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면서 대기업 총수들의 단골병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재계 총수들은 정계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병원의 ‘특실’에 입원한다. 하지만 그들이 찾는 병원은 반드시 전직 대통령이 주로 찾는 서울대 병원만은 아니다. 각자 ‘인연’이 있는 곳, 혹은 ‘악연’을 피할 수 있는 곳을 택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서울병원, 현대 계열 오너는 서울아산병원 찾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폐렴 등 가벼운 증상이 있을 때 삼성서울병원 20층 특실에 입원을 하며, 대부분의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들도 삼성병원 특실을 이용하는 편이다. 반면 현대그룹 임원들은 서울아산병원에 입원을 한다. 다만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정몽구 회장은 유독 서울성모병원 특실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회장의 주치의 또한 서울성모병원 소속이다. 이에 대해 한 병원 관계자는 “맏사위가 한 때 서울성모병원 의사로 근무한 적이 있어서 정 회장이 서울성모병원에 아는 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서울아산병원은 동생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소유여서 불편하게 느끼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후계 구도를 둘러싼 ‘형제의 난’ 등을 거치면서 다소 껄끄러운 현대가(家)의 집안 속사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재현 CJ 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을 찾지 않고 서울대 병원 특실을 이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재계에서는 해석한다. 서울성모병원 특실 병동은 정몽구 회장 외 에도 교황청 대사 및 추기경 등 가톨릭교 관련 인물들이 주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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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나 현대 처럼 자기 병원이 없는 총수들은 주로 서울대 병원이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이용한다. ‘남의 회사 병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이다. 총수들의 입원이나 건강 상태는 주가 등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에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 5’ 가운데 삼성·아산 병원을 제외하고 서울대병원을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 이재현(53) CJ그룹 회장이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유전병과 만성신부전으로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서울대 암병원 VIP 병실에서 치료하다가 지난달 31일 퇴원했다. 현재 조석래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서울대 병원 VIP 특실룸에 입원해 있다.
‘자기 병원’ 없는 총수들은 주로 서울대 병원 찾아
전직 대통령 등 정치인들은 주로 서울대 병원을 이용한다. 김영삼(86) 전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VIP 병실에 입원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건강이 안좋을 때마다 서울대병원 VIP 병실에 입원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간에서는 ‘왜 하필 서울대 병원으로 몰리냐’ 는 의문이 나온다. 가장 유력한 해석은 전직 대통령들의 주치의가 대부분 서울대병원 의료진이라는 점이다. 현재 입원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노태우·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치의는 모두 서울대 교수진이다.
서울대병원 VIP 병동은 본관 12층에 있다. 중앙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왼편에 121, 122병동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된다. 12층내 특실은 총 30개이지만, 소위 VIP 들이 선호하는 병실은 차례로 특1급 1곳, 2급 1곳, 4급 2곳 등 4개이다. 특 3급은 없다. 특5급과 특6급 병실로 분류되는 일반 특실은 26㎡(약 8평)로 일반 1인실과 크기가 같은데 반해, 특 1, 2, 4호실은 훨씬 면적이 넓다(42∼82㎡)
가장 큰 면적(82㎡)인 특1급 병실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2급과 3평정도 차이가 나는 것 이외에는 구조가 거의 같다. 분리된 환자 병실이 따로 있고, 응접실과 간이 주방이 따로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특4급 부터는 환자 침대가 있는 병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특1급의 가격은 하루 115만원이며 특2급은 98만원 선이고, 특4급 병실 부터는 70만원 선이다. 현재 일반인이 입원하고 있다.
서울대 병원 특실 입원비는 하루 최고 115만원
이외에도 암병동 6층 내에도 본관 특 1급 VIP 병실과 크게 차이가 없는 VIP 병실이 1곳 있다. 지난 달 31일 퇴원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퇴원 전에 거쳐간 곳이다. 특 VIP가 찾는 본관 VIP 실 4개가 만원일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 곳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나머지 일반 특실 비용은 하루 입원비만 60만원 미만이다. 원칙적으로 특실 등급에 관계 없이 누구든지 입원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1급과 특2급 특실이 항상 차 있는 셈이라, 돈이 있어도 못들어가는 셈이다. 서울대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대기자 리스트’ 가 있다는 세간의 추측에 대해 “사실 병동이 꽉 차는 적은 별로 없다”며 “특1~4급의 4개 병실에 대해서만 가끔 만원 사례가 빚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허갑범·연세대학교명예교수) 및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이병석·연대의대교수)가 근무하는 세브란스 병원의 실정은 어떨까? 실제로 세브란스 병원 특실도 중소기업 재계인사들이 많이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기업회장의 사모님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병원을 은신처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사모님 사건’ 이후 사람들이 세브란스 병원 특실 입원을 꺼린다고 한 병원 관계자가 말했다.
VIP 병실 외에 VVIP 병실 두는 병원도
일반적으로 다른 병원도 다 특실 병동이 따로 있다. 하지만 일반 특실병동과 ‘VVIP’들이 오는 특실 병동이 또 구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반 VIP 병실이 중소기업 회장이나, 관련 기업 고위 임직원, 연예인, 병원 교수가 입원한다면 VVIP 병실은 ‘대기업 회장님’ 급이나, 한류스타 연예인, 고위 정치인 등 그야말로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입원한다. 의사도 담당 교수나 고참 주치의를 제외하고는 접근금지다. 출입도 엄격히 통제된다. 병동 입구에 보안 요원이 둘씩 서 있는 것은 기본이다. 병원 의무 기록이 의료인들에게 엄격히 통제되어 있으며, 보통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입원을 했는지 안했는지 병동 직원들도 알기 어렵다. 일반 특실 비용은 주로 60만~100만원 선이지만, 90평대에 달하는 일부 특실은 400만원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