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렬아! 송렬아, 뭐하니
한철수(시인. 좋은아버지가되려는사람들구리모임직전회장)
여름 따가운 햇살이 오늘도 송렬이 방 창을 비추고, 그다지 이르지 않은 시간에 송렬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원래 잠꾸러기는 아니었는데 오늘 송렬이는 느린뱅이 잠꾸러기가 되었다. 어제 아버지와 엄마가 부부동반 모임으로 하룻밤을 외할머니의 보살핌으로 밤을 보내서 그런가 눈곱은 돌 반지만큼 끼었고, 간밤 흘린 침들이 입가에 솜사탕을 만들었다.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화장실로 향한 송렬이의 옹알이 소리는 평소보다 컸지만, 손목 박수는 힘이 없었다. 평소 아침처럼 깡통에 쉬를 하고, 변기에 앉아 응가를 본다. 밥을 달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외할머니는 송렬이의 몸짓에서 소리에서 그 의미를 알아채고는
“알았어. 이 녀석아! 밥 달라고…. 밥.” “잉거, 잉어, 잉어, 흐흐흐.”
송렬이는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싱겁게 웃으면서, 발바닥을 친다. 송렬이가 기분이 가장 좋을 때 하는 모습이다. 외할머니는 솜사탕과 돌 반지를 떼어내고는 고양이세수를 해 준다. 송렬이의 지금 분위기로는 도저히 샤워나 목욕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기에….
외할머니는 송렬이를 식탁에 앉히고 대접에 그것도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큰 대접에 된장국과 함께 밥을 말아 먹인다. 송열이의 기분은 최고다. 게 눈 감추듯 밥한 대접을 뚝딱 처리한 송렬이는 컴퓨터 앞으로 간다.
“아! 잉어, 잉어, 잉어…. 으응으응.”
두 눈을 부릅뜨고, 입속에 들어갔던 손가락을 꺼내 모니터에 손을 댄다.
“야! 이 녀석아. 더러워 죽겠네.…. 이나 저나 이를 어떻게 켠다지.”
외할머니는 침이 잔뜩 묻은 모니터를 닦으며, 도저히 이리궁리 저리궁리를 해도 컴퓨터를 켤 수가 없었다.
송렬이는 발가락으로 본체의 파워를 작동시켰고, 화면이 나타나자 침이 잔득 묻은 손가락으로 화면의 한 부분을 가리킨다. 외할머니는 난감이다.
송렬이는 큰 아기이다. 내 누이의 아이이기도 하다. 21년 전 이목구비 잘생긴 사내아이로 태어났지만 돌을 전후해 뇌성마비 증상이 일어난 후 지금껏 엄마의 손에 이끌려 자란 덩치가 큰 아기이다. 누이는 그 후로 얼굴에 화장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송렬이의 뒷바라지로 50을 바라본다. 늘 ‘좋아지겠지. 그렇게 되겠지.’ 희망을 안은 지 20년이 넘는다. 자형의 월급봉투 대부분을 송렬이 자라는 여건에 맞추느라 부부싸움도 잦았다. 송렬이와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는 특수학교 입학시켜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를 마치는 데만 15년이 걸렸다. 지난 3월 졸업을 한 뒤 송렬이는 갑갑증으로 짜증을 내기가 일쑤라 누이는 송렬이의 그것을 받아내느라 요즈음 통 얼굴보기가 어렵다. 누이내외의 모처럼 1박 외출에 어머니는 수호천사로 자청하셔서 송렬이와의 하룻밤을 보낸 풍경이다.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 송렬이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건지 등등. 어머니도 답답, 전화를 받는 나도 답답,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일렀지만 칠순을 넘긴 어머니가 쉽게 접근은 만무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어머니는 진땀 속에 클릭에 성공했다.
이렇게 송렬이가 할머니와 씨름을 하게 된 것은 그 아이와 같은 아이들이 특수학교를 마치고 나면 저 큰 덩치를, 저 큰 아기를, 보듬고 안고 엎을 수 없는 아이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송렬이의 동창 중 그나마 나은 아이들은 직업학교 혹은 다른 재활기관으로 이관되어 나름대로의 청년시절을 보내지만, 송렬이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그저 가족이란 테두리 속에서 아름다운 아이로 인식되고 그렇게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희생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되어야 한다. 모처럼 전화를 한다. “송렬아! 송렬아. 뭐하니?” “잉어. 잉어. 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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