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09:18 새글
학창 시절, 내 죽기 전에 산업혁명과 같은 것을 겪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산업혁명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내가 바라 본 근대의 산업혁명은, 인간의 생존(기술)에서 자연환경보다 인간환경에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만든 전환점이다.제 3의 물결이니 뭐니 하지만, 위와 같은 틀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죽을 때에나 산업혁명과 같은 것이 가능할지 말지일 거라고 예측했다.그런데 오 마이 붓다. 죽기 전에 새로운 산업혁명을 구가하게 될 거 같다. 뭐 은퇴와 맞물리기는 했지만. 세상은 내 예측보다 빨리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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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09:31 새글
유물론,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전쟁에서의 유물론.어린 시절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불과 2차 대전까지만 해도, 전쟁은 인간을 갈아넣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느닷 없이 왜?그 대답을 핵무기에서 찾았다.핵무기가 등장한 후, 인간을 갈아넣는 전쟁을 포기해야 할 강한 동기가 발생했다.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전쟁 양상이 된 거다. 사람 생명이 이렇게 가치 있게 다뤄지던 시대가 있었던가? 전쟁에서 말이야.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오늘날의 전쟁에 적용되는 상부구조 역시 필요의 산물일 뿐.상황 즉 하부구조가 변한다면? 핵무기에 대한 확실한 대처 방안이 나온다면?다시 전쟁에서, 고작 몇십 년 풍미한 인간 생명 존중은 사라지고, 인간을 갈아넣는게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첫댓글 야단법석에 있던 방문객님 글.
시류에 딱 맞는 글 같아 이리 빼왔어요.
한말씀씩 해주시면 좋을텐데요.
 눈꽃
12:52 새글
윤리란 생존에 유리했던 형질의 부산물일뿐.
나만 살아있으면 된다. 너야 죽든 말든.
내가 살아가는데 유리할 수 있다면, 너의 죽음따윈 내 관심사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수십만이 총구에 스러지든, 인도네시아에서 천여명이 물에 휩쓸려가든..
나는 여전히 맛나게 먹고, 따뜻하게 잠자고, 이웃과 담소하며 웃는다.
왜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생명은 살아남기 올인했던 것들의 쟁취물이다. 여기에 평화. 윤리. 공감력 등은 사치일 뿐.
생명은 그렇게 생겨먹었고, 태초 해수 열수 분출구부터 시작된 유기물의 진화는 그런 잔인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 이자리에 도달했다.
그러니 수십억년 진화의 과정을 거쳐온 인간은 이기적 생존본능의 산물이고 그게 본성이다.
붓다는 그 모두를 꿰둟으신 것 아닐까?
그러니..대자대비심. 참으로 크나큰 슬픔을 일으키실 수 있었던것 아닐까?
그래도 우리는 아주 조금은 붓다를 닮아가나보다.
전쟁터에서 스러져가는 청춘의 아리따운 청년들을 보며..조금은 슬퍼하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나 작은 슬픔이라는게...
또 슬프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