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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수개화(鑽燧改火)
옛날에는 철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나무를 비벼대어 새로이 불을 얻는다는 말이다.
鑽 : 끌 찬(金/19)
燧 : 부싯돌 수(火/12)
改 : 고칠 개(攵/3)
火 : 불 화(火/0)
준말 : 개수(改燧)
출전 : 논어(論語) 양화(陽貨)
찬수개화(鑽燧改火)는 고사성어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불을 다시 지피다', 또는 '불씨를 새로 일으키다'는 뜻입니다. 찬수(鑽燧)는 불을 일으키는 도구, 즉 불을 지피는 행위를, 개화(改火)는 '불을 바꾸다', '불씨를 새롭게 하다'를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마련하다, 근본부터 새롭게 시작하다, 또는 새로운 시대를 열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주로 정치, 제도, 사상, 문화 등에서 혁신이나 개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 쓰입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우리 사회는 지금 찬수개화(鑽燧改火)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의 낡은 관습을 벗고 찬수개화(鑽燧改火)의 정신으로 새 길을 열어야 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반성과 함께 찬수개화(鑽燧改火)의 용기가 절실하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찬수개화(鑽燧改火)와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의 연결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양화편의 핵심 주제와 관련 구절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찬수개화라는 개념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은 공자의 제자들과의 문답, 공자의 언행 등을 담고 있는 장 중 하나로, 특히 정치와 인재 등용, 인간의 도리 등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공자의 사상 중 예(禮), 인(仁), 의(義)에 대한 그의 입장이 잘 드러나는 편입니다.
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공자 말씀하시길: "나라에 도가 있으면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바른 행동을 하되 말은 삼가야 한다.
이 구절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행의 방식이 달라져야 함을 말하며, 시대의 도가 무너졌을 때는 조심스러운 행동과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이런 맥락은 찬수개화(鑽燧改火) 즉, 낡은 불씨를 버리고 새 불을 지핀다. 다시 말해 새로운 도덕, 질서, 문화로의 전환과 정신적으로 연결됩니다.
찬수개화(鑽燧改火)는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서 말하는 시대에 따른 도의 실현과 유연한 실천 태도, 또는 도덕적 쇄신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양화편은 기존의 부패한 도를 버리고 새로운 도(道)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함의, 즉 도덕적 불씨를 다시 지피는 일에 공자의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현대적으로 응용하면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은 혼란한 시대일수록 도(道)를 지키는 실천이 중요함을 설파한다. 이는 곧 찬수개화(鑽燧改火)의 정신 즉, 부패한 체제의 불을 끄고 새로운 도덕적 질서를 지피는 일과 맞닿아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찬수개화(鑽燧改火)와 공자(孔子)
찬수개화(鑽燧改火)와 공자(孔子)의 사상을 연결하면, 이는 곧 혼란한 시대 속에서 새로운 도덕 질서를 다시 세우려는 철학적 실천을 뜻합니다. 이 성어는 비록 논어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공자의 생애와 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정신과 깊이 닿아 있습니다.
공자의 삶 자체가 찬수개화(鑽燧改火) 자체였습니다. 공자는 춘추전국 시대의 몰락한 예악질서 속에서 주나라의 예(禮)와 도(道)를 되살리려 했으며, 각국을 유세하면서 도덕 정치의 회복을 꿈꾸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공자의 철학은 한 마디로 '도덕의 불씨를 다시 지핀 찬수개화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논어 이인편에서: "내 도는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吾道一以貫之)"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바로 인(仁)이며, 이를 통해 도를 회복하려는 찬수개화적 의지를 말하였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克己復禮為仁)." 이는 혼란한 시대에 다시 예로 돌아가는 노력 자체가 '불씨를 다시 지피는' 행위라는 말입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공자는 시대가 무너졌다고 한탄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도의 불씨를 지피며 '찬수개화(鑽燧改火)'의 실천자가 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혼란한 시대를 밝히는 윤리적 불꽃이었으며, 예와 인의 재건은 곧 문명의 재점화였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사상과 생애는 찬수개화(鑽燧改火)적 의지로 일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철학자의 고고한 이상이 아니라,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도덕적 질서의 부활을 실천하려 한 실천적 의지였습니다.
공자는 주나라의 예(禮)가 무너지고 각국이 패권을 다투는 춘추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道行不由)"는 그의 탄식 속에는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무너진 도덕 질서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논어 자한편에서 "세월이 차가워져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彫也)"고 하였습니다. 이는 혼란한 시대일수록 변하지 않는 도덕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곧, 잃어버린 도(道)의 불씨를 다시 지피는 찬수개화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찬수개화적 의지는 단순한 유교의 보수적 복원과 다릅니다. 그는 낡은 제도를 기계적으로 되살리려 한 것이 아니라, 인(仁)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창조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논어 제12편인 안연편의 도입 부분에서 "자신을 이겨 예로 돌아가야 한다(克己復禮為仁)"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너진 도덕과 질서를 근본에서 다시 점화하려는 실천적 다짐, 곧 찬수개화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가 제나라, 노나라, 위나라, 조나라 등지를 돌아다니며 현실 정치에 도(道)를 심고자 한 노력은, 이미 꺼진 줄 알았던 예와 인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실패자였지만, 문명의 불씨를 이어간 문화적 개창자였고, 이는 찬수개화의 정신을 온몸으로 실현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와 찬수개화(鑽燧改火)적 의지의 교훈은 혼란한 시대일수록 우리가 어디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근본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와 인내, 그리고 도덕적 신념을 실천하려는 의지입니다.
교훈 1: 도덕은 꺼진 불이 아니라, 다시 지펴야 할 불씨다
공자는 춘추의 난세 속에서도 "도가 있다면 내가 이루겠다"고 말했습니다.
무너진 질서를 탓하지 않고, 스스로 그 불씨를 일으키려 한 그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변화는 누군가가 다시 불을 지피려 할 때 시작됩니다.
교훈 2: 근본으로 돌아가되, 시대에 맞게 실천하라
공자는 주례(周禮)를 이상으로 삼았지만,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仁)이라는 살아 있는 원칙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복고주의자가 아닌, 가장 고전적인 도리를 가장 급진적으로 실천한 개혁자였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근본을 배반하지 않되, 시대에 맞게 다시 피워 올리는 일입니다.
교훈 3: 결과보다 실천, 이상보다 행동
공자는 현실 정치에서 실패했지만, 그의 찬수개화적 의지는 결국 유교라는 문명의 불꽃이 되어 천년을 이어졌습니다. 그는 "내가 도를 전하였을 뿐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 전함이 곧 시대를 다시 밝히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라도, 꺼뜨리지 않고 지켜가는 사람이 결국 시대를 바꿀수 있습니다.
공자의 삶은 ‘찬수개화’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무너진 도를 한탄하지 않고, 예를 되살리고 인을 실천하며 시대를 다시 밝히는 불을 지폈습니다. 그 불은 지금도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찬수개화(鑽燧改火)
철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벼서 새로이 불을 얻는다는 말이다. 수(燧)는, 불을 얻는 나무로, 봄에는 푸른색인 느릅나무와 버드나무, 여름에는 붉은색인 대추나무와 살구나무, 늦여름에는 노란색인 뽕나무와 산뽕나무, 가을에는 흰색인 떡갈나무와 졸참나무, 겨울에는 검은색인 홰나무와 박달나무를 써서 오행에 맞추었다.
이 성어는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 21장에서 공자(孔子)와 제자 재아(宰我)와의 문답 과정에 나온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아가 물었다. “(부모님) 3년의 상을 치르는 것은 기간이 너무 오래라 생각됩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禮)의 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예는 필히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樂)을 연습하지 않으면 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양식이 다 떨어지고 새 곡식이 나고, 계절마다 바꾸어 불을 피워주는 나무도(鑽燧改火) 한 바퀴를 도는데 1년이오니, 부모님 상(喪)도 1년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宰我問: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為禮, 禮必壞; 三年不為樂, 樂必崩. 舊穀既沒, 新穀既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공자가 말했다. “3년이 지나기 전에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는 편안하냐?”
子曰: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재아가 대답했다. “네, 편안합니다.”
曰:安。
공자가 말했다. “편안하면 그렇게 하라. 군자가 상을 치를 때, 먹어도 맛이 없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네가 편안하면 그랗게 하라.”
子曰:女安, 則為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為也. 今女安, 則為之。
재아가 나아가자 공자가 말했다. “재아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이 태어나 삼 년이 된 이후에야 부모의 품을 떠난다. 삼 년의 상제는 천하의 모든 사람이 지키는 일반규칙이다. 재야도 부모에게 삼 년간 사랑을 받았던가?”
宰我出. 子曰: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 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論語 陽貨 第17之 21)
논어집주(論語集注)
수(燧)는 불씨를 얻는 나무다. 개화(改火)를 바꾸는 것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 맞춰, 봄에는 버드나무판에 느릅나무, 여름에는 살구나무 판에 대추나무, 계하(季夏; 늦여름)에는 산뽕나무 판에 뽕나무, 가을에는 졸참나무 판에 떡갈나무, 겨울에는 박달나무 판에 홰나무를 부시로 하여 불씨를 얻으니 역시 1년에 한 바퀴 도는 것이다. 1년이면 천체의 운행도 한 바퀴 돌고, 계절의 생산물도 모두 바뀌니 부모의 상도 이에 맞추는 좋다는 것이다.
燧, 取火之木也。改火, 春取榆柳之火, 夏取棗杏之火, 夏季取桑柘之火, 秋取柞楢之火, 冬取槐檀之火, 亦一年而周也。已, 止也。言期年則天運一週, 時物皆變, 喪至此可止也。
부엌의 불씨를 꺼뜨리면 절대로 안 되는데도 절기마다 불을 바꾼 이유는 오래 그대로 쓰면 불꽃에 양기(陽氣)가 지나쳐 돌림병의 원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재여(宰予)는 노나라 출신으로 자(字)가 자아(子我) 또는 재아(宰我)이다. 자공과 더불어 언어에 뛰어났으며, 공자를 모시고 14년의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아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후대의 한 왕조로부터는 제공(齊公)으로 추존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여가 자주 낮잠을 자므로 공자가 말하였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재여를 꾸짖어서 무엇하겠느냐!”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墻, 不可杇也. 於予與, 何誅.
(공야장 9장)
공자가 활동하던 그 시대에 그의 제자가 부모님의 상을 1년 상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한 재아는 개혁가가 아닐까?
찬수개화(鑽燧改火)
철이 달라질 때마다 불을 바꿈
고대에는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얻었다. 논어 양화(陽貨) 편에 “부시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바꾼다”고 나오는데, 이게 찬수개화(鑽燧改火)다. 줄여서 개수(改燧)라고 쓴다.
부시로 사용하는 나무(木燧)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 맞춰 계절에 따라 바꾸었다. 봄의 빛깔은 청색이므로 푸른빛을 띠는 버드나무 판에 구멍을 내고 느릅나무 막대기로 비벼 불씨를 일으켰다. 여름은 적색이므로 붉은 살구나무 판에 대추나무, 가을은 백색이므로 하얀 참나무 판에 산유자나무, 겨울은 흑색이므로 검은 박달나무 판에 느티나무를 사용했다.
부엌의 불씨를 꺼뜨리면 절대로 안 되는데도 절기마다 불을 바꾼 이유는 오래 그대로 쓰면 불꽃에 양기(陽氣)가 지나쳐 돌림병의 원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불은 소중한 것이어서 나라가 직접 관리했다.
태종 6년(1406)에 시행된 개화령(改火令)은 성종 2년(1471)에 더 강화돼 궁궐의 병조(兵曹)에서 국화(國火)를 만들어 한성부로 내려 보내고, 고을마다 같은 방식으로 집마다 나누어 주되 어기는 자는 벌을 주게 했다.
개화를 하는 날은 입춘 입하 입추 입동 등 매년 사시(四時)의 입절일(立節日)과 계하(季夏)의 토왕일(土旺日; 입추 전 18일간)이다. 오늘이 바로 새로 불을 만드는 입하,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다.
고종실록 1년(1864)에 “3월 30일(그때는 이날이 입하였나 보다) 경오일 신시 3각에 입하에 대한 개화를 올릴 때 종묘서 사직서 영희전 영녕전 효문전 경모궁 육상궁 선희전 경호궁 경수궁에는 전례대로 개화하고, 규장각 의정부 승정원 한성부에는 똑같이 불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전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중시했던 찬수개화도 조선왕조가 망하면서 없어졌다. 지금 우리 가정에 불만큼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해 본다.
개화(改火)
개화(改火)는 불을 새로 마련한다는 뜻이다. 병조에서는 일 년에 다섯 차례, 즉 입춘(立春), 입하(立夏), 계하(季夏)의 토왕일(土旺日), 입추(立秋), 입동(立冬)에 불을 새로 만들어 각 전궁(殿宮)에 진상(進上)하고, 다음으로 대신(大臣)의 집과 모든 관아에 나누어 주어 묵은 불씨와 바꾸게 하였다.
불을 일으키는 날은 일 년에 다섯 차례이고, 방식은 각기 다르다. 입춘에는 버드나무판에 느릅나무로, 입하에는 살구나무판에 대추나무로, 토왕일에는 산뽕나무판에 뽕나무로, 입추에는 참나무판에 가락나무로, 입동에는 박달나무판에 홰나무로 각 판에 구멍을 낸 다음 여기에 다른 나무를 끼어 비벼서 불을 내었다. 이를 찬목개화(鑽木改火)라고 한다. 한편 개수(改燧)는 찬수개화(鑽燧改火)의 준말로 철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나무를 비벼대어 새로 불을 취한다는 뜻이다.
토왕일은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용어로서 6월 중 토기(土氣)가 왕성한 날로 대개 입추 전 18일 동안을 말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병전(兵典)에서는 제읍(諸邑)에서도 이 예를 따라 불씨를 바꾼다고 하였다.
연원 및 변천
1406년(태종 6) 3월 24일 예조에서 계절에 따라 불씨를 갈아 쓰는 것에 대해 아뢰자 의논하여 개화령(改火令)을 내렸다(태종실록 6년 3월 24일). 주례(周禮)에 따르면 하관(夏官)사훤(司烜)이 행화(行火)의 정령(政令)을 맡아 사철에 국화(國火)를 변하게 하여 시질(時疾)을 구제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의 연원이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화를 하는 이유는 불씨를 오래 두고 바꾸지 않으면 불꽃이 빛나고 거세게 이글거려 양기(陽氣)가 정도를 지나쳐 여질(厲疾), 즉 나쁜 돌림병이 생기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법은 찬수(鑽燧)하여 바꾸는 것인데, 느릅나무[楡]와 버드나무[柳]는 푸르기 때문에 봄에 불을 취하고, 살구나무[杏]와 대추나무[棗]는 붉기 때문에 여름에 취하고, 계하에 이르면 토기가 왕성하기 때문에 뽕나무[桑]와 산뽕나무[柘]의 황색 나무에서 불을 취하고, 떡갈나무[柞]와 참나무[楢]는 희고 느티나무[槐]와 박달나무[檀]는 검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각각 그 철의 방위 색에 따라 불을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1778년(정조 2) 왕이 입절일(立節日)에 불씨를 바꾸는 일을 낭청이 직접 집행하라고 명하였다. 그 이유는 불씨를 바꾸는 일이 그 법의(法意)가 심원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늘을 받드는 한 가지 방도이기 때문에 이를 하리(下吏)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날을 지키지 않고 제때보다 먼저 하는 폐단이 있기 때문에 낭청이 직접 집행하는 것으로 정식(定式)을 삼으라고 명한 것이다(정조실록 2년 1월 7일).
절차 및 내용
개화 임무를 맡은 기관은 병조에서도 무비사(武備司)이다. 이곳은 병조의 한 분장(分掌)인데, 군적(軍籍), 마적(馬籍), 병기, 전함, 군사(軍士) 등의 점호사열(點呼査閱)을 맡았고, 시정(侍丁), 복호(復戶), 화포(火砲), 봉수, 개화, 금화(禁火), 부신(符信), 경첨(更籤) 등에 관한 사무도 맡았다. 병조에서 불을 새로 만들면 이것을 각 전궁에 진상하고, 다음으로 대신의 집과 모든 관아에 나누어 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개화는 서울에서는 병조에서 맡고, 각 고을에서는 자체적으로 행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관청 행사로서는 유명무실해졌고, 민간에까지도 보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민간에서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켜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일상에서 멀어지는 불
불을 본 지 오래되었다. 장작 위에서 이글거리는 불꽃은 언제 보았는지 기억조차 아득하다. 요즘 일상에서 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집에 벽난로가 있는 극소수가 아닐까. 주방의 가스레인지 불꽃이나 길거리에서 담배 태우는 사람의 라이터 불꽃도 불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석기시대에 이르면, 불은 집의 중심이었다. 충남 공주시 석장리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막집'과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움집'의 흔적을 보면, 집 가운데에는 어김없이 돌을 쌓아 만든 화덕이 있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중심에는 항상 불이 있었다. 그들은 매일 불을 바라보고 그 온기와 열기를 느끼면서 생활했다. 막집과 움집 모두 하나의 실내 공간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을 이용해 음식을 익히고, 도구를 만들고, 추위를 쫓았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사람들은 불을 피워놓고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만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강화하여 공동체 의식을 키웠다.
청동기시대 이후, 집이 진화해 한 통이었던 실내 공간이 방과 부엌, 마루 등 개별 공간으로 분화하자, 사람들은 점차 불을 대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은 음식을 익히고 방을 데우는 아궁이에 가두었다. 자칫, 화마가 집을 집어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는 요즘에 비하면 불을 볼 기회가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겨울이면 행여 방이 식을세라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길을 살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통 사회에서 불은 신성한 것이었고 기운이 다한 불은 버리고 절기(節氣)에 따라 새 불씨를 만들어 썼다. 이를 개화(改火)라 했다.
조선 태종 6년(1406), 임금은 예조의 건의로 '개화령'을 내렸는데, 예조에서 내세운 개화의 당위성과 방법은 다음과 같다. "불씨를 오래 두고 변하게 하지 아니하면, 불꽃이 빛나고 거세게 이글거려 양기가 지나쳐 여질(전염성 열병)이 생기는 까닭에 때에 따라 새 불씨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나무를 문질러 불을 일으켜 불씨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는 푸르기 때문에 봄에 불을 취하고, 살구나무와 대추나무는 붉기 때문에 여름에 취하고, 뽕나무와 산뽕나무는 누르기 때문에 땅의 기운이 왕성한 유월에 불을 취하고, 조롱나무와 졸참나무는 희고 회화나무와 박달나무는 검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각각 그 철의 방위 색에 따라 불을 취합니다. 불은 사람이 상용하므로 그 성질에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오래되고 법이 폐지되어 불씨를 바꾸는 법령이 오랫동안 행해지지 않아 음양을 고르게 다스리는 도리에 미진함이 있었습니다."
음양오행설에 따른 오방색(五方色)에 의하면, 봄은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로 해가 뜨는 동쪽과 청색이나 녹색을 의미한다. 여름은 태양이 강렬한 계절로 남쪽과 붉은색을, 가을은 결실의 계절로 해가 지는 서쪽과 흰색을, 겨울은 어둠과 휴식의 계절로 해가 약한 북쪽과 검은색을 가리킨다. 사계절의 균형을 이루는 중앙은 생명의 근원인 땅을 상징하는 누른색이다. 이에 따라 불을 일으키기 위해 사용하는 나무도 절기에 따른 색깔에 맞추었다.
개화령에 따라, 입춘, 입하, 토왕일(土旺日), 입추, 입동에 서울에서는 내병조에서, 지방에서는 수령이 있는 관아에서 불씨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토왕일은 음양오행에서 땅의 기운이 왕성한 날로 입추 전 18일이다. 내병조는 임금을 모시고 호위하는 일과 의식에 쓰이는 무기와 도구 등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궁궐 내에 있는 병조의 부속 관아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개화를 위해 새로운 불씨를 만들 때 나무를 문질러 불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나무를 문질러 불을 만드는 것은 석기시대 이래 인간이 불을 얻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었으니, 새로운 불씨를 얻는 개화는 원시시대의 방법이 전래하여 조선까지 이어진 것이다. '개화'는 원래 '나무꼬챙이를 나무판에 대고 두 손으로 비벼 불을 바꾼다'는 '찬수개화(鑽燧改火)'의 줄임말이다.
이렇듯 소중한 불이지만, 불은 자칫하면 화마로 돌변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위험천만한 것이라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특히 나무로 집을 지었던 조선시대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는 항시 화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그 대비책은 부적이었다. 대들보에 용이나 거북을 그리거나 용과 거북 혹은 물 수(水) 자를 사용해 만든 부적을 지붕 속에 넣어 화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요즘은 집에서 불을 다루고 볼 기회가 거의 없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각 가정에 방구들과 연결된 아궁이가 있어 아궁이에 장작을 때거나 무연탄에 불을 붙여 넣었기에 그나마 매일 불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거의 모든 가정에서 온수 파이프와 연결된 가스 또는 기름보일러로 방을 데우니 불을 볼 일이 없어졌다.
불의 고마움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은 가끔 화마로 돌변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최근 영남지방 산불로 산림은 물론 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까지 발생해 온 국민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2022년 2월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매일 엄청난 불덩이들이 상대방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소소하게 불을 대할 일은 줄어들었지만, 대형 화재와 전쟁은 그치질 않는다. 노아의 방주 후 최후의 심판은 불일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입춘이 한참 지난 지금이라도 느릅나무와 버드나무 꼬챙이를 비벼 새 불을 얻어 광화문 앞에서 그 불씨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다.
▶️ 鑽(뚫을 찬)은 형성문자로 鑚(찬)과 동자(同字), 钻(찬)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광물, 금속, 날붙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贊(찬)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鑽(찬)은 ①뚫다 ②끌다 ③모으다 ④깊이 연구하다 ⑤파고들다 ⑥상상하다 ⑦생각하다 ⑧비위를 맞추다 ⑨아첨(阿諂)하다 ⑩송곳 ⑪빈형(臏刑: 종지뼈를 끊어 내는 형벌) ⑫날(=鋒刃) ⑬금강석(金剛石) ⑭다이아몬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뚫을 천(穿), 뚫을 착(鑿)이다. 용례로는 갈고 닦으며 연구함을 찬작(鑽灼), 깊이 힘써 연구함을 찬연(鑽硏), 덕을 우러러 숭상함을 찬앙(鑽仰), 쇠붙이를 갈고 단련함을 찬련(鑽鍊), 구멍을 뚫는 데 쓰는 기구를 찬상(鑽床), 뚫으려는 표적을 찬적(鑽的), 뚫고 들어감을 찬진(鑽進), 총알이 나가게 구멍을 뚫어 놓은 총신을 이르는 말을 찬혈(鑽穴), 어떤 일을 주선할 때 가장 빠르고 중요한 방법을 써서 소개하는 일을 찬자(鑽刺), 학문이나 사물의 도리를 깊이 연구하고 닦음을 연찬(硏鑽), 목적한 바의 관철을 꾀함을 도찬(圖鑽), 담을 넘고 구멍을 뚫어서 남녀가 은밀하게 서로 만남을 이르는 말을 유찬(踰鑽), 나무꼬챙이를 나무판에 대고 두 손으로 비벼서 불을 일으킴 또는 그렇게 일으킨 불을 찬수화(鑽燧火), 옛날에는 철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나무를 비벼대어 새로이 불을 얻는다는 말을 찬수개화(鑽燧改火) 등에 쓰인다.
▶️ 燧(부싯돌 수)는 형성문자로 煫(수)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불 화(火=灬; 불꽃)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遂(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燧(수)는 ①부싯돌 ②횃불 ③봉화(烽火) ④적에 대한 경계(警戒) ⑤불을 피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봉화를 맡아서 올리는 군사를 수졸(燧卒), 부싯돌을 쳐서 불이 일어나게 하는 쇳조각을 수금(燧金), 부싯돌을 수석(燧石), 횃불을 수화(燧火), 나무꼬챙이를 나무판에 대고 두 손으로 비벼서 불을 일으킴 또는 그렇게 일으킨 불을 찬수화(鑽燧火), 문지르거나 부딪쳐서 불이 일어나도록 화약을 장치한 물건을 두루 이르는 말을 양수화통(洋燧火筒), 남의 불을 꾸기보다는 제 부시로 불을 일으키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구걸하기 보다는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걸화불약취수(乞火不若取燧), 옛날에는 철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나무를 비벼대어 새로이 불을 얻는다는 말을 찬수개화(鑽燧改火) 등에 쓰인다.
▶️ 改(고칠 개)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己(기, 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己(기, 개)는 굽은 것이 바로 펴지려고 하는 일의 뜻으로, 후세의 起(기; 일어나다)와 같은 글자이다. 등글월문(攵)部는 손이나 몸으로 동작하는 일, 즉 굽은 것을 바로잡다, 태도를 고치다, 개선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改자는 ‘고치다’나 ‘바꾸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改자에서 말하는 ‘바꾸다’라는 것은 ‘고쳐서 새롭게 하다’라는 뜻이다. 改자는 己(자기 기)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改자의 갑골문을 보면 巳(뱀 사)자와 攵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巳자는 사전상으로는 ‘뱀’이라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본래는 태아를 그린 것이다. 다만 갑골문에 쓰인 巳자는 ‘태아’가 아닌 ‘어린아이’로 해석해야 한다. 改자는 회초리로 어린아이를 훈육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고치다’나 ‘바꾸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改(개)는 ①고치다 ②고쳐지다 ③바꾸다 ④바뀌다 ⑤만들다 ⑥다시 ⑦따로 ⑧새삼스럽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될 화(化), 고칠 전(悛), 바꿀 역(易), 고칠 경(更), 변할 변(變), 가죽 혁(革)이다. 용례로는 새롭게 뜯어 고침을 개혁(改革), 잘못을 고쳐 좋게 함을 개선(改善), 단체의 조직 따위를 고치어 편성함을 개편(改編), 이미 정했던 것을 다시 고치어 정함을 개정(改定), 내각을 고쳐 짬을 개각(改閣), 잘못을 뉘우쳐 개심함을 개전(改悛), 나쁜 점을 고쳐 좋게 함을 개량(改良), 헌법의 내용을 고침을 개헌(改憲), 제도나 기구 등을 고치거나 폐지하는 것을 개폐(改廢), 원고를 고치어 씀을 개고(改稿), 잘못된 것을 바르게 고침을 개정(改正), 고쳐서 오히려 나빠짐을 개악(改惡), 두 번째 고침으로 다시 고침을 재개(再改),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을 회개(悔改), 고치는 것을 꺼림을 탄개(憚改), 새롭게 뜯어 고침을 혁개(革改), 바꾸어 고침을 변개(變改), 글자를 지우고 고침을 말개(抹改), 써 놓은 글자를 문질러 지우고서 고침을 찰개(擦改),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일컫는 말을 개과천선(改過遷善),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법령의 개정이 너무 빈번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조령모개(朝令暮改),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 짐을 일컫는 말을 개과자신(改過自新),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잘못이라고 하는 의미의 말을 과이불개(過而不改), 만 가지로 깨닫게 가르치다는 뜻으로 친절하게 가르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만단개유(萬端改諭) 등에 쓰인다.
▶️ 火(불 화)는 ❶상형문자로 灬(화)는 동자(同字)이다.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떠 화산이 불을 뿜는 모양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나중에는 火(화)가 化(화)와 같은 음(音)이므로 물건의 모양을 변경시키거나 없애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아주 옛날엔 毁(훼; 태워서 없애 버리다)와 음(音)이 비슷하였다. ❷상형문자로 火자는 ‘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火자는 불길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열’이나 ‘불의 성질’과 관련된 뜻을 전달합니다. 火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만약 한자의 아래 부분에 위치한다면 이때는 네 개의 점(灬)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灬자가 쓰였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불’과 관련된 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爲(할 위)자와 烏(까마귀 오)자처럼 일부 한자에서는 ‘불’과는 관계없이 같이 단순히 사물 일부를 灬자로 표현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火(화)는 (1)화기(火氣) (2)오행(五行)의 하나. 제2의 위치하며 방위로는 남쪽, 시절로는 여름, 색(色)으로는 적(赤)이 됨 (3)화요일(火曜日) (4)몹시 노염을 타거나 못마땅해서 또는 뜻대로 되지 않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 등의 뜻으로 ①불, 열과 빛 ②타는 불 ③화재(火災) ④화, 한의학 용어 ⑤양, 태양(太陽) ⑥화성(火星), 별의 이름 ⑦긴급함의 비유 ⑧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한패 동행자, 동반자 ⑩급하다 ⑪불사르다, 불에 태워 없애다, 태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 수(水)이다. 용례로는 불이 나는 재앙 또는 불로 인한 재난을 화재(火災), 땅속에 있는 가스체나 바윗물이 땅껍질의 터진 틈을 통하여 땅거죽으로 나와 쌓여서 이루어진 산을 화산(火山), 불꽃으로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의 기운을 화염(火焰), 불의 힘을 화력(火力), 걷잡을 수 없이 타는 불과 같이 썩 급함을 화급(火急), 불을 때는 아궁이의 아가리를 화구(火口), 열을 이용하기 위하여 불을 담아 두는 그릇을 화로(火爐), 화재의 원인을 화인(火因), 죽은 사람을 불에 살라 장사 지냄을 화장(火葬), 불이나 뜨거운 열 따위에 데어서 상함 또는 그 상처를 화상(火傷), 불에 익혀 만든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을 화식(火食), 주로 산간 지대에서 풀과 나무를 불질러 버리고 파 일구어 농사를 짓는 밭을 화전(火田), 불을 내뿜음을 분화(噴火), 화재가 꺼짐을 진화(鎭火), 번쩍이는 불을 섬화(閃火), 사람이 일부러 불을 지르는 것을 방화(放火), 불을 켬을 점화(點火), 불이 나는 것을 미리 막음을 방화(防火), 불이 일어나거나 타기 시작함을 발화(發火), 건물이나 물건 등에 붙은 불을 끔을 소화(消火), 불빛이 하늘이라도 찌를 듯이 그 형세가 맹렬함을 이르는 말을 화광충천(火光衝天),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화(風前燈火),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가을 밤은 시원하고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에 좋음을 이르는 말을 등화가친(燈火可親),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뜻으로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함을 일컫는 말을 명약관화(明若觀火),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수근화(遠水近火),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벌판의 불길이라는 뜻으로 미처 막을 사이 없이 퍼지는 세력을 이르는 말을 요원지화(爎原之火), 땔나무를 지고 불을 끈다는 뜻으로 재해를 방지하려다가 자기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부신구화(負薪救火),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이는 것처럼 극히 짧은 시간이나 아주 신속한 동작 또는 일이 매우 빠른 것을 가리키는 말을 전광석화(電光石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