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AWAKE
본문에 나오는 글은 모두 최진영 작가의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제야 언니에게
최진영 소설
오늘도 제야는 하루를 기록한다. 제야는 보고 있다. 제야는 듣고 있다.
때로는 달린다. 전속력으로 달린다. 제야는 우리를 안다.
우리는 제야를 모를 수 없다. - 작가의 말 中
2008년 7월 14일 월요일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
P. 8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감정이 아니다.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
P. 51
내 인생이 서너개쯤 되는 줄 아는 사람들.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느냐고 말하면서,
이번 생은 이대로, 이대로 재수 없게, 미친 사람들,
그런 일이 어떻게 운이고 재수인가.
그에게만 생이 한번뿐인 듯 실수 하나로 인생을 망칠 수 없다고······
그 사람은 이미 망가진 사람이다.
스스로 망가져서 나까지 망친 사람이다.
P. 84
경찰이 제야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학생 말하고 행동하는 거 보면 전혀 피해자 같지 않아.
피해자 같은 게 뭔데.
그냥 당하고만 있었을 것 같지 않다고.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젯밤에 신고 했어야지.
여기서 소리 지를 게 아니라 어젯밤에 그 남자 앞에서 그랬어야지.
제야는 무서웠다고 대답하다가, 경찰이 무섭다는 의미를 모르는 것만 같아서 물었다.
무서운 게 뭔지 알기나 해요?
P. 116
엄마 아빠는 매일 기도한다. 나를 위해 기도한다.
기도 따위······ 구걸하는 것만 같다.
이제 와서 대체 어떤 기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기도가 남아 있긴 해?
나를 위해 기도할 게 아니라 내게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P. 131
어째서 내가 의심받는가. 어째서 내가 증거를 대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설명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사라져야 하나.
P. 133
잘해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고 아끼는 거야.
너무 노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 해. 이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노력해야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노력은 힘든 거잖아요. 제야가 중얼거렸다.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P. 161
누나, 미로 있잖아.
승호는 제야의 손과 발을 주무르며 말했다.
미로에서 출구를 찾으려면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걸으면 된대.
그럼 미로의 길을 다 걸어야 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수도 있지만
어쨌든 출구가 나온대.
P. 194
그보다 훨씬 힘이 세고 덩치가 크고 괴물 같은 사람이,
아니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짐승이어도 좋다.
아무튼 그 무엇이 그를 강간하길 원한다.
자기 죄를 알 필요도 없다. 재산을 뺏을 필요도 없다.
가족을 해칠 필요도 없다. 명예를 더럽힐 필요도 없다.
그가 당하면 된다. 그리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면 된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말을 할까?
너도 즐긴 거 아니냐고 말할까? 네가 죽을힘으로 반항했다면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까?
다 큰 남자가 겁도 없이, 다 큰 남자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 큰 남자가 울면서 하는 말이라고 다 믿어선 안 돼, 그런 말을 할까?
다 큰 남자가 술을 마신 것 자체가 문제라고, 다 큰 남자가 착각한 거 아니냐고,
다 큰 남자가 이미 소문이 나버렸으니 인생 글러먹었다고,
다 큰 남자가 총각도 아닌데 먼저 자빠졌는지 자빠트렸는지 알게 뭐냐고 말할까?
가해자 보듯 그를 볼까?
P. 201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곳의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부르지?
여자애.
여자도 아닌 여자애.
계집애가 겁도 없이.
P. 202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너무 쉽다.
괴물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쉽다.
너무 쉬운 그 말은 아무 의미 없다.
너무 쉬워서. 아무 힘이 없다.
그는 괴물도 짐승도 악마도 아닌 사람이 아니어서 나를 강간했다.
P. 217
그러니까 제니야, 이게 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살고 싶다는 말이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단 말이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던 나로, 온전한 나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편에서서.
제대로 살고 싶단 말이야.
P. 224
첫댓글 이책 다읽고 진짜 펑펑 울었어ㅠ
제야가 행복하길 빌었어ㅜ
제야가 애쓰지 않고 행복했으면..
머야 책 읽어봐야겠다..글써줘서 고마워 ㅠㅠ💖
제야..ㅜㅜ 이 책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