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루카9,23-2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오늘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피를 흘려 순교하신 이 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순교는 신앙이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중형을 감내함을 뜻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형벌이 순교자를 만들지 않고 원인이 순교자를 만든다.”라고 하였습니다.
당하는 고통 그 자체보다는 그 지향하는 바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순교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을 만물 위에 사랑하는 애덕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완전한 신앙의 행위이다. 지금의 상황은 우리 선조들이 박해를 받던 그러한 시절은 아닙니다.
오늘의 참된 순교 정신이란 나 자신을,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온전히 포기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그래서 참 부활의 기쁨을 느끼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특징은 세계의 교회사상 유례없는 자생적 교회입니다.
진암 주어사에서 광암 이벽을 중심으로 시작된 강학회를 통하여 진리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어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첫 세례를 받은 후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올 때까지 두 분의 중국인 선교사가 잠시 활동했을 뿐 성직자 없이 오랫동안 신자들만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교회가 가꾸어져 왔습니다.
교회는 그 후 100년 이상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순교자들이 만 오천여 위가 있다. 그중에 많은 분이 기록이 없이 순교하였기 때문에, 순교 성인의 반열에 들지 못한 분들이 많다. 지금 다시 교회는 순교자 시복 시성 움직임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순교자의 피가 거름이 되어 오늘의 교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주님을 따르지 않을 이유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나라에서 믿지 못하게 했으며, 자기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바라보았기에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이겨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어 가장 커다란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 순교자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가나안 신자’의 길이 아닌 순교자들의 삶을 우리도 쫓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순간의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