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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른 계곡. ⓒ 정영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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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공평했다. 차른 계곡은 가히 카자흐스탄의 자랑거리가 됨직했다.
나른한 나우르스(이슬람력으로 새해) 봄날 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어
교육원에서 출발했다. 차른 계곡까지 300km인데 세 시간 걸린다고
해서 일찍 길을 나섰다.
해바라기 씨로 손과 입의 심심함을 달래며 갔다. 풍경은 머지않아 두
번 다시는 못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새롭게 보였다. 차를 타며 산자락을 보았다. 흰 종이를 마구 구겨 놓은 듯, 무참하게 깎아지른 절벽에 흰 비단을 걸친 듯 흰 산은 볼수록 절경이었다.
이런 풍경을 가족 없이 나 혼자서 보아야 하다니…. 순간, 쓸쓸함이란
사랑하는 가족 없이 혼자 하는 여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얼마를 가노라니 아주 기다란 담이 나왔다. 아니라 다를까 공동 묘지였다. 푸른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는 모양도 있었고, 소인국 사람들이 살 것 같은 성 모양도 있었다.
말, 소, 양떼, 그리고 나귀인지 노새인지 모를 작은 짐승 위에 앉아 세상 근심 잊고 달려가는 소년도 보았다. 도로를 건너려는 양 무리도 만났는데 차 경적을 울리자 어떤 양은 도로 중간에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우리를 보는 게 아닌가.
천진난만한 천사 모습 같았다. 다른 양들은 뒤로 다시 가는데 그 양은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우리를 보면서 귀엽게 서 있었다.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 양떼. ⓒ 정영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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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초원뿐인 정류장에서는 웬 노파들이 모여서 팔리지 않을 성싶은 물건을 팔고 있기도 했다. 전형적인 시골을 지나자니, 까치였으면
싶은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말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가로수는 “어디를 가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산의 가시 건초는 생존을 위해서 노랗게 염색을 했고, 신의 가슴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브로치 조각이나 거대한 해삼이 화석이 된 듯했다.
한편 돌산은 게으른 지옥의 사자 발뒤꿈치 각질 같았다.
건조한 산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보았는데 어떤 사람들이 그 비행기 안에 있을까. 모두 어디로들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
집 마당에서 엄마가 비행기를 보시면 내 생각을 하시겠구나 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잠시 후 라임벡이라는 마을 입구로 들어갔는데… 아, 이 길로 가서는
안 될 길임을 아무도 몰랐다. 그 입구에 막 들어서기 전에 왼쪽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가 있었다. 그 길이 맞는 길이었다. 이정표가 180도 돌려져 있어서 아무도 비포장도로가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라임벡 마을 입구에는 입구를 알리는 기마상이 있었고 커다란
흰 독수리 상과 서낭당을 연상시키는 나무와 헝겊 조각들이 있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기복에 대한 사람의 행위는 비슷한 듯싶다.
▲ 주유소. ⓒ 정영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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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깔끔한 녹색 테두리를 한 주유소가 보였다. 거기서 조금 들어가 검붉은 흙탕물이 흐르는 계곡을 만났다. 여기서부터 계곡의 시작이 아닐까, 여기도 카자흐스탄이구나 하고 나는 메모를 해 두었다.
이정표에서 '나른꼴', '춘자', '우즌블락'이라는 지명을 볼 때마다 나른꼴을 향해서 온 것이 길을 잘못 든 원인일 것이다.
허허벌판에서 말을 탄 우스꽝스런 할아버지와 검은 개를 만났는데,
그 목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계곡의 지리를 묻노라니 “빌멤”이라 했다. 그 말은 카자흐어인데 모른다는 뜻이다.
의사소통의 장벽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어디로든 차를 몰 수 밖에 없었다. 양떼를 또 보았다. 길을 잃어서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양 무리에 경탄이 나오는 것은 왜 그랬을까. 표지판이 보였다. 마을과 벌판과의 갈림길 앞이었다.
500m를 가면 주유소와 식당이 있다고 카자흐어로 쓰여 있었다. 주유소로 향했다. 500m보다 먼 500m를 가니, 서부 영화에서나 본 듯한
초라한 건물이 보였다.
다행히 지리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차는 목이 마른
듯 저절로 식당 건물 쪽으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 우리는 차를 뒤로
잡아당기고, 다른 사람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등에서 땀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순간이었다.
▲ 먼 길을 가듯 걸어가는 한 모자. ⓒ 정영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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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오던 길을 달렸다. 지쳐 쓰러진 개와 쉬고 있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고, 다리 난간 위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거무스름한 청년도 보았다.
녹색 주유소에서 금니를 한 아저씨를 보고 길을 물었다. 모른다 했다.
다시 달렸다. 이삿짐을 싣고 가는 차 두 대를 만났다. ‘차른’이라고
발음하니 못 알아들어서 ‘슈른’이라고 하니 그제야 우리의 질문을
이해했다.
그런데 잘 모르지만 비포장도로로 가 보라고 설명해 주었다. 서둘러
차를 몰아야 했다. 길을 가다 비포장도로를 천천히 돌아가니 금새 우리가 왔던 길과 만나는 게 아닌가. 차른과 카페가 표시된 이정표를 바로 못가서 오른쪽으로 향하니 비포장길이 나왔고 황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차른 호수라는 팻말이 있었다. 황소 뒤에는 다리가 보였고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 난간은 낡아서 부서질 것만 같았다. 다리 밑에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는 다리 옆에서 어서들 점심을 하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 때가 오후 한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허기진 배를 달랬다. 전날 냉장고에 물수건을 준비해 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손을 씻을 수가 없어서 화장지를 물수건 대용으로 써야 했으니까 말이다. 라면을 먹으니 바람 빠진 고무풍선 같던 내 배는 봄날 낮잠 자는 강아지 배가 되었다.
▲ 계곡에 이르기 전의 하천. ⓒ 정영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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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피를 흘리는 투견을 못 본
체하면서 유목민 대여섯 명은 반신반의스런 또 다른 길을 알려 주었다.
세 시가 다 되어서 기마상이 있었던 마을 입구까지 왔다. 원두막 비슷한 것이 비포장도로 쪽에 있었다. 저 길이 계곡으로 가는 길이었나 보구나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자가용 한 대를 만났다. 자기네를 따라 오라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앞선 자가용을 따라 가자니 표지판이 나왔다. 붉은 색으로 쓰여진 차른 계곡 표지판을 보니 반갑고도 허탈했다. 갈림길에서는 자가용에 탄 사람들이 차창 밖으로 팔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해 주었다.
비포장도로를 12km 달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신나게 달렸다. 누군가 멀리서 우리를 보았다면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을 것이다. 마침 ‘밤배’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는데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하는 부분이어서 난 혼자서 웃었다.
드디어 차른 계곡을 만났다.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이
군데군데 녹은 산은 날카로운 베토벤 얼굴 같았다. 오르막길을 가는데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저기를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 거야.” 라고 누군가 말했다.
“뭣이 보여?” 나는 무서워서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놀람.”
▲ 차른 계곡. ⓒ 정영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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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눈을 뜨니 다시 아슬아슬한 내리막길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협곡, 바로 그 붉은 차른이었다. 놀라운 신의 조각 솜씨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바다 거북의 발가락 형상인데 여름에는
불 속일 것만 같았다.
사람이 새끼 손톱처럼 작게 보이는 거리에 있는데도 그들의 대화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산 너머 가족들 얼굴이 생각났다. 자랑스런 미술 작품 마냥 엄마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사진으로 쓸쓸함을 접어야 했다.
얼마 후 '달리나?잠꼬프'가 2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 차를 돌렸는데 경사가 거의 80도나 되는 바람에 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 곳에 조금만 손을 댄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반가운 포장도로를 만났을 때는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 한적한 마을의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는 훈기가 돌았다. 우리나라의 60년대 이발관 같은 실내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듯한 조화, 비닐로 덮은 식탁, 원색적인 액자 그림 그리고 목댕기를 한 주방장 아저씨의 앞치마는 잠시나마 나를 문화인이라는
'우월감'에 빠뜨렸다. 그 곳에서 화장지 대신 주전자를 들고(이슬람권에서는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변소에가는 회교도와 옥수수 튀밥을 파는 아주머니도 보았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우므발릭으로 손을 씻기도 했다.
나는 알마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을 본 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기억 속에서 뒤늦게 발견한 카자흐스탄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