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소도(蘇塗, 삼한 시대에 천신을 제사하던 聖地)의 어원적 변형으로 보는 ‘솟대’와 ‘별신대’는 신간(神竿, 서낭당에 세워 신이 내리기를 비는 막대)으로서 흔히 대[竹]로 만드는데, 신과의 교감交感을 바라는 심리적 반영의 한 형태이다.
이런 내용도 있었다.
무속신화에서 담금애기의 아들 3형제가 대나무 밑에서 아버지를 찾다가 대나무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주겠다고 한 데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상주들이 대지팡이를 짚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풍습에 새벽에 문 밖에서 대를 태워 그 소리로 잡귀를 쫓는 것은 중국의 폭죽 풍습과 맥을 같이 한다.
대는 번식력이 강하고 상록인 점에서 소나무와 비견되는 영생과 불변을 상징한다. 또 대는 신을 부르거나 내리게 하는 신대로 사용되는 점에서 신화적 상징성을 유추하게 된다. 즉 대는 신령의 집, 신령의 통로 등을 상징한다.
대나무를 소재로 한 시도 있었다. 그 중 한 가지, 윤선도의 시조....
나모도 아닌 것이 플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였난다.
뎌러코 사시에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竹夫人傳 /
고려 말의 학자 이곡(李穀, 목은 이색의 아버지. 차마설借馬說을 지음)이 쓴 가전체(假傳體, 물건을 의인화擬人化해서 쓴 글) 작품으로 서거정徐居正이 만든 동문선(東文選, 역대 시문선집) 101권과 가정집(稼亭集, 이곡의 문집)에 실려 있다.
작자(이곡)가 글을 쓴 동기 :
고려 말은 성적으로 문란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성리학 학자였던 이곡은 이에 대해 일종의 열녀전을 써서 당시 시대상을 비판하려고 하였다.
원문과 해석 : 출처는 外한국고전번역원
夫人姓竹名憑。渭濱人篔之女也。
系出於蒼筤氏。其先識音律。黃帝采擢而典樂焉。虞之簫。亦其後也。
부인의 성은 죽(竹)이요, 이름은 빙(憑)이니, 위빈(渭濱) 사람 운(篔)의 딸이다.
족계(族系)가 창랑(蒼筤, ‘어리고 푸른 대나무’라는 뜻)씨에서 났는데, 그 조상이 음률을 알아 황제가 뽑아서 악樂을 맡아보게 하였으니, 우虞 나라의 소(簫, 악기 이름)가 역시 그의 후손이다.
蒼筤自昆侖之陰。徙震方。伏羲時。與韋氏。主文籍。大有功。子孫皆守業爲史官。
창랑蒼筤이 곤륜산(崑崙山, 중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영험이 강한 신선들의 땅) 남쪽으로부터 진방(震方, 동쪽)에 옮겨와 복희씨 때에 위韋씨와 더불어 문적文籍을 주장하여 크게 공이 있어 자손이 대대로 다 사관史官의 업을 지켜 왔다.
秦之虐也。用李斯計。焚書坑儒。蒼筤之後。寢微。至漢。蔡倫家客楮生者。頗>學文載筆。時與竹氏游。
진秦 나라가 포학한 때에 이사(李斯, 춘추전국시대 초날 사람)의 계교를 써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묻어 죽이매, 창랑의 후손이 점점 한미하였고, 한대漢代에 이르러 채륜(蔡倫, 중국 후한 중기의 환관)의 문객 저생(楮生 종이)이란 자가 자못 글을 배워 붓을 가지고 때로 죽씨와 더불어 놀았다.
然其人輕薄。且好浸潤之譖。疾竹氏剛直。陰蠧而毁之。遂奪其任
그러나 사람됨이 경박하며 참언讒言을 좋아하여 죽씨의 강직함을 보고 슬그머니 좀먹어 헐어(헐뜯어) 드디어 소임을 빼앗았다.
周有竿。亦竹氏。後與太公望。釣渭濱。太公作鉤。竿曰。吾聞大釣無鉤。釣之大小。在曲直。直者。可以釣國。曲者。不過得魚也。
주周 나라에는 간(竿, 종이가 나오기 전 사용하던 竹簡은 대나무를 가죽끈으로 연결한 것)이 있었으니, 또한 죽씨의 후손이다. 태공망(太公望, 중국 殷代의 현인. 본명은 여상呂尙)과 더불어 위빈渭濱에 낚시질할 때, 태공이 갈퀴(낙싯대)를 만드니, 간竿이 말하되, '내가 들으니 큰 낚시는 갈퀴가 없다 하나이다. 낚시의 크고 작음이 곡직(曲直, 굽음과 곧음이라는 뜻으로, 사리의 옳고 그름을 이르는 말)에 있사오니, 곧은 것은 가히 나라를 낚을 것이요, 굽은 것은 고기를 얻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였다.
太公從之。後果爲文王師。封於齊。擧竿賢。以渭濱爲食邑。此竹氏渭濱之所起也。
태공이 그 말을 좇아 뒤에 과연 문왕(文王, 周나라의 임금 희창姬昌)의 스승이 되어 제齊 나라에 봉함을 받았고, 간(竿)의 어짐을 천거하여 위빈으로써 식읍을 삼게 하니, 이것이 죽씨 위빈의 유래이다.
今子孫尙多。若箖箊䇹筳是已。徙楊州者。稱蓧蕩。入胡中者。稱篷。
지금도 자손이 아직 많으니, 임箖ㆍ어箊ㆍ군䇹ㆍ정筳이 그것이요, 양주楊洲로 옮겨간 자는 조(條, 細竹)ㆍ탕(簜, 大竹)이라 일컫고, 호중胡中으로 들어간 자는 봉(篷, 編竹)이라 일컫는다.
竹氏大槩。有文武幹。世爲籩簋笙竿禮樂之用。以至射漁之微。載在典籍。班班可見。
죽씨는 대개 문(文)과 무(武)의 두 줄기가 있어, 대대로 변(籩, 제사나 연회때 사용하던 그릇), 궤(簋, 제사때 햇곡식을 담던 그릇), 생(笙, 생황), 우(竽, 피리)와 같은 예악禮樂의 소용으로부터, 활쓰고 고기잡는 작은 용도에 이르기까지 전적(典籍)에 실려 있어, 마디마디 볼 수 있다.
唯䇞性至鈍。心塞不學而終。至篔。隱而不仕。
오직 감(䇞, 죽순이 맛있는 대나무)은 성질이 지극히 둔하여 속이 막혀 배우지 못하고 죽었으며, 운(篔, 왕대나무)에 이르러 숨어 벼슬하지 않았다.
有一弟曰簹。與兄齊名。虛中直己。善王子猷。子猷曰。一日不可無此君。因號此君。
*夫子猷端人也。取友必端。則其人可知。
한 아우가 있었으니 이름은 당(簹, 왕대나무)으로 형과 이름을 가지런히 하여 가운데를 비우고 자신을 곧게 하였는데, 왕자유(王子猷, 서예가 왕희지의 아들로 이름은 헌지獻之, 대나무를 좋아하였다 함)와 친하게 지냈다. 자유가 말하되, '하루도 이 군君 없이는 살 수 없다.' 하였으므로, 호를 차군此君이라 하였다. 대저 자유子猷는 벗 취하기를 단정한 사람으로 할 터인즉, 그 위인을 알 만하다.
*‘夫子猷端人也。取友必端’은 맹자 이루離婁편에 나오는 자탁유자子濯孺子와 유공지사庾公之斯의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자탁유자란 사람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몸이 아파 활을 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적군의 추적까지 받게 되어 꼼짝없이 죽게 되었는데, 추적하는 사람이 유공지사란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는 내용이다. 유공지사의 스승인 윤공지타(尹公之他)는 자신의 제자이고, 그는 단정한 사람이므로 그가 제자로 키운 사람도 반드시 단정한 사람(夫尹公之他 端人也 其取友必端矣)일 터이므로 자신에게 활질을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단정한 사람은 공사(公私) 구분을 못한다. 판단은 적중하여 유공지사는 화살의 촉을 빼버리고 쏴 그를 살려주게 된다.
娶益母女。生一女。夫人是也。
緫角有貞淑姿。隣有宜男者。作淫詞挑之。夫人怒曰。男女雖殊。其抱節一也。一爲人所折。豈可復立於世。宜生慚而去。豈牽牛子之輩。所可覬覦也。
당簹이 익모(益母, 익모초)의 딸과 결혼하여 한 딸을 낳으니, 부인이 바로 그(죽부인)이다.
처녀 때에 정숙한 자태가 있어 이웃에 사는 의남(宜男, 원추리)이란 자가 음사淫詞를 지어 떠보니, 부인이 노하여 말하되, '남녀가 비록 다르나 그 절개는 하나인데, 한 번 사람에게 꺾인 바 되면 어찌 다시 세상에 서리요.' 하매 의생(宜生)이 부끄러워 달아났으니, 어찌 소 끄는 무리가 엿볼 바이랴.
旣長。松大夫以禮聘之。父母曰。松公君子人也。其雅操。與吾家相侔。遂妻之。
이미 자라나자 송대부(松大夫, 소나무)가 예로써 청혼하니, 부모가 말하되, '송공松公은 군자이다. 그 평소의 조행(操行, 태도와 행실)이 우리 집과 서로 짝이 된다.' 하고 드디어 아내로 보내었다.
夫人性日益堅厚。或臨事分辨。捷疾若迎刃而解。雖以梅仙之有信。李氏之無言。曾且不顧。而况橘老杏子乎。
부인의 성질이 날로 더욱 굳고 두터워 혹 일에 당하여 분별할 때에는 민첩하고 빠름이 마치 칼날로 쪼갬 같으며, 비록 매선梅仙의 신信이 있음과 이씨李氏의 말없음으로써도 한 번도 일찍 돌아보지 않았거니, 하물며 귤로(橘老, 귤)와 행자(杏子, 살구)이랴.
或値烟朝月夕。吟風嘯雨。蕭洒態度。無得而狀。好事者。竊寫其眞。傳之爲寶。若文與可,蘇子瞻。尤好焉。
혹 안개 낀 아침과 달밝은 저녁을 만나 바람을 읊고 비를 휘파람할 제는 그 말쑥한 태도를 무엇으로 형용하기 어려워 호사자好事者들이 슬그머니 그 얼굴을 그려 전하여 보배로 삼으니, 문여가(文與可, 북송의 화가 문동文同을 가리키며 대나무 그림에 뛰어났다고 함)와 소자첨(蘇子瞻, 소동파) 같은 이가 더욱 그것을 좋아하였다.
松公長夫人十八歲。晚學仙遊糓城山。石化不返。
송공松公이 부인보다 나이 18세가 위인데, 늦게 신선神仙을 배워 곡성산(穀城山, 유방을 보좌하여 천하를 통일한 장량에게 육도삼략을 전해줬다는 황석공黃石公의 전설이 있는 곳)에 노닐다가 돌로 화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夫人獨居。往往歌衛風。其心搖搖。不能自持。然性好飮。史失其年。五月十三日。移家靑盆山。因醉得枯渴之疾。遂不理。自得疾。依人而居。晚節益堅。爲鄕里所推。三邦節度使惟箘。與夫人同姓。以行狀聞。贈節婦。
부인이 홀로 살며 이따금 위풍(衛風, 시경의 편명. 기오淇澳라는 시에서 군자의 미덕을 대나무에 비유하여 찬양하였다. 절차탁마가 나온 바로 그 시임. 아래 시 참조)을 노래하매 그 마음이 스스로 흔들흔들 하여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질이 술마시기를 좋아하여, 역사에, 그 해[年]는 잊었는데 5월 13일에 청분산(靑盆山, 화분을 가리킴)으로 집을 옮겨, 취하여 고갈(枯渴, 나무가 말라가는 것)의 병을 얻어 드디어 고치지 못하였다. 병을 얻은 뒤로부터 사람을 의지하여 살았고, 만절(晩節, 늘그막의 시절)이 더욱 굳어 향리에서 일컬어졌다. 삼방三邦절도사 유균(惟箘, 전죽箭竹)이 부인과 동성同姓이라, 행장行狀으로써 위에 아뢰니, 절부(節婦, 절개가 굳은 부인)의 직함을 주었다.
史氏曰。竹氏之先。有大功于上世。其苗裔。皆有材。抗節見稱於世。夫人之賢宜矣。噫。旣配君子。爲人所倚而卒無嗣。天道無知。豈虛語哉
사씨史氏가 말하기를, '죽씨의 조상이 크게 상고의 세상에 공이 있었고, 그 묘예(苗裔, 후손)들이 다 재능이 있고 절개가 있어 세상에 일컬음이 되었으니, 부인의 어짐이 마땅하다.
아, 이미 군자를 짝하고 남의 의지함이 되고도 마침내 후사가 없었으니, 천도天道가 무지하다 함이 어찌 헛말이랴.' 하였다. <終>
瞻彼淇奧(첨피기오) : 저 기수가의 물굽이를 바라보니
綠竹猗猗(록죽의의) : 푸른 대나무 무성하고
有匪君子(유비군자) : 빛나는 그 어른
如切如磋(여절여차) : 깎은 듯 다듬은 뜻
如琢如磨(여탁여마) : 쪼은 듯 간 듯
瑟兮僩兮(슬혜한혜) : 장중하고 당당하여
赫兮咺兮(혁혜훤혜) : 빛나고 훤하다
切磋琢磨 :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學問)이나 인격(人格)을 갈고 닦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