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본 장 24장 뒤꿈치를 들면 오래 설 수 없다. 스스로 보면 환하지 않고 스스로 보면 밝지 않으며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을 세울 수 없고 스스로 과시하는 사람은 뛰어나지 않다 그런 사람을 도로 보아 말하자면 찌꺼기 음식이나 사마귀와 같다 사람들이 종종 그것을 싫어하니 그 때문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거기에 거하지 않는다. 企者不立. 自視者不章, 自見者不明, 自伐者无功, 自矜者不長. 其在道曰: 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欲者弗居.1) 뒤꿈치를 들면 오래 설 수 없다 企者不立 '기(企)'는 백서 갑·을본에 모두 '흔(炘)'으로 되어 있다. 백서의 글자는 뜻이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서는 고명을 좇아 '기'의 가차자로 본다. 정리조는 '취(吹)'로 읽어야 하며, 고대 도인술의 한 동작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통행본에서 '기(企)'는 '기(跂)'로도 되어 있다. 서로 통하는 글자다(초굉). 모두 발뒤꿈치를 든다는 의미다(범응원·오징). 그러므로 이 문장은 남보다 높아지려고 까치발을 하면 오래 가지 못해 주저앉고 만다는 뜻을 담는다. "서서 발뒤꿈치를 드는 것은 남보다 높이 서려고 하는 것이지만 어찌 오래 설 수 있겠는가(범응원)." 통행본에는 대개 이 문장 아래 "성큼성큼 뛰어가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문장이 더 있다. 정리조는 백서에서 빠뜨렸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보기 어렵다. 고명은 이것이 원래 없었던 문장인데 육조 시대에 변려문이 유행하면서 삽입되었다고 주장했다. 참고할 만하다. 스스로 보면 환하지 않고, 스스로 보면 밝지 않으며,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을 세울 수 없고, 스스로 과시하는 사람은 뛰어나지 않다 自視者不章, 自見者不明, 自伐者无功, 自矜者不長 정리조는 '시(視)'를 '시(示: 보이다)'로 보았다. 이 문장에 '보다'는 글자가 두 번 나오는데(視·見) 중복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갑·을본은 모두 이렇게 되어 있다. 통행본에는 모두 '시(是: 옳다고 한다)'이다. 역시 중복이라고 보고 나중에 고쳤을 것이다. '장(章)'은 '창(彰)'과 같다. 환하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견(見)'은 '현(見: 드러낸다)'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육희성·범응원·오징). 뜻은 통하지만 '밝다〔明〕'는 것은 눈이 밝은 것이므로 본문처럼 보는 게 더 어울린다. '벌(伐)'은 스스로 떠벌리는 것이고, '긍(矜)'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이다(범응원). '장(長)'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과시한다〔矜〕'는 말과 연결지어서 생각한다면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덕이 뛰어나다(성현영)는 뜻으로 새기는 것이 좋겠다. 이 문장은 곧이어 나오는 글(22)의 일부 문장과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곧 이 글(24)은 다음 글(22)과 뜻으로 연결된다. 이 글(24)이 통행본의 순서와 다르게 다음 글(22) 앞에 올 만한 이유가 있다. 『장자』 「산목」에는 이 문장과 유사한 뜻을 담은 글이 나온다. 옛날에 내가 크게 이룬 사람에게 듣기를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이 없고, 공을 이룬 자는 망하고, 이름을 이룬 자는 이그러진다고 하였으니 누가 공과 이름을 버리고 뭇사람들과 함께하겠는가. 이것은 진(陳)·채(蔡) 사이에서 곤경을 당하고 있던 공자에게 임씨 성을 가진 노인이 훈계하는 말이다. 「산목」에 따르면 이 말에 크게 감동받은 공자는 제자를 버리고 궁벽한 곳에 은거하여 조수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반면 『논어』는 제자 자로에게서 은자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공자가 "조수와는 함께 무리지을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누구와 함께하겠는가(「미자」)"라고 자신의 심회를 털어놓았다고 전해준다. 그런 사람을 도로 보아 말하자면 찌꺼기 음식이나 사마귀와 같다 其在道曰: 餘食贅行 '기(其)'는 앞에서 묘사한 사람들이다. '여사(餘食)'는 먹고 남은 음식, 특히 잔치의 남은 음식을 가리킨다. '췌행(贅行)'은 글자 그대로 쓸데없는 행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고(왕필·하상공·왕진), '행(行)'을 '형(形)'과 같은 글자로 보아 군더더기 살 또는 사마귀로 볼 수도 있다(사마광·소철·오징·초굉). 모두 의미가 통하지만 찌꺼기 음식과 더 잘 어울리려면 사마귀로 보는 것이 좋겠다. 찌꺼기 음식은 처음에는 맛있었지만 나중에는 혐오하는 것이 되고, 사마귀는 처음에는 살이었지만 나중에는 필요없는 것이 된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주목받지만 나중에는 안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다. 그러므로 찌꺼기 음식이나 사마귀 같다. 그렇지만 사실 이 문장도 『노자』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노자』는 이미 "천하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것은 오직 외롭고, 덕이 부족하며, 선하지 않은 것이나 왕공은 스스로 그것으로써 이름을 삼는다(42)"고 하였고, "물은 만물을 이롭게 잘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6)"고 하였다. 찌꺼기 음식이나 사마귀가 혐오할 만하다면 그처럼 되는 게 『노자』가 권유한 삶의 길이 아니었던가. 사람들이 종종 그것을 싫어하니 그 때문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거기에 거하지 않는다 物或惡之, 故有欲者弗居 '물(物)'은 사람과 귀신을 함께 말한 것이다(오징). 본문에서 사람이라고 번역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뜻이 담겨져 있다. '혹(或)'은 본문처럼 옮겨도 되고, '유(有)'와 같은 뜻으로 보아 "사람들이 그것을 싫어하는 바가 있으니"로 옮겨도 좋겠다. 두 번째 구절에서 '욕(欲)'은 통행본에 모두 '도(道)'로 되어 있다. 이 두 글자는 서로 통할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백서 연구자는 '욕'이 잘못된 글자라고 하였다. 하지만 백서 갑·을본이 모두 이렇고, 똑같은 구절이 등장하는 다른 글(31)에서도 통행본의 '도'는 백서에서 '욕'이다.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므로 편의적으로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백서의 글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되 토를 바꿔 본문처럼 해석하면 전혀 무리가 없다. 뒤에 나오는 글(31)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이 없고 공을 이룬 자는 망하고 이름을 이룬 자는 이그러진다고 하였으니 누가 공과 이름을 버리고 뭇사람들과 함께하겠는가 ―『장자』 「산목」 각주 1) * 갑·을본은 서로 일치한다. * 갑·을본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한 문장을 얻을 수 있다. * 이 글은 통행본 24장에 속하지만 백서에서는 통행본 21장 다음에 나온다. 글의 내용도 통행본과 다르다. * 3구의 자(者)는 갑본에 빠져 있다. 다른 구절과 호응하기 위해 을본에 의거하여 보완한다. * 기(企)는 흔(炘: 이하 갑·을본), 여(餘)는 여()의 본 글자이므로 모두 이렇게 [출처] 노자 [73] (도편) 뒤꿈치를 들면 오래 설 수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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