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구주 예수님께서 말 그대로 그 자신이 구원자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려 드리신 이유는 기도가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 응답과 실제들의 통로와 방법인 것임을 알려 주심과 함께 기도에 있어서, 곧 그러한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과 절대성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이르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친히 본을 보이신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좀 더 근본적이면서 근원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 상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이시고,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며,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재자이시고, 선악 간 심판주이시며,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기도들을 그의 뜻에 따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인 것이고, 필요하면 기적을 행하셔서라도 도우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예수님께서도 구원자시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게다가 구주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기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하늘의 힘과 땅의 문제들 그 중간에서 우리 인생들과 이 세상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것이 심히 마땅하시고 더욱 당연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예수님의 경건하심으로 인해 그러한 기도들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들으심이 된 것이라고 증거되어 있는데 그 또한 조금도 어렵거나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구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과 이 세상에 있어서 완전한 경건이신 분이자 경건의 완벽한 모델이신 분인 것이고..
조금 더 정확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그러한 예수님께서는 아예 처음부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보여 주셨고, 말씀을 전하셨으며, 말씀대로 행하셨고, 말씀 그대로 누릴 수 있게 해 주셨으며, 특히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셨고,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인데 실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심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그 어떠한 자라도 믿음과 함께 값없이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뀔 수 있도록 길과 통로와 대문과 열쇠가 되신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으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말씀과 함께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신 것이며, 말씀대로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말씀 그대로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분인 것이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자 완전한 경건이신 구주 예수님의 기도를 전적으로 들으심이 아주 당연한 것이고, 그러한 이치와 원리는 다른 그 누구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으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응답과 역사와 승리와 복과 이적과 열매들 등에 있어 합당하고도 또 합당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 있어서야 말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 그 위치와 역할대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그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그와 같은 기도들에 있어 어느 정도로 죄악들과 싸우고 얼마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인 것인가가 크고 작은 응답들에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바꾸어 말하면 무조건적이고 기복적이며 맹목적인 기도보다는, 또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 등과 같이 위선적이고 외식이며 거짓이 가득한 기도보다는 참으로 그러한 기도는 다른 종교들이나 이단, 사이비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 것이기에 가장 최우선으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인지를 돌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오직 말씀을, 말씀의 신앙을 더욱 더 사모하고 갈급하며 결단하고 몸부림치는 기도들이야 말로 진정 시급한 것이며, 특히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과 미움과 원망과 악행과 우상과 온갖 불신앙들 등을 숨기고 있거나 반복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무엇보다 각성하고 반성하며 자백하고 자복하며 회개하고 참회하며 돌이키는 기도가 참으로 긴급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이기에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그러한 성령님의 실제적인 힘과 역사와 누림들, 생생함과 충만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도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근원적인 면에 있어서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5: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7월 16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