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色 - Vltramarine Blue의 마술사 이브클라인(Yves-Klein)
니스 출생. 누보 레알리슴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1958년 ‘허공’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고, ‘인터내셔널 클라인즈 블루’라 이름 지은 푸른 하늘, 깊은 바다의 색조를 즐겨 썼으며, 금박(金箔)·불·물·공기 등 그리스의 철학적 원소를 사용하였다.
또 페인트를 칠한 여자들의 나신(裸身)을 캔버스에 굴려 그림을 그렸고, 그 자신이 2층집에서 뛰어내리는 ‘허공의 극장’을 연출하는 등 ‘예술의 혁명’을 지향한 기행(奇行)으로 짧은 생애를 마쳤다. 1995년 1월 말까지 독일의 쾰른(루트비히 박물관)과 뒤셀도르프(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미술관)에서 열린 이브 클라인의 1차 순회전시는 그의 실험정신을 그대로 전한다. 작품활동은 불과 8년이나 그의 이념과 작업은 요셉 보이스를 비롯한 현대의 행위예술·팝아트。미니멀리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르망, 세자르, 소스노 등과 함께 ECOLE DE NICE(니스派)의 주요 작가이다. 짙푸른 파란색으로 주로 작업하여 그의 파란색은 I.K.B (International Klein Blue)로 불린다.
- 누보레알리즘의 대표작가인 이브클라인은 그가 직접 만들어낸 특유의 울트라 마린 블루인 1KB(INTERNATIONAL KLEIN BLUE)로 매우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 그는 20세를 전후로 동양의 유도와 신비주의 교단의 천지개벽설에 경도되고,이러한 사실응 이후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청색의 모노크롬,나체의 여성의 몸에 물감을 칠해 그 흔적을 찍어내는 인체측정,실체 인체를 석고로 떠내는 작품등이 대표적이며,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때까지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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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에서 보이는 이브 클라인의 작품은 인간의 날고자하는 욕망을 잘 나타내준 행위이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이미 인간들이 허공에서 자리를 펴고 허공에서 식사를 즐기며 허공에 떠도는 인류의 서로 다른 문화들을 혼합하고 재생산 해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브 클라인의 상상력은 오늘날 별로 유별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공간은 신체를 들러 싼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며 동시에 자유를 추구하고자 희망했다. 이브 클라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가 있었을까? <허공>과 <비물질>에 대한 그의 관심은 물질적으로 제한되기 쉬운 예술의 또 다른 출구를 제시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불(火)과 허공 특히 하늘은 그의 상상력이 나래를 별칠 수 있는 소재들이었다. 특히 하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브클라인 불루우(IKB)라는 색이름이 만들어 지기까지 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브 클라인, 1960년 11월 27일 하루만 발행된 신문, 여기에 이브 클라인의 “ 허공으로”가 실렸다.
1928년에 니짜(Nizza)에서 태어나서 34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감한 그의 운명적인 삶 또한 그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열정을 강한 향수처럼 우리 기억에 남겨주고 있다. 도판)“공간에 있는 인간! 화가의 공간이 허공으로 추락한다. Ein Mensch im Raum! Der Maler des Raumes sturzt sich in die Leere”, 이브 클라인, 1960년 10월 19일 찍혀지고 11월 27일 디멘치(Dimanche)신문에 발표되었다. 1960년 11월 27일 디멘치(Dimanche)라고 불리우고, 자신이 찍어낸 신문전면에 “공간에 있는 인간! 화가의 공간이 허공으로 추락한다. Ein Mensch im Raum! Der Maler des Raumes sturzt sich in die Leere”라는 제목을 달고 이브 클라인이 허공을 향해 날개를 펴 뛰어 내리는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은 후에 “허공으로 뛰어듬 Sprung in die Leere"로 더 많이 알려졌다. 단 하루만 출판되었던 이 신문에 실린 그의 사진은 이브 클라인에 대한 하나의 신화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 사진은 새가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공간에 대한 그의 엄청난 집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이 사진은 아주 강렬한 이미지를 전해준다. 이브 클라인은 힘차게 1미터 50정도 한 파빌리옹 위로 걸어 올라간다. 그는 땅에서부터 4미터 혹은 5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높이에서 뛰어내릴 작정이다. 뛰어내리는 즉시 그는 아래에 있는 아스팔트에 떨어져 어디 한군데 부러지고 말 것이다. 이 사진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브 클라인의 드라마틱한 행위는 아랑곳 할 것 없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 신사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은 사실 1960년 10월 19일에 fontenay- aux-Roses, 3 rue에서 젠틸 베르나르드(Gentil-Bernard)가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 슝크(Shunk)와 캔더(Kender)에 의해서 몽타쥬로 제작된 것이다. 실재로 이브 클라인은 그의 청년시절에 유도에 심취해서 유도 수련집을 내고 일본으로 건너가 국제적인 유도스타들을 필름으로 기록할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도로 단련된 그의 몸은 낙법을 통해 그 정도 높이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구출해 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 로트로(Rotraut)는 이때 당시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남편은 대단한 유도선수였어요. 그래서 여러 번의 연습을 통해서 안전망 없이 뛰어 내릴 셈이었죠. 저는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극구 만류했어요. 잘못하면 무릎을 부러뜨리기 쉬웠거든요.“ 이 사진이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수평으로 하늘을 향해 던져진 이브 클라인의 몸을 마치 마술처럼 포착한 이 사진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에 처한 예술가의 신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영원에로 날아드는 한 영혼을 주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에서 공간은 정말 말 그대로 사진 안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공간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 한 인간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로켓이나 추진 장치 없이 인간의 몸 하나로 허공에 정지한 상태로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점령은 담아둘 그릇 안에 잡혀서 통제되고 있는 한 공간에 대한 정신적인 탐구인 것이다. 여기서 공간은 우주적인 공간으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아주 위태해 보이지만 평화로운 감수성의 힘에 의해서 이브 클라인의 공간은 시적으로 변모해 간다. “이 비행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타는 정열이다.” 그러나 이 사진이 모두 조작된 몽타쥬 기법에 의해서 제작된 것임을 알고 나서는 작가의 진실성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주1)
“나와 함께 허공으로 들어오라! 언젠가 네가 돌아온다면 너는 이 아름다운 허공을 꿈꾸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을 나는 한 단어도 잃어버리지 않고 기억한다. 우리가 날마다 고대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을 고대하는 허공의 실제 속에서 함께 날개짓 하자! 나와 함께 허공으로 들어오라!” 주2)
백기영(작가)
참고문헌
주1)이브클라인 카타로그, 니콜라스 찰렛(Nicolas Charlet), 프레스텔 출판사, 200쪽
주2)레이몽 한스, Raymomd Hains, Jacques de la Villegle; Heperile eclqte; Pqris; Litqrqirie Lutetia,1953
인체측정도(1961)
1960년대 초에 전시된 이브 끌랭의 인체측정도는 IKB라는 특허가 있는 파란색 물감(파란색은 하늘의 색깔이기도 하다)을 몸에 칠한 모델이 그 흔적을 종이나 캔버스에 찍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몸은 "살아 움직이는 붓"이 되는 것이다.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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