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이가 읍에서 밥을 먹자고 한다. 동문회사무실에 갔다가 11시 반이 안되어 고흥읍 바다한상으로 간다. 비가 내린다. 경호는 병원에 간다하여 형님과만 먹자고 해물탕과 새우튀김을 주문한다. 난 소주 생각이 나지만 참는다. 나의 음주 때문에 고흥읍의 만남은 조금 불편하다. 옛육청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 온마을학교와 초등 후배들 모임 이야기도 한다. 그러고는 자기 친구가 이번 총선에 입후보한 누구의 고흥총책인데 만나봐달라고 한다. 차를 두고 찻집으로 가 둘이 마시고 있는데, 얼굴을 본듯만듯한 사나이가 온다. 그러면서 그 나름대로 인물평과 지역정서와 지역의 정치상황을 이야기한다. 난 재미있게 듣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하면서도 몇 사람을 떠 올린다.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구의 선거를 돕는다거나 하는 일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동강에서 편하게 만남을 주선하겠다는 걸 그냥 웃는다. 충현이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난 축협마트에 들러 캔맥주 두 박스를 차에 싣고 포두를 지난다. 나로도 송신소 주차장에 닿으니 3시가 다 되어간다. 차에서 등산복으로 갈아입으려 보니 점퍼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건망증이 심하다. 정장 바지에 두툼한 스웨터에 차안에 꼬부라져 쳐박혀 있는 가을 점퍼를 걸친다. 입구에서 고개를 휘둘러봐도 복수초는 보이지 않는다. 바닥을 가까이 봐도 싹도 안보이고 노루귀도 안 보인다. 100여미터 올랐을까, 노랑 복수초가 열려 잇다. 옆에 피어나려는 봉오리 하나도 보인다. 정상엔 더 많을거라 기대를 하고 거침 숨을 몰아쉬며 가파르게 오른다. 첫전망대에 서니 흐린 날이지만 섬들이 바다 아래까지 또렷하게 제모습을 보인다. 건너의 고흥 반도의 산들도 잘 보인다. 소사나무 하얀 줄기 사잇길을 따라 콩란이 붙은 바위를 본다. 복수초는 보이지 않는다. 봉래2봉을 오르는데 복수초 몇개가 보인다. 손죽열도의 섬들이 구름 속에서 비춰오는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꼭도여도 내려다 보인다. 봉래산 정상은 새로 정상석을 세웠다. 꼭대기를 마름모꼴로 한 것이 조금 거슬린다. 어느 기관에서는 그 모습이 일제시대의 표지라 하여 일부러 밝혀두기도 했는데 이 돌은 최근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자연석도 아니다. 산 정상에 뾰족한 모습의 반듯한 돌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이해는 된다? 돌아가려는 길이 멀기에 걸음을 재촉한다. 편백숲 아래로 돌며 몇번 쳐다보며 사진을 직는다. 아마매트 깔린 길을 벗어나도 충분히 걸을 만하다. 왼쪽으로 고개를 쳐박고 꽃을 찾아봐도 안 보인다. 5시가 조금 지난다. 혼자 2시간 가량 걸렸으니 다른 이와 온다면 2시간 반 잡으면 되겠다. 술 마시는 시간이 문제이겠지만. 해창만 중구섬 앞의 삼진수산에 들르니 일을 마치고 술을 마시고 있던 부부가 반기며 인사해 준다. 1kg에 만오천원만 받겠다고 한다. 3만원을 이체해주고 중구섬과 마복산이 바다에 잠긴 모습을 찍고 어둠 속에 빗방을을 밀어내며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