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
생선회 먹고 난 뒤에 나오는 매운탕. 활어회를 먹는 묘미이자 독특한 한국식 생선회문화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활어회를 먹고 나서 매운탕으로 마무리를 해야 개운함을 느낀다. 그런데 매운탕의 맛은 항상 불만족이다.
대한민국 모든 식당에서 김치가 나오지만 정작 맛있는 김치는 찾기 힘들다. 왜일까? 사람들은 김치를 먹으면서 음미하진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던 음식이기에 관념의 맛이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김치를 먹기도 전에 김치는 이런 맛이란 관념. 때문에 김치 맛에 관대한 게 식당김치가 발전하지 않은 요인으로 풀이된다.
횟집의 매운탕도 그렇다. 회를 먹고 나서 당연히 먹어야 하는 통과의례쯤으로 여긴다. 주인 은 대충 끓이고 손님은 대충 먹는다. 횟집의 매운탕이 분식집의 라면이나 김밥처럼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이다.
세상이 살만한 재미가 있는 건 간혹 예외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횟집의 매운탕에 대해 감동 없는 맛이라고 깔아뭉갰지만 보란 듯이 끓여내는 집도 있다. 말이 매운탕이지 그 집의 매운탕은 매운탕이라고 정의 내릴 수가 없다. 뭐랄까? 해물탕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고 알탕이라고 불러도 이의를 달지 못할 정도이다. 북창동에 위치한 부산갈매기의 생태매운탕보다도 한 수 위가 아닌가 싶다.
가락동수산시장 내 횟집타운
어느 날, 고향 친구가 이 가난한 맛객에게 회를 사주겠다고 데리고 간 곳은 가락동수산시장 내 횟집타운이었다. 한 공간에 구역을 나눈 조그만 횟집들이 밀집되어 있었는데 친구는 그 중에 한 곳인 포항수산으로 안내했다. 감성돔으로 잡아 달라고 하고 자리를 잡았다.
몹시도 추웠던 그날, 소주잔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몸의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한잔 털어 넣으며 회를 뜨는 아주머니를 관찰했다.
횟감의 피를 빼서 마른행주로 깨끗이 닭은 다음 포를 뜨고 다시 마른행주로 도마를 닦곤 한다. 마지막 과정에선 도마를 바꿔 회를 썰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으로 회를 뜨면 포를 뜬 횟감을 물에 씻을 필요가 없다. 젖은 도마에서 물을 뿌려가며 막 포를 떠서 물에 씻어내는 것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마른행주 소비가 많지만 회의 맛을 고스란히 유지해 주는 장점이 있다.
소래소구나 강구의 동명어시장 앞의 난전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예외 없이 포를 뜬 횟감을 물에 씻는다. 것도 모자라 수건으로 돌돌 말아 물기를 꼭 짠다. 이 과정에서 육즙의 맛이 빠져 나갈건 당연지사. 무엇보다 육질의 조직이 손상된다. 눈으론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차이지만 회의 맛은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아주 곱던 질감이 거칠해지고 푸석해지니 회 고유의 맛으로 먹기는 그렇다. 그렇다면 어시장의 상인들은 맛이 떨어지는 방법을 고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간절약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감성돔회, 반갑다 무채
예상대로 감성돔의 맛은 육안으로 먼저 보였다. 구수하고 찰지고 쫄깃하고...회의 절단면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미세함과 맛, 향이 고대로 살아있다. 때문에 굳이 상추에 쌈을 하지 않고 와사비만 곁들여 간장에 찍어서 먹는다. 활어의 싱싱함과 선어의 감칠맛이 혀에 전해진다.
그런데 이 집이 인상에 남는 건, 회가 아닌 매운탕이었다. 이 집의 매운탕이 기가 막히게 좋다는 친구의 말을 들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간 횟집의 매운탕에 대해 큰 기대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편견은 잠시 후 매운탕을 접하는 순간 찌그러지고 말았다.
냄비에 가득 찬 매운탕은 여차하면 넘칠 듯한 기세다. 아직 탕에 다 잠기지 않은 낙지 한마리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국자로 내용물을 들어보니 오호~ 이것들 좀 보라지. 꽃게(요즘 흔한 게 꽃게라지만)와 새우, 곤이와 이리들이 한 냄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자잘한 새우도 듬뿍 들어갔다. 어떤가? 이만하면 매운탕이 아니라 해물탕이라 부를만 하지 않는가?
신선한 곤이와 이리가 듬뿍 들어갔다
내용물의 풍족함만 맘에 드는 게 아니다. 수산시장내의 집답게 이리와 곤이 같은 재료들의 신선도가 아주 우수하다는 점이다. 신선한 재료에 맛까지 있으니 밥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 매운탕만으로도 충분히 후한 점수를 주고도 남는데 밥과 함께 나오는 총각무가 감동의 눈물을 주루룩.... 떨어뜨리게 해버린다.
총각무김치
무척이나 시원했던 총각무김치
줄기까지 달리게 통째로 담갔기에 이런 놈은 왼손으로 들고서 먹어야 제맛이다. 한 입 베물자 아삭거리는 식감과 청량감, 그리고 감칠맛도 풍성하다. 김치와 매운탕에 대한 불만족이 일시에 해소되고 만다. 김치와 매운탕, 잘나오는 집도 있다. (2008.1.25 맛객)
<그 외 음식들>
옥호: 포항수산 전화: 02) 408-8817 위치: 가락동수산시장 내 횟집타운 가격: 감성돔 50,000원, 소주 3병, 공기밥 등 합계 6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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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맛있는 인생 원문보기 글쓴이: 맛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