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동서양의 ‘宮’ 이미지를 아파트에 옮겨오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함과 조선시대 왕가의 품격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온다면? 실크 커튼이 우아하게 드리워지고 선비의 기품이 전해지는 민화 벽지가 도도하지만 품격을 담고 있다. 세련된 귀족스러움이란 이런 것임을 조용히 설명하는 듯하다. 18세기 유럽과 조선시대의 ‘궁’(宮)을 재해석, 현대공간에 맞게 연출한 현우디자인, 그 매력을 짚어보았다.
패브릭의 표면 질감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햇빛을 은은하게 투과시키는 속커튼이 고급스럽다. 프랑스 브랜드 노빌리스(Nobilis)에서 활동하는 이은일 씨의 ‘황제’라는 작품. 마닐라 삼과 비슷한 ‘아바카’라는 식물로 짠 천연 직물이다. 옆으로 열리고 닫히는 패널 스크린으로 설치했다.
실크벨벳 소재의 전형적인 부드러움과 우아한 실루엣을 한눈에 보여주는 블랭킷은 리처드 피셔 제품.
거실과 침실이 이어지는 곳에 커튼을 설치하여 경계를 짓고 있다. 침실과 서재가 자리하는 개인적인 영역과 거실이라는 공적인 영역을 구분한다는 의미다. 간혹 이곳에 접이식 문이나 포켓형 도어를 설치하곤 하는데, 패브릭을 활용하면 훨씬 부드럽고 풍성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커튼은 프랑스의 패브릭 디자인 회사 ‘세다’(CEDA)의 브랜드인 ‘베렐 드 벨발’(Verel de Belval) 제품이다. 100% 실크 소재로 18세기의 고급스러운 색감과 화려한 플라워 패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양쪽 벽면에 부착된 벽걸이형 조명등 역시 18세기에 가장 유행했던 디자인을 재현한 것이다.
‘세련된 고풍스러움’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소리 없이 설명하는 듯하다.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 있는 침실을 응용,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다. 색상은 실크 소재의 골드와 아이보리 두 가지 톤으로 절제했다. 대신 커튼형의 침대 캐노피, 손누비의 화려함이 전해지는 베드 스프레드, 실크로 감싼 헤드보드, 단정한 느낌으로 장식을 더한 베개와 쿠션 등 디자인과 패턴만큼은 다채롭고 화려해 궁전 침실의 호화로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좌변기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욕실에 파티션용 커튼을 달아보는 것은 어떨까. 주름져 흘러내린 듯한 곡선이 사각형 욕실 타일의 딱딱한 표정을 부드럽고 여성스럽게 바꿔놓았다.
온화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한층 더하고 싶다면 단연 패브릭 벽면을 선택할 일이다. 오래된 전통과 고품질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노빌리스 원단으로 벽면을 마감했다. 딱딱한 시멘트 벽에 패브릭을 바로 부착할 경우 원단이 울 수 있기 때문에 폭신한 속통을 대고 그 위에 원단을 시공한다. 실과 실이 직조되면서 생겨나는 특유의 표면 질감 덕분에 패브릭은 조명 아래에서 입체감이 더욱 확연해진다. 같은 단색이라도 벽지와 달리 도톰하고 볼륨 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마당에 내리쬐는 볕을 은은하게 투과시켜주는 한옥의 한지 창호, 프랑스 브랜드 ‘르 크랑’ 제품은 우리나라의 한지 창호를 떠올리게 한다. 100% 말총으로 만든 속커튼이 그것이다. 여느 패브릭보다 실과 실 사이의 틈이 많고 커서 햇빛 투과율이 뛰어나다. 실크는 직사광선에 녹을 수도 있지만, 이 제품은 천연 말총을 그대로 사용한 덕분에 빛에 강한 데다 물빨래가 가능해 관리가 수월하다. 긴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듯 자연스럽게 떨어져 내리는 실루엣은 인조 소재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