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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존시대 [생존의 기술] 원문보기 글쓴이: 알엔디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wooin-kim/story_b_7837692.html?ir=Korea&utm_hp_ref=korea
대학시절부터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여행을 떠났고, 그 여정은 유럽의 생태마을과 공동체로 이어졌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났던 마을과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마을에서 한국 청년으로서 겪었던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야기1.
영국 스코틀랜드 생태마을 핀드혼 기행기 | 들풀과 춤추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6월의 어느 날, 나는 스코틀랜드의 애버딘과 인버네스 사이 해안가에 위치한 핀드혼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 가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에버딘 공항에 하강하기 시작할 때 비행기 창문 옆으로 노란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땅에 가까워질 때 그것이 스코틀랜드에서 자생하는 가시금작화임을 알 수 있었다. 가시금작화의 금물결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나는 핀드혼 마을로 향했다.
핀드혼으로 향하는 길, 대학생 때 이곳에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여름밤, 요정처럼 머리에 꽃을 곱게 단 할머니들과 원으로 돌며 늦은 밤까지 춤을 추던 일, 농장에서 일손을 도와 빗속에서 풀들을 뽑을 때 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던 마을 사람들의 말들, 호빗이 살 것 같은 작은 돌집에서 눈을 감고 느꼈던 평화, 이런 기억들이 생기를 머금은 채 떠올랐다. 내게 어린 날 동화 속 이야기 같은 핀드혼을 다시 찾아가는 길, 봄비가 연녹색 나뭇잎에 톡톡 떨어지듯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핀드혼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코코넛 가루들이 온 마을에 뿌려진 것같이 가시금작화의 향긋한 향이 마을 안에 퍼져 나갔다. 배낭을 멘 채 마을 입구에서 기웃거리자 아름다운 색깔의 긴 원피스를 입은 마을사람이 다가왔다. 그 분들은 내 여정을 듣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긴 여행을 하느라 고생했다며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순간 홀로 여행할 때 긴장된 마음이 탁 놓이면서 여행자로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고향에 온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지역에 있는 생태자제를 사용해 지어진 집들
핀드혼 마을에 들어서니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여름날의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고요하지만 재빠르게 몸을 놀리며 건강하게 햇살 아래 일하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유쾌해졌다. 마을 안에는 60여 채의 생태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제각기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이 집들은 대부분은 이 지역에서 나온 짚, 돌, 흙과 같은 생태적 자제를 사용해 지어졌다. 마을 건너 바닷가 쪽에는 마을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내가 영국의 북쪽의 척박한 땅에 왔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마을 곳곳 여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텃밭, 정원, 산책로, 농장에 피어난 붉은 개양귀비, 하늘 빛 물망초, 자줏빛 해당화, 연분홍빛 우아한 서양 접시꽃, 아이리스를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꽃들의 향기는 짙어졌고, 여름밤 바람에 나무들은 흔들리며 노래를 불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마을이 처음 시작되었던 곳이라고 믿을 수 없는 작은 캐러밴(휴가용 캠핑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핀드혼 마을에 피어있는 아침햇살에 빛나는 노란 가시금작화와 붉은 개양귀비
핀드혼(정식명칭: Findhorn Foundation)은 지금은 생태마을이나 공동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마을이다. 50년이란 역사를 지닌 이 마을에 세계 각지에서 찾아드는 방문객들은 해마다 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첫 시작은 1962년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이 작은 케러반이었다. 핀드혼의 초기 설립자인 피터, 에일린, 도로시는 평범한 영국인들로 돈이 많지 않아 먹거리를 얻기 위해 양배추를 길렀다. 그런데 이 척박한 모래땅에서 이들은 신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무려 18 킬로그램이나 되는 양배추를 길러냈다. 이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환경에서 자라기 어려운 꽃들을 아름답게 피워내면서 핀드혼 농장은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초기 마을의 설립자들이 살았던 캐러밴
(사진 출처 : 핀드혼 공동체)
이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은 이 신비로운 이야기에 이끌려 농장에 찾아들기 시작했고, 1980년대 사람들은 초기 설립자의 영성 위에 다음 단계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생태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생태마을 프로젝트의 한 고리로 에너지 자립을 위해 바닷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풍력발전기를 설치했다. 이외 250KW의 바이오매스 보일러와 리빙머신(Living Machine)이라고 불리는 생태적으로 설계된 하수정화장치를 고안했다. 모든 건축물은 생태적 자제와 천연 섬유질 단열재를 사용해 지어졌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의 먹거리를 농장에서 유기농업 또는 퍼머컬쳐 방식으로 길러내고, 그 외의 생산품은 지역생산물을 이용한다. 마을에서 자란 농산물과 생산품들은 피닉스(Phoenix)라 불리는 마을 안에 있는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사람과 지역사회 사람들의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위해 공연장, 공동식당, 협업농장, 도예장, 도서관, 카페, 아트센터, 출판사, 환경단체, 교육단체 등 다양한 단체들이 생겨났다. 이 모든 곳에서 경제적 자립과 활성화를 위해 생겨난 에코(Eko)라는 지역화폐를 사용한다.
에너지 자립을 위해 설치된 풍력발전기
위스키를 제조할 때 사용하는 통을 재사용해 지은 배럴하우스(Barrel House)
마을의 농산물과 지역생산품을 파는 피닉스(Phoenix)
(아래 사진 출처 : 핀드혼 공동체)
또한 핀드혼이 지닌 가치와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수가 마을과 지역사회로 늘어나면서 이들을 묶어줄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NFA(New Findhorn Association)라는 조직체를 갖추게 된다. 이 조직의 구성원은 마을의 반경 18킬로에 있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띤 다양한 단체들과 개인이다. 현재 360명의 개인과 32개의 조직이 NFA에 가입되어 있고, 이들이 바로 핀드혼 멤버라고 불릴 수 있다. 이 조직은 풀뿌리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달마다 회의를 열고 이 회의에서 마을과 관련된 모든 사안이 다뤄지고, 민주적인 방식의 의사결정을 통해 모든 안건은 결정된다. 핀드혼은 이렇게 사회적∙경제적∙생태적인 측면에서 생태마을로 불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나아가 90년대 이후 핀드혼은 유럽전역에 생태마을 모델로서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의 생태마을운동은 생태계 복원,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의 해결, 공동체적인 삶과 영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 중심에 핀드혼이 있다. 또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되면서 유엔훈련연구기구(UNITAR)의 국제연수센터(CIFAL)로 지정되고, UN과 협력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모델로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해마다 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찾아들 정도로 핀드혼은 마을 밖 사람들에게 활짝 열려있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강연, 워크숍을 통해 유연하게 세상 밖과 소통하고자 한다.
하지를 기념하기 위한 마을행사에 참여한 마을사람들과 아이들
나는 이번 방문에는 마을을 더 깊이 알고 경험하기 위해 한 달을 머물렀다. 핀드혼의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다시 끌어당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드혼 방문자들은 일반적으로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면서 핀드혼을 만날 수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체험주간(Experience Week)은 가장 잘 알려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핀드혼 마을사람들이 강사로 참여한다. 참여자들은 마을의 역사를 공부하고, 영성을 체험하고, 실제 농장과 공동식당 등 마을 사람들의 일터에 찾아가 함께 일을 하면서 핀드혼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장기간 머물고 싶은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살기(Living in community)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마치면 특별한 비용이 없이 마을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핀드혼 멤버가 될 수 있는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전 세계에서 오는 장기거주자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핀드혼에서 일상은 내가 처음 기대했던 어떤 동화 속 이야기라기보다는 정말 단순하고 소박했다. 일과의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은 명상방에 모여 아침 명상을 한다. 이후 제각기 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핀드혼에서 특별하게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조율(Tuning)'이라는 것을 한다. 이 조율은 일을 시작할 때 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일하는 장소에서 촛불을 켜고 원으로 둘러앉아 손을 잡는다. 눈을 감고 안내자의 멘트에 따라 자신의 모든 의식을 자신이 일하는 공간, 동료, 일로 초점을 모아 일에 대한 긴장감을 내려놓고, 마음을 조화로운 상태로 돌리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조율을 할 때 낯선 느낌을 많이 받았지만 이후 점점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일하는 일터, 장소, 사람들에게 내가 의식을 집중할 수 있었고, 점점 일한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마을공동 식당에서 일을 했다. 이 공동식당은 마을사람들과 방문객들의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는 곳이다. 날마다 8명의 마을사람들과 200인분의 음식을 준비했다. 일이 끝나면 마음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바닷가나 숲으로 산책을 했고, 마을에서 열리는 다양한 워크숍과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나의 하루일과였다.
농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조율(Tuning)'을 하는 사람들
정원에서 일을 하는 마을사람
나는 이 단순한 일상이 한 주, 두 주, 세 주가 지날 때 내 안의 무엇인가 서서히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와 이 프로그램을 함께 했던 일본인 친구 요시에의 얼굴표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시에는 유네스코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스스로 제 3세계 국가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늘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결국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고 멀리 이 핀드혼까지 찾아왔다. 처음 요시에를 만났을 때 얼굴에는 항상 긴장감이 돌았고 잘 웃지 않는 그야말로 딱딱한 회색 정장을 입을 사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도 요시에는 어린아이처럼 내게 장난을 걸어오고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일이 많아졌다. 같이 길을 걸을 때면 함께 큰 소리를 콧노래를 불렀다.
무엇이었을까? 이곳에 머물며 어느새 나는 하루하루 순간순간 '행복하다, 깨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 이곳 농장에서 자란 유기농 샐러드와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먹으며 아삭아삭한 상추와 싱싱한 토마토의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설거지를 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일들이 많아졌다. 오후에는 정원에 가서 풀들을 뽑아줄 때 흙의 온기가 느껴졌다. 바람이 부는 날은 메타세콰이어 숲길도 맨발로 걸어 보기도 하고,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에는 모래사장을 거닐며 조약돌이 모래 위에 그린 그림을 보았다. 물을 마실 때는 물 컵 아래 적혀있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는 구절을 보며 나도 마음속으로 물에게 그런 말을 건넸다. 저녁 무렵 붉게 숲을 넘어가는 노을을 보며 마음에 쌓인 무언가 내려가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왠지 모르게 노을 보고 있으면 자꾸 멀리 있는 가족과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을에서 자란 농산물로 차려진 채식 식단
이런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는 어느 날 저녁, 나는 마을 사람인 파비앙을 만났다. 파비앙은 남아프리카에서 자란 프랑스인으로 핀드혼의 오래된 NFA 주요 멤버로 마을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일들에 관여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한지 간절하게 물었다. 그는 다정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세계에서 많은 청년들이 이곳에 찾아와 어떻게 하면 생태공동체를 지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생태마을을 만들 땅도 있고, 생태건축 기술도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바로 자신들의 내면에 공동체를 지어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의 내면에 공동체를 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음 날 파비앙과 만난 뒤 달마다 열리는 마을사람들의 NFA 회의에 참여했다. 이번 회의주제는 핀드혼의 설립자 가운데 도로시가 제시한 주제로 핀드혼의 마을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회의였다. 평소에는 평화롭게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회의 때는 그 어느 회의보다 격렬하게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며 서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며 어떤 사람들을 싸우기도 했다. 나는 이 모습들을 지켜보며 이곳도 여느 곳과 다르지 않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날 때쯤 격렬하게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지자 핀드혼의 한 여자가 갑자기 무대 위로 나왔다. 그 여자는 외발수레에 포트와 작은 모종을 가져왔다. 그 여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처음 척박했던 이 땅에 씨를 심을 때의 첫 마음을 떠올리며 함께 모종을 심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은 당황한 눈치였지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은 갑자기 고요해졌고, 한 사람씩 나와서 포트에 작은 연녹색 모종을 심기 정성스레 심기 시작했다. 마치 격렬한 폭풍 뒤에 오는 화해의 의식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원을 그리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구와 하늘이여 이 땅의 신성함을 지켜주소서.......'
마을회의와 다양한 공연과 워크숍이 열리는 유니버셜 홀(Universal Hall)
(사진 출처 : 핀드혼 공동체)
마을 명상방인 네이쳐 생추어리(Nature Sanctuary)
그 일이 있은 뒤 내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도대체 이 핀드혼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삶과 마을을 꿈꾸지만 이 꿈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운 꿈을 꾸지만 그 꿈은 거대한 현실 앞에서 좌절되고 만다. 핀드혼도 50년 동안 상상도 할 수 없는 갈등과 고통이 있었을 텐데 무엇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던 것일까? 핀드혼은 외형적으로 공동체나 생태마을이 꿈꾸는 사람들이 바라는 많은 것들은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 이 마을을 지켜내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토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핀드혼을 떠나기 며칠 전 나는 이 핀드혼 마을의 설립자 세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도로시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도로시 할머니는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90이 넘는 나이에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나를 맞이했다. 얼굴을 들어 할머니를 바라봤을 때 푸른 할머니 눈동자는 생기를 머금고 반짝거렸다. 나는 할머니께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 꿈을 꾸지만 현실에 벽에 부딪히면서 꿈을 이어가지 못하는데 핀드혼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원천은 무엇인지 물었다. 할머니는 단순한 어휘와 정확한 발음으로 한자 한자 힘을 주어 말했다. "좌절, 고통 또한 삶의 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깊은 신의 사랑을 배웁니다. 신의 사랑은 항상 우리 삶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느냐 느끼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랑을 믿고 그 신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할머니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방황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이 말을 전하셨다. "우리의 삶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 안에 사랑이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지 이곳,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이 세상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강하지만 부드러운 음성으로 힘을 주어 이 말을 반복했다. "사랑하세요. 그리고 행동하세요." "사랑하세요. 그리고 행동하세요......." 할머니의 얼굴에 아이 같은 웃음이 번졌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도로시의 말은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말이었지만 그 순간 위대한 언어를 들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핀드혼의 수수께끼들이 풀려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파비앙이 말한 내면의 공동체를 짓는다는 말은 바로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사랑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시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할머니는 잊지 않고 평생 이 마을을 통해 지켜내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할머니의 삶은 거대하고 복잡한 것들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단순하고 소박한 것들 안에서 신의 사랑을 일치시키려는 행동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핀드혼의 설립자인 도로시 할머니와 함께
핀드혼을 떠나는 날 오랫동안 함께 하던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눈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피었던 가시금작화는 다 지고 대신 자줏빛 꽃을 피우는 헤더라는 식물이 해안가를 물들이고 있었다. 다른 여행지로 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노을이 스코틀랜드의 거대한 자연 위에 내려가고 있었다. 그 자연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도로시할머니의 자연을 향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떠날 다음 여행지를 그리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평범하게 소리 없이 하루하루 꿈꾸며, 돌투성이 같은 자갈밭에서 생명을 길러내는 핀드혼 사람들의 위대한 사랑의 빛이 여름밤 하늘 위를 수놓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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