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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8일 오늘의 역사
2024년 미국 텍사스주 서북부 팬핸들 지역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큰 화재 발생
미국 택사스주 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잡히지 않는 가운데 총 85만 에이커를 태웠습니다.서울 전체 면적의 8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이 화재는 텍사스주 최대이며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큰 불이다
2023년 필리핀 화물선 침몰로 기름 80만 리터 유출
2023년 그리스 열차 충돌로 최소 57명 사망 80여명 부상
그리스 중부에서 밤 기차 2대가 충돌해 최소 5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28일 자정 직전 350명을 싣고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던 여객열차가 테살로니키에서 라리사로 가던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여객열차는 같은 선로에서 화물열차가 마주 오는 줄도 모르고 시속 150㎞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번 사고로 여객 열차의 기관부를 포함한 1·2호 객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3호 객차는 탈선했다 일부 차량에 불이 붙었다.
2019년 북한, 미국 2차정상회담 베트남 하노이에서 실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정상회담을 실시하였다
미국은 현재 영변핵시설 외 2곳에 대한 철수와 핵관련 정보를 요구하였고 북한은 경제제재를 포함한 모든 제재를 요구하여 결국은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렬되였다
2012년 '백제행' 이성부 시인 별세
'백제행'의 시인 이성부(70)씨가 28일 오전 8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1942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만 스무 살인 1962년 '현대문학' 시(詩) 추천을 받는 등 문단에 일찍 데뷔했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 사회부장·생활부장, 일간스포츠 문화부장을 지냈다.
시집 '백제행' '전야' '빈산 뒤에 두고' '야간산행' 등을 남겼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1년 애국지사 효운 김영일 광복회장 별세
애국지사 효운(曉雲) 김영일(86·사진) 광복회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10시 50분 경기도 분당 제생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평북 정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민족학교인 오산학교에 다니다 1943년 12월 중국으로 망명해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고인은 광복군 활동과 함께 이 부대 기관지 '빛'의 편집위원으로 일했고 1945년 8월 국내 진공 작전을 위해 미 전략정보국(OSS)의 특수훈련을 받던 중 광복을 맞았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육사 특별8기), 군문(軍門)에 들어선 고인은 주월 십자성부대사령관과 육군대학 총장을 역임했으며 197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고인은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할 당시 서울 장충동의 낡은 판잣집에서 부모와 4남매 등 가족 8명이 사는 사실이 알려져 '하꼬방 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군을 떠난 이후에는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과 광복군동지회 회장, 광복회 부회장을 거쳐 지난 2008년 6월 제18대 광복회장에 당선됐다.
고인은 광복회장이 된 뒤에도 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설렁탕과 햄버거 등 5000원 이하의 점심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좋은 것 먹자 하면 한도 끝도 없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광복회원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에 독립운동 선열 위패 봉안전 건립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초·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근대사 교육에 힘쓰는 등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인은 은성화랑훈장(1951), 충무무공훈장(1969), 을지무공훈장(1970), 건국포장(1977), 건국공로훈장 애국장(1990) 등을 받았다.
2011년 한국 미용계의 대모 그레이스 리(이경자) 별세
"나 죽으면 갖고 있는 옷 중에 제일 예쁜 옷 입고 와야 해. 그리고 꽃도 말야, 왜 장례식장에서는 흰꽃만 쓰지? 난 핑크나 빨강처럼 예쁜 게 좋아. 그리고 절대 울고 짜고 하지 마. 음악은 아주 경쾌한 걸로 틀었으면 좋겠어.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니 좋지 않겠어? 장례식도 경쾌하게 치르면."
두 번째 항암치료를 받은 지난해 늦가을, 그레이스 리는 아주 명랑하게 자신의 장례식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딱 80살 생일(12월 9일)을 치르고 열흘 후쯤 죽고 싶다"던 '나이 든 소녀'가 조금 일찍 하늘로 떠났다.
세 번째 찾아온 암을 물리치기 위해 6번의 항암치료를 버텨낸 그녀지만, 체력이 미처 받쳐 주지 못했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이화여고를 졸업한 그는 결혼 후 15년간 주부로 지냈다. 불행한 가정생활 끝에 이혼한 그녀는 1968년 미국으로 가 미용학교인 월프레드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같은 해 뉴욕 최고의 미용실 헨리벤델에 취직했고, 거기서 전설의 헤어드레서 폴 미첼에게 헤어 디자인을 배웠다. 그녀 주머니엔 언제나 동전과 1달러짜리가 가득했다. 머리카락이 뽀독뽀독할 때까지 헹구는 한국 아줌마의 머리 감기는 방식에 뉴요커들은 열광했다. 그녀는 말했었다. "그 돈(팁)으로 뉴욕 최고의 호텔 바에 가서 재즈를 들으며 샴페인을 마셨지."
그레이스 리는 살아서 한국의 머리 문화를 바꿨다. '유학파 1호'로 1971년 귀국해 이듬해 도큐호텔에 미용실을 연 이후 대학로·신촌·청담동에 미용실을 열어 머리를 볶는 것이 최고의 멋인 줄 알며 '파마 지상주의'에 빠져 있던 한국 여성들에게 우리의 머릿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머리 잘 자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지를 알려줬다. 머릿결과 얼굴 선을 살리는 그녀의 '단발머리'는 대유행했다. 미용실 자주 오지 말고 집에서 머리 만지라며 개인용 헤어드라이어 쓰는 법을 알려준 것도 그녀였다. 자존심 강했던 그녀는 디자인비를 따로 받았고, 미용사에게 잔심부름시키는 손님은 받지 않았다. 미용사를 '선생님'으로 부르게 만든 자존심 강한 예술가였다.
들의 극찬을 받았다.
장남 김승용(59)씨는 "너무 경박해서는 안 될 것 같아 파티처럼 장례식을 치르긴 어렵다. 하지만 빈소엔 흰 국화 대신 장미꽃 같은 화려한 꽃을, 너무 슬픈 찬송가 대신 재즈 같은 찬송가 연주를 틀어놓겠다"고 했다.
2009년 제과점 여주인 납치사건 피의자 정승희 검거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양천경찰서는 2009년 2월 28일 공개수배중이던 이 사건 용의자 정승희(32)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5시 50분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의 한 쪽방에서 공개수배됐던 정씨를 검거해 양천서로 호송했다. 공개수배된 지 10일, 사건 발생 18일 만이다.
정씨는 이미 구속된 공범 심모(28)씨와 함께 지난 10일 오후 11시30분쯤 서울 내발산동의 한 제과점에 침입해 여주인 A씨를 폭행하고 승용차로 납치한 뒤 현금 7000만원을 뜯어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경찰이 범인 유인을 위해 제작한 액면가 7000만원어치의 모조지폐를 받은 뒤 도주했으며 지금까지 신고된 바로는 모두 4차례에 걸쳐 704만원어치 모조지폐가 사용됐다.
경찰에 붙잡힌 정씨는 "나머지 위조지폐가 어디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태웠다"고 짧게 답했다. 경찰은 정씨가 위조지폐를 태웠다고 지목한 곳에서 발견된 재를 국과수에 보내 정밀 감식키로 했다.
2008년 제로보드 XE버전 공식 발표
2007년 하이텔 VT 서비스종료
2007년 케이블TV 채널 퀴니 폐국, 스토리온 개국
2006년 현역 ROTC 3부자, 육군서 첫 탄생
육군에서 처음으로 학군사관후보생(ROTC) 출신의 현역장교 3부자(父子)가 탄생했다.
2006년 2월 28일 학군(ROTC) 44기 임관식에서 소위 계급장을 단 정현우(24)씨의 아버지와 형은 모두 ROTC 출신 현역 장교다. 수의학(獸醫學)을 전공한 아버지 정기곤 대령은 1980년 학군 18기로 임관한 뒤 수의 병과에서 잔뼈가 굵었다. 현재 국군의학연구소장으로 있다.
큰아들 정현민(26) 중위는 2004년 학군 42기로 임관, 수도기계화사단 1여단 133대대에서 작전항공 장교로 근무 중이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동생 현우씨는 아버지와 형의 모습을 보고 장교가 되고 싶어 화학병과를 지원했다고 한다. 아버지 정 대령은 “두 아들에게 장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자세로 직위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형제 대학총장 국내 3번째 탄생
2006년 모든 특1급 호텔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 허용
2006년 충북대 총장에 임동철씨
2006년 9·11 억울한 옥살이 첫 배상
2006년 전남 여수 등 7곳 지역특구 지정
2001년 백만장자 데니스 티토가 세계 최초로 우주여행
2000년 휴대폰 가입자 2,500만명 기록
국내 이동전화 이용자가 2500만명을 넘어서 국민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이동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보통신부는 2000년 2월 28일 이동전화 신규가입자가 1월보다 118만 3천명 증가한 2542만8천명으로 집계됐다"고 3월 14일 발표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상(53%)이 이동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동전화 가입자는 1999년 9월 일반전화(시내전화)를 처음으로 앞지른 데 이어 5개월 만에 300만명 이상의 격차를 벌렸다. 이동전화 가입자는 5월말 2732만명까지 증가했으나 6월부터 시작된 이동전화 단말기 보조금 폐지로 6월말에는 100만명 이상이 감소한 2619만명으로 집계됐다.
1997년 청주국제공항이 개항
1997년 이란 5.5규모 지진발생 3000여명 사상자 발생
1997년 2월 28일 이란의 북서부 아르데빌 인근 산악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5.5를 기록한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이날 오전 2시8분 경 이란아프가니스탄 접경지대 발루치스탄주의 주도인 퀘타에서 1백13㎞ 떨어진 곳에서 발생, 이 지진으로 니르와 사레인 및 아르데빌 인근 1백10개 마을이 파괴됐고 수천마리의 가축이 희생됐다.
지진 발생 후 경찰과 국제적십자사연맹 대원 등으로 구성된 4천명의 구조대원들이 구조활동을 시작했지만 강풍을 동반한 폭설로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어 3천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8일 첫 지진후 약 2백차례의 소규모의 여진과, 3월 2일 오후 10시에 다시 발생한 리히터규모 5.2의 강력한 지진으로 이란은 전력공급이 모두 단절되고 가옥붕괴로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컸다.
1996년 제6회 용평국제스키대회 개막
제6회 용평국제스키대회가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 열렸다.
대한스키협회가 주최하는 이 대회는 지난 94년 제4회 대회부터 월드컵 바로 아래의 컨티넨탈컵 규모로 승격된 국내 최고의 국제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스키연맹(FIS)이 정한 일정한 점수가 부여되는 이 대회에는 한국을 포함해 모두 18개국 90여명이 출전하며 용평리조트 실버라인에서 알파인 5종목 중 대회전(28, 29일)과 회전(1, 2일)의 자웅을 겨뤘다.
한국에서는 30명이 출전하는데 국내 스키 1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허승욱(회전 23.60점, 대회전 26.22점)과 제3회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 변종문(회전 35.74점, 대회전 36.82점)의 자존심 대결도 관심을 끌었다.
한편 대회 조직위는 27일 저녁 6시 대회 관계자와 선수, 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가졌다.
1994년 이스라엘-PLO 대립
1994년 수학능력시험 년 1회 실시, 95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선안 발표
1993년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 사상 첫 억대타자 1억1천2백만원에 삼성 입단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억대타자가 탄생했다. 삼성구단은 1993년 2월 28일 아마야구 최고의 슬러거 양준혁과 계약금 1억원, 연봉 1천2백만원등 총 1억1천2백만원의 조건으로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1m88, 85kg의 빼어난 체격조건을 지닌 양준혁은 프로야구 8개 구단의 공통적인 주목을 받아온 강타자로 비록 기복은 있지만 완벽한 중심이동으로 인해 ‘왕거미’ 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영남대 재학 4년동안 3할 4푼 이상의 높은 타율을 과시했고 1백m를 12초에 끊는 빠른 발까지 과시해 프로입문 선수중 최대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로써 양준혁의 몸값은 출범 11년째를 맞는 프로야구계에서 투수를 제외한 타자로서 가장 높은 몸값을 기록하게 됐다.
1992년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백범 묘소 참배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씨 3·1절을 앞둔 1992년 2월 28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내 김구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안씨는 묘소앞 대리석제단에 30여분간 엎드려 오열했으며 참배를 마친 뒤에도 10여분 동안 묘소앞 잔디밭에 누워 흐느꼈다. 안씨는 “전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며 “그러나 범행 당시 배후는 없었으며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부인했다.
참배를 마친 안씨는 “지금까지 네차례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하고 오늘이야말로 내 제삿날이라는 심정으로 참배했다”고 말했다. 안씨가 김구선생 묘소를 참배한 것은 1949년 김구선생 암살 이후 세번째다.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인 안두희씨는 1996년 10월 23일 밤 피살당해 사망했다.
1991년 이라크 항복으로 걸프전 종결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야기된 걸프전이 1991년 2월 28일 이라크의 사실상 완전 항복으로 막을 내렸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날 대이라크 전투행위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이날 이라크군에 전쟁을 중지토록 명령함으로써 걸프전이 사실상 종결됐다.
부시 대통령의 정전 선언 후 걸프전 전 전선에서 총성이 완전히 멈춰 걸프전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백9일, 전쟁돌입 43일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전쟁에서 다국적군은 이라크에 대해 10만여 회의 공중폭격을 실시해 이라크군 42개 사단가운데 41개 사단을 무력화시켰다. 전쟁 중 이라크가 15만명의 사망자를 낸 데 반해 다국적군은 125명의 사망자만 내 대조를 이뤘다.
1988년 제15회 동계올림픽 폐막(캐나다 캘커리)
1987년 평화의 댐 착공
1986년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김세진과 이재호가 전방입소거부투쟁 중에 분신하여 사망
1981년 영산강 하구둑 완공
1980년 콜 서독수상, 동서독회담 제의
1979년 정부, 신생국 세인트루시아와 외교관계수립을 발표
1976년 문교부, 교수재임명 첫 실시
전국 98개 국-공-사립대학 현직교원에 대한 재임용발령이 1976년 9월 28일 단행됐다. 교수재임용 제도는 지난 1975년 7월 23일 의원입법에 의한 개정교육공무원법 9조3항에 의거 처음으로 교수임용계약제를 실시하기 위해 취해진 조처로, 일정기간 동안 교수의 능력이나 자질의 하자여부를 심사해 재임용 하도록 해, 정년 보장에 따른 무능력, 비효율 등의 폐단을 보완한다는 취지의 제도다.
당시 우리나라 대학은 양적 팽창에 따른 교수요원의 質관리 부실, 무능교수에 대한 사회적 지탄, 교수활동과 연수 소홀, 당시 시국 상황과 관련한 대학 및 정부시책 비판 등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교수재임명 발령은 국공립의 경우 교수-부교수는 대통령이, 조교와 전임강사는 문교부장관이, 조교급은 해당대학 총-학장이 각각 임명·발령하고, 사립대는 해당대학 재단이사장이 이사회결의로 재임명· 발령했다. 이번 재임용 심사대상 현직 교원수는 국-공립대가 4천2백60명, 사립대가 6천6백72명 등 모두 1만9백32명이었다.
1974년 영국 보수당 총선 패배
1973년 고교 평준화 조치
1973년 2월 28일 정부는 고교 평준화를 목표로 한 새 고교입시제도를 발표했다. 고교 평준화 조치는 일류고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세칭 중3병을 없애기 위해 부실고교를 정리하고, 무자격 교사를 없애고, 사립고교교사채용을 사전승인제로 하며, 공·사립, 인문·실업계 학교의 공납금을 동일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주요 내용은 종전에 고교별로 실시하던 입시를 시-도 단위로 실시하고, 전-후기로 구분해 전기에 실업계 고교-인문계 고교 2부-고등전문학교에 지원한 학생을 학교별 성적순으로 뽑고, 여기에 불합격한 학생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지원한 학생을 합쳐 입학 자격자를 선발해 학군별로 나누어 각 고교에 배정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1974학년도에 서울과 부산에서 먼저 시범적으로 실시한 후 이듬해 대구, 인천, 광주로 확대 실시되며 정착하는 듯 했지만 평준화 정책에 대한 조직적인 반발과 부작용 때문에 다른 지역까지 확대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교육개발원이 2차례에 걸쳐 심각한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1979년 대전, 전주, 마산, 청주 등 7개 도청 소재지와 1980년 성남, 원주, 목포, 안동 등 8개 시로 확대돼 7대 광역시를 포함 23개 시가 평준화 지역이 됐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학교의 학생 선발권,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주민의 희망에 따른 교육을 우선시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됨에 따라 1990년에는 안동, 군산, 목포, 1991년에는 춘천, 원주, 이리(익산)가 평준화 지역에서 벗어났다.
1973년 국내 최장 정암터널 관통
1969년 KAL(대한항공공사) 민영화
정부는 대한항공공사(KAL)를 10년분할 상환조건으로 14억5천3백만원에 한진상사에 정식 불하했다. KAL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던 산업은행은 전격적으로 KAL의 정부주식 1백45만3천주(전체의 96.3%)를 수의계약으로 한진상사에 매각, 1969년 2월 28일 신문회관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정식운영권을 넘겼다.
KAL 주주총회에서 장성환 사장 등 전임원의 사표를 수리하고 새 이사진을 선출했는데 사장과 부사장은 대한항공공사법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키로 돼있어 이날 선정하지는 않았으나 회장에는 한진재벌의 총수 조중훈씨가, 사장엔 전명섭씨가, 부사장에는 한진상무 조중건씨가 내정되어 있었다. 한진은 KAL 운영확장을 위해 4발제트 여객기 2대와 DC-9 1대 등 신형여객기를 도입, 본격적인 항공사업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1967년 잡지왕 헨리루스 사망
미국의 ‘타임’ ‘라이프’ ‘포춘’지 등을 비롯, 수많은 잡지를 창간한 세계적인 잡지왕 헨리 루스가 1967년 2월 28일 향년 68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20세기 미국 신문ㆍ잡지계의 가장 유력한 인물이자 가장 언론적인 존재였다. 1898년 중국 산둥성에서 장로교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4세가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러던 1923년 잡지왕으로서의 행운이 그에게 찾아왔다. 대학시절 그의 클라스메이트였던 브리턴 헤이든과 함께 당시 미국의 주요 신문·잡지들이 해외뉴스를 거의 외면하고 있는 것에 착안, 세계 뉴스를 분야별로 요약해 보도하고 논평하는 형식의 뉴스잡지인 ‘타임(Time)’을 발행한 것이다. ‘타임’지는 창간 5년 만에 흑자를 내며 기존 미국 사회의 신문·잡지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잡지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1930년엔 미국의 격주간 종합 경제지 ‘포춘(Fortune)’을, 1936년엔 사진중심의 미국의 대표적인 주간그래프지 ‘라이프(Life)’를 발행했다.
특히, ‘라이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호기를 놓지지 않고 그 빛을 발했다. 커다란 지면과 많은 정보를 함축하고 있는 시사뉴스, 높은 질의 사진인쇄 그리고 새로운 의식을 바탕을 한 포토스토리로 시각정보에 굶주려있던 미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으며 이후 포토저널리즘의 범위를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이외에도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Sports Illustrated)’와 주부용의 ‘하우스 앤드 홈(House & Home)’ 등을 발행했고, 그가 만든 잡지는 거의가 실패없이 오늘날 정상을 달리고 있다.
1960년 대구학생들 부정선거 규탄 데모
1960년 대구학생의거 2·28 민주화 운동 발생
대구에서 이승만 정권시절 자유당 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의거이다.
대구 학생의거는 자유당 시절 정.부통령 후보였던 장면의 유세장으로 학생들이 가는 것을 막기위한 방편으로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등교지시를 내린것이 의거의 발단이 되었다
경복고를 비롯한 대구 전역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일요일인 이날 등교지시를 하는데 그 이유가 시험을 당겨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토끼사냥 같은 황당한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들이 모여서 논의하여 " 백만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서슴치 말고 일어서자"는 격문을 작성하고 2월 28일 시위를 시작하자 학생들이 대거 참가하여 대규모 시위가 되었다.
당시에 도지사는 학생들에게 "이놈들 전부 빨갱이"라며 적대시하였으나 시민들은 경찰로 부터 학생들을 도와주었다.
1200명정도가 시위에 참여했고 120여명이 경찰에 체포되지만 시위가 격화될것을 우려한 경찰은 많은 학생들을 되돌려 보내게 된다.
이 대구학생의거는 후에 4.19혁명의 도화선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게 만들었으며 후에도 한일수교 반대와 민주화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53년 발칸삼국동맹 조인
1950년 군인복무령 공포
1947년 대만에서 2·28 사태 발생.
1947년 2월 28일 5,000여 명의 군중이 대만 타이베이 시내의 전매청으로 쳐들어갔다. 한번 시작된 시위는 걷잡을수 없이 번져 농촌지역까지 확대됐다. 2.28사건의 시작이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간 장개석(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통상 ‘2.28참안’ 또는 ‘2ㆍ28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중국 근대사에서 동족간의 학살이라는 최대의 비극으로 기록돼 있다.
사건은 지난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대만을 중국에 반환했고, 이에따라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진의(천의)를 대만의 행정장관 겸 경비사령관으로 현지에 파견했다. 당시 일본은 항복선언 이후 대만통치에서 사실상 손을 떼 대만은 행정 및 치안 공백상태였다. 쌀값이 폭등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특히 거들먹거리는 대륙출신 군인의 횡포로 대륙 출신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감도 높아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나온 것이 ‘2ㆍ28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은 정부의 단속반이 밀수담배를 적발하는 과정에서 촉발됐다. 이날 수도 대북의 태평정 구역에서 밀수 담배를 팔던 한 40대 대만인 여성이 단속반과의 실랑이끝에 부상을 입었다. 그 과정에서 한 행인이 누군가의 총에 맞아 숨졌고, 총을 쏜 범인은 인근 파출소에서 보호를 받고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분개한 수천명의 대만 시민들은 다음날 대만 전매청을 포위, 살인자 처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관공서와 경찰을 습격했고 방송국까지 점령했다. 당국은 무차별 발포로 대응했다.
당시 대만 지식인들은 그해 3월 2일 ‘2ㆍ28사건’ 처리위원회를 구성, 3월 7일 대만의 자치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32개조 요구사항을 행정장관 진의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진의는 중국의 국민당군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어 3월 8일 국민당군 21사단 8,000여 명이 소요진압을 위해 대만에 상륙했다. 이튿날부터 시작된 폭력진압은 1주일 만에 소요를 진압했다.
2.28사건 처리위의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 체포돼 상당수는 처형됐으나, 사망자 수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최소 1천명에서 최고 10만명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28사건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으로, 38년 만에 계엄령이 해제되고 대만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였다. 이후 관련 연구논문과 소설 출간이 잇따랐고, 사건을 소재로 한 허우샤오셴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는 1989년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48년 김구, 남한만의 단독선거 반대
1938년 발칸협상,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합병 승인
1935년 듀퐁사 `폴리머 66(나일론)` 개발
1935년 2월 28일 듀퐁사에서 W.H캐러더스가 ‘폴리머 66(나일론)’ 을 발명했다. 나일론은 합성고분자 폴리아미드의 총칭으로 아미드결합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슬모양의 고분자이다.
1926년 독일 화학자 H.슈타우딩거의 연구에 자극받아 듀퐁사에서 나일론 연구를 시작했다. 듀퐁사는 1931년 폴리에스테르의 섬유화에 성공했고, 1935년 나일론을 발명했다. 1938년에는 뉴욕세계박람회장에서 그동안의 나일론 연구를 발표하면서, 나일론 스타킹의 판매로 세계최초의 합성섬유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나일론은 합성섬유 중 최대의 생산액을 보였다. 초창기, 나일론은 양말로 많이 사용되어 인기를 누렸고 그 후 안감, 속옷, 불라우스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또 타이어코드, 산업용, 플라스틱 분야에서도 많이 이용되어지고 있다.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아크릴은 3대 합성섬유이다.
1928년 장개석,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취임
1922년 이집트, 영국으로부터 독립
1920년 영친왕이 일본왕족 나시모토의 장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한국이름 이방자) 와 일본 도쿄에서 결혼식을 올림
1900년 영국 노동당의 전신인 노동자대표위원회 설립
1906년 황성신문 복간
한일합방전까지 민족의식의 고취와 문명개화의 선구자로서 지대한 공헌을 한 민족지 황성신문(皇城新聞)은 1898년 9월 5일 남궁억, 나수연 등이 주축이 되어 창간됐다. 국한문혼용이라고 해도 거의 한자에 한글로 토를 단 정도의 한문위주의 문장으로 제작되어 독립신문이후 순한글로 제작되던 전통을 깨뜨려 한학자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04년 2월 24일 한일의정서의 조인내용을 게재했다가 외부의 게재금지명령으로 기사를 삭제당해 문제된 기사의 활자를 뒤집어 인쇄한 이른바 `벽돌신문` 발간한 일과 1905년 11월 20일자 `시일야방성대곡`기사로 정간을 당하고, 사장 장지연을 비롯한 10여명의 직원이 체포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후 1906년 2월 28일 복간되었으나 심한 경영난을 겪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 강행되자 신문제호가 강제로 한성신문으로 바뀌어 8월 30일자부터 9월 14일까지 발행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1914년 찰리 채플린 영화에 데뷔
1900년 영국 노동당의 전신인 노동자대표위원회 설립
1900년 2월 27일 영국 노동조합회의와 독립노동당이 제휴해 노동자대표위원회를 결성했다. 보수당과 자유당 정책에 실망한 노동자-노동조합-사회주의자와의 연합체로 결성된 노동자대표위원회는 1906년 2월 제6회 대회를 통해 노동당으로 개칭한 뒤 급속적으로 성장해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립내각에 참여했고, 1918년 영국 하원 총선거에서는 제2의 정당으로 부상했다.
1924년에는 당시 당수였던 램지 맥도널드가 총리에 오름으로써 최초의 노동당 내각이 구성됐다. 노동당은 철도-탄광- 영국은행 등을 국유화시키고 식민지를 독립시켜 대영제국 체제에서 벗어나는 정책을 시도했다. 클레먼트, 애틀리, 윌슨, 캘러핸, 블레어 등의 총리를 배출했다.
1897년 인천 전보국 설치
1545년 조선 중기의 무신, 초대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탄생
1478년 동문선 130권 편찬(성종9년)
1467년 원각사지 10층 석탑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