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사실 제일 걱정이 되었던 것은, 고모네 횟집에 있는 세 여자는 아니었다. 첫째는 금진온천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눈이 너무 내려서 걸어서 내려왔고, 둘째는 어제 학교에 가야 했는데, 버스가 끊겨 가지 못했고, 아내는 이런 날이면 마냥 슬퍼지는 고질병이 도지고.....
그것보다 더욱 걱정이 되었던 것은 닭들이었다. 어제 오후에 닭장 위에 쳐놓았던 그물망의 눈은 처 주었지만, 그래도 밤 사이 눈이 더 내려 무너질까 노심초사였다. 게다가 어제 아침에 준 약간의 쉰밥이 전부였다.
9 마리가 각자 자는 곳이 다른데 눈이 와서 그것도 걱정이었다. 덩치가 큰 세 마리는 산성우리 토종닭 집에서 사온 것이고, 덩치가 작은 여섯 마리는 후배의 산란계를 도태 시킬 때 구조(?) 해 온 놈들이다.
처음, 아홉 마리는 많이도 싸웠다. 내가 키운 세마리는 어린데도 불구하고 덩치가 커서 나중에 들어 온 여섯 마리를 괴롭히기 일 쑤였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워서 수시로 닭장을 들락거리며 싸움을 말렸다.
그러더니 서서히 아홉 마리는 무리를 지어 한 가족이 되어갔다. 아니, 어쩌면 뒷꼍의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 것인지도 몰랐다. 올해 같이 추운 날 먹는 물도 꽁꽁 얼어버리고 아홉마리 식량을 대기에는 고모네 횟집은 턱도 없었다.
아침에 다행히 놈들의 구구 소리가 들렸다. 소리로 보아하니 배고파서 먹이를 달라는 신호였다. 먹이를 구하려고 해도 꼼짝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문득, 개사료가 생각이 났다. 시내에 나가기 싫어 미련하게도 많이 사다 놓은 개사료, 그 중 입자가 작은 것들이 닭들에게도 가능할 것도 같았다.
도태되는 후배 산란계를 가져 온 날 아침에 써놓았던 글입니다.
“구구구..........”
무슨 소리? 잠결에 뒷켵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아! 닭소리!
“살았다!”
부리나케 뒷켵으로 가서 닭들의 숫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부 살았다!”
여섯 마리 전부 살았던 것이다. 밤 사이 꿈길에서 종일 내 귓가를 따라다녔던 그 소리, 닭소리 구구구..........그것은 꿈 속에 들렸던 환청이 아니라, 실제로 닭들이 울었던 소리였다.
지난 밤, 금진항 항구마차에서 물가가자미 말린 것으로 소주를 한 병 까고 취한 상태에서 후레쉬를 들고 뒷곁으로 갔다. 여섯 마리는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구석에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잠자리가 바뀐 탓에 몹시도 초라하고 불쌍하게 죽은 듯이 있었다.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알에게 영양분을 전부 빼앗기고 거죽만 남아 있었다.
“아마, 죽을 지도 몰라요. 따스하게 해줘야 할 거 같아요. 워낙 따뜻하게 있던 놈들이라 .......”
후배의 그 소리에 몹시도 걱정이었다. 뒷켵 곳간에 짚으로 자리를 만들어 주었건만 그곳 역시 밖이나 다름 아니었다. 놈들이 같이 체온을 나누기 위해 붙어서 잘 줄 알았다. 각자가 감옥 같은 30센티 공간에 생활한 탓인지 서로를 의지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었다. 그런데, 전부 살았다니!
축산과 후배가 산란계를 도태 시킨다는 소리를 듣고 그 중 여섯 마리를 얻어왔다. 일 년 육개월 전 마리 당 오 천원에 사와서 알을 빼먹다가 경제성이 떨어지자 전부 처분하는 것이다. 오로지 알을 낳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그들이 평생 배출하는 마지막 난자 한 알 까지 뱉어 내고는, 사료 대비 알 값이 손해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효용가치는 알의 단백질에서 고기의 단백질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저질 단백질인 햄 공장으로 마리당 오 백원에 팔려가는 것이다.
그 동안 차라리 생명이라기 보다는 알 낳는 기계였다는 말이 정답이었다. 기계의 효용가치를 상실하자 무자비하게 사라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축산인 것이다. 차라리 농업의 범주에 집어넣지나 말지. 왜 소박한 농업이라는 이름으로 농과대학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축산업은 산업의 분류 상 제조업의 한 말석을 차지해야지만 옳은 일이다.
그래서, 축산학과를 나와서 한 번도 축산업 언저리에 얼씬 거리지 않은 일이 다행이었다. 그 동안 축산을 하는 선후배들의 어려움을 옆에서 봐온 탓이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도 세 명이나 자살은 한 우리 동문들의 일이 겁이 나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이 생명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에서였다.
드디어 여섯 마리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것이다. 후배의 눈에는 나의 행동이 도무지 웃기는 일일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마치 덜떨어진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과 같은 내 마음이 전혀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질 좋고 맛 있는 단백질에 미쳐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하고 싶었다. 안전한 소고기 단백질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진보 좌파들에게도 작은 투정이라도 하고 싶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안전한 식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생명에 있지 않은가.
인간들만의 평등이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 아니던가. 만물과의 평등, 우주와의 평등만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민주적 가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