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결혼식
인도 사회에서 여성 지위는 남성에 비해 말 할 수없이 낮다. 시집갈 때 상당액의 지참금을 가져가야함은 물론 재산권 행사도 남성에 비해 현저히 불평등하다. 터무니없이 작게 분배 받으며 사회 참여의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 여자 아이인 경우 살아나지 못하도록 숲에 버리는 사레가 허다한데 이는 여자아이가 장차 커서 시집갈 때 가지고 가야할 막대한 지참금 걱정 때문이다. 지참금을 적게 가져왔다는 이유로 신부를 좇아 내거나 심하게 구박해서 자살하게 만드는 경우는 흔하다.
한번은 제법 고관 집 아들이 연애로 가난한 집 여인을 아내로 맞은 일이 있었는데 신랑 측 부모의 반대가 극심했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겪는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용케 승낙을 받아내고 드디어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지참금 거부 운동의 한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인가와 계층에 대한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과연 극심한 차별을 극복하고 끝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집중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염려에 따르듯 시댁의 지참금 구박과 신분 차별은 극심했다. 여인은 길고도 혹심한 구박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인도의 가난한 많은 사람들 가슴을 또 한번 쓰리게 하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지참금 적게 가져오는 여인을 신랑과 시어머니가 함께 공모해서 죽이기까지 한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이나 시어머니는 크게 처벌 받지 않았다. 그것이 인도 사회의 관습이며 법 형평이다.
도대체 여인에 대한 차별이 그렇게 심한 사회에서 어찌하여 여인을 맞이하는 결혼식은 무슨 이유로 그리 성대하게 치르는지. 무려 삼일씩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잔치를 벌리며 친지. 친척. 이웃들을 불러 먹고 마시고 노래한다.
결혼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영혼의 결합이 아닐까? 서로 다른 특성이 만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하나의 완벽을 꽤하는 희망의 출발이 아니겠는가? 종족 보전을 휘한 미래 지향의 꿈의 무대가 아닐까?
서울의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보통의 시민으로 직장을 다니며 조촐하지만 변두리에 조그마한 집도 한 채 마련하고 딸아이는 평균치는 되는 대학을 나오고 아들도 보통의 대학을 마치게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원인은 딸아이가 재벌 집 아들과 연애를 하면서부터였다. 가정형편이 서로 다르면 불편한 일이 많을 것이라고 설득하며 둘을 떼어놓으려고 해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결국 별 생각 없이 결혼시키기로 양가가 합의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재벌 집 혼수 요구는 끝이 없었고 식을 호화롭게 치르려는 정도도 한이 없었다. 한 사람 식사대가 이십만원을 넘는 고급 호탤에서 수억원이 드는 혼례를 치러야 했다. 혼례식에 드는 비용만으로도 그렇거니 혼수비는 또 얼마나 들었겠는가?
결국은 중간에서 물릴 수도 없는 쫄딱 소나기 맞은 꼴로 그나마 집 한 칸 지니고 있던 것까지 팔아 가면서 혼사를 끝내야 했다. 전셋집으로 이사하면서 하도 어처구니없는 심정어서 앞으로의 삶도 적잖이 걱정되고 하여 내게 하소연 하는 것이었다. (나라고 별 수가 있나?)
인도인의 결혼식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 무지할 수가 있느냐 마치 미개인 같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를 냉정히 돌아보면 우리도 미개하게 보는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미개함을 가지고 있다.
시집가서 자기로 인해 쪼들리는 살림을 하시며 고생하시는 친정부모를 생각하면서 걱정으로 날을 보낸다면 그 결혼은 결코 행복한 결혼이 될 수 없다. 딸 하나 시집보내자고 집을 팔고 빚을 내야한다면 그래서 나머지 식구들은 전셋집에서 고생해야한다면 그런 결혼은 결코 축복받는 결혼이 될 수 없다.
이제 결혼 철이 닥아 오는데 모두들 잘 생각하여 잘 선택해서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는 짓을 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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