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식탁> 살라미 소시지와 공산당
얇게 잘라 야금야금 공략 살라미 전술 북 협상 전략의 단골 메뉴
살라미 소시지에서 유래… 공산·독재국가에서 주로 사용해온 협상 전술
히틀러가 정적 제거를 위해 고의로 불지른 독일 국회의사당,출처=위키피디아" |
음식의 역사를 공부하면 살면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재미도 있고 상식이 넓어져 대화가 풍부해진다. 다양한 방면으로 지식이 확대되고 여러 측면에서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피자 한 조각에서도 뜻밖의 상식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장 인기 있는 피자 토핑 중 하나인 페페로니 소시지가 그런 경우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만든 페페로니 소시지
얇게 썬 페페로니 소시지만 듬뿍 얹은 페페로니 피자는 씹으면 씹을수록 소시지의 육즙이 우러나 고소하다. 그래서 다양한 토핑을 골고루 섞는 콤비네이션 피자와 함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그런데 페페로니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피망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어 페페로네(peperone)의 복수형에서 비롯됐으며, 소시지 생김새가 피망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다.
페페로니 소시지는 이탈리아식 이름을 가졌으니 당연히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미국 소시지다. 20세기 초, 미국에 이민 온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페페로니 소시지라는 이름은 문헌상으로는 1919년에 처음 보이는데 이탈리아계 미국인 정육업자들이 만들어 퍼트렸다. 그래서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현지에서 페페로니 소시지나 페페로니 피자를 달라고 하면 얻어먹기 힘들다. 이탈리아에는 페페로니 소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 이탈리아 이름은 살라미 소시지
물론 이탈리아에 페페로니 소시지와 같은 음식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름이 다를 뿐이다. 페페로니 소시지를 이탈리아에서는 살라미(salami) 소시지라고 부른다. 살라미는 고기에 소금과 향신료를 넣고 바람에 건조·숙성시켜 만든다. 주로 독일 남부와 이탈리아, 프랑스, 헝가리 등의 중남부 유럽에서 만드는 소시지로 장기간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지역에서 발달했다. 반대로 북부 독일과 같은 북유럽에서는 햇볕이 비치는 날이 짧고 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기에 주로 연기에 그을려 숙성시키는 훈제 소시지가 발달했다.
살라미 소시지는 통째로 굽거나 삶아 먹는 소시지와 달리 얇게 잘라서 빵과 함께 먹거나 샐러드·피자에 얹어 먹는다.
페페로니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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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마차시 라코시가 처음 용어 사용
이렇게 얇게 잘라서 먹는 살라미 소시지의 특성에서 유래한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공산국가와 독재국가에서 주로 사용해온 전쟁과 협상 전술이다.
협상 과정에서 하나의 큰 주제를 여러 개의 작은 의제로 잘게 쪼개 각각의 의제에 대해 협상을 벌이고 보상을 받아냄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이다. 분할과 점령(divide and conquer) 전술이라고도 하는데 1940년대 헝가리 공산당 총서기인 마차시 라코시가 정권을 장악할 때 공산당의 전술 방식을 표현하면서 살라미 전술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라코시는 헝가리에서 공산당 이외의 정파를 살라미 소시지처럼 조금씩 잘라내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처음에는 파시스트 우파를 먼저 제거하고 다음에는 중도파를 벗겨내 없앤 후 좌파를 제거하면 최종적으로 공산당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단번에 통째로 먹기는 어려우니 살라미처럼 얇게 잘라 하나씩 야금야금 공략한다는 전술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할 때 쓴 전략
살라미 전술의 원형을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할 때 쓴 토막 식사(piecemeal) 전략에서 찾기도 한다. 나치당 추종세력이 독일 의회 의사당에 고의로 불을 지르고 히틀러와 나치가 조직적으로 자유주의자·공산당·민주당 등 라이벌 정당에 방화 혐의를 뒤집어씌워 하나씩 제거했던 전략이다.
북한의 전략을 설명할 때도 살라미 전술이 빠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협상 전략을 크게 벼랑 끝 전술과 살라미 전술로 구분한다. 벼랑 끝 전술로 극단적 위기를 조성하고 상대방을 위협해 협상의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한편 살라미 전술로 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한다. 예를 들어 북핵 관련 6자회담을 진행할 때도 협상 단계를 최대한 잘게 나눠 협상 의제를 단계에 따라 쟁점화하는 방법으로 살라미 전술을 활용해 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시간을 끌면서 쟁점을 흐려 소기의 목적 달성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따지고 보면 살라미 전술은 1940년대 동유럽의 공산화에서부터 북핵 협상까지 공산당이 가장 즐겨 사용한 전술일 수도 있다.
피자에 토핑으로 얹혀 있는, 별것 아닌 살라미 소시지 한 조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다양한 상식과 역사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시지로 알아본 살라미 전술이다. 사진=필자 제공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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