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수소폭탄을 설계한 미국 과학자 리처드 L 가윈이 13일(현지시간)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며느리 타바타 가윈이 확인해줬다고 미국 CBS 뉴스가 보도했다.
여러 미국 대통령들에게 자문했던 저명 과학자 가윈은 핵무기와 물리학, 군사기술을 비롯한 여러다른 분야에 많은 기여를 했다. 미국과학자연맹이 유지 관리하는 가윈 아카이브에 따르면, 그는 5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고 47개의 미국 특허를 취득했다.
IEEE 스펙트럼 매거진에 실린 프로필에 따르면 그가 첫 번째 작동하는 수소폭탄을 설계했던 것은 불과 스물세 살 때였다. 1952년 11월 에네웨탁 환초에서 암호명 아이비 마이크(Ivy Mike)으로 이 폭탄을 터뜨리는 실험을 했는데 TNT 10.4 메가톤의 위력을 발휘해 핵무기 성능을 배가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 프로젝트에 2001년까지 관여했던 가윈의 역할은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 국립 실험실의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 엔지니어들의 작은 서클 밖에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다고 프로필에 적혀 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고인의 과학 작업을 높이 사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오바마는 그에게 "미국 방위와 첩보기술에 선구자적 기여를 했다"고 치하했다.
고인은 2002년 내셔널 과학 메달을 받았으며 2023년 반네바 부시 상을 수상했는데 과학 기술 분야에 평생에 걸쳐 돋보였던 지도자들에게 수여하는 것이었다. 국가 과학 위원회(NSC)의 External Engagement Committee 의장인 다리오 길은 성명을 통해 "리처드 가윈은 진정 두드러진 인물"이라며 "과학 연구자로서와 대통령 고문으로서 둘 다 그의 계속되는 과학에의 기여는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고 국제협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돌아봤다.
고인의 개인사는 별반 알려진 게 없는 듯하다. 1928년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뉴욕주 스카스데일에서 살았다. 고인이 눈을 감은 곳도 스카스데일 자택이었다. 아내 로이스 레비와 70년을 해로하다 2018년 사별했다. 이 커플은 세 자녀를 뒀다.
한편 그는 미국 안보 전문기자 애니 제이콥슨과의 인터뷰를 통해 “핵무기를 가진 허무주의적 광인 한 명만 있으면 승자 없는 핵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1947년 케이스 공과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땄고, 시카고 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취득했다. 당시 논문을 지도한 이가 저유명한 엔리코 페르미. 다른 제자였던 마빈 L 골드버거에 따르면 페르미는 "가윈이야말로 내가 만나본 유일한 진짜 천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