시부.
“아가야, 나는 니가 현명한 판단을 내렸으면 좋겠구나..”
바람결에 묻혀 들리는 호수와 같은 따뜻한 목소리.
‘서방님도 도련님도...아버님 역시...참으로 고우신 분들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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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기고 또 새기었습니다. 잊지 않기위해 눈에 담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는 영원토록 담아두기 위해,
일각이 하루만 같던 시간이 세상이 하얗게 변한 겨울이 오기까지 매정히도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해가 뜨고 어떻게 달이 지는지도 모르겠는데 꽃이 떨어지고 낙엽이 지고
이젠 세상에 온통 하얗게 눈송이 까지 떨어지는 것을 보니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나봅니다.
“작은마님...”
“명월아,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작은대감...아니..그러니까...도련...아니...아이구.. 아무튼간에!”
명월이의 머뭇거림에 버선발로 마당까지 뛰쳐나오는 그녀를 보자 다급하게 자신의 치맛단을 가온의 버선발 앞에 펼쳐놓고 그녀의 말을 감싸는 명월.
“아구구구, 땅기운이 찹니다! 어서 방으로 드세요!”
“도련님이 왜! 도련님께 무슨일이 생긴게야? 응?”
“도...도련님이 찾으십니다..”
명월이의 말에 다급히 올라갔던 팔이 툭 떨어진다.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버리는 가온.
“작은마님! 몸 상하십니다! 얼른 일어나세요! 네? 제발 일어나세요!”
명월이의 말이 들리기나 하는지 매일같이 가슴한켠에 담아두기만 했던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 혼자 있을때조차도 꽁꽁 숨겨두기만 했던 그 얼굴을 떠올려본다.
#.정자_
“이런 염병할, 같은 기와 아래 있는데 쪽문하나 건너오는게 그리 힘들더냐? 그놈의 낯바닥 비싸기도 하네!
내가 그리 찾아가도 방문을 열어주지 않더니 겨우 그깟놈 이름이 올라가야 그 수족은 움직인다더냐!”
성큼성큼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호영의 모습에 아련한 미소를 띄우며 고갤 숙이는 가온.
“어찌하여 그리 아픈 농을 하셨습니까.”
“어쭈, 이제 소박 맞았다고 막나가겠다 이거냐!?”
“...행복...하시지요?”
고개숙인 가온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콧방귀를 끼며 그녀와 같은 아련한 눈으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이내 손을 내리며 주먹을 꽉 쥔다.
“흥! 내 안부를 그리 묻는게냐 아니면 그 녀석의 안부를 묻는게냐!”
소리없이 눈물을 떨궈내는 가온을 내려다보며 흙바닥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호영.
“그 녀석은 아주 잘 살고 있다! 아주 건방져졌지! 온갖 착한척 다하던 놈이 길바닥에 자빠진 애한테도 말도 한마디 안건내고 지나갈 만큼!
동전 한닢 적선해달라고 온 거렁뱅이 녀석들을 보고도 마치 한줌의 먼지인냥 본 척도 안하고 지나가버리지!
어떠냐! 너의 전 서방이라는 작자의 근황이! 만족스럽더냐?”
호영이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였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도포라도 벗어서 추운 자의 어깨를 덮어주던 사람이었다,
악취가 진동하던 거렁뱅이들이라도 자신의 옷을 탈탈 털어 꺼낸 동전들을 한 사람 한사람 손에 꼭 쥐여주고도 마음이 아파하던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니가 요즘 자주 찾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시더라, 그 녀석은 그녀석이라도 널 친자식처럼 아끼던 우리 어머니의 속까지 까맣게 태우지는 말아라....흠흠, 됐고 오늘 내가 너를 이리 부른이유는...”
“....”
“재미있는 구경 시켜주랴?”
벌떡 일어나 조용히 고갤 젓는 가온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고는 성큼성큼 대문을 나서는 호영.
반항 할 힘조차 없는 가온은 고갤 푹 숙인채 가엽게 끌려갈 수밖에 없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줄 모르는 명월이도 그들의 뒤를 따른다.
수 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의 눈은 서서히 조금씩 꾸준히 나빠졌다.
매일같이 천장과 하늘만 보던 그녀의 시력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북적거리는 저잣거리에서
행여나 넘어질까 호영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기위해 사력을 다하는 가온을 알기나 하는지 계속해서 알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앞서가는 호영.
“어...어디에 가는지라도...”
“잠자코 따라 오기나해!”
시끄러운 저잣거리를 지나 한적한 개울이 흐르는 곳에 당도한 호영이 거친숨을 몰아쉬다가 침을 퉤 뱉으며 뒤돌아 가온을 쳐다본다.
그러다 진저리가 난다는 듯 비뚤게 쓴 갓을 훽 넘겨버리고는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호영의 손 끝을 따라가던 가온의 시선이 이내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한다.
“몇날 몇일을 방구석에 쳐박혀 아무것도 하지않고 술만 마시더니 어울리지도 않는 한량 흉내를 낸답시고 매일 같이 저지랄이지. 할려면 제대로 하라고 기방에도 몇 번 데려갔건만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뛰쳐 나오더군, 어떠냐 저게 아직도 꿈에 그리던 너의 낭군님이더냐?”
가온의 눈엔 호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알 수 있었다,
흐릿하게나마 매일같이 그려오던 그의 모습인지라 제대로 보이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속에 그의 모습은 그려지고 있었다.
어떠한 모습이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흐릿한 그녀의 눈에서 조차 야윈 그의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거짓이라도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있던건만 미약하게나마 눈에 보이는 그의 달라진 모습에 숨이 막혀왔다.
“평생 똑똑한 척 하던 저 녀석도, 온갖 고상한 척 하던 니 녀석도 멍청하고 답답한건 마찬가지더구나.
우리집 늙은대감 말듣고 잠자코 기다리는것도 하루이틀이지! 염병할!!!
이 사실을 늙은대감이 알게 된다면 난 온갖 점잖은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또 말안되는 서책들과 함께 방에 던져지겠지만 이건뭐 이러나 저러나 숨막히는건 똑같겠더군!”
“어찌...어찌하여...”
“많이 아팠다. 비록 그게 마음만큼은 아닐지라도 매일 밤 악몽을 꾸며 매일같이 진땀과 눈물로 배게를 적시며 너와 다름없이 그리 살아왔어.”
그녀의 젖은 눈이 커진다. 그녀의 눈빛을 읽은 호영이 입술을 꾸욱 깨물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어가며 말을 이어간다.
“저 녀석 네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된 후부터 몇 일 밤낮을 뛰어다녔어,
이 넓은 조선땅을 산으로 바다로 밤낮없이 정말 미친놈처럼 뛰어다녔지 막상 지 녀석 상처는 돌보지 않고 말이야.
지 모가지에 남은 상처는 점점 깊게 썩어 번져가는데도 오늘이 되기까지 제대로 잠들어 자본적이 없었지.
그리고는 자신의 무능함에 상실하더군 그리고나서야 자신의 상처를 보고는 무너지더군.”
“흐으...으...으...”
그녀도 무너져버린다, 울음조차 제대로 토해내지 못하는 나약한 몸으로 터져나오는 신음을 힘겹게 토해낸다.
“웃긴건 말이야, 난 그녀석이 네게 화가 난 줄 알았어. 하지만 역시 그 녀석은 나와는 다르더군 자기 목에서 팔로 심장으로 번져가는 상처를 가릴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입을열었어 네가 자신의 이런 꼴을 보면 슬퍼할꺼라고 하하, 어이가 없더군 마지막까지 저 녀석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겨우 네 녀석이 가질 죄책감과 걱정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자신보다 잘하던 형이 부러웠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도 많았고 나이가 들수록 유난히 반항과 세상에 대한 불만이 심했던 그였지만
한번도 그의 동생이란 점에 불만을 갖진 않았다. 그의 동생이어서 그가 자신의 형이라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그보다 먼저 마음에 담아두었던 그녀도 보내주었다.
자신이 막을 방법이 없을 것 이란 것도 알고 있었지만 자신보단 형이 훨씬 그녀와 어울릴 것이라는 믿음에 눈물을 삼키며 보내주었다.
그가 그녀의 곁을 떠났을 때 매일밤 강제로라도 몰래 멀리 데리고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자신보다 먼저 그녀의 닫힌 창문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죽이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는 눈물을 흘릴 자격조차 없음에 눈물대신 쓴 술을 삼켜야만 했지만...행복하길바랬다.
자신이 사랑하는 형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함께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제대로 울 수 조차 없이 손만 대도 바스라 질 것 같은 이 여인을 안고 싶었다.
“달려가보세요, 가서 욕이나 실컷 퍼부어주세요....그러면 그 후에는 형님이 알아서 해주실 껍니다.”
더 이상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사내의 마음으로 하는 말이 아니였다,
자신과 피와 살을 나눈 형님이 사랑하는 여인인 형수에게 하는 부탁이었다.
“제가...가도 될까요, 저 옆으로 가도...”
“진작에 가셨어야 될 길입니다. 머뭇거리다가, 주저하시다가, 돌고돌아 힘들게 이제야 잃어버렸던 길을 찾으셨는데 무엇 때문에 또 머뭇거리시는 겁니까.”
호영의 작게 떨리는 손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그가 있는 곳으로 돌려준다.
“이 길 그대로 발길 닿는 마음닿는 그대로 걸어가시면 됩니다, 형수님.”
그녀의 향기가 호영에게서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며.. 그녀를 잠시나마 감쌌던 자신의 손을 한번 쥐여보고 이제 한걸음 물러난다.
“야 명월이랬나? 나 좀 멋있었냐.”
“한낯 미천한 종인 제가 감히 작은도련님을....”
“에효, 이 답답한 백성아.”
“제가 본 사내놈들 중엔 최고로 멋진 사내였습니다요.”
“미천한 종 치고는 양반한테 말이 좀 거칠다? 내가 성격 좋으니까 봐주지 아니였으면 바로 능지처참이야 임마.”
“하이고, 그랬으면 전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습죠.”
“나 이래뵈도 양반인데, 염병. 이젠 너까지 날 무시하냐...됐다, 이리와라. 좋은 구경거리나 지켜보자고.”
그의 입가에 그의 형과 닮은 그러나 전과 다른 미소가 걸린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 땅에 발바닥이 붙은듯 무겁게, 새털이 바람에 날리듯 가볍게. 그렇게 그에게로 다가간다.
그에게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지자 심장이 요동친다, 그리고 한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점점 안개가 드리워진다.
이내 잠든 듯 두 눈을 감고있는 그의 바로 옆까지 다가간 그녀.
그토록 원하던 그의 모습인데 또렷하지가 않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안개낀 눈을 원망하였다.
그의 옆에 살며시 앉자 자신의 흐릿한 눈에도 선명히 보이는 그의 화상의 여운에 마음이 또다시 저려왔다.
그 고운 눈송이조차도 미끄러질 듯 고운피부 위에 남아있기엔 너무나도 미운 상처였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혹여나 손이 닿으며 사라져 버릴까
그럴수조차 없었다. 그저 꿈에서 깨기 전 까지 원 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행복하였다.
“매일같이 눈을 감고도 그대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하였음에도, 막상 눈을 뜨면 그대가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눈도 뜨지 않은채 말하는 그의 입술을 내려다보는 그녀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자,
그가 강한 힘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당겨 자신의 위로 넘어뜨린다.
꿈이 아니다,
그의 향이 코를 메우고, 그의 목소리가 귀를 메우고, 그의 시선이 눈을 메우고, 그의 작은 떨림이 그녀의 심장을 메운다.
너무나도 오랜시간 텅 비어있던 심장이 비로소 메워져온다.
“오랜시간 제 거짓말을 믿으셨습니까?”
“믿었습니다. 거짓임을 알기에 믿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몸은 나뉘어도 마음은 나뉘지 않았음을 알기에 제 마음에 움직임이 없었기에 서방님의 마음 또한 믿어 의심치 아니하였습니다.”
“제가 원망스러우셨겠지요.”
“제겐 그럴 자격이 없었습니다.”
“제게 실망하셨겠지요.”
“제겐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원망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실망하였습니다, 제 자신에게 전 그리 못난 사내입니다.”
그의 짧은 말 안에 담겨있는 그리움에 그의 애절함에 그제서야 그녀는 꾹꾹 눌러왔던 그간의 슬픔과 그리움을 모두 토해낸다.
“욕심 부리고 싶지 않았습니다...그저...그저...전...그저....”
그녀의 입술을 막는다, 말 하지도 않아도 알기에 보고있음에도 그립기에 조금 더 그녀를 당긴다.
오랜 시간동안 나누지 못했던 그리움을 그들에겐 한없이 짧은 입맞춤으로 대신한다.
-
끼익_
무거운 대문이 열리고 그녀의 손을 잡은 그가 머뭇거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발견한 하인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종종거리며 대문만 쳐다보던 명월이도 눈물을 훔친다.
그들의 들리지 않는 반가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고개를 숙인채 들지 못하는 그녀의 손을 더욱더 세게 쥐는 그가 이내 마당에 들어오자,
“내가 내준 과제에 대한 답변이 이것이더냐!”
천둥과도 같은 시부의 호통에 움츠린 그녀의 귓가에 기품있고 차분한 시모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조금 더 일찍 너를 찾아오지 못한 내 아들 녀석에게, 조금 더 일찍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내 며느리에게 심통이 나신게란다. 그렇지요 대감?”
“흠!..흠!”
“너와 내가 연모해온 사내들이란 하나같이 이리 겉과 속이 다른 모양이다, 네가 많이 보고싶었던 모양이구나.”
지금껏 보이지 않은 당황한 듯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며 고갤 돌리는 그녀의 시부의 모습에
그녀의 시모 역시 계속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마루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간다.
“나 역시 네가 많이 보고싶었단다, 아가야.”
그녀를 품에 안은 그녀의 시모가 가녀린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자 또 다시 그녀는 눈물을 흘러보낸다.
“매일 같이 너의 닫힌 방문을 한참이고 쳐다보던 이 집안 세 사내들의 사랑을 받는 네가 한없이 부럽더구나,
날씨가 더워졌다며 네가 작은 창문 하나를 열어도 모든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매일 같이 모든 집안의 창을 열어 놓으시던
이 집의 가장 나이가 많은 사내가.. 네가 매일 계절변화의 아름다움을 봤으면 좋겠다며
네 방 창 근처에 꽃을 심고 낙엽을 쓸어 모으며 가꾸던 이 집의 가장 심술궂은 사내가...
자기 자신보다 너를 더 걱정하여 매일밤 네 방 창 밑에서 시간 흐르는 줄 모르고 지키던 이 집의 가장 한심한 사내가....가여웠다,
그리고 그 창을 열어보지 못하는 네가 가여웠다.”
“하지만...하지만...저는 여전히...”
“내가 너의 눈이 되어 줄 것이야, 내가 아니면 네 시부가 눈이 되어줄 것이고,
그래도 안되면 네 남편이, 네 시동생이...네가 원한다면 이 집안의 모든 사람이 너의 눈이 되어줄 수 있단다.
아가, 넌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눈을 갖고 있단다 천지신명께서 그런 너의 눈을 시기하셨나보구나, 그리 생각해주렴.
네가 우리를 보지 못하게 되어도 우리는 평생 네 눈을 볼 수 있고 네 눈이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세상이 이리 곱고 어여쁜 너를 봐 줄 것이야. 이로써 넌 세상에서 가장 많은 눈을 갖게 된 것 이란다.
그러니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주겠니? 이 늙은 어미의 소원을 들어주겠니?”
한참을 주저하던 그녀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짐을 보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웃음을 지어보이는 사람들.
“고맙구나...정말, 고맙구나.”
그녀의 주름진 시모의 눈에서도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의 시모도, 시부도, 시동생도 빗자루를 들고있던 개똥이 아버지도, 주걱을 들고 있는 잠년이도 쓱쓱 눈물을 닦아낸다.
#.그날 밤_
의원이 한참동안을 그녀의 눈을 살피다가 나간 뒤, 그녀를 불러들이는 시부.
“부르셨습니까.”
“앉거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의 앞에 절을 하며 앉는 며느리를 보며 소매에서 작은 약재봉투를 던져주는 시부.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내 너에게 해되는것을 줄까 그러느냐!”
자신의 호통에도 변함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를 보며 안쓰러운 미소를 보낸다.
“내가 보이느냐.”
“보이옵니다.”
“내가 어떠한 눈으로 널 보고 있는지도 보이느냐.”
“보이옵니다.”
“어찌 내 앞에서 거짓을 말하느냐! 의원이 분명..!!!”
또 다시 닥쳐오는 시부의 매서운 호통에 어여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녀가 입을 연다,
“서방님께 눈을 감고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둠속에서도 마음을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록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계절의 변화와 시문의 서체는 보지 못하오나...그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서방님의 마음을,
그런 서방님을 안타까워 하시는 아버님의 마음은 이 어둠속에서 너무나도 눈부시게 잘 보이옵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에 돌아가 있던 몸을 그녀에게 돌리며 그녀를 바라보는 시부.
“네가 잘못 알고있다.”
시부의 목소리에 놀란 그녀가 고개를 들자,
“난...이래서 원치 않았다, 너 같이 때묻지 못한 빛나는 아이가 우리집에 들어와서 받을 시선에 네가 다치지 않길 바랬다.
내 며느리 만큼은...내 아들의 아내만큼은 그 비수들에서 지켜주고 싶었건만...미안하구나 아가.”
#.6년 뒤_
“어머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정자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달려가는 아이.
“오늘도 즐겁게 보내었느냐?”
“예! 소자, 오늘은 아버지랑 반딧불이라는 녀석을 보았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벌레였습니다!”
온화한 미소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을 보고는 더욱 신나 재잘 거리는 아이.
“호야,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네 방으로 건너가도록 하여라.”
아이의 뒤를 따라 들어와 한참을 묵묵히 앉아있던 반듯한 남자의 말에 똘망똘망한 눈을 굴리며 여인을 바라보는 아이.
“소자,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자면 안되겠습.....”
“아니된다.”
남자의 단호한 말에 입을 씰룩대며 여인의 품에 포옥_안기는 아이. 그런 아이를 감싸앉자,
“남자끼리 한 약속을 잊은것이냐, 그 자리는 분명!...”
“까먹었사옵니다! 저도 어머니가 좋습니다! 저도 훗날 어머니와 혼례를 올릴 것 이옵니다!”
“아니될말이다.”
두 사내의 팽팽한 신경전에 6년전과 같은 어여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그녀.
“아버지께서 짖궂은 장난을 치시는 거란다, 그럼 우리 호야 오늘이 이 어미와 함께..”
“명월아.”
그의 낮은 말에 울상이 되어버리는 아이, 이내 툴툴 거리는 명월이가 들어와 아이를 번쩍 안아들고 방을 나선다.
“어휴, 정말 질리지도 않으십니까!! 다 늙어가는 난 이게 무슨 죄람!!”
명월의 말이 들리기나 하는지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에게 다가가는 그.
“분명 계절이 변하였고, 호야도 저리 컸으니, 저도 변했을터인데 어찌 서방님은 만큼은 아직 그대로시랍니까.”
그녀의 웃음기 가득한 꾸지람에도 여인의 품을 파고들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시간이 흘러 난 점점 늙어가는데 당신은 어찌 변함없이 아름다운건지, 난 아직도 사내가 되려면 멀었나보오.“
“무슨말씀이신..”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잠시동안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리던 그가 풀죽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만약 그대의 눈이 전과 같이 맑았다면...나 같은 못난 사내가 아닌 훨씬 더 멋진사내들이..”
요번엔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맞댄 그녀가 전과는 다소 다른 요염한 목소리로 웃음을 흘린다.
“제 눈엔 오직 서방님만 보이니 어찌하옵니까?”
제 작은 두 눈에 모두 담기엔 흘러 넘쳐 버리기 아까워 그러셨나봅니다. 그러셨지요?
아빡쳐호수안멋있어.분량도없어.한것도없어.차라리호수아빠가더멋있었겠네난망했어.
아왜조선시대에는욕안하고모든말이정겨움?
다음엔캐달달유치막장갖고올꺼야나화났음.
첫댓글 우와 ㅋㅋ 재밌게보다가요ㅎㅎㅎㅎㅎ이 소설도 달달한데?!
♥좋아융♥안뇽하세요To너에게님ㅎ.ㅎ아..부끄러운쑈쎨입니댜ㅠㅠ감사해용ㅎ.ㅎ다같이달달♥
저런 서방님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ㅜㅜㅋㅋ 이번 소설도 달달해요!!ㅋㅋ
♥좋아융♥5랜만이에요채이님ㅎ.ㅎ저런서방님은어디엨ㅋㅋㅋ곧만나실꺼예염다같이달달♥
ㅋㅋㅋㅋ크크킄크 잘읽다가 마지막에 요다님 ㅋㅋ 분노의 빨강 궁서체 ㅋㅋㅋㅋㅋㅋ ㅋㅋㅋ 캐달달한 유치막장 기대하고있을게용ㅋㅋㅋㅋㅋ
♥좋아융♥쀼띠냥oㅣ님방가방가ㅎ.ㅎ아마지막에포풍분놐ㅋㅋㅋㅋ다음편에만나염다같이달달♥
요다님ㅎㅎ너무재밌어요 ♥
♥좋아융♥가을님안뇽안뇽하세요ㅋㅋㅋㅋㅋㅈㅐ미있다니빵끗♥∇♥어쨌든빵끗...다응편에서두만나융♥우리모두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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앍방가워요나알아요맑은구름님ㅎㅎㅎ이번편이랑전편이같은내용을두가지버전으로쓴거라용ㅎㅎ번외는엄쩌욤ㅎㅎ오랜시간동안꾸준히댓글달아주셔서감사해요ㅠㅠ학교때문에도통시간 ㅣ안나네요ㅜㅜ그래두담에꼭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