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그렇지 찾아보면 좋은 영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화 10작품 중에서 제가 안 본 영화가 두 개나 있었어요. 그중에 ‘첨밀밀’이란 영화를
보고 달달해져 그냥 잘 수가 없네요. 제가 홍콩영화를 ‘취권’보던 생각으로 우습게
보고 기피했어요. 이후 ‘색계’에서 탕웨이를 만났고 오늘 장 만옥을 처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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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쌍팔‘에서 장 만옥이란 이름을 듣긴 했는데 제90년도는 공동체에 몰 빵을 해서
제가 한국 가수도 잘 모르는 형편이라 만옥 씨를 어찌 알겠습니까? 늦게라도 그녀를
알게 돼서 영광입니다. ‘첨밀밀‘은 ’꿀밤‘이란 뜻입니다. ’이태원클라쓰‘의 꿀밤 말입니다.
중국멜로는 조금 촌스럽긴 해도 우리나라와 이것저것 닮은 것이 많아요. 제가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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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중국인들이 느끼기 때문에 한류가 먹힌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는 사랑에 대한
미묘한 감정 선을 눈빛이나 표정으로 잘 표현했다고 봅니다. 배경은 1980년대 버블기의
홍콩, 남자주인공 여명과 여자주인공 장 만옥은 홍콩행 열차 안에서 만나게 되고,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향하게 됩니다. 장거리 완행열차를 타고 상경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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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스무 살 때는 기차나 버스를 타면 무조건 여학생이 제 옆 좌석에 앉았다는 것을 믿어
주셔야합니다. 80년대 중국은 우리70년대 같았어요. 홍콩이라는 낯선 곳에서 둘은 서로
의지하게 되고, 처음엔 티격태격하는 (주로 장만옥이 여명에게 세상물정을 알려주는) 사이
이었지만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첫 키스하던 시퀀스는 제 손모가지가 오그라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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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았어요. 두꺼운 코트 단추를 대신 채워주는 장면이 영화의 절정입니다. 소군은 단추를
원래 못 끼우는 놈인지, 일부러 그런 건지 하여간 단추 채울 때는 그렇게 오래 걸리더니
코트 벗기는 데는 단 몇 초도 안 걸리더이다. 이렇게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남자(여명)는
이미 약혼녀가 있었고, 장 만옥은 사랑보다는 돈을 버는 것에 욕심이 있어서 이 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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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닌 사랑은 이루어 지 지 않습니다. 홍콩이 불황기를 맞자 여자(장)는 자신이 벌었던
모든 돈을 잃게 되고, 빚까지 지게 됩니다. Tape 장사가 폭 망해서 재고가 4000개라든가
합디다. 몸도 마음도 힘든 그때, 소군이 약혼녀에게 줄 선물을 2개 사서 이교에게 줍니다.
물론 소군은 순수한 마음이지만 어떻게 똑같은 금팔찌를 주냐며 이교에게 타박을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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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로 인해 감춰두었던 진실이 들어납니다. 이교는 홍콩에 돈 벌러 온 것이고 소군은
약혼녀와 살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교는 모은 돈을 모두 날렸고,
소군은 불륜이 아닙니까? 이교는 소군과 자신의 관계를 정정하며 거리를 두기로 합니다.
소군 역시 인정하기 싫었지만 못내 수긍합니다. 약혼녀가 친구와 그런 관계로 지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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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것 같나 는 질문에 “난 불행할 거야” 라는 답을 하면서 더 이상 이교를 붙잡지 못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초조해 하더이다. 이교는 이 불안
감을 해결하기 위해 암흑가 보스의 애인이 되면서 남자(여명)와의 연락이 끊기게 됩니다.
3년 후, 여명의 결혼식. 장(여자)에게는 암흑가 보스가, 여명에게는 아내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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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전에 그들이 사랑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이 3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둘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눕니다. 작품성은 이 장면이 가장 뛰어나다고 봅니다. 차 안에
있는 여자의 몸이 차창 밖으로 3/1이 나온 상태에서 제대로 된 키스를 오래도 합디다.
많이 부러웠어요. 키스교과서를 카사블랑카로 정한 건 너무 성급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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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볼 때 분명히 둘이서 눈이 반짝거렸는데 여자의 남편 마피아가 꼬맹이들에게 총 맞고
죽는 바람에 여명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뉴욕으로 떠나게 됩니다. 악명 높은 놈들이
죽을 땐 꼭 애송이에게 죽는 건 공식일까요? 장만옥이 떠난 뒤, 희망을 잃은 여명은
자신의 아내와도 헤어지고 장만옥이 있는 뉴욕으로 떠납니다. 혼자인 이교는 가이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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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사는데 가슴 속에 문신처럼 남은 여명이 평생 족쇄입니다. 떡집(베들레헴)에 떡이
없어 떠난 이방 여인 룻이 떠올랐어요. 중국 편 티켓을 끊어놓고 뉴욕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등려군‘의 사망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녀가41세에 왜 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등려군의
히트 곡 ‘첨밀밀’은 두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합니다. 중국인들은 두 등(등소평, 등려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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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환장한답니다. 시진핑과 등려군이 갑장이라던데 여자가 죽어서 아쉽습니다.
하여간 각자 뭔가에 이끌려 간 전파사에서 영화 같은 해후를 하였고 미소를 지으며 엔딩을
맞습니다. 여명과 장만옥의 엇갈리는 순간들이 애간장을 태운 것 같고, 이어지는 우연의
연속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모압 여인 룻인가 했어요. 연애 레벨이 상당히 쿨 한 것이
홍콩이라 그렇겠지요? 할리우드영화처럼 사랑에 대해 개방적인 것도 좋아보였어요. 약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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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소군을 좋아하며 자신만을 사랑하라고 강요하거나 갈구하지 않는 모습이나,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고 느끼고 다른 남자를 찾으라는 말을 뚝 던지는 여유 같은 것이 신선했어요.
특히 순결을 강요하지 않는 것들은 culture 레벨 차이로 보고 싶습니다. '정치와 여자'라는
주제를 공부하다가 '순결이란 강자독식을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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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낡고 오래된 관념을 이참에 개나 줘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장 윤정의 ‘초원‘분위기가 났고 '첨밀밀'은 제가 평가하기가 쉽지 않아서 패스하겠습니다.
여자들은 착한 남자를 좋아할 거라는 착각을 깨트렸으니 여명 같은 남자가 되지 않으려면
계속 나쁜 남자로 살려고요.
2020.3.19.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