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에 등장하는 미얄할매의 이야기를 듣다가.
방송대 국문과 교수 손종흠님에 의하면
탈춤은 불교와 양반간의 괴리 등을 얘기하는데
노장자의 손을 빼앗아 천자문으로 가르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얼핏 듣고
눈여겨보니
은율 미얄 진오대굿으로 마감한다는 말씀이 또 들린다.
무인이 극락왕생인도하고
그것이 민중의 카탈시스를 했다고 본단다.
봉산탈춤 중에서 미얄 할미가 영감을 찾는 대목이 있는데
그누가 날찾나/ 어느 그누가 날찾나
술잘먹는 이태백이가/ 술을 먹자고 날찾나
춤잘추는 학두루미가/ 춤을 추자고 날찾나
날 찾을리가 없건만/ 오느 그누가 날찾나
우리 영감 만나며는/ 안아도보고 업어보고
코도대고 입도대고/ 업어도보고 안아도 보련만
우리 영감 어델가고~/ 내찾을줄 왜 몰라요~~
영감 찾으러 갑세~~ 덩덩 덩덩쿵다~~........
코도 댄단다.
을매나 이뿌면 코도 댈꼬.
깊은 정이 있으면 그런가보다.
그런데 미얄은 축첩중에 죽고 진오귀굿을 한단다. (손교수)
공연의 일부를 얼핏 보니 미얄은 짧은 저고리 밑으로 상체를 드러내다시피하고
탈 때문인지 발음이 안 좋아서인지 가사를 듣기가 힘들다.
남자탈들은 발음이 좋네...
그나 저나 축첩중에 죽고 축첩하는 영감을 찾아서
저리도 애닯은 노래를 부른단 말인가.
퍼뜩 생각나는 할매가 계시다.
깨볶는 신혼 때, 주인집 할매가 집 지키기 심심하셔서는
아가, 있나?
하고 놀러를 자주 오셨다.
그러구러 저러구러 팔십 할매랑 새파란 새댁이가 친구 되어 노는데.
할 게 없어서 화투를 친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투를 못치는데 못친단 말은 못하고
할매.
민화투 짝 맞추는 것 잘하는데 그거 하실래요? 하고 너스레를 떨면
고쟁이 춤에서 십원짜리 몇 개 꺼내놓으시곤
그랴~ 젊은이가 선을 해. 하신다.
평소에는 못 박는데 쓰던 머리를 할매 위한답시고 머리를 써서 적당히 져 드리면
이상타.
화토도 젊은 정기 따라 가는데 우째 내가 자꾸 이기노? 하신다.
그러면 시침 뻑 따고서는
아이고~ 할매가 이뿌장하게 동안이라 할매한테 자꾸 가는갑소.
하면, 씨익 웃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하루는 내 방에 놀러가자 하셔서 떨레떨레 갔더니
할부지 사진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놓았길래 관상을 본답시고 자세히 봤다.
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형형하신게 잘났다 싶어서
할매.
할부지께서 동네 츠자들 마이 꼬시가 할매 마음 아프게 안했어요?
할매도 뜯어봉게 참말 귀엽게 생기셨는데
츠자적에는 오빠야들이 엄청 좋아라 했겠는데 할부지도 장난 아니네요.
할매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는가 싶더니
같이 살던 동상(첩)이 있었는데 갸가 보고 싶구마는... 하신다.
에?
할매, 첩이 보고 싶다꼬요?
하루는 첩이 들왔는데 살다보니 미웁지가 않고 싸가지가 있더란다.
성정 좋은 할머니랑 염치 있는 첩이랑 살게 되니
할부지는 편하셨는가 몰라도 친 동기간이 아니니 두 할매는 편키만 하였겠는가.
할매가 자식을 생산하고 본처 자리에서 할 일 잘 하고 계싱게.
첩할매가 어느날은 자식도 없고 더이상 같이 살 염치가 없다며 집을 나가셨단다.
애잔한 것은 할매가 첩할매를 찾아다니셨단다.
그래도 못찾아서 가슴이 아프고 어데서 잘 살고 있는지... 하시며
주름이 가득한 눈가에 회한이 서린다.
인자 결혼한지 한 달도 안 된 새댁이었던 나는
그 경지를 알 수가 없지만 '외로움'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바깥 세상 접할 길 없이 오로지 자식과 남편만 바라보아야하는
두 여인이 상충할 일이 없으면 친구처럼 서로 우정하지 않겠는가.
구중궁궐의 처첩들도 드라마에서처럼 피비린내나는 권력질만 한 게 아니라
사이가 좋은 분들도 제법 있었다 한다.
축첩은 일부다처제이기에 마음에 안 들지만, (다부다처제라면 몰라도 ㅎㅎ)
고무할 일은 더욱 아니지만,
동기를 보고파하듯이 첩에게 정이 들어 눈시울을 붉히던 할매가 생각나서
강신무의 굿은 크게 무당의 입무절차로 행해지는 내림굿,
재복을 기원하는 재수굿, 치병을 위한 병굿, 망자의 극락천도를 위한 천도굿,
마을공동체의 복을 기원하는 마을굿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림굿-허주굿, 내림굿, 솟을굿 등
*재수굿-철물이, 꽃맞이 등의 굿, 집안에 혼인 등의 잔치가 있을 때
조상들에게 알리기 위한 예탐굿(예탐맞이), 배연신굿, 만수대탁굿, 살문 등
*병굿-허장굿(태송굿), 질림굿(도깨비 떼는 굿, 화전굿) 등
*천도굿(진오귀굿, 안전반흥, 수왕굿 등(상세한 것은 아래내용 참조)
김정숙에 의하면, 『옛날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장례가 있으면 삼오젯날 진오귀굿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는 비용문제로 진오귀굿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집에서는 만신을 한 명만 불러서 만신 혼자 앉아서
무징을 치면서 축원을 하고 망자의 하고픈 말을 들어보는 식으로 굿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것을 「얹은 자리걷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비용이 진오귀굿 보다 훨씬 적게 들어간다.
김매물은 이것을 「안전반흥」이라고 부른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후술한 정학봉의 앉은 자리걷이에 잘 나타나 있다.
진오귀굿은 망자가 죽은 후 삼오젯날 안에 진혼을 말끔히 저승으로 천도하고
자리를 걷는 것이 원칙이나 집안의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그리하여 죽은 후 달이 지나기 전에 즉 얼마 되기 전에 하는 굿을 「진진오귀」 혹은 「진자리걷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망자의 천도굿을 황해도에서는 「자리걷이」, 「진오기」, 「진오귀」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으나
굳이 세분하여 구분해 보면 「진진오귀굿」은 망자가 사망하고 달이 지나기 전의 굿을 지칭하고,
달이 좀 지나서 하는 굿을 「묵은진오기」 혹은 「묵은자리걷이」라고 부른다. 「
묵은진오기」의 경우에는 진진오귀와는 달리
굿판의 분위기가 다소 밝고 대감 등을 놀려 놀이적 부분이 약간 증가되는 경향도 있다.
김금화에 의하면, 『죽은이의 넋을 위로하고 극락천도를 기원하는 굿을 「오기굿」 또는 「진오기굿」이라 한다.
사람이 죽은지 일년 이내에 하는 진오기를 「진진오기굿」이라 하며, 보통 삼오제에 한다.
그러나 사람이 죽고 나서 탈상까지,
이를테면 삼년 안에는 돌아가신 혼신이 재물을 가져간다 하여 진오기굿 이외에 어떤 집안 굿도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삼일탈상, 백일탈상 등으로 바뀌어서 굿의 시일에 의한 구분을 옛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옛날에는 삼년 탈상 전에는 다른 굿을 할 수 없으나 요즘에는 삼일 만에도 탈상을 다 했으니
다른 굿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탈상의 날짜가 점점 짧아지면서 상례와 관련된 민속의 제 양상들도 많이 변모해 가고 있다.
무속의례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상례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그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굿의 모습도 뒤죽박죽 되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굿을 구분하는 것이 혼미하게 되었다.
첫댓글좋은 글 잘봤습니다..이 정도면 유명 작가의 글솜씨가 아니겠습니까?...언제 등단 하실런지 한번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ㅎㅎㅎ...첩 좋죠..열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고 했는데...ㅎㅎㅎ..능력만 된다면야...근데 뎐없고 힘떨어지면 ...거시가 하겠죠?..아이구..조심해야지...허걱...
속담에,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고 했는데, 뜻인 즉, 아무리 인자하고 덕망있는 여인네라도 첩을 보고선 질투하지 않을 여자가 없다는 것 아니겠스묭?...건데, 말씀처럼, 간혹 의아스럽게도 다정한 본처와 시앗 사이가 있더만요...걸 가만이 보아 한게시롱..크게 두가지 케이스더만요.
첫째가, 쟁취대상인 영감이 죽어 없어졌뿌고 왠만큼 늙수레 해지니깐, 서로 흉을 봐가면서도 등도 긁어주고 화투 친구도 돼 주고,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삽디다...두번째는 사내가 워낙 대가 차서 사나우면, 이 불쌍한 여인네들이 주눅이 팍 들어 다투기는 커녕, 무서운 공동의 적을 둔 형편이 돼삐서 우리 형님,아우 하면서
물론 남편을 두고 다른 여자와 공유를 해야 한다는건 당연히 질투가 날만도 합니다만 위 할머님께서는 자손을 생산치 못한 입장에서 들어온 씨받이 첩인지라 그 입장이 더 본처의 권한만 내세울수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하기 나름인것이.. 첩으로 들어온 사람도 본처의 권위를 인정하고
싹싹하게 굴었기 때문에 더 미워라 할 수는 없었던 사이였겠지요. 만약.. 서로 자녀를 생산한 처와 첩들이었다면 그리 다정할 수 있었을까요..? 오래전 제 고향의 건너 마을에 이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본처께서 자손을 생산하지 못해서 씨받이 첩을 들여 자식을 줄줄이 다섯이나 낳고 한집에 같이 기거하는 집이었는데
첫댓글 좋은 글 잘봤습니다..이 정도면 유명 작가의 글솜씨가 아니겠습니까?...언제 등단 하실런지 한번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ㅎㅎㅎ...첩 좋죠..열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고 했는데...ㅎㅎㅎ..능력만 된다면야...근데 뎐없고 힘떨어지면 ...거시가 하겠죠?..아이구..조심해야지...허걱...
켁... 유명작가라니요.ㅋㅋ 첩이 꼭 좋기야 하것습니까? 장동건도 배용준도 길어야 석달이라 봅니다만...ㅋㅋ
속담에,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 앉는다고 했는데, 뜻인 즉, 아무리 인자하고 덕망있는 여인네라도 첩을 보고선 질투하지 않을 여자가 없다는 것 아니겠스묭?...건데, 말씀처럼, 간혹 의아스럽게도 다정한 본처와 시앗 사이가 있더만요...걸 가만이 보아 한게시롱..크게 두가지 케이스더만요.
첫째가, 쟁취대상인 영감이 죽어 없어졌뿌고 왠만큼 늙수레 해지니깐, 서로 흉을 봐가면서도 등도 긁어주고 화투 친구도 돼 주고,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삽디다...두번째는 사내가 워낙 대가 차서 사나우면, 이 불쌍한 여인네들이 주눅이 팍 들어 다투기는 커녕, 무서운 공동의 적을 둔 형편이 돼삐서 우리 형님,아우 하면서
영감님 살아계실적에 첩과 다정한 할매니까 그라지유~... 아무래도 전생에는 친구이거나 자매였는지도 모르지요.
그러구러 뭉쳐 살더만요...ㅎㅎ...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아랍권에서는, 질투하는 처첩들에겐 심한 처벌을 한다던데...그게 법적으로 해결 될 성질인지....음..누가 사우디에 전화를 한 통.....
하하... 법이 무서우면 전 감옥에 여러번 갔겠습니당. ㅋㅋ
오잉?..그거이 먼 말씀이다요?...서 설마..
물론 남편을 두고 다른 여자와 공유를 해야 한다는건 당연히 질투가 날만도 합니다만 위 할머님께서는 자손을 생산치 못한 입장에서 들어온 씨받이 첩인지라 그 입장이 더 본처의 권한만 내세울수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하기 나름인것이.. 첩으로 들어온 사람도 본처의 권위를 인정하고
싹싹하게 굴었기 때문에 더 미워라 할 수는 없었던 사이였겠지요. 만약.. 서로 자녀를 생산한 처와 첩들이었다면 그리 다정할 수 있었을까요..? 오래전 제 고향의 건너 마을에 이런 분들이 계셨습니다. 본처께서 자손을 생산하지 못해서 씨받이 첩을 들여 자식을 줄줄이 다섯이나 낳고 한집에 같이 기거하는 집이었는데
그럭저럭 서로들 잘 어울리면 살았더랬습니다. 근데 할아버지가 본처랑 싸우면 첩방으로 도망가시고 첩이랑 틀어지면 본처방으로 도망가시고 그러더라고 동네에서 소문이 나서 잼있는 이야기거리가 되곤했었어요. ^^ 것도 그 할아버지 복인가 싶습니다. ㅎㅎ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아.............................내 첩들은 다어디에 갔단 말인가??...........사진첩 명함첩 한산대첩들아~~~
수첩만은 챙기십시오. ㅎㅎ
하이고야~~~~~~~가장 사랑하는 애첩인 수첩일 빠뜨렸네요...이룬 이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