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장편소설 [[황산강]]을 주 4회 정도로 연재할까 합니다.
1부 아수라장, 2부 코피, 3부 모순, 4부 내 속에 하나의 우주, 5부 더덕 냄새, 6부 한없이 가벼운 사랑
영감에게 잡힌 것이 무서웠다. 손목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울며 엄마를 찾았다. 안골 논에서 집까지 뒷덜미를 잡힌 채로, 울면서, 반은 끌려서 왔다.
“종우야. 이기 무신 일이가?
사음 영감님. 이기 무신 일잉교? 아~가, 왜 이 모냥이라요?”
황산강 2부 코피(2회)
우리 집 사립문 밖으로 엄마가 뛰어나왔다. 엄마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질렸다. 평소 지나칠 때 고개 들어 쳐다보지도 못하던 사음 영감을 똑바로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엄마 품에 안긴 젖먹이 종미가 새파랗게 질리며 악을 쓰고 울었다.
“아~ 새끼를 지대로 갈차야지. 도적놈의 새끼로 키우만 쓰나. 나머 빰 따다가 들키서 빰나무에서 떨어져 안 그란나.
그란데 어디, 지집이 감히 눈 똑바로 뜨고! 어느 안전이라꼬, 과무 지르고 날리가!”
엄마 품에서 종미가 더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때 할매까지 사립짝으로 달려 나왔다.
“아~가, 손모가지 빙시~ 되마 사음 영감이 책임질랑교? 손모가지뿐만 아니라 피칠갑한 이 얼굴 상한 것 책임지소. 그깟 빠므사 따만 을매나 따쓸라꼬? 사라미라만 이카만 안 되지러. 하무, 안 되지러.”
할매가 사음 영감에게 삿대질하며 달려들었다.
너무 놀라 손목 아픈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악을 쓰며 더 큰 소리로 울어 젖혔다.
이집 저집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못 배와 묵은 것들. 새끼를 아주 도적놈으로 키우고도 할마이나 지집이나 지레 큰소리치네.
아~, 거기 춘삼이. 자네 접골할 줄 알지. 또쭐이 아~새끼 빙시~ 되기 전에 손모가지부터 붙여 놔라.
에잉~. 못 배와 묵은 것들 같으니라고.”
들에서 돌아오던 앞집 춘삼이 아재한테 내 목덜미 잡은 것을 넘겼다.
사음 영감이 곰방대를 뒤로 돌려 쥐었다. 다른 한 손을 휘적휘적 내저으며 사람들이 길 열어주는 틈으로 빠져나갔다.
춘삼이 아재가 내 부러진 손목을 맞추었다. 그리고 할매 머리에 매고 있던 광목천을 달라고 했다. 사립짝 나뭇가지를 뽑아 부목으로 대어 묶었다.
손목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런데 할매가 된장을 가져와 얼굴에 발랐다. 불로 지지는 것처럼 화끈거리다가 따끔따끔 아팠다.
사립 안으로 들어섰다. 마실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수군거렸다.
이때 황산강 강둑 안 머들 논에 갔었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내가 댓돌을 밟고 작은방에 들어서려 할 때였다.
우악스런 손이 뒷덜미를 잡더니 나를 돌려세웠다. 남방 토인처럼 시꺼멓고 넙데데한 얼굴이 눈에 쑥 들어왔다.
무섭고 서러워서 또 울음을 놓았다.
“아~가 이 지경인데 그라고 가따꼬? 사음 영감이고 나발이고, 내 지 주기고 내 죽는다.”
펄펄 뛰며 지게를 처마 아래 내팽개쳤다. 아버지가 시퍼런 얼굴로 지게 작대기를 거머쥐고 사립짝으로 나섰다.
춘삼이 아재가 사립문을 막아섰다.
“이보게 또쭐이. 가더라도 좀만 있다가 나랑 같이 가세. 종우 손목은 잘 맞추었으니 곧 날 거고.
자네 부치는 안골 박양산이 논. 김 주사 아배가 그 논 사음 영감 아닌가. 지금 가서 한마디 했다가는 그 성질머리에 당장 내년에는 논 뗄 것 아닌가.
아니, 아니, 잠만 들어보게, 그것보다 사음 영감이 종우 그렇게 뒷덜미 잡고 온 건 내 보메난 나한테 손목 접골하라고 델구 왔더구만. 사음 영감 말 들어봉께 정말 그려.”라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또 길길이 날뛰었다. 마실 사람들이 나서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춘삼이 아재 말을 듣고 엄마랑 할매도 그렇게 느꼈는지 아버지를 말렸다.
그제야 아버지도 말귀를 조금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날 작은 방에 밀어 넣었다. 좀 누워있으라고 했다. 아랫목에 누웠다.
밤송이에 찔린 얼굴에 할매가 짠 된장을 발랐다. 상처 난 곳이 얼얼했다. 부목을 댄 손목이 또 우릿우릿 아팠다.
밤나무에서 떨어지며 얼굴이랑 손목만 다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무릎도 까진 것 같았다. 어깨 어림도 나뭇가지와 밤송이에 대구 찔린 듯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