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은 희망이다!
- 월드컵과 버락 오바마가 들려주는 희망의 법문
이미지: by ChatGPT
인구 52만 명의 카포베르데가 ‘무적함대’ 스페인과 비기다
지난 6월 16일,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카보베르데공화국(República de Cabo Verde)이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스페인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제2위의 세계적인 축구 강국입니다. 반면 카보베르데는 우리에게 이름조차 낯선 서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입니다. 인구도 52만 명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이번이 월드컵 본선 첫 출전이었습니다. 그런 나라가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스페인과 비겼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뒤이어 열린 경기 결과도 살펴보았습니다. 카보베르데는 6월 22일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도 2대 2로 비기며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스페인과 무승부는 기적이 아니라 실력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를 찾아보기도 전에,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루던 순간처럼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이름도 낯선 작은 나라를 응원하고 있는 제 자신이 오히려 신기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강자보다 약자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더 큰 감동을 받습니다. 작은 나라가 오랜 세월 ‘무적함대’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스페인과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연민과 응원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살아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월드컵에서는 이처럼 흔히 ‘이변’이나 ‘기적’이라 불리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지켜봅니다. 만약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대로만 승패가 결정된다면 누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까.
‘공은 둥글다’는 축구의 명언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예상을 뒤엎는 변화와 새로운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월드컵은 늘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제가 월드컵 이야기를 먼저 꺼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행무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월드컵 축구
“삼법인(三法印)을 아십니까?” 하고 여쭈면, 아마 “그 정도도 모를 리 있겠습니까?” 하며 웃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법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카보베르데가 스페인과 비겼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도 바로 “역시 제행무상이구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닙니다. 축구만큼 제행무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경기도 드뭅니다.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 브라질의 펠레를 비롯한 수많은 축구 영웅들은 대부분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제대로 된 운동시설도 없이 맨땅에서 공 하나를 벗 삼아 뛰며 꿈을 키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만약 세상이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대로만 움직인다면 어떻겠습니까.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좋은 시설과 최고의 지도를 받은 사람만 세계무대에 설 수 있다면 월드컵은 지금처럼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순간은, 제행무상이 만들어 내는 변화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고정된 것이 없기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새로운 가능성이 있기에 사람은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상’이라는 말을 허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꾸로 이해한 것입니다.
무상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 희망의 근거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어려움도 영원하지 않고, 지금의 실패도 끝이 아닙니다. 변하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변하기 때문에 새로운 길도 열립니다.
무상이 없었다면 가난한 아이가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축구만큼 제행무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스포츠도 드뭅니다. 둥근 공 하나를 따라 뛰는 선수들의 삶은, 우리에게 제행무상이 결코 허무의 가르침이 아니라 희망의 가르침임을 말없이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의 삶을 통해 확인하는 무상(無常)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는 두 차례, 8년의 임기를 마친 뒤에도 미국 안팎에서 높은 존경과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사생활 문제로 큰 구설에 오른 적도 없었고, 부인 미셸 오바마와 두 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셸 오바마가 차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여 다시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나라 정치인도 아닌 미국의 전직 대통령에게 이처럼 오랫동안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단지 그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의 삶 자체가 ‘기적’이나 ‘이변’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변화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정을 떠났고,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한 뒤 다시 하와이의 외조부모 밑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방황의 시기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최초의 흑인 편집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마침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퇴임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종의 벽만으로도 꿈을 접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바마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넘어섰습니다.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불자의 눈으로 보면, 그의 삶 역시 제행무상이 아니었다면 가능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었다면, 어려운 조건을 타고난 한 소년이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되는 일도, 퇴임 후에도 변함없는 존경을 받는 삶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도 버락 오바마와 그의 가족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삶은 제행무상이 결코 허무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열어 주는 가르침임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절망도 영원하지 않고, 실패도 끝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우리는 그 진리를 보고, 버락 오바마의 삶에서도 다시 그 진리를 확인합니다.
무상하기에 절망도 영원하지 않고, 무상하기에 희망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행무상을 첫 번째 진리로 설하신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무상하기에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월드컵이 들려주는 법문이고, 버락 오바마의 삶이 증명한 법문이며,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설하신 진리입니다
(서울 奉恩寺報 《板殿》 2026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