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상 작품/ 박 숲 시인
네 번째 계단에 앉아
햇빛요양원 204호에 월급을 털어 넣던 날 나는,
당신의 집이 있는 루르마랭에 갔다
좁고 긴 골목으로 죽은 계절이 뒹굴고
햇빛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잘게 부서졌다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자줏빛 낡은 대문
나는 네 개의 계단을 올라 당신의 문 앞에 섰다
집주인이 된 적막이 강하게 나를 밀어냈다
뒤집힌 물음표처럼 엉덩이를 네 번째 계단에 묻고
나는 볼록렌즈가 되어 당신의 말속에 스민
알제리의 햇빛을 조각조각 모았다
엄마의 방은 알제리의 태양보다 뜨거웠다지
어느 틈엔가,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다는 당신이 나타나 소리쳤다
맞장뜨란 말야!
소스라치게 놀란 내게
잇새에 문 담배를 잘근잘근 씹으며 당신은 침묵,
그게 부조리란 말이지!
조롱기 가득한 독소로 내 몸 어딘가를 할퀸 뒤 사라졌다
요양원 204호와 대척점인 당신의 집 루르마랭!
당신을 쫓아 긴 회랑 같은 골목을 뛰었다
군데군데 박힌 조각난 햇빛처럼
날카롭게 빛을 내던 당신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뫼르소가 되어 오랫동안
당신의 집 앞 네 번째 계단에 앉아
여름의 정수리를 헤아리다
무거운 그림자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도,
그제도,
엄마가 죽었다는 간병인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하프문 베타
아몬드 잎 위에 잠든
당신의 꿈을 산책해요
입술 틈새로 방울방울 호흡을 나눠요
수초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
서로의 파동이 지나가요
당신이 지느러미를 펼칠 땐
물 위로 뜬 반달이 출렁거려요
물결무늬 곡선의 유려한 몸짓이 다가와요
푸른 빛 미끈한 꼬리 사이로 감춘
날카로운 가시의 비밀!
내 등은 꼿꼿하게 긴장해요
우리는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없어요
손을 잡고 수초 사이를 유영하며
완성된 원을 펼치는 춤은
꿈에서나 가능하죠
각자의 방에는
유리알 눈동자가 굴러다녀요
당신은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베타의 습성을 지녔어요
당신의 꼬리에 새로운 반달이 출몰해요
바닥에 깔린 조약돌의 기분을 아시나요
거품으로 지은 집이 물 위를 떠다녀요
찢겨나간 지느러미의 아픔을 당신은
제대로 느꼈어야 했어요
우리는 이제,
서로의 꿈을 산책하지 않아요
유리 벽 너머 당신의 플레어링
숨이 막혀요
나를 할퀴고 물어뜯는 당신은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