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진보적'인가?
아니면 '보수적'인가?
일어적으로 답하긴 어렵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정주와 무변의 속성에 친밀하기 때문이다.
개인도, 회사도, 나라도 대개 그렇다.
각종 인식과 규정 그리고 관습에 얽매여 혁신의 라인에 좀처럼 다가서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청춘들은 뜨겁게 저항하고 때론 심각하게 좌절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생명의 불씨가 끝내 꺼지기도 한다.
영국 '해리왕자'의 혼사가 전세계를 강타한 적이 있었다.
품격, 지침, 규율 등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영국왕실.
왕실에서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전통과 관습 때문에 조건에 맞지 않는 결혼식은 축하를 받을 수도, 허락을 득할 수도 없었다.
그건 존재할 수 없는 '파락호'의 비행이거나 일탈일 뿐이었다.
결혼당사간의 신뢰와 사랑보다 계율과 조건이 늘 우선시되었다.
'해리'는 한 여인을 데리고 끝내 미국으로 갔다.
그것도 동부나 남부보다 자유의 바람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 서부로 갔다.
'해리'와 '메건'은 지금 잘 살고 있다.
얼마전에 둘째 아기를 낳았다.
왕실의 권위나 왕위계승 서열 따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비운의 여주인공으로서 끝내 밤하늘의 슬픈 별이 된 그의 모친, '다이애나'의 삶처럼 왕실의 엄격한 관습하에서 고뇌에 찬 인생을 더이상 엮어가고 싶지 않았다.
'해리와 메건'은 영광, 존귀, 근엄 대신 자유, 낭만, 사랑을 선택했다.
나는 그 커플에게 힘찬 박수를 건넸었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정서였다.
얼마전에 일본에서도 난리가 났다.
'마코공주'의 혼사가 섬나라 전체를 떠들석하게 했다.
동기동창생 사이의 순수한 사랑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기를 들었다.
국민들 90% 이상이 그 혼사를 반대했다.
제반조건이 너무나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남자쪽 집안의 과거 돈문제까지 까발리며 불가를 외쳤다.
왕실에서도 둘 사이의 사랑에 박수를 보내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지도 않았다.
공주의 사랑보다도 왕실의 권위와 존엄이 더 중요한 문제일 뿐이었다.
왕실의 정중동 속 조용한 반대가 젊은 청춘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고 점점더 궁지로 내몰았다.
급기야 '마코커플'은 왕실로부터 어떤 금전도 받지 않을 것이며 각종 혜택도 모두 내려놓은 채 미국으로 가서 살겠노라고 공언했다.
둘은 서로에게 절실했고 그들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힘겹게 노력했다.
아직 일본의 경우엔 혼사가 끝난 게 아니어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무튼 무척 시끄럽고 말들이 많다.
세상의 디지털 메가트렌드를 애써 무시하며 여전히 '모노쯔꾸리'를 외치는 저들인데 두 말해 무엇하겠는가?
세상은 대체적으로 변화를 싫어 한다.
사람도 그렇고,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십중육칠은 꼰대가 된다.
특히 남자들이 그렇다.
여성들이 변화에 둔감한 것 같지만 실상은 변화의 바람에 되게 순응적이며 오픈되어 있다.
나도 혼기가 된 자녀들을 두고 있는 부모다.
사람마다 생각이나 의견은 다를 것이다.
달라야 세상이 다채롭고 더 살맛 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지만 몇 가지 강조하는 건 있다.
각 인생의 과정을 자신감 있게 결정하고 그 결정에 당당하게 책임지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가르쳤다.
내 아버지도, 나도 그리 살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내 자녀들도 각자의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열심히 경작해 주기를 바랄뿐이다.
세상과 타인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자유롭게 비상하고, 마음껏 유영했으면 좋겠다고 일렀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변명하지 않고 당당하게 책임지는 삶이라면 그밖의 모든 일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 주기를 아주 오래 전부터 기도하며 살았다.
그런 일관된 생각으로 자녀들을 양육했던 건 사실이었다.
내가 고관대작이거나 왕실의 일원이 아니라서 이렇게 얘기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시간은 비호처럼 흐르고 지금도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혁신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변화를 싫어하지만, 세상이 나의 기대나 바람에 상관없이 변화의 소용돌이를 강제하기에 살려면 적응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가 힘들고 팍팍한 것이다.
나는 청년들의 과감한 '이노베이션'을 기대한다.
끌려가는 변화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혁신을 기대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가장 큰 '축복'이 바로 '생명'임을 잊지 말고 각자의 고유한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뜨겁게 달려나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죽을만큼 사랑도 해보고 도전도 해봐야 한다.
그게 인생이니까.
배가 가장 안전한 항구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게 배인가 아니면 닻인가?
배의 존재가치는 거친 파도를 뚫고 망망대해로 나가는 데 있다.
'목숨 건 항해'가 곧 '배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청춘들도 그렇다.
기성세대들의 찬반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너희들의 양심과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과감하게 전진해야 한다고 믿는다.
청춘기, 생각보다 되게 짧다.
좌고우면하는 사이에 한방에 훅 간다.
'해리'와 '마코'의 앞길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빈다.
"해리야."
"마코야."
"잘 살아라."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