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을 제외하고 실크로드를 떠올릴 수 없다 .
중국 측 교역로는 장안에서 돈황을 거쳐 천산 산맥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이것도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로 나눠진다. 이러한 구분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같은 자연적인 한계가 강한 곳을 최대한 피해가면서 형성되었다. 초반에는 천산 산맥 남쪽을 지나는 길을 천산남로로 칭했는데, 인근 도시국가들이 물 부족과 사막화로 쇠퇴하고 북방 민족이 이곳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천산 산맥 북쪽 교역로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이를 천산북로라고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타클라마칸 사막 자체가 당대의 현지 언어로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이란 뜻이다.) 게다가 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는 도적 떼에게 습격이라도 당하는 순간엔 가진 물건을 모두 빼앗기기 십상이었다. 모래바람에 오아시스 마을 전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찾지 못하면 기다리는 건 죽음이었다.한마디로 비단 장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사막길을 건너왔다는 것이다.
내지에 가까운 동북방초원 알타이산맥과 가까운 투르판은 지리적 영향으로 여러 민족과 종교가 혼재되어 공존하다 위구르인들에 의해 이슬람교문화권이 되었다. 반면 돈황은 이곳에 정착한 한족과 내지의 중원과 교류하면서 불교문화권으로 남게 되었다.
돈황은 그로 인해 서역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불교경전, 불화, 문서 들을 수용하여 보급하는 불교의 포교지였으며, 중국에서 인도로 향하는 구법승들의 출발지 역할을 했다.
황하와 합류하는 渭水(위수)를 넘어 天水(천수)를 지나면 감숙성의 성도 蘭州(난주)에 이르고 난주의 황하를 건너면 河西(하서)지방이다.
여기서부터 기련산맥 기슭을 따라 실크로드의 길목인 하서주랑(河西走廊)의 도시 무위,장액, 주천,안서를 지나 돈황에 이른다.
하서주랑(河西走廊)은 하서지역인 난주에서 가욕관에 이르는 좁고 긴 약 800km의 통로로, 남쪽의 강족(羌族)과 북쪽의 흉노(匈奴)의 연결을 차단하고 서역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길목이다.
장안에서 돈황까지는 1800km, 두달이 걸리는 거리다.
돈황부근에서 기련산맥의 끝자락과 곤륜산맥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크로드가 개척되고 돈황은 서역(西域) 북로(北路)로 가던, 서역(西域) 남로(南路)로 가든 사막을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쉴 수 있는 도시이며 전초 기지로서 각광받았다.
고대 중국의 국경 도시였기에 중국과 다른 나라가 만나는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장안(長安)을 떠난 사람들은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장을 세운 후 기후, 적국의 상태 등을 파악한 후 남로나 북로로 갈지 결정하게 되었다,
또 서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중국의 첫 도시이기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여기에 머물면서 장을 연 관계로 진귀한 물건과 돈이 넘쳐나는 도시가 되었기 때문에 ‘모래의 마을’(沙洲)에서 ‘성대하고 찬란한 마을’(敦煌)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1. 명사산
명사산(鳴砂山)은 돈황시에서 남쪽 방향으로 5㎞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높이 1,600m산으로 모래와 암반으로 이루어저 있다.( 산전체가 모래로 된 산이라 생각했는데, 산위에 모래가 덮혀있는 산이란다.) 그 크기는 동서40㎞, 남북20㎞, 면적은 약 800㎢정도이다. '명사(鳴砂)'는 산 언덕의 모래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면서 나는 소리가 마치 울음 소리 같다는 데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 명사산은 실크로드 관광 명소 가운데 한 곳으로, 관광객들은 모래썰매를 즐겨타며 모래능선 아래에선 낙타행렬이 길게 늘어서 천천히 움직인다. ( 낙타행렬이 길어 신호등도 만들어 두었다. 여긴 낙타만 천마리가 있단다. 낙타의 수명은 40-50년 )
명사산 동쪽절벽에 돈황의 상징인 막고굴이 조성되어 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 일몰 정경이 대단히 아름답다는데 일정이 도와주지 못해 아쉽다.(일몰시 산능선에 올라 월아천을 내려다 보는 풍경이 일품이라는데)
낙타위에서 사진 찍으려니 쉽지가 않다
영평아부지와 나
낙타일행이 고개아래를 돌아 나가는 지점에서부터 전망이 좋아졌으나 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 사진은 커녕 눈도 뜨기 어려웠다.
능선에서 월아천을 내려다 보려면 부드러운 모래위를 힘겹게 올라야 한다.
2. 월아천
월아천(月牙泉)은 명사산 안에 있는 초생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로 남북길이가 약 150m, 폭이 50m 정도다. 서쪽에서 동으로 갈 수록 수심이 깊고, 제일 깊은 곳은 5m 정도인데, 물색이 맑고 파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월아천의 발원지는 돈황 남쪽에 솟아있는 곤륜산맥의 눈 녹은 물이 만든 당하(黨河)라는 이름의 강으로 이 물이 지하로 흘러 비교적 저지대인 이곳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매년 광풍이 불어도 이곳 만큼은 좀처럼 모래에 덮이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졌고, 월아천 가에는 칠성초(七星草)라는 풀이 자생하고 물 속에는 철배어(铁背鱼)라는 물고기가 산다고 하는데, 두 생물은 불로장생의 약이 된다고 한다. 아쉽게도 최근들어 당하(黨河)와 월아천의 사이가 끊겨져 인공적으로 물을 대고 있다.
월아천은 어린왕자의 말이 생각 나는 곳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이게 웬일
월아천 앞에 공사중이라 전망을 가리고 있다.힘들게 모래능선위로 오를 이유가 사라졌다.
첫댓글 수 년 전 돈황 방문 후 언젠가 또 다시 가보는 것이 꿈 이었기에 이 번 실크로드 트래킹 팀에 망서라지 않고 합류를 하게 되었지요. 옥 대장의 자세한 설명을 읽고 나니 돈황의 멋이 더욱 실감나게 연상 나게 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돈황 체류시간이 짧아 돈황 인접 지역에 있는 鳴沙山,月牙泉,莫高窟 세 곳 밖에 들리지 못한 것 이었습니다. 돈황시 내의 숨겨진 문화들과 200키로 반경 내의 유적들, 敦煌西晋壁画墓,瓜州榆林窟,敦煌城,镇阳城遗地,敦煌阳关景区,玉门关,地质公园 등을 다시 볼 수 없었던 점은 매우 아쉬웠고 다시 여유 있게 개인 트래킹 일정을 잡아야 할 가 봅니다.
여유있게 개인 트레킹 일정 잡자는 말이 반갑기 그지 없네요.
명사산과 월아천은 온통 짙은 구름낀 날에다 월아천입구 공사 바람에 많이 실망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