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혼·졸혼 시대 백년해로의 비결은?
이혼의 원인은 결혼”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결혼이 없었다면 가슴 아픈 이혼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쩌면 전혀 다른 속성의 개체가 의좋게 살기를 바라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서른일곱 살 되던 해 아내에게 ‘해혼식(解婚式)’을
제안했다. 아내가 고민 끝에 동의했고 간디는 고행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결혼(結婚)이 부부의 연(緣)을 맺어주는 것이라면 해혼은 혼인관계를 풀어주는
것이니 불화로 갈라서는 이혼과 다르다. 한 과정을 매듭짓고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인도엔 오래전부터 해혼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자녀가 결혼하면 각자 원하는 대로 사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떤 은퇴한 직장인이 시골 고향으로 돌아간 뒤 아내에게 해혼 생활을
제안하며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간섭하지 말자고 했다.
아내는 남편이 멋대로 살기를 선언하는 줄 알고 펄쩍 뛰었지만 남편 생각은 달랐다.
자기는 시골생활에 익숙하지만 도시출신 아내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편 신경 쓰지 말고 친구 만나고 여행도 다니라는 배려였다.
늙어 이혼하지 않으려면 해혼하라는 것이다.
일본에는 ‘졸혼(卒婚)’이 늘고 있다 한다.
2004년 책 ‘졸혼(소쓰콘)을 권함’을 쓴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을 ‘기존 결혼형태를
졸업하고 자기에게 맞는 새 라이프스타일로 바꾸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들 부부는 걸어서 25분 걸리는 아파트에 따로 살면서 한 달에 두어 번 만나 식사한다.
원래 전형적인 모범부부였지만 아이들이 자라자 달라졌다.
시간 맞춰 같이 밥 먹고 가족여행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결혼 틀은 유지하되 각자 자유롭게 살기로 했다.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남이 안볼 때 갖다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했다.
부부나 가족은 너무 가깝기에 서로의 기대도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리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 없이 못 산다”는 말처럼 상대를 붙들어 매는 말도 없다.
우리라고 다를 리 없다. 서울의 황혼이혼은 27%로 25%의 신혼이혼을 앞지른 지
5년째다. 50~60대 남녀 절반이 남은 인생은 나를 위해 살겠다고 한 여론조사도 있다.
주례(主禮)는 늘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며 살라”고 당부하지만 평균기대수명
60세 시대와 100세 시대 결혼이 같을 수 없다.
생을 접는 순간까지 기존방식 결혼에 매이고 싶지 않는 사람이 느는 이유다.
해혼, 졸혼은 해마다 갱신하는 단기계약의 만년(晩年)결혼이다.
결혼의무를 다한 뒤 각자 따로 살며 서로를 친구처럼 지켜보는 것도 ‘백년해로’라고 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완벽을 요구하지 않기,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아지려
애쓰지 않기, 남편이 앞서가며 아내의 감시받기, 좋다고 가까이 붙거나 싫다고
멀리 떨어지지 말고 적당한 간격 유지하기를 지킨다면 얼마든지 백년해로할 수 있다.
노대홍 천지인문화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