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각 정보 (청각은 사실 영화나 에니메이션, 게임에서 더 효과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지우개가 타는 것과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숨을 들이마시면 냄새가 났기에 재빨리 조금 들이마쉬고서 서서히 내뱉었다. 슥, 들이마시고, 후우우우우우우, 뱉고를 반복하는 주기는 10초 정도였다.
신은 아무런 표정 없이, 분주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또, 옆에서 자리를 깔고 장사를 시작하는 잡상인들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상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 사람들의 발굽 소리, 행인에게 눈길을 권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길거리 음식들의 냄새는 시고, 맵고, 짜고, 고소해서 배부른 사람을 배고프게 만들 정도로 맛있었다. 신은 킁킁거리더니 카할을 올려보았다.
2. 통각, 촉각, 뜨겁거나 차가운 느낌
그 주기를 열 다섯 번 정도 반복하자, 머리 뒷 부분이 돌뿌리를 걷어찬 발처럼 얼얼했다. 이제는 숨을 참기가 어려웠다. 눈이 비누가 들어간 것처럼 따가왔고, 싹 난 감자를 먹을 때처럼 입이 아렸다. 그러다가 연기 사이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보았고, 나는 잽싸게 불을 끄려고 했다. 그러나 가스 렌지는 열로 달구어져 있었고, 나는 내 손이 먹기 좋게 익는 것을 느꼈다.
3. 발췌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안녕하신가, 친구. 이렇게 편지로 보지만, 오랜만이라는 말을 하고 싶네.
음, 지금은 시간이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 이번 8월에 자네가 있는 그 곳으로 돌아간다네. 아니, 도망간다네. 내가 이 마을에서 실수를 조금 했거든. 날 맞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게나.
그럼 우리 우정 영원히 변치 말길.
- 나레이션따위 필요 없다.
4. 생략
"요즘엔 말이죠, 병에 걸리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어요. 글쎄……"
크릭컴은 아까와 달리 매우 상냥했다. 붕대를 감는 것을 지켜보는 카할이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지 이런저런 사담을 늘어 놓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카할은 지루한 그의 가정사와, 그의 부유한 손님이야기, 여러가지 치료 경험에 대해 듣고 있어야 했다. 크릭컴은 봉사하는 셈 치고 붕대를 감아주는 것이니 돈은 필요없다고 인자하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카할은 고맙다는 말도, 사양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썹 사이에 잔뜩 주름을 잡고 있었다. 결국 기다림 끝에 그 커다란 열쇠는 겨울 산 꼭대기처럼 하얀색이 되었다.
"다 되었습니다."
5. 장황한 서술, 묘사
느긋하게 걸어가는 카할의 품에 안겨있던 것도 그런 종류의 열쇠가 분명했다. 그러나 카할은 처녀가 아니었다.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델름트리올력 887년 봄 『흠럿』 지방의 큰 도시 『퓌벌』의 북쪽 한 골목에 카할의 휘파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배경에 대해 신경쓸 필요는 없다. 델름트리올력이 뭔지, 887년이란 것이 무슨 의미인지, 흠럿은 어디고 퓌벌은 어딘지 설명하려면 중요한 내용을 놓치고 만다. 네키알이나 이런 열쇠의 유래따위도 알 필요가 거의 없다.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소녀의 상징인 열쇠가 카할의 품에 들려 있었고 그가 남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느리게 걷고 있었다는 것도 염두할만 하다. 덧붙여, 그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요컨대, 카할이라는 남자가 커다란 열쇠를 품에 싸안고, 휘파람을 불며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카할이라는 남자가 커다란 열쇠를 품에 천조각으로 싸들고 휘파람을 불며 한 걸음 한 걸음 느린 박자로 걸어가고 있었다.
6. 앞 페이지를 다시 보게 하기(능동적 감상)
7. 그 밖에도 서술에 있어서 후에 밝혀질 비밀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를 들 수 있다. 후에 주인공이 괴물인 사실이 밝혀지지만,
"그는 걸어갔다."
라고 한다고 해서 그가 괴물이 아닌 것은 아니다. 굳이
그 괴물이 걸어갔다.
라고 한다면 그는 나중에 괴물로 밝혀지는 반전의 효과를 누릴 수 없다. 이 것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그 이상한 짐승을 '그'로 묘사하는 것에서 본을 뜬다. 다만, 나는 그 소설을 다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짐승의 정체는 모른다. 미싱링크랑 무슨 관련이 있다지만, 잘 모르겠다.
소설을 쓰면서 이런 걸 쓰지 않는 사람은
"영화, 만화, 게임, 소설 중에서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소설 밖에는 없어서 소설을 쓴다."
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아닌가? - 토감란 참고.
사람을 묘사할 수 있는 게, 무슨 향기, 무슨 색 눈동자, 무슨 색 피부, 무슨 색 머릿카락, 수염 여부, 근육질, 거한, 작은 사람, 나이, 성별, 이름 따위 뿐인가?
인간이 아바타인가? 그런가? 그래서 눈동자가 붉은 색인 게 판타지라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건가? 머리카락이 파란 색인 게 판타지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건가? 앙? 그런 건가?
그래서 처음에 인물을 묘사할 때 그의 복장까지 묘사해 놓고는 다시는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아바타니까 옷을 갈아입을 일도 없겠지. 그런가? 포켓몬스터에서 지우의 옷이 바뀌지 않듯이?
능동적 감상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책을 덮어버리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투드를 읽을 때는 책을 덮을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투드는 소설이다. 하지만, 당신들의 글은 소설이 아니다. 영화, 만화, 게임이다.
무엇보다도 서술(혹은 설명)이라는 걸 하기가 다른 매체보다 글이 쉽죠. 다른 매체는 주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 쉽겠고요. 작가의 개입 없이 카메라가 보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말예요.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처럼, 온전히 그 카메라가 보는 것들을 독자의 기억속의 상상력에서 끌어내는 것도,
첫댓글 피s가 인상적 이네요. 꿈? 꿈 아닐까요 ? 저는 영화 만화 게임 현실보다 효과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건 꿈이 아닐까? 생각 해요.
덧. 사람마다 느낌이 있죠? 아마도 그 느낌을 표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느낌이 말 이나 이름에서 나온다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 이름으로 무언가를 표현 하는 것 .. 그런 것이 많죠. 주저리 주저리 잡 생각 中
덧붙이자면, 위의 일곱가지를 영화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영화로 표현하는 건 가능하지만, 소설이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소나기님, 그런 것들은 제 생각에는 영화로 표현해도 소설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요즘 뮤직비디오같은 걸 보면 나름대로 꿈같은 것도 많더군요. 한 가지 추가하자면, 이론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론이라는 건 영화로 표현하긴 힘들죠.
무엇보다도 서술(혹은 설명)이라는 걸 하기가 다른 매체보다 글이 쉽죠. 다른 매체는 주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 쉽겠고요. 작가의 개입 없이 카메라가 보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말예요.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처럼, 온전히 그 카메라가 보는 것들을 독자의 기억속의 상상력에서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지요. 또, 시간의 조절이 가능합니다. 슬로우 모션같은 어설픈 방법이 아니라도, 책장을 넘기는 건 독자기 때문에 얼마든지 시간을 느리게 할 수도 있죠. 예를 들면, "그가 그 모든 것을 하는데에 겨우 0.1초가 걸렸다."라고 서술하는 것 말입니다.
오 그렇죠. 소설만의 메리트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 그 예로 저는 아무리 상상해도 눈새에서 륜에게 여신이 강림할 때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 생각되더군요. 가깝지만 멀다.
동감. 하지만 어렵다는. ;ㅂ;
그러고보니 소나기님이 말씀하신 느낌이라는 것도 나레이션의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군요 :)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