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박 대통령 통치 시기를 민주화의 암흑기라는 식으로 논의하는 경우를 본다. 그런데 이는 개발도상국에 있어서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논의이다. 주지하다시피 비교정치학은 풍부한 연구자금으로 여러 나라의 광범한 사례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음을 누구도 부인 못한다.
1959년과 1960년에 미국의 립셋(S. Lipset)은 개도국에 있어서의 민주화를 위한 네 가지의 필요조건(prerequsites)으로 산업화 도시화 부(富) 그리고 교육의 보급을 들었다.
1963년에 앨몬드(G. Almond)는 개도국의 혼란상을 ‘참여폭발(participation explosion)’이란 시각으로 분석했으며 1965년 앱터(D. Apter)는 ‘민중주의’의 위험을 경고했고 헌팅톤(S.Huntington)은 1968년 개도국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민주화보다 질서유지’이며 이를 위한 ‘제도화’를 주장하다가 1970년 후반에 들어서는 경제성장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들었다.
개도국의 전형적인 성공사례
1980년대 들어서는 이른바 ‘동아시아 발전국가론’이란 논의들이 앰스덴(A. Amsden), 웨이드(R. Wade) 등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특히 앰스덴은 한국을 이른바 ‘향도적 시장경제(guided market economy)’의 전형적인 성공사례라 하여 ’아시아의 다음 巨人(Asia`s next Giant)’ 이라는 책의 제목(1989)에서 보듯 한국의 발전전략을 극구 찬양했다.
개도국에 있어서의 ‘민주화와 경제성장과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의에 있어 가장 큰 주목을 끄는 것은 배로(R. Barro :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의 ‘민주주의는 성장의 처방일 수 있는가?(Democracy : a Recipe for Growth?)’라는 1994년의 논문이었다.
배로는 1993년 현재 100개의 개도국을 표본으로 하여 실증적인 연구를 하였는데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시도한 나라들,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병행하겠다고 한 나라들은 모두 실패했는데 ‘선 경제성장 후 민주화’의 발전 전략을 택한 나라들만 성공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한국 대만 싱가포르 칠레 등이며 ‘선민주화’를 택한 대표적인 경우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인데 민주화와 경제성장 모두 실패하고 혼란만 거듭하다가 드디어는 모두 권위주의에로 돌아서고 있다고 하면서 최종 결론으로 “개발초기에 있어서의 민주화 정책은 성장의 걸림돌”만 되었다고 단언했다.
필자는 2000년 출간된 ‘정치발전론’에 ‘개발독재론’이란 단원을 두어 상기 학자들의 논의들을 많이 원용하여 학문적 분석을 시도했다. 2003년 10월에 있었던 한국정치학회 50년사 특별세미나에서 ‘비교정치학의 연구동향’이란 주제발표에서도 “개발독재는 개발초기의 한시적 체제였지만 민주화를 위한 사회경제적 기반조성기였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그런데 필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단 한사람도 제기한 바 없었다. 또 1994년 필자는 미국 아틀란타에서 있었던 개도국 문제에 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개발독재에서 시민민주주의로(From Develpoment Dictatorship to Civilian Democracy)’란 주제로 논문을 발표(1995, 공저로 Univ. of South Carolina Press 출간)한 바 있었다.
중국의 등소평 체제도 개발독재의 한 유형으로 분류하여 만일 천안문 사태에서 민주화운동이 성공했다고 가정한다면 중국의 고도성장은 실패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시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천안문운동에 직접 참가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젊은 중국인 교수와의 질의응답에서 그 중국인 교수도 상당부분 나의 논의에 동조했던 것이다.
“등소평은 박정희 모델을 그대로 모방”
개발초기에 있어서 발전지향적 권위주의 체제와 단시일 내에 절대빈곤을 탈피하고자 하는 급속한 경제성장 정책의 강행사이에 친화성(affinity)이란 시각에서 볼 때 인권침해도 있었으며 또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에게는 탄압이 가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고도성장에 어쩔 수 없이 수반되었던 부작용이었다.
유신체제 아래서 희생이 너무 컸다 하지만 중국의 천안문 사태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1,400여 명의 사상자와 1만여 명의 부상자를 내게 한 등소평은 지금 중국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오버홀트(W. Overholt)는 ‘중국의 부상(浮上)-Rise of China,1989)’이란 저서에서 “등소평은 한국의 박정희 모델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의 개발전략을 높이 평가하였는데 지금 우리 나라 좌파들은 박 대통령이 무슨 대죄라도 지은 듯이 떠들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
박 대통령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명백히 할 수 있는 특히 학문적인 노력이 더 활발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