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와 서원을 따라(10)
(2021년 9월 3일∼9월 14일)
瓦也 정유순
<제10일> 흑산도(黑山島)
(2021년 9월 12일)
오늘은 흑산도로 가는 날이다. 새벽 어둠을 뚫고 양산봉 자락에 있는 일출전망대에 올랐으나 구름이 가려 태양의 알몸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희망차고 화려한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하산한다. 조반을 마치고 배가 출발하는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마을을 거닐며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없나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여객선 터미널로 와서 한가롭게 기다린다. 마을 상점과 선착장 주변의 상가들은 홍도의 건어물들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택배도 가능하다며 분주하다. 홍도항을 출발한 여객선은 약 30분 만에 흑산도항에 도착한다.
<흑산도 표지석>
흑산도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천혜신비의 웅도(雄島)다. 섬 전체가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黑山島)라 부른다. 고조선 이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은 있으나 문헌상으로는 828년(신라 흥덕왕 2)에 장보고(張保皐)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당나라와 교역 시 중간 기착지로 부각되면서 주민이 거주해 왔다. 1363년(공민왕 12)에는 왜구(倭寇)의 침탈로 주민들을 영산포로 이주시켜 공도(空島)가 되었으나, 임진왜란 후 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흑산도항>
미리 예약한 버스로 흑산도 곳곳을 둘러본다. 물론 버스 기사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버스는 열 두 굽이 도로를 타고 상라산 주차장에 멈춘다. 산의 형세가 코끼리를 닮아 상라산(象羅山, 227m)으로 부른다. 남쪽의 어느 섬과 마찬가지로 상라산에는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울창하다. 정상부에는 흑산도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흑산도 일주도로가 지난다. 상라산 동쪽 줄기 아래 상라산성(반월성)이 있는데 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석성이다.
<열 두 굽이 길>
<상라산성-네이버캡쳐>
상라산 주차장 주변에는 이미자가 1966년에 부른 가요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우뚝하다. “(1절)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흑산도 아가씨//(2절)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흑산도 아가씨”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의 노래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이 노래는 1966년 당시 청와대 초청으로 흑산도 어린이들의 서울 구경 온 것을 보고 정두수가 작사를 했고, 박춘석이 작곡을 했으며, 일본에서 활동하다 반일감정으로 귀국하게 된 이미자가 황금트리오를 형성하는 서곡(序曲)이었다. 1997년에는 흑산도에 <흑산도 아가씨>의 노래비가 들어섰고, 2012년에는 흑산도 아가씨 동상 제막식 참석을 겸해 이미자가 현지에서 공연을 열었으며, 노래비 옆에는 이미자의 핸드프린팅이 있다.
<이미자 핸드프린팅>
또 주차장 주변에는 흑산도의 명물 <홍어>를 제목으로 소설을 쓴 객주의 작가 김주영의 안내판과 김훈이 정약전(丁若銓)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로 시작하는 소설 <흑산>을 소개 하는 안내판이 있다. 소설 홍어는 “삯바느질 꾼 젊은 어머니는 집 나간 아버지가 좋아했던 홍어를 문설주에 매달아 두고 아버지를 기다린다. 홍어가 먼지와 그을음을 뒤집어 쓴 채 말라가는 동안 아버지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는 내용에서 홍어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13세 소년‘세영’의 성장소설이다.
<김주영의 홍어 안내판>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흑산도의 대표적인 명물 홍어에 대해서 알아본다. 홍어는 전라도 지방에서는 잔치 상에 꼭 올려야 하는 필수 생선이다. 특히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홍어가 살이 차지고 감칠맛이 있어 최상급으로 취급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장이 깨끗해지고 술독을 해독한다고 한다. 실제로 홍어는 알칼리성 식품으로서 담을 삭히는 효능이 있으며 기관지 천식, 소화기능, 혈액순환, 신경통, 관절염 등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김훈의 흑산 안내판>
홍어는 옛날에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목포의 영산강 하구를 통하여 영산포까지 가는 동안 자연 발효되어 심한 악취가 풍겼지만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먹기 시작하여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지금은 깨끗하게 손질한 홍어를 크게 썰어 항아리에 넣고 밀봉한 다음 2~3일간 실온에 방치하거나 퇴비 속에 1~2일 묻어두면 적당히 발효된다. 혀끝을 쏘는 화끈하고 짜릿한 맛은 막걸리와 어울리는 홍탁이 되고, 묵은 배추김치와 삶은 돼지고기를 곁들이면 홍어 삼합(三合)이 된다. 영산포에서는 보리 싹이 파릇파릇한 봄에 홍어축제가 열린다.
<흑산도 홍어-네이버캡쳐>
홍어로 입맛을 다시며 한참을 가다가 구멍이 뻥 뚫린 바위가 보인다. 언뜻 한반도 지형 같았으나 자세히 보니 압록강과 두만강을 훨씬 넘어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가 존재했던 옛 우리 영토 만주 땅이 선명하다. 이것은 자연이 만들어 주는 우리의 미래를 예언 하는 것은 아닌지? 잃어버린 옛 역사와 땅을 회복했으면 하는 염원 때문에 괜히 상상해 보는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지도바위>
달리던 버스가 정차한 곳은 흑산도의 정남쪽에 있는 사리마을이다. 이 마을은 동남풍이 불어도 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곳인데, 그 이유는 사리포구 앞에 7개의 작은 <7형제 바위>가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옛날 사리마을에 홀어머니가 물질을 하며 7형제와 살고 있었는데, 큰 태풍이 불어와 여러 날을 바다에 나가지 못하자 아들 7형제 하나하나가 바다에 들어가 두 팔을 벌려 파도를 막아 7개의 작은 섬들로 굳어 버렸다고 하여 7형제 바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흑산도 칠형제바위>
꼬불꼬불 해안 산길을 버스가 다시 선 곳은 이상한 바위가 보이는 곳이다. <구문 여(礖)>라고 부르는 바위인데, 언뜻 보기에는 새 모습 같기도 하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고래 같기도 하다. 더 특이한 것은 구멍이 뚫린 머리 위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나는 모습이다. 뿌리 하나 내릴 곳 없는 곳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더 자세히 보면 여자의 생식기를 닮은 것도 같다.
<흑산도 구문 여>
주마간산(走馬看山) 아니 주차간산(走車看山)이다. 짧은 시간에 차를 타고 흑산도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만, 홍도 관광길에 거쳐 가는 경유지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흑산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이라 옛날부터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유배지(流配地)로 유명했던 곳이다. 그 중 중요한 인물로는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과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을 빼놓을 수 없다.
<흑산도아가씨 동상>
정약전(1758∼1816)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났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형이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자,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학문에 열중하여 17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전적·병조좌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게 된다. 그리고 서학에 밝은 이벽(李檗)과 이승훈 등 남인 인사들과 교유하고 친밀하게 지내며, 서양의 역수학(曆數學)을 알았고 나아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흑산도 오징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동생 정약용과 함께 천주교를 신봉하였다는 죄목으로 전남 신지도로 유배되었다가 조카사위 황사영(黃嗣永)백서 사건이 터지자 그와 관련 혐의가 의심되어 흑산도로, 동생 정약용은 전남 강진(康津)으로 유배되었다. 정약전은 흑산도 사리에서 복성재(復性齋)라는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라의 소나무 정책을 비판한 <송정사의(松政私議)>, 바다고기의 생태를 기록한 최초의 생물도감인 <자산어보(玆山魚譜)> 등의 실학사상에 기반한 저서를 남기고 유배 생활 16년 만에 우이도에서 생을 마친다.
<돌고래상>
최익현(1833∼1906)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고종 때 문신으로 활약했으며, 1876년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지부소(持斧疏)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어 진리라는 곳에 일신당이라는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했으며, 후에 천촌마을로 이주하여 후학을 양성했다. 1924년에는 후학들이 면암을 추모하기 위해 천촌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왼편 바위에 있는 지장암 앞에 <면암최선생적려유허비>를 세웠으며, 비 옆면에는 면암의 시 <시장암운>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면암최선생적려유허비-네이버캡쳐>
※ <제1일>부터 <제12일>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며
다음은 제11일차 <화순 만연사→담양 명옥헌>편이 연재됩니다.
첫댓글 흑산도 지도 바위에 대한 해석이 심오하군요^^
홍어에 대한 이야기과 설명도 잘 알게 되었구요
여행 다녀온 후 자세한 설명을 접하니
산지식이 됩니다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