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 순간,
그 선택은 마치 필연처럼 드러난다.
하지만 그 필연은 ,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세상은 무한한 사건들로 가득하지만
내가 실제로 인식하는 세계는 작은 항아리와 같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그 좁은 조건들 속에서 선택이라는 업을 짓지만,
그 업이 형성되기까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우연들이 이미 작용하고 있다.
내가 고려할 수 없었던 무수한 변수들이
결국 ‘현실 속의 내 위치’라는 업으로 선택되고 드러나는 것이다.
우연들은 서로 협연하듯 얽히고 흐른다.
그 속에서, 내가 바라본 좁은 시야의 선택은
필연이라는 모습으로 굳어진다.
나는 ‘이것’만 보았지만,
그 ‘이것’은 거대한 ‘그것들’의 일부였고,
그 작은 일부가 결국 필연으로 자리 잡는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말처럼,
나의 선택은 나 홀로 만든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내가 처한 조건, 나를 둘러싼 관계들,
그리고 이미 축적된 수많은 우연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삶은 우연의 총합 속에서 흘러가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필연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가며 연주하는
긴 흐름과도 같다.
우연이 배경을 만들고,
그 위에서 어떤 순간의 선택은 필연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 협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군다. ㅠㅠ
내게 드러난 필연은 늘 후회스럽고,
내가 바라던 방향과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잖은가...
나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될 수 없었기에...
모든 변수를 알고,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나는 언제나 제한된 조건 속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래서
현실앞에 울고있다.
그래서 또한
현실앞에 내려놓기도 한다.
첫댓글 인드라망을 통제하는 라플라스의 악마는 존재치 않는다.
다만 우리의 현실 흐름이 인드라망 속에서 채택되어지고 있다는 원리를 깨닫는 붓다의 사유가 있다는건, 평온속에 거할 수 있는 세계는 있다는 아름다운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