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샌디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야구사에 82년 국가대표팀 -선동열, 최동원, 한대화, 김재박, 이해창, 장효조, 심재원등...- 출신과 함께 가장 빛나는 세대인 1973년생 92학번들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 중 성공한 케이스인, 박찬호, 박재홍, 조성민, 정민철 등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니 일단 보류하구요.... 오늘은 실패한 92학번 스타들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몇차레에 걸쳐 당시 최고의 선수들이었으나 지금은 실패한 신일고의 설종진, 경남상고의 곽재성, 경기고의 손경수, 부산고의 염종석 등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설종진이라는 선수를 아십니까? 92학번 선수중 가장 뛰어난 타자였던 이선수는 지금 현대 유니콘스 2군에 있습니다. 고교시절... 당시 전국최강이었던 신일고의 1번타자이자 중견수였던 이선수는 말 그대로 지금의 이병규... 아니 이치로 같은 선수였습니다. 조성민, 강혁, 김재현, 조인성 등과 함께 전국최강 신일고를 이끌던 이선수는 항상 전국대회의 최다안타와 도루상, 득점상을 도맡아 하던 선수였죠... 그 당시 고교 정상의 투수였던 휘문고의 임선동과 경기고의 손경수, 경남상고의 곽재성 -이성수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에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고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가장 유명해진 공주고의 박찬호 등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자가 바로 설종진이었습니다. 조성민도 "종진이가 같은 팀이어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죠.... 당시 엘지와 두산은 이선수의 영입을 위해 움직였지만, 고졸 타자에 대한 기대치가 투수보다 낮았고, 동기중에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란 대형 투수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영입을 위해 그다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설종진은 중앙대에 입단했고 1학년때부터 주전으로 좋은 활약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학년때인가? 숙소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해 이선수는 선수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큰 부상을 입었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달릴 수 없게된 설종진은 2년간의 공백 후 1997년 현대 유니콘스에 겨우 2100만원이라는 헐값에 입단하게 됩니다. 자기보다 한 수 아래였던 박재홍이 30-30을 하며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팀에 말이죠... 그 이후 투수로 변신한 설종진은 지금까지 통산 4경기에 투수로 등판하여 2 3/2이닝 동안 3실점, 방어율 10.13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봐서는 앞으로도 고교시절과 같은 활약을 보이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만, 1991년 신일고의 설종진을 기억하는 팬으로선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다음에는 1991년 경남상고 전국대회 2관왕의 주역 곽재성 선수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선수의 이야기는 언젠가 TV에도 방영된 적이 있는데요.....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엘지 화이팅!! 2000 V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