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1일 ‘MBC 10대가수 가요제’에서 대상인 최고 인기가수상을 받았다. 이름이 발표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절친한 친구 이효리의 부축을 받고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이수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겨우 이 한 마디를 했다. 앙코르 곡인 ‘덩그러니’를 한 소절도 부르지 못한 채 계속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왜 그렇게 울었는지 물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떠올랐고 감사 드린다고 되뇌었지요. 주마등처럼 힘들었던 지난 기억들이 스쳐갔습니다. 그 순간이 지금까지 제가 기도했던 결정체였습니다.”
이수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숨이 막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뜻밖에 너무 큰 상을 주셔서 팬들과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라며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수영은 1999년 ‘I Believe’로 데뷔했다. 아름다운 영화 ‘러브 레터’를 연상시키는 이 곡은 한편의 영화같은 화면과 그에 어울리는 이수영만의 신비로우면서도 고운 목소리로 금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어 ‘Never Again’‘스치듯 안녕’ 등 역시 멋진 뮤직비디오와 함께 그는 사람들에게 ‘노래 잘하는 여가수’로 강하게 각인됐다.
“모든 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2001년 발표한 3집 역시 심혈을 기울인 만큼 큰 사랑을 받았고 2002년에는 세계적인 명배우 성룡과 듀엣곡을 부르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시니까요.”
이수영은 고교 3학년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한 라디오 프로의 ‘뽐내기 대회’에서 노래를 불러 대상을 받은 뒤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키워온 그는 일종의 ‘가수 수업’으로 가스펠을 즐겨 들었다.
“당시 가스펠은 단순한 음악이었습니다. 제 귀에 메시지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외국은 가스펠을 일반 대중 무대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교회에 가야만 가스펠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몇번 나갔습니다.”
이수영은 하나님이 그렇게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어느 순간부터 가스펠을 부를 때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가 이수영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그는 고교 졸업 전까지 6개반을 돌며 전도를 할 정도로 ‘열성 성도’가 됐다.
“지금 그 친구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는 잘 몰라요. 당시 저와 함께 영접 기도를 했기 때문에 언젠가 하나님께서 저를 찾으신 것처럼 친구들에게 다가가실 것이라고 믿어요.”
이름이 알려지고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잠시 신앙생활을 게을리 했던 적도 있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저를 그냥 두지 않고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좀 늦게 오신다 싶으면 ‘하나님,절 좀 잡아주세요’라며 어리광을 부리기도 합니다.”
또 주위에서 그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독실한 신앙인이면서 절친한 친구인 가수 이지훈이 이수영을 데리고 새벽기도회에 다니며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수영은 “지훈이가 출석하는 교회가 녹화장에서 가까워 일할 때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시간도 맞추기 힘들 때면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펴놓고 혼자 큐티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꼭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너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묵상해요.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져요.”
이수영은 “하나님은 부모님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와 위로해주시는 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청소년기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냈다. 그러나 수영에게서는 그늘이 없다. 이유는 하나님이 옆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제 당분간 이수영의 얼굴을 화면에서 볼 수 없을 것같다. 지난 12일 리메이크 앨범 ‘The Classic’을 발표한 그는 다음달 7∼8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리는 아듀 콘서트를 끝으로 국내 활동을 접고 일본과 동남아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 “주 안에서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잖아요. 잊지 않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실 줄 믿어요. 여러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