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나는 이제 제주시로 향하려 하고 있다.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바라 볼 수있는 한라산, 이 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갖게한다. 제주에 올 적 마다 제주시에서만 바라보던 한라산은 서귀포에선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경사가 완만하고 한라산의 너른 목초지가 한눈에 들어와 조금만 다리 품을 팔면 곧바로 한라산에 오를 수 있을것만 같다.
오늘은 김녕성세기해변에서 제주밭담축제를 한다기에 작정해서 그곳을 둘러보고 제주시로 들어가려한다.
버스편 시간표상으로는 두 시간 여를 걸린다 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나? 승용차라면 한 시간 정도면 갈 수있는 거리인데 가는 곳마다 마을 정류장을 거쳐서 가기에 시간이 그리 걸리는가보다.
시원스레 펼쳐진 동회선 일주도로를 따라 오다보면 저 멀리 표선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20여분 오다보면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친구가 근무하는 읍사무소를 들려볼까하다 가만 날짜를 헤아려보니 오늘은 일요일이다. 달리는 버스의 차창가로 제주의 매서운 바닷바람이 휘이잉 스쳐 지나간다. 바람의 섬 제주!
제주의 아낙들은 이 바람을 싫어한다. 어린 날 겪었던 그 가난과 한 많은 세월에 이 제주의 바람이 섞여 지나갔기 때문일까? 지금도 제주를 떠난 아낙들 제주를 연상하면 차디찬 겨울바람이 제주의 들판을 스쳐 철 지난 억새 가지를 휘어놓는 풍경에 마음까지 시렵다한다.
드디어 김녕사굴과 만장굴로 유명한 김녕의 구좌체육관 행사장에 도착했다. 길가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의 차들이 세워져 있고 멀리 운동장 안에서 들리는 스피커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나는 이곳 김녕에는 차를 세워 돌아본 적이 없다. 아주 옛날 만장굴을 구경하기 위하여 잠시 들렸던 기억만 있을 뿐 그저 나에게있어서 김녕은 지나가는 이정표에 불과 했었는데 이번에 나는 '제주 밭담축제'가 열린다하여 처음 이곳 성세기 해변을 찾게 된것이다.
행사가 열리는 구좌종합운동장 안에는 행사용 몽골텐트가 수십 채 세워져있고 그 안에는 각종 전시및 행사체험을 하기위한 데스크,시설물들이 놓여있지만 홍보가 잘못 되었는지 그곳의 사람들은 수백명에 불과하다.
메인무대에는 무슨 굿을 하는지 커다란 젯상이 차려져있고 분홍색저고리와 푸른 치마를 입은 심방(무당의 제주사투리)이 귀걸이 마이크를 걸어놓고 무언가 열심히 기원하고 있었다.
김녕돗제!
돗제는 돼지와 제사를 합친 합성어로 당시에 제주사람들에게 중요한 재산 목록1호인 돼지를 신에게 바치며 가족의 안녕과 부를 갖게해달라는 기원의 제사이다. 훗날 읍장으로 근무하는 친구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전하는 친구의 말은 김녕 사람들은 이 돗제를 매해 집집마다 해왔던 의식인데 이제는 그러하지 못하고 공동의 마을굿으로 행해진다 하였다. 그날의 심방은 대단한 재담꾼었다.
쉴새없이 내뱉는 기원의 소리는 바다에 나는 모든 해산물을 일일이 열거하며 많이 잡히게 해주십사 빌었고 또,바다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주며 심지언 밭에나는 고구마, 땅콩, 바늘등등 농산물이름 하나하나 열거하며 풍년을 빌어줌에 참 우리 인간에게는 이처럼 신에게 빌어야할것들이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날의 행사장은 어느 방송사에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방송용카메라를 설치하여 열심히 이 돗제지내는 장면을 녹화하고 있었고 마을의 유지를 불러내어 절을시키고 온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경건하게 지내는 제사이며 축제의 모습을 하였다.
이 돗제는 돼지를 잡아 12부분으로 나누고 제사를 마치고 제사음식을 조금씩 뜯어모아 마을 어귀에 바치고 난 다음 음복을 하는데 이 순서를 어겨 먼저 사람이 음복을하게 되면 반드시 동티가 난다고 심방은 전한다. 이제 굿이 다 끝났는지 심방은 참석한 모든이에게 그냥 가지말고 반드시 음복하고 가라고 청하는데 평소 음식을 가리는 나는 그냥 자리를 떠나 행사장을 둘러 보았다.
밭담쌓기를 실연해 보이고 체험도 할수있도록 만든 부스이다. 제주는 옛부터 주위에 있는 돌로 집을 세웠고 또, 담벼락을 세웠으며 밭담을 쌓았다. 훌륭한 건축자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그마한 돌맹이를 주워다 쌓는가하면 땅속에 묻힌 바위를 캐다가 각종 도구를 이용하여 크기와 용도에 맞게 다듬어 사용하였다. 그래서 그 돌을 다듬는 사람을 제주말로는'돌챙이'라고 부르는데 사진에서 노인장은 수십 년간 이 돌을 다듬으며 살았던 분으로 제주의 어느 돌문화학교 교장의 아버님이라 전한다.
각종 크기의 정들이 놓여있고 큰 바윗돌을 깨는 해머가 있는데 육지의 것들과는 모양이 다름을 알 수있다.
어렸을 적 이러한 연장들을 어깨에 둘러메고 산밭을 누비던 어른들을 많이 볼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모습을 보기는 힘이든다. 이또한 '돌챙이'이란 직업 역시 없어진 직업 중에 하나가 되었기에....
행사장 너른 야지에 설치해놓은 밭담의 모습이다. 참 견고한 모습이 아닐 수없다. 비행기를 타고 펼쳐지는 제주의 들판을 바라보면 꾸불꾸불 기나길 행렬의 이 밭담들을 볼 수가 있다. 거기에는 이 밭담을 포함하여 군데군데 산소를 보호하는 산담까지..
예전 우리 조상묘는 이렇게 여러군데의 밭담을 넘으며 갈수있는 곳이여서 가을 벌초때가 되면 우리 형제는 이 밭담을 넘거나 허물어 뜨리며 넘나들던 적이 있었다. 제주의 밭담은 이렇게 견고하게 쌓아있는것 보다 단지 경계를 짓기위하여 쌓은 담이다 보니 외줄로 그저 담을 쌓아놓았기에 넘으려면 이 밭담이 허물어져 위험하여 아예 몇개의 돌을 허물어뜨려 넘나들었었다. 그때는 그 밭담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옛날 우리 조상님이 묻히실 적에는 그 주변에 밭들이 없었는데 나중 그 주변을 개간하여 밭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제주의 들판에는 이런 억새가 많다. 갈대와 억새의 차이점을 아시는가?
갈대는 늪지대에 서식하고 억새는 이처럼 마른 들판에 자라는 식물로 언뜻보기에는 구분하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내 고향제주는 강가가없어 늪지대가 흔치않아 제주에서 자라는 것들은 다 억새라 보면 될것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오면 제주는 들불축제가 있다. 제주의 이 억새풀 태우기는 봉우리(오름)하나 전체를 태우는 행사이어서 아마도 이 억새풀 태우는 전국행사 중 가장 으뜸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한번도 이 행사를 참관해 본적은 없지만 규모가 대단할것이라 여겨진다.
제주를 돌다보면 내륙이나 바다위에 이런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있는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제주의 각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가 내가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던걸로 생각이든다. 그 전까지는 석유를 이용한 호야등을 썼었는데 당시에 어두컴컴했던 세상을 밝혀주던 이 전기불이 들어왔을 때는 얼마나 몸과 마음이 후련했던지 그만큼 제주는 전기 사정이 안좋았다. 지금도 제주는 강이 없어 댐을 이용한 수력발전소는 없고 화력발전소가 몇개 있다.
그런데 어느 해 부터인가 제주를 방문했을 때 서양의 어느 마을에 설치해있는 이 풍력 발전기를 본듯이 제주에도 하나 둘 설치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대 설치비용이 10억을 호가한다는데 그 정도 투자하여 발전량은 얼마나 될런지 그리고 판매를 할 정도의 전력량은 되는지 궁금하다. 제주는 바람이 많은 곳으로 일찍부터 이 풍력 발전기가 있었음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프로펠러가 달린 이 발전탑은 그리 볼쌍 스럽진 않다. 단지 근처에가면 이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는 너무 웅장하여 주위 주민에게 공해가 된다 하는데 앞으로 제주의 전기 수요는 많아지리라 생각되기에 이 풍력 발전기는 많이 세워 질것 같다.
한 쌍의 선남선녀가 방금 결혼하고 드라이브를 온것 같다. 제주의 결혼 풍습은 육지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결혼식을 마치면 곧바로 신랑신부가 친구들을 대동하고 가까운 경치 좋은곳으로 음식물들을 싸가지고 드라이브를 떠난다. 이때의 모든 스케쥴은 그날의 신랑의 메니져 격인 부신랑이 모든것을 주관한다. 신부친구들이 손수건을 신랑친구들에게 팔게되면 짓궃게 신부친구들에게 장난을 쳐 대야하고 그 값으로 하나하나 값을 높게 쳐주어 나중 그 손수건 판 돈과 신랑이 그날에 온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내준 하사금(?)을 모아 밤이되면 신제주의 나이트로 몰려가 역사들을 만들게 한다.
또, 신랑친구와 신부친구가 어색하지않게 분위기도 조장해야하며 그 와중에 신랑댁과 분주히 연락을 취하며 언제 신랑댁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러 들어가야 하는지 협의도 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있다. 그 날도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이 두 부부를 축하하기 위하여 성세기 해변으로 몰려들어 기념촬영을 하는데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30여년 전 친구들 결혼 할 때 쫓아다니던 생각이 나 그때에 그 친구들 이제는 잘들 살아가고 있는지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 둘 떠 올려 보았다.
바위섬으로 몰려드는 하얀파도, 처얼썩 거리며 다가와 바위에 애무를 하곤 다시 물러서는 파도를 바라보며 오랜 세월동안 빚어낸 조각품인 바위에 홀로 서 가슴속 품었던 숨 한가득 내 뱉어 보았다. 옛날엔 이 바위 틈속 속속히 들여다 보며 보말(고동)이랑 성게를 캐내어 돌맹이 내리쳐 성게속 알맹이도 꺼내먹고, 발발거리며 기어다니는 자그마한 게들도 잡곤 했었는데....
제주도 어촌 갯가에 나가보면 이러한 형태의 작은 탑들을 볼수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도대불'이라 하는데 제주도의 민간등대이다. 등불은 해질무렵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 켰다가 아침에 들어오는 어부들이 끄곤 하였다. 이 불을 켜는 연료로는 생선기름이나 송진이 박힌 옹이를 태웠었는데 나중에는 석유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성세기해변에 세워진 도대불은 처음엔 원뿔, 원통, 사다리꼴의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1960년대 이 도대불이 태풍에 허물어져 지금은 원뿔모양의 형태로 다시 세워진 모습이다.이 도대불은 1972년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가지 가설되어 사용했었으나 지금은 유적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날의 성세기해변은 바람이 세차 높은 파도가 일렁이었는데 바다에는 작은 요트가 출렁이며 떠있었다. 바람이세 낚시를 나온 배 같지는 안했고 유람을 나온 배일까? 이런날 일엽편주는 높은 파도에 휩쓸려 멀미가 많이 날텐데 장시간 떠있는 배에 사람들은 좋은 속들을 가졌는지 돌아갈 생각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까의 신혼 부부들이다. 친구들은 판을깔아 벌써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신랑신부는 사진사를 대동하여 방파제 경치좋은곳을 찾아 온갖 장면을 연출하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갓 결혼한 신혼 부부여!
화나거나 슬프거나 괴로우나 오늘을 생각하라.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그대들은 괴롭힐 날들이 많을 것이니 오늘처럼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여 그날이 그렇게 되어 다가 오거들랑 오늘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모든것들 봄눈 녹듯 사라질것이니....
전형적인 제주의 올렛길이다. 마을어귀 동네어르신들 여름날이면 이곳 나무그늘에 앉아 막걸리내기 장기판을 두시다가 서울간 누구네집 처자가 마을길 들어서면 너나 할것없이 고개 쳐들어 바라보았던 곳이고 동네 조무래기 하나 둘 모여 생말타기, 구슬치기하다 올랫길 들어서는 손님을 바라보곤 헐레벌떡 집으로 뒤어들어가"어멍 올레에 00삼촌 왐수다"했던 올렛길, 몇년전 부터 제주섬을 도는 올렛길을 만들어 산책길로 이용하며 전국의 각지역에 둘레길을 만드는 붐을 만들었었는데 원칙적으로 따진다면 그 길은 올렛길은 아니다.그때의 동무들 모두 어른이 되 다 동네 떠나가고 지금은 동네의 강아지들이 회합 장소가 된것처럼 복순이 철수네집의 강아지들이 올렛길을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 고향집 들어가는 길은 참 반가운 길이다. 이 길을 들어서 골목길 돌아들면 그립던 나의집, 나의 부모형제가 있기에 이 짧던 올렛길도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 길이다. 어서빨리 그리운 이 보고픈 마음에 헐레벌떡 다름질 치듯 걸어갔던 올렛길, 몇십년 전 고향집 떠나 올 때 다시 이길을 접어 들날이 언제일까 아쉬워하며 언제올지 모르는 기다리던 버스가 흙먼지 펄펄날리며 마을 정류장을 들어서면 어서가라 손짓하는 어머니를 뒤로하여 버스에 올라서 멀어져갔던 이 동구밖길을 우리는 오늘도 그리워 할 것이다.
오늘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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