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시민 융합 환경학교 제2강
이종진 물 해설사, ‘익산시 치수의 변천사’ 주제로 강의
지난 10월 4일 저녁 7시 유스호스텔에서 2022년 시민 융합 환경학교 제2강이 있었다. 이날 강의는 이종진 물 해설사께서 ‘익산시 치수의 변천사’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이종진 물 해설사는 강의를 통해 ‘익산 황등저수지의 역사, 과거 익산지역 저수지 현황, 수리조합 현황, 익산지역 수리사업 진행 과정, 만경강의 변화 과정’ 등 다양한 내용으로 익산지역 물 역사에 관해 설명하였다. 이종진 물 해설사는 이리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농지개발조합(한국농어촌공사 전신)에 입사하였다. 직장에 다니면서 각 종 수리사업에도 참여하였다. 퇴직한 후에는 ‘만경강의 숨은 이야기’라는 책도 지필하였고, 농어촌공사에서 양성한 물 해설사 교육도 이수하였다. 지금은 ‘만경강N’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만경강과 익산 물역사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으며 강연을 통해 익산 수리 역사를 알리고 있다.
다음은 이종진 물 해설사께서 강의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치수보다 이수라고 하는 말이 더 좋다. 이수는 ‘물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다. 한국댐학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삼국시대에 김제 벽골제, 정읍 눌제, 익산 황등제, 제천 의림제, 밀양 수산제 등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을 호남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황등제 아래를 호남이라고 한 설이 있고, 김제 벽골제 아래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금강을 과거에 호강이라고 불렀기에 금강 아래를 호남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익산에 있었던 황등저수지(황등호, 황등제)는 1670년에 작성된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국 중 3호라고 나온다. 황등저수지는 원광대에서 황등쪽으로 나 있는 23번 국도 오른쪽에 위치한다. 지금은 요교제수문과 요교비, ‘만추의 서정’이라는 농민상이 세워져 있다. 요교비는 임익수리조합장 등정관태랑(후지이간타로)이 요교제를 증축할 당시 부근 땅속에 묻혔던 석비가 출토되어 전북농조황등출장소에 보존되어 오다 현 위치로 이설한 것이다. 1780년(정조 4년) 무너져 내린 제방을 수축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농민상은 농어촌공사에서 기념 동상으로 세운 것이다.
황등저수지는 1861년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명기되어 있다. 1872년, 1911년에 제작된 지도를 보면 황등저수지를 요교지라고 표시하고 있다. 현재 황등저수지 터 주변에는 옛 지명이나 시설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석수문(독수문), 어곶(어곳), 몽곶(몽환), 내곶(내화), 외곶(회화), 도선마을 등이 옛 이름 그대로다. 곶은 바다나 호수 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육지의 끝부분을 말한다.
황등저수지 수원은 삼기 쪽에 내려오는 기양천과 금마 미륵산에 내려오는 탑천으로 되어 있다. 황등저수지 수원만 가지고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에 부족했다. 1911년에 임익수리조합(1909. 2. 8. 설립. 황등저수지 아래부터 전군도로까지 관리)은 신흥동에서 터질목을 지나 황등저수지까지 연결된 도수로를 개설하여 고산천과 전주천 합류 지점에서 취수하여 삼례 비비정을 지나 신흥동(사랑의 동산교회 입구 부분)으로 연결된 수로로 흐르는 만경강 물을 공급했다.
터질목은 만경강 물을 황등저수지로 공급하기 위해 만든 지하 도수로가 지나는 곳이다. 터질목 전까지는 개방된 수로로 오다가 지대가 높은 터질목에서는 굴을 파서 수로를 만들었다. 물이 터졌다고 해서 터질목이라고 부른다. 농어촌공사에 근무할 당시 터질목 수로 입구로 토사가 흘러내려 준설공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지하터널에 들어가 본 경험이 있다. 도시개발 전에는 터질목을 지나는 수로가 개거로 되어 있어 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로개설(하나로, 어양동주민센터 앞)로 지하에 묻혀 볼 수 없게 되었다. 1910년대 처음 터질목 도수로가 개설될 때에는 만경강물이 흘렀지만, 1990년대부터는 방향이 바뀌어 금강물이 흐르고 있다. 황등저수지는 1935년 경천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명을 다하게 되었고, 현재의 모습으로 개답(開畓)되었다.
황등저수지는 저수량 1,900만 톤이다. 몽리면적도 4,800정보나 된다. 근방에서 가장 큰 저수지가 신흥저수지다. 신흥저수지 저수량이 100만 톤 정도 되니까 19배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신흥저수지 물은 매일 10만 톤을 대간선수로에서 취수하여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사용된다. 하루에 10만 톤 정도 사용하니까 10일에 한 번 완전히 순환된다고 할 수 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가 익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별 노력이 없었다. 2020년에 와서야 황등저수지를 일부분을 발굴하였고, 그 결과를 가지고 학술대회까지 하였다. 발굴 조사결과 저수지가 기원전 300년경에 축조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벽골제가 서기 330년경에 축조되었다고 하니까 630년 일찍 만들어졌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제 벽골제 축제는 국내 유명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밀양에 있는 수산제는 역사공원으로 만들어져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정읍 눌제는 정자도 있고, 알림비도 설치되어 있다. 황등저수지는 그동안 안내문도 없다가 필요성에 관해 주장하니까 최근에 와서야 익산시와 한국농어촌공사가 ‘황등호 안내문’을 설치하였다.
익산, 군산, 서천에서 농업용수로 금강물을 이용하고 있다. 1967년 강경양수장이 건설되면서 도수로를 통해 금강물을 망성, 낭산, 함열, 함라, 황등, 서수까지 농업용수로 공급하였다. 강경에 양수장이 설치된 것은 강물의 염도 때문이다. 금강하구둑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바닷물이 강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염도가 낮은 강경에 설치한 것 같다. 현재의 강경양수장은 민원의 이유로 자리를 옮겨 망성면에 새로 만든 것이다.
1990년에 금강하구둑과 배수문이 만들어졌다. 금강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금강물을 염도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포양수장과 서포양수장을 통해 금강물이 익산, 김제, 군산지역 평야에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만경강 물만으로 넓은 들판을 급수할 수 없어 많은 양의 금강물을 사용하고 있다. 나포양수장 취수한 금강물이 익산도수로를 통해 급수한 해는 1995년부터였고, 서포양수장 물이 옥구도수로를 통해 급수 것은 2008년부터다.
군산 나포에서 양수한 금강물은 함라, 황등, 탑천, 터질목, 만강경, 김제 백구를 지나 황산까지 연결된 익산도수로를 통해 농업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나포양수장에서 취수된 금강물은 함라양수장과 황등양수장을 통해 익산도수로로 군산시 나포, 서수, 대야 임피 일대와 익산시 웅포, 함라, 황등, 삼기, 삼성동, 오산면 일대 농경지에 농업용수로 공급된다. 만경강 아래를 횡단한 익산도수로는 백구양수장을 통해 김제시 백구, 용지, 황산면 일대 농지에 용수를 공급한다. 익산도수로는 일부 구간이 개방형으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 구간이 땅 아래 매설되어 있어 전체 구간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군산 서포양수장에서 취수한 물은 옥구도수로를 통해 동군산지역과 서김제 지역 들판에 농업용수로 공급된다.
금강물의 양수량은 초당 69t 정도 된다. 금강에서 나포, 서포, 화양(서천) 양수장을 통해 농업용으로 이용되는 물은 연 2억3천만 톤으로 대아댐 저수량의 4.02배나 된다. 충남과 금강하구둑 철거문제로 갈등이 있는데, 충남 서천지역에서도 화양양수장을 통해 연 3천만 톤을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의 만경강은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구불구불해서 뱀 사(蛇)자를 써서 사행천이라고도 불렀다. 일제가 1925년부터 38년까지 하천 개수공사를 하면서 만경강이 직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는 구불구불한 강을 직강화하기 위해 새로 여러 첩로(捷路)를 만들었는데, 삼례 비비정에서 동자포까지 26km 구간을 16km로 단축했고, 목천포 구간 4km를 1km로 단축했다. 만경강 주변 마을(춘포)에 가면 당시 개수공사로 단절된 강이 호수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경강 길이는 100.96km다. 이 중 77.4km는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하천이다. 만경강과 관련된 자료를 보면 길이가 통일되지 않고 여러 가지로 나오는데, 100.96km가 맞다. 만경강 발원지는 밤샘이다. 만경강 최장발원지는 막은데미샘이다. 현재 만경강 발원지라고 알고 있는 밤샘은 그 위치가 잘못되었다. ‘만강경 발원샘’이라고 안내판이 있는 곳은 밤샘이 아니고 막은데미샘이 맞다. 지명 표시가 잘못되었다.
1870년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는 만경강을 사수(泗水)라고 하였다. 1900년대초 일제부터 만경강(萬頃江)이라고 하였다. 만경강은 밤샘과 막은데미샘에서 발원하여 군산 회현면 월연리 미제천 말단까지 이른다. 만경강은 호남평야의 젖줄이다. 호남평야 넓은 들녘이 만경강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익산은 만경강 물을 생활용수로도 사용하고 있다. 전북 인구 64%가 만경강 유역에서 살고 있다. 익산 인구 83%가 만경강 연안에서 거주하고 있다. 만경강은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제일 먼저 개발된 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