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특히 시온찬양대원들에게 요구한 서약서 내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약서의 핵심은 영적 질서(담임목사-->지도목사-->지휘자-->찬양대장-->찬양대원)를 존중하고 순종하며 이를 어길 경우 어떤 제재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이다. 무려 다섯 가지 계급으로 이루어지는 위계질서다.
이것은 교황-->주교-->사제-->부제-->평신도를 조직 위계로 인정하는 로마가톨릭과 비슷하다. 로마 가톨릭은 이런 위계질서를 정당화하는 신학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런 위계 질서는 교회 내 특권집단을 형성하였고 이들은 자신의 권위와 특권을 이용하여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위계는 세상의 위계질서를 교회 내에 수용한 것으로 성경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로마가톨릭의 부정부패에 반대하여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의 핵심적인 신학사상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주만 영광받으심(Soli Deo Gloria)이다.
이 다섯 가지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다른 인간(그리고 공로적 행위)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이다. 특히 구원문제에서 인간(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의 어떠한 개입도 배제하기 위해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내세웠다. 성직자들에게 부여된 비성경적 권리와 특혜가 부정부패를 유발시켰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은 이를 철저히 배격했던 것이다. 아울러 신앙 내용의 기준으로서 <오직 성경>을 내세웠다. 로마가톨릭은 신앙의 기준으로 성경 외에 교회 전통을 주장했고, 교회 전통의 이름으로 성경의 본의를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톨릭의 수장인 로마 교황을 거부하기 위해<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주만 영광받으심>을 내세웠다. 아울러 <만인제사장>을 내세웠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부정부패는 대부분 목회자집단에서 발생한다.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부정부패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바르게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문제가 계속 이어진다. 왜 그럴까? 목회자 집단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잘못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서도 단적으로 나타나듯이 목회자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어떠한 제재도 가할 수 있는 왕 같은 계급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개신교에 종교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처럼 한국교회는 다시 개혁되어야 하며, 개혁의 핵심내용 중 하나는 교회 내에서 목회자의 위치를 성경에 맞게 바로잡는 것이다. 목사는 교회 내의 여러 직분 중에서 성도들이 바른 복음 위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말씀을 가르치는 봉사자의 직분이다. 이것을 넘어서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장로나 집사들도 봉사자로서 각자 맡은 직분에 충실해야 하고 이 모든 직분자들은 주님을 위하여 사랑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은 결코 지시를 내리고 순종을 요구하는 계급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여기서 하나라는 표현은 동등하다는 뜻이다. 세상은 민족, 신분, 성별,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심지어 영적 고수와 영적 하수를 구분하여 각각에게 다른 권위와 권리를 부여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강자는 약자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지배하려 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런 구분이 없다. 성직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자녀일 뿐이다. 노예와 주인도 교회 안에서는 동등하다. 왕과 백성도 교회 안에서는 동등하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동등하다. 일찍이 성경은 이렇게 선포했건만 교회 안에 끊임없이 세상의 질서가 침투해 와 온갖 핑계와 구실을 갖다붙여 계급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도 왜곡한다. 그리고 그 계급을 이용하여 또 영적, 물질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온갖 차별과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주셨고, 이제부터는 이런 자유를 이용하여 오직 서로 사랑으로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주님 안에 있는 이 자유를 버리고 다시 사람을 구분하여 서로 지배하고 억압하는 굴레를 뒤집어쓰지 말아야 한다.
추신: 여러 성도들이 모인 곳에 질서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질서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말씀에 기초한 질서이며, 공동체 구성원이 스스로 합의하여 만든 질서다. 곧 성도들의 자치적인 질서다. 탁월한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질서는 교회의 질서가 아니다. 꼭 서약서를 받아야겠다면 구성원들이 함께 서약서 내용을 작성하고 합의해야 한다. 목사가 일방적으로 작성하여 동의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첫댓글 기독교가 왕성해지면 거기서 잇권을
밝히는 종교지도자들이 뻔히 생길것을
알고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거짓선지자들을 조심하라!
이문장목사를 지지하는측에서는 헌금을 안하는 성도는 두레교회의 성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헌금을 꼭 두레교회에 해야만 두레교회의 성도인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성도를 헌금을 하는 대상으로만 본다면 이문장목사가 주장하는 진정 성도를 영적영업의 대상자로 보는 것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문장목사는 부패한 카톨릭의 수장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으로 종교개혁을 주장하는 설교를 하면 스스로 이율배반적이지 않는가?
물론 현대교회는 교회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 시설유지비, 수리비등 비용이 드는 것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문장목사는 교회에서 꼭 필요한 금액을 상세히 공개하고 성도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은 두레교회 뿐 아니라 선교를 필요로 하는 곳에, 구제가 필요한 곳 등 어느 단체나 개인에게 헌금을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문장목사는 더이상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디조 선교와 구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에 쓰여지는 것이라면 헌금을 하지 말라고 해도 헌금합니다.
쓰이는 곳은 전시용으로 총액만 알리고 공개 했다고 합니다.
성도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죠~
목사는 헌금으로 물 쓰듯 사치한 생활을 하면서 헌금하라고 합니다.
나라도 그런 곳에 헌금 안 합니다.(많이 듣던 멘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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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문장목사측에 빌붙어 충성을 보이는 사람들 대다수가 잇권에 관련된게 아닌가요?
사업으로, 두레학교로, 두레유치원으로, 직원으로... 이런 저런 이유로 연결되어진 고리들로 인하여...
그 고리가 끊어지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헛된것을 쫓아 이단 교주에게 빠져 그들이 짓는 죄악이 뭔지도 모르는 불쌍한이들입니다.
개혁은 두레교회 에서 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담임목사가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왕국을 이루려는 행위로 변질되는것은 첫째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일것이다 돈을 내게하는 방법을 찾는 목사는 고액헌금자 리스트를 만들어 특별관리하고 헌금 많이 하는성도와 헌금하지 않는 성도를 구분하여 많이 내는자만 특별관리 한다.두번째는 목사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거짓말 술수를 행하되 이를 실천할 앞잡이 성도를 만든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내보내고 음해하여 자신의 집단에서 왕따 시킨다 세번째는 자신을 지지하는 성도와만 소통하고 다른성도는 정보를 차단한다. 이런교회는 개혁의 대상이다 예수팔아 장사하는 것이다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데 고수와 하수가 있다는것은 이단이다
행위로 구원 받는다면서 성도들에게 온갖 명목으로 재물을 갈취하며 자신들의 영화를 구한 부패한 카돌릭에 루터가 외친 오직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것을 이제 외쳐야 합니다
목회자의 교만과 허상의 신학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인간에 대한 사랑의 구원방법을 막고 있습니다
만인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아닙니까?
고수가 안되면 영생의 면류관이 없습니까?
지위고하 빈부고하 식자 무식자 고하 범죄자나 도덕군자나 잘생기나 못생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누구든지 하나님앞에서는 사랑받을 대상자 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편가르고 성도를 배척하면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아프고 매일 기도해도 눈물 뿐입니다
모든 교회의 개혁교회로 주목받던 두레교회가 후임목사 부임이후에 이렇게 혼란 스럽고 이단적인 행태가 일어나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란 멧세지는 들어보지를 못했으니 예수 빠진 교회 공동체는 하루속히 회개하고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로 회복 시켜야 할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는 없는 위계질서로군요. 기독교와 아시아의 정신세계를 접목한 동양신학에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인도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와 비슷하네요. 참, 그러고보니 신년 첫 예배때 "마음깨침"이란 불교책과
"freedom"이라는 힌두교책을 소개했었지요.
<인도의 카스트제도 -------- ㄷㄹ교회 찬양대서약서의 위계질서>
1계급: 브라만(힌두교 사제) ---- 담임목사
2계급. 크샤트리아( 왕족,귀족등)--- 지도목사
3계급. 바이사(평민,주로 농업종사) ---지휘자
4계급. 수드라(육체노동자, 청소부등) --찬양대장
5계급. 파리아(달리트: 불가촉 천민)--- 찬양대원
물론 교회에는 직분을 맡은 이들이 있습니다. 사도는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고 집사는 구제와 봉사에 집중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직분자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편이 다른편위에 권위를 행사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구약에서도 제사장은 왕이 될 수 없었고, 왕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 사울왕이 그 예입니다. 사무엘이 올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제사를 했다가 하나님에게서 끊어졌습니다. 이것이 영적 질서입니다. 담임목사는 주님안에서
하나된 형제들위에 군림하려는 악한의지를 버리고, 주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회개하세요..
진정한 권위는 폭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교권 권력을 집중화시키기 위해 영적 질서의 본질적 의미마저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이지, 지배자의 지시에 복종하는 세속집단이 아닙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 카톨릭의 교권주의로 퇴행하는 담임목사의 지배욕과 반개혁주의를 단호히 배격해야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10.27 21:21
종교 개혁을 감히 말하는 그 뻔뻔함이 가증스러웠습니다.
개혁 대상은 본인인 것을 알고도 철판을 까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
그래서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못했습니다. 개혁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 풀이만 하고 또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 중 하나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인간의 공로를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쟁이 발생한 고린도 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을 높이는 순간 분열이 발생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 아볼로, 베드로를 추종하는 분파가 생겼습니다. 이들은 그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직분이나 탁월한 점을 내세워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뜻대로만 교회를 끌고가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분쟁의 씨앗입니다.
@paul 교회는 오직 주님만 높이고 주님으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주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교회 안에서 성도의 자기 자랑이나 높임은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를 비롯한 교회의 중요한 봉사자들은 교회 내에서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하고 자기를 더욱 낮추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그들을 주목하고 추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딱 공감됩니다 개혁에 대상이 무엇인지도 체 알수없도록 설교하면서 종교개혁주일은 맞아 개혁해야 된다고 누구보다도 목소리는 크게내는 ㅇㅁㅈ목사 하나님께서는 뭐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