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있는 방/ 최영숙

[최분임]

울음이 있는 방


     최영숙 (1960~2003)
 
1
한 여인이 운다네
다 큰 한 여인이 운다네
이곳은 물소리가 담을 넘는 오래된 동네
나 태어나 여직 한번도 옮긴 적 없다네
그런 동네에 여인의 울음소리 들리네
처음엔 크게 그러다 조금씩 낮게
산비알 골목길을 휘돌아 나가네
햇빛도 맑은 날 오늘은 동네가 유난히 조용하네
한 우물 깊어지네
 
2
그 소리 듣네
마루 끝에 쪼개진 볕바라기 하며
여인의 울음소리 듣고 있네
왜 우나, 사과궤짝에 칸나를 올린 그 집
건너다보면 붉은 꽃대 환하게 흔들리던 곳
울음 뒤에 남는 마른 눈물자국
고요가 더 아픈 것이지만 이젠 들리지 않는
여인의 울음소리 귓전에 맴도네
바람도 없이 스르르 종잇장이 흘러내리네
 
3
그런 방 기억에 있네
바람 부는 초봄이었는지 제 그림자 지우며
기인 담벼락 양지를 따라가던 그 끝에
울음이 있는 방 그늘은 깊었네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눈물은 왜 배고픔인지
허기진 꽃대 마당 가득 휘어 있었네
그 여인 아직도 울고 있는지
어린 날의 나 아직도 품고 있는지
 
4
세월은 강,
(그 강가에서 아이는 오래 발등을 적시었을까, 산그림자 깊은 강물 어둠이 내리기 전에 떠나야 했지만 기억은 언제나 그 그늘 방 앞에 멈추고 있어, 신문지 상보가 덮인 밥상이 하나 물에 만 밥 한술 허공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다 어서어서 자랐으면, 우리 집 분꽃은 허리만 길어 가을이 되어도 씨앗 영글지 못했다 공기 속을 떠다니는 먼지의 입자 한줄기 빛을 따라가면, 가다보면…… 나, 그곳에 데려다줄래?)
 
 
 
            ―시집 『골목 하나를 사이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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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 1960년 서울 출생. 숭의여대에서 응용미술 전공. 졸업 후 1995년까지 잡지사 〈수정〉 〈소년경향〉 〈자녀교육〉 등과 삼양사 홍보실에서 근무. 1989년 한국문화예술학교(현 한국문화학교)를 수료. 이 학교에서 이시영, 정희성, 송기원, 김남주, 고정희 시인들을 만나 본격적으로 문학공부. 1992년 《민족과 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1996년 시집 『골목 하나를 사이로』 간행. 2003년 10월 지병으로 타계. 2006년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출간.

[최영숙]

역시,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