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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3일 오늘의 역사
2023년 북한 전략순항미사일 화살-2형 3발 발사
2020년 정부, 신천지 집단감염으로 코로나19 확진자 늘어나자 위기경보 ‘심각’(최고단계)으로 격상
2019년 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인 마지막 큰 무당 김금화 세상 떠남(88세)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미대사에 라마 빈트반다르 일사우드 공주(44세), 사우디 첫 여성대사
2017년 최순실 특검 연장 무산
2016년 김광진 의원(더불어민주당) 시작으로 테러방지법 제정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시작, 3월 2일까지 국회의원 38명이 192시간 27분 동안 토론 세계최장기록
2013년 한국 추상화의 대가 이두식 홍익대 교수 심장마비로 세상 떠남(66세)
2012년 한국계 첫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 별세
시각장애인이면서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 직급까지 올랐던 강영우(68) 박사가 23일(현지시각)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1944년 경기도 문호리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었다. 같은 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며 10대 가장으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겪었지만 연세대를 졸업한 뒤 197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학으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됐고, 2001년에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발탁됐다. 당시 강 박사 직급은 미국 이민 100년 한인 역사상 최고위직이었다. 강 박사는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과, 소아마비를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루스벨트 재단 고문도 지냈다.
강 박사는 작년 10월 암이 발견돼 투병을 시작했고, 연말에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며 지인들에 작별 편지를 보냈다. 올 1월에는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 평화장학금으로 25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의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는 7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고, 국회 도서관에 음성도서로 소장돼 있을 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2011년 '한국 유도계 대부' 강천수씨 별세
고인은 옛 전남도청 앞에 있던 옛 전남경찰국 상무관장이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공격에 쓰러진 사상자들이 거리에 방치되자 상무관 셔터를 열었다. 상무관에서 많은 부상자가 치료받았고, 시신도 안치됐다.
1937년 순천서 태어난 고인은 형 태수(78·전 한국유도원 이사장)씨의 영향을 받아 용인대 전신인 대한유도대에 입학했다. 24세 때 전남경찰국 상무관장을 맡아 2007년 상무관이 문 닫을 때까지 47년간 재직했다. 대한유도회 심의위원장과 부회장, 광주·전남유도회장을 지냈다.
대한유도회는 고인에게 '입신의 경지'인 10단을 추서할 계획이다.
2010년 ‘비실이’ 희극인 배삼룡 타계
2010년 2월 23일 오전 2시 10분 원로코미디언 배삼룡(본명 배창순)이 흡인성 폐렴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 지난 2007년 6월 흡인성 폐렴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4년째 치료를 받아온 배삼룡은 1월 23일부터 중환자실을 오갔다. 고인은 바보연기와 ‘개다리 춤’을 히트시켰으며 ‘몸 개그’의 원조인 슬랩스틱 코미디로 사랑받았던 국내 코미디계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1926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3세 때 일본 도쿄로 건너가 우에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후 귀국해 20세의 나이로 유랑 악극단 ‘민협’에 입단하면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삼룡이라는 예명도 이때부터 사용했다.
1950년 육군 군예대(KAS)에 입대한 그는 1964년 HLKV 문화방송에서 라디오방송 활동을 시작해 1969년 MBC-TV 개국과 함께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고인은 구봉서, 서영춘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코미디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쇼 반세기’, ‘부부만세’ 등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으며 ‘요절복통007’, ‘형사 배삼룡’ 등의 영화와 ‘사람팔자 시간문제’, ‘양반 인사법’ 등의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1973년 12월에는 MBC와 TBC가 고인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대낮에 납치극을 벌이는 소동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고인은 1980년대 들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1980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음료업체 ‘삼룡사와’가 도산했고, 신군부로부터 ‘연예인 숙청대상 1호’로 지목돼 방송출연 정지를 당했다.
곧 미국으로 건너간 고인은 3년여 뒤 귀국했지만 인기가 예전같지 않고 잇따라 사업에 실패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 그러다 1997년 악극 ‘눈물의 여왕’이 성공해 악극 스타로 재기한 고인은 ‘그때 그 쑈를 아십니까’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인기도 잠시, 1990년대 중반 흡인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이후 2007년 6월 서울 목동의 한 행사장에서 쓰러져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뒤 줄곧 투병생활을 해왔다.
고인은 문화체육부장관 표창(1996년), ’MBC 명예의 전당’ 코미디언 부문 수상(2001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문화훈장 화관장(2003년),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행사에서 ‘자랑스러운 스승님상’(2009년) 등을 수상했고, 자서전 ‘한 어릿광대의 눈물젖은 웃음’을 남겼다.
2010년 외국인 수형자 전용 천안교도소 개청
외국인 수형자를 위한 전담 교정시설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법무부는 23일 주한 외교사절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천안외국인교도소’ 개청식을 갖고 운영에 들어갔다.
천안외국인교도소는 기존의 천안소년교도소를 개보수한 시설로, 연면적 41만3257㎡ 규모에 49개 건물을 갖춰 1230명을 수용할 수 있다. 27개국 출신 외국인 재소자 591명, 내국인 재소자 263명 등 854명이 현재 수감돼 있으며, 내국인은 음식과 청소 등을 전담하는 기결수들이다. 외국인 수형자들은 국적별, 종교별로 나뉘어 수용됐다.
교도소는 외국인 재소자를 위해 한식과 별도로 빵과 샐러드 같은 외국인 식단을 제공하고, 위성방송 시설을 갖춰 영어·중국어·러시아어·아랍어 등 4개국어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했다.
외국인 재소자들이 언어 문제로 겪는 불편을 덜기 위해 중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교도관 9명도 배치했다. 외국인 재소자들의 한국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원예, 배관 등 직업훈련 기회도 제공할 방침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120만명에 달하며,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외국인 범죄자 수도 1500명을 넘어섰다. 법무부 관계자는 “외국인 전담 교도소는 세계 처음”이라며 “외국인 수형자들의 인권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008년 : 미국 공군 B-2 스피릿 다목적 스텔스기가 괌에 추락하다. B-2 폭격기 최초의 운용도중 손실(Operational Loss).
2007년 국사 교과서에 한반도 청동기시대 '기원전 20세기부터' 명시
중·고교의 국사 교과서에 규정돼 있는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가 최대 1000년 앞당겨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계의 지적을 받아들여 청동기 시대의 시작 시기를 ‘기원전 10세기(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전 20세기(기원전 2000년)~기원전 15세기(기원전 1500년)’로 바꾼 중고교 교과서를 올해 새 학기부터 사용한다고 2007년 2월 23일 밝혔다.
2006년판 고교 국사 교과서의 ‘고조선과 청동기문화’ 단원에 “아직 학계에서는 이론(異論)이 있지만 한국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20~15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본문 밖의 주석(註釋.풀이말)을 좀 더 단정적으로 본문에 넣은 것이다.
과거 교과서의 본문은 “신석기 시대를 이어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에, 만주지역에서는 이보다 앞서는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3세기경에 청동기 시대가 전개되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새 교과서 본문은 “(생략) 점차 청동기 시대로 넘어간다. 이 때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으로,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로 바뀌었다.
교육부는 또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 고조선에 대해 서술한 표현도 고쳤다. 2006년판 고교 국사 교과서는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라고 써 있으나, 새 교과서에는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과 일본 등이 한반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에 맞서야 한다는 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10세기보다 더 앞서 시작됐다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되나, 기원전 20세기까지 앞당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도 있다.
2007년 엄기영 앵커 프리랜서로
엄기영 MBC 앵커가 특임이사에서 프리랜서로 신분이 바뀐다.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이옥경)는 2007년 2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문진 사무실에서 이사 9명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고 이달로 특임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엄 앵커가 연임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MBC는 엄 앵커를 부사장 대우 프리랜서로 위촉, ‘뉴스데스크’를 계속 진행하도록 했으며 엄 앵커는 프리랜서 신분으로 주요 뉴스를 담당하는 첫 앵커가 됐다.
2007년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녀단식 우승상금 같은 액수로 130년만의 선언
윔블던 테니스 코트.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윔블던(wimbledon) 테니스대회가 마침내 ‘남녀 평등’을 선언했다. 윔블던을 주최하는 ‘올잉글랜드클럽’은 2007년 2월 23일“올해부터 남녀단식 우승자에게 똑같은 액수의 상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윔블던의 합류로 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에서 우승 상금의 ‘성(性) 차별’은 사라졌다. 1973년 US오픈이 맨 먼저 남녀 상금을 동일하게 지급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호주오픈이 2001년 뒤를 이었고, 프랑스오픈은 작년부터 똑같은 액수의 상금을 내걸었다.
윔블던은 지금까지 “5세트로 승부를 가리는 남자와 3세트 경기를 하는 여자가 똑같이 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상금 제도를 도입한 1968년 여자 우승 상금(750파운드)은 남자(2000파운드)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 여자단식을 제패한 아밀리 모레스모(프랑스)는 남자 우승자인 로저 페더러(스위스)보다 3만 파운드(1파운드는 약1800원) 적은 62만5000파운드를 받았다. 그러나 ‘흥행에서 남자보다 훨씬 낫다’는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 등 여자 선수들은 “평등에 관한 문제”라며 동일한 상금을 요구했고, 윔블던은 결국 고집을 꺾었다.
2006년 한국,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올림픽 4연패
한국 여자 쇼트트랙팀이 올림픽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여자팀은 2006년 2월 23일(한국시각) 벌어진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에서 캐나다와 이탈리아, 중국을 따돌리고 1994년 릴레함메르대회 이후 네 번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토리노 팔라벨라경기장에서 열린 3000m 계주에서 전다혜(한체대) 진선유(광문고) 최은경(한체대) 변천사(신목고)로 이뤄진 여자팀은 4분17초040으로 골인, 캐나다(4분17초336)와 이탈리아(4분20초030)를 따돌렸다. 1994릴레함메르대회 이후 이 종목 4연속 패권. 진선유는 1500m 금메달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중국은 3위로 들어왔으나 캐나다에 반칙을 했다는 판정을 받아 실격. 4위였던 이탈리아에 동메달이 돌아갔다.
2006년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 경신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이 경신됐다. 2006년 2월 23일 열린 서울옥션의 100회 경매에서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철화백자운룡문호(鐵畵白磁雲龍文壺.37.6×48.5㎝)’가 16억2000만원(수수료 별도)에 낙찰돼 이전까지 국내 경매 최고가 기록이었던 고려청자 매병(梅甁) ‘청자상감매죽조문매병’의 10억9000만원을 깼다.
철화백자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까지 제작됐던 도자기의 한 종류. 그릇 표면에 염료 대신 철가루를 써서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 출품된 철화백자에는 왕실에서 사용했음을 상징하는 삼족룡(三足龍)이 그려져 있고, 항아리 입구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S자형 곡선과 용 무늬가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날 경매에서는 또 박수근(朴壽根.1914~1965)이 1960년대에 그린 유화 ‘시장의 여인들’이 9억1000만원에 낙찰돼, 작년 12월 9억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 기록을 두 달 만에 또 경신하며 근현대미술 부문에서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2006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레바논 깜짝방문 반시리아 지도자들만 만나
2006년 국가유공자 가족 10% 가산점 위헌 결정
국가·지방 공무원 7·9급과 교원임용시험 등 각종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국가 유공자의 가족에게 10%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는 사실상 위헌(違憲)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006년 2월 23일 국가유공자예우법, 독립유공자예우법, 5·18유공자예우법 등의 가산점 관련 조항에 대해 2001년 합헌(合憲) 결정을 내렸던 종전 해석을 변경해 재판관 9명 중 7대 2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위헌이지만 효력을 갑자기 중지시킬 경우 생기는 행정 공백 등을 막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효력을 유지 또는 중지시키는 결정이다. 이 결정에 따라 관련 법 조항은 내년 6월 30일까지 개정 또는 폐지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효력이 상실된다.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은 취업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71만여명에 이르는 각종 유공자의 가족에게 10%의 가산점 혜택을 주는것은 너무 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 유공자 가족에게 주어지던 가산점 혜택은 폐지되거나 그 비율이 상당히 축소되게 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계속 늘어나는 국가 유공자 등의 가족이 시험의 합격에 결정적인 10%의 가산점을 부여받는 것은 일반 응시자의 취업 기회와 공무담임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특히 “1985년 이후 국가유공자 본인의 취업은 10%에 불과할 정도로 가산점제도는 유공자 본인보다는 가족을 위한 제도로 변질됐다”며 “헌법의 ‘국가 유공자, 상이군경 및 전몰(戰歿)군경의 유가족은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조항이 가산점 부여의 근거가 됐으나 혜택의 범위를 ‘전몰군경’의 유가족으로 좁혀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6년 집권20년 우간다 요웨리 무세베니, 또 당선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지난 20년간 집권해 온 요웨리 무세베니(62) 현 대통령의 재집권이 확정됐다. 지난 2006년 2월 23일 대통령 선거에서 무세베니 후보가 60%의 지지를 얻어, 35.9%를 득표한 야당의 키자 베시제(49)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고 중앙선관위가 25일 발표했다. 이번 선거에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복수의 정당이 참여했다.
그러나 야당은 “선거 기간 내내 부정 행위가 판쳤다”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기로 했다. 야당인 민주변화포럼(FDC)의 베시제 후보는“우리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야당은 지지자들이 유권자 명부에 기재되지 않아 투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06년 진선유·안현수 한국 첫 올림픽 3관왕
2006년 2월 23일 한국 쇼트트랙의 남녀 간판 스타 안현수(한체대)와 진선유(광문고)가 토리노 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한국 선수가 3관왕에 오른 것은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처음이다. 한국은 금 6·은 3·동 2개를 따내 종합 순위 7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27일 새벽 폐막한 토리노대회 종합 우승은 독일(금 11,은 12,동 6)이 차지했다. 2010년 대회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다.
2001년 하춘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수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1998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이라크와 유엔무기사찰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바그다드)
이라크와 유엔이 무기사찰을 둘러싼 이라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종 합의안에 조인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는 1998년 2월 23일 이라크 외무부에서 조인식을 갖고,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를 추인해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히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아난 총장은 조인식후 기자회견에서 "이 합의문에는 유엔 무기사찰단원들이 이라크의 무기은닉 의심장소들을 시한없이 사찰하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밝혔으나 아난 사무총장은 뉴욕에 복귀,안보리 보고를 마칠 때까지 구체적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아난 총장과 아지즈 부총리가 유엔 사찰문제를 둘러싸고 공식문서에 서명한 것은 이라크로서는 새로운 수확이라 할만 했다.
지금까지 사찰은 이라크가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는가의 문제였으나 이라크는 이번에 사찰문제에 관한 유엔총장과의 합의서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측의 일방적인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1998년 교수, 변호사, 종교인 등 각계인사 123명,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123인 선언` 1997년 복제양 돌리 탄생 공식발표
1997년 서봉수 9단, 제5회 진로배세계바둑대회 9연승 ‘신화’ 달성
1997년 2월 23일 중국 북경 곤륜호텔 2층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대회에서 대국을 시작한지 3시간30분 만에 ‘세계대회 9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금자탑과 함께 서봉수 9단이 혼자서 한국우승을 이끌어냈다. 이 한판으로 한국은 한-중-일 3국 단체대항전인 진로배에서 5기 내리 패권을 지켰다.
진로배 대회는 출전 3국에서 5명씩 나서 한 선수가 이기면 계속해서 상대국 다음 선수와 대결하는 승발전으로 ‘바둑 삼국지’로 불린다. 서구단은 1997년 12월 12일 한국측 이장(2장)으로 나서 중국 유빈구단을 백불계로 꺾은 것을 시작으로 히코사카, 상호, 야마다, 진림신, 왕립성, 조대원, 요다에 이르는 중국과 일본의 간판들을 차례로 눕히고 이날 마효춘 구단마저 넉다운시켰다.
이와중에 한국은 대표 5명 중 조훈현 구단, 유창혁 구단, 이창호 구단 등 맹장 3명이 돌 한번 잡아보지 않고 우승컵을 안았다. 서 구단은 단체우승상금 20만달러의 배당분과 연승상금을 포함해 1억4천여 만원을 차지하게 됐다.
1996년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주5일제 수업 시범운영
1991년 국문학자 정한모 사망
1990년 호세 나폴레온 두아르테, 엘살바도르 대통령 사망
1981년 미국, 신형X선 레이저무기 발사실험 성공
1981년 스페인 민병대 의사당 점령 군정수립 요구
1980년 서울대병원 의공학과팀 인공췌장 개발에 성공
1976년 `한국미술5천년전` 일본 교토서 개막
`한국미술 5천년전(展)`이 1976년 2월 23일 일본 교토 국립박물관 구진열관에서 개막됐다. 1천5백여 명의 인파가 몰려 일본에서 열린 전시회 사상 최대인파를 기록했다. 이 전시회는 교토를 시작으로 후쿠오카-도쿄를 순회하며 5개월 동안 전시됐다. 전시유물은 모두 2백8건, 3백48점. 이 유물들은 역사시대 이전의 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유물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5천여 년의 긴 세월을 두고 이어 내려온 한국의 얼과 생생한 생활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품들이다. 이 전시회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발전과정의 전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미술,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3년 월남파병 백마부대 본진 개선
1971년 대학교련을 필수로 한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1970년 김재원 국립박물관장 25년 만에 퇴임
김재원(1909~1990)은 해방 후 초대 국립박물관장으로 25년간 재직하면서 국립박물관의 기틀을 잡은 한국 박물관의 초석이자 기둥이었다.
김재원은 함경남도 함주의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3살 때 작고하고 모친마저 8살 때 재가하여 조모 밑에서 성장했다.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1929년 6월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의경(이미륵)의 도움을 받아 뮌헨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1934년 교육학 및 고고학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벨기에 켄트국립대에서 6년간 조수로 일하며 동양미술을 연구했다. 1940년 귀국한 후에는 해방 때까지 보성전문에서 독일어 강사로 재직했다.
해방 이틀 후인1945년 8월 17일 김재원은 왠지 염려스러워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찾아갔다. 우려한 대로 박물관은 엉망이었고 한국인 직원이라곤 수위와 촉탁으로 있는 최영희뿐이었다. 김재원이 9월 초 미 군정청 문교 담당관을 찾아가 자신의 이력을 밝힌 뒤 박물관 업무를 맡겠다고 하자 담당관은 즉석에서 승낙했다.
9월 17일 국립박물관장으로 정식 임명된 김재원은 1941년부터 사실상 조선총독부 박물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아리미쓰 교이치(1907~2011) 박물관 주임을 붙들고 유물들의 소재와 사무를 파악한 뒤 12월 3일 국립박물관을 공식 개관했다.
김재원은 관장 취임 후 미군들이 경복궁 안의 민속유물을 기념품이라며 몰래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경복궁 경안당 관사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그는 미 군정청이 경복궁에 야전 건물을 짓는다며 경복궁 안에 있던 국립박물관 앞뜰을 파헤칠 때도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이슈화해 미 군정청의 반발을 사고 조사를 받았다.
1946년 4월에는 경기도의 개성부립박물관을 국립박물관 개성분관으로 흡수하고, 1946년 5월에는 귀국하려는 아리미쓰 교이치를 설득해 경주 호우총과 은령총을 조사·발굴했다. 이는 한국인이 주도한 첫 고고학 발굴이었다. 1946년 5월 3일 시작된 호우총과 은령총 발굴은 5월 14일 뜻밖의 유물이 출토되어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김재원은 6·25전쟁 때 피란을 가지 않고 박물관 유물과 함께 남았다. 북한이 유엔군의 서울 수복(9,28)을 앞두고 유물들을 북한으로 가져가려 하자 김재원은 직원들과 함께 “유물을 포장하는 궤짝이 덜 되었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지연작전을 펼쳐 유물들을 온전하게 보전했다.
1950년 12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었을 때도 2만여 점의 유물을 미군 트럭에 실어 부산으로 피란시켰다. 개성박물관의 유물들도 그때 함께 부산으로 옮긴 덕에 오늘날 우리는 그 많은 고려청자 유물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국립박물관은 1953년 8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으나 경복궁 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1954년 1월 국립민족박물관이 있는 남산으로 이전·개관했다.
김재원은 우리 문화의 수준을 해외에 알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국 최초의 문화재 해외 전시를 기획했다. 1957년 12월부터 1959년 6월까지 미국의 8개 도시 박물관에서 금동반가사유상, 금관, 고려청자 등 유물 195점을 선보였고, 1961년 3월부터 1962년 6월까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5개국에서 국보전시회를 열었다.
김재원은 승진도 좌천도 없이 24년 5개월 19일을 보낸 후 1970년 2월 23일 정년퇴임했다.
1960년 한국-말레이시아, 국교수립
1957년 필리핀 외상, SEATO 한국가입 제의
1955년 프랑스 시인 끌로델 사망
1954년 판문점 휴전회의 종결 선언
1945년 미 해병대, 일본 유황도의 스리바치산 함락
미 해병대가 1945년 2월 23일 일본 도쿄 남쪽 1,000km에 위치한 유황도의 주요거점인 스리바치산을 함락했다. 2월 19일 이 섬에 상륙한 이래 4일 만이었다. 해럴드 샤이어 소위가 인솔한 미군 40명은 산 꼭대기에 대대기를 꽂고 환호했다. 이 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최악의 날로 기록된 날로, 그야말로 피로물든 하루였다.
미군은 이 산을 점령하기 위해 이 날 하루동안만 무려 6천8백21명의 희생자를 내야했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해안에 겹겹이 쌓여 있는 시체는 길이가 약 6km에 달했다고 한다. 고립무원에 빠진 일본군 수비대는 주요거점이 함락되었음에도 섬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응전했으나 힘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수비대장 율림충도 중장은 참모 2명과 함께 3월 17일 일본군 대본영에 마지막 무전을 친 후 자결했다.
유황도 전투에서 일본군 수비대 2만3천명은 포로가 된 210여명 이외에 전원이 전사했다. 미군도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합쳐 약 2만 6천명이 전사했다.
1934년 `위풍당당한 진영`을 작곡한 영국의 엘가 사망
1909년 출판법 공포(원고사전검열제)
1907년 소설가 이효석 출생
1905년 국제로터리클럽 창설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조인
일본과 대한제국 간에 한국 식민지화의 첫 단계인 한일의정서가 1904년 2월 23일 강제 체결됐다. 대한제국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자 `엄정중립`을 선언했으나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으려는 본색을 드러냈다.
이미 한반도에 군대를 진주시킨 일본의 강요에 의해 대한제국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과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6개 조항의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일본은 의정서 체결에 반대해 온 탁지부 대신 겸 내장원경 이용익을 납치해 일본으로 압송하고, 보부상의 핵심인 길영수, 육군참장 이학균, 육군참령 현상건 등을 연금한 뒤 이날 체결을 강행했다.
의정서 내용은 1. 한국정부는 일본을 신임하여 `시설개선`에 관한 충고를 받아들일 것 2.일본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전을 도모할 것 3. 일본은 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보장할 것 4. 제3국의 침략으로 한국에 위험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은 이에 신속히 대처하며 5. 한국정부는 이와 같은 일본의 행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고 일본정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 6. 한국과 일본은 상호간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서는 협정의 취지에 위배되는 협약을 제3국과 맺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일의정서는 대한제국이 본격적으로 국권상실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했다. 3월 8일자 관보를 통해 의정서 내용이 알려져 여기에 서명한 이지용과 참서관 구완희의 집이 폭탄세례를 받는 등 민중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일제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3월 17일 이토를 서울에 파견해 의정서 실천을 조선 정부에 강요했다. 의정서에 따라 일본이 일본군 주둔 목적으로 헐값에 강제매수한 300만 평의 땅이 오늘날의 용산 미군기지다.
1899년 독일 작가 캐스트너 출생
1883년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 출생
1870년 친일반민족 행위자 배정자 출생
1848년 미국의 제6대 대통령(1825~29) 존 퀸시 애덤스 사망
1821년 영국 시인 존 키츠 사망
짧은 생애 동안 뛰어난 감각적 매력과 고전적 전설을 통한 철학적 표현을 담은 시를 썼던 영국 시인 존 키츠가 1821년 2월 23일 병고에 시달리다 로마에서 25년 4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끝마쳤다.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1820년 11월 요양차 이탈리아 로마로 온지 3개월여 만이었다.
존 키츠는 가난한 마차 대여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절에 부모를 여의었다. 신장도 당시 영국 남자의 평균 키보다 훨씬 작은 157cm였다. 그는 동시대를 함께 했던 바이런, 셸리와 달리 평민출신이었고 대학은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독학도였다.
하지만 키츠는 클라크 사숙 재학중에 학교 도서를 모조리 탐독하리만큼 문학에 열중하였다. 의학을 배운 5년 만에 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개업면허증을 받았으나 이듬해 병원 근무를 사직하고 시작에 전념했다.
1817년 22세 때 처녀시집 `시집`을 출판, 이듬해에 야심적인 장시 `엔디미온`을 발표하여 큰 발전을 보였다. 이듬해에 패니 브론과 사랑에 빠져 바로 약혼으로 진전되었는데, 그와 더불어 그의 생활도 폭과 깊이를 더하여 시에서도 비약적인 진보를 보여 잇달아 걸작을 써 냈다. 때를 같이 해 찾아온 폐결핵의 고통도 사랑의 선율로 바뀌어 노래불려졌다. 대표적으로 `성아그네스의 전야` `성마르코 전야`, `무정한 미인`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나이팅게일에게` `가을에` 등, 모두가 영국의 시화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이다.
이어 걸작 `하이피리언의 몰락`을 썼는데, 24세가 되던 1819년은 놀라울 만큼 그의 시가 많이 쏟아져 나오던 해였다. 원숙기에 도달한 1819년의 키츠는 이미 단순한 감각미의 시인이 아니었다. 그의 시에서 느끼는 인생경험과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은 25세도 채우지 못한 청년의 문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깊은 것이었다.
1744년 유대계 국제 금융자본의 상징인 로스차일드 가(家)의 실질적 비조(鼻祖) 암셸 로트실트 출생
1685년 독일 작곡가 헨델 출생
1678년 상평통보 주조
1678(숙종 4)부터 조선시대의 유일한 법화로서 조선 말기까지 사용된 화폐이다. 상평통보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관찬(官撰) 기록에서는 동전(銅錢)이라 했고, 또는 엽전(葉錢)으로 속칭되기도 하였다.
1468년 독일의 활자인쇄 발명가 구텐베르크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