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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감사할 줄 아는 백성 (2)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의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의 굴에 던져진다는 법이 발효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에 행하던 습관을 따라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자기 집에 가서, 자기 방에 창이 여러 개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린 창에서, 그러니까 서쪽으로 난 창에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를 설명하는 말씀 중에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는 말씀이 아주 특이합니다. 어떻게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이로 미루어 볼 때에 다니엘은 항상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감사할 줄 모르는 민족이었습니다. 종살이하던 애급 땅에서 해방되어 나왔어도,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고, 광야생활 40년 동안 계속하여 기적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40년 내내 계속하여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야에서 모두 멸망당하고 말지 않았습니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평이 많은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싫어함을 받게 됩니다. 사실 감사하는 것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 감사하는 것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입니까? 감사하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감사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감사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원수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옛날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서 살아난 후에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기 나라의 온갖 보물들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고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시는 중에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왕하 20:18; 사 39:7)고 하셨는데, 이로 보아 다니엘은 왕족이나 귀족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원수의 나라에 와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해도 정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일제 때에 우리 왕족 중에서 한 청년이 일본에 가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하면 그 사람이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아마 “매국노요, 친일파요” 하면서 얼마나 무섭게 비판하겠습니까?
다니엘이 감사할 수 없는 둘째 이유가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다스리는 사람은 환관장 아스부나스(단 1:3)라고 하였으니, 다니엘도 환관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라고 히스기야에게 한 이사야의 예언에도 그대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환관이 무엇입니까? 환관(宦官)은 내시(內侍)라고도 하는데, 항상 왕의 측근에서 왕을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겉보기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불행하게도 고자가 되었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결혼도 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처자식이 없으니까 가정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따라서 일편단심 왕만 잘 모시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환관이었다면 그는 가정이 없었고,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다니엘이 감사할 수 없는 셋째 이유는 훨씬 직접적인 것입니다. 지금 악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넣기로 하여”(단 6:7) 지금 이 법이 시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다니엘이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말은 매우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니엘처럼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감사할 것입니까? 우리를 죽이려는 악법이 제정되어야 비로소 감사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의 내 위치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아무리 어렵고 딱한 형편에 놓여 있어도 감사하는 법을 배우면 그 감사가 장차 아름다운 열매로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1.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1) 부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효도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모든 도덕이나 윤리가 효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효도할 줄 모르면 예의도 도덕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십계명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가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① 십계명은 위의 넷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다음의 여섯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째가 바로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계명들보다 먼저 있습니다. 인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이 효도의 계명이 첫째인 것입니다. 이것을 에베소서 6:2에서는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② 구약의 지혜의 책인 잠언서를 시작하는 첫 계명의 말씀은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는 말씀이고, 바로 이어서 8-9절에서는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③ 불효한 자는 어떻게 됩니까? 출애급기 21:15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하였고, 이어서 17절에서도 “자기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잠언서에서는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20:20)라고 하였고,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30:17)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이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시겠다는 분명한 선언인 것입니다.
2) 더 나아가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내 나라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① 우리는 나라의 법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만약 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되지 않습니까? 물론 법을 어기고도 발각되지 않아서 형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② 우리는 자기의 나라를 가리켜 祖國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조(祖)자를 썼으니까 할아버지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또는 母國이라고도 합니다. ‘어머니의 나라’라는 뜻도 되고 ‘어머니 같은 나라’라는 뜻도 됩니다. 내 나라는 나의 어머니요, 아버지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내 나라가 나를 지켜주지 않습니까?
③ 그러므로 우리는 내 나라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든지, 자기 나라를 저주하는 자는 어떻게 될까요? 부모에 대한 계명이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치는 자, 자기 나라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가 되겠지요? “자기의 조국을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유암(幽暗) 중에 꺼짐을 당할 것이요, 자기 조국을 조롱하며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국자를 사랑하셔서 써주셨습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다윗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예루살렘을 위하여 통곡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5:7에는 예수님께서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으로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④ 우리의 조국을 세우고 발전시켜준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과 비교해 보면 너무도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누가 대한민국을 세웠습니까? 북한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 역사의 과정에 많은 분들이 있지만, 특별히 두 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건국하신 이승만 대통령이고, 둘째는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우뚝 세워놓으신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3) 우리는 누구에게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자기 목숨을 주셨습니까? 누가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도와주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자기의 육신적 처지나 형편과 상관없이 항상 주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성도들은 오히려 역경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더욱 감사하는 생활을 합니다. 다니엘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요셉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이 애급에 종으로 팔려가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깨끗하게 살았던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께 불평이나 원망을 했던 사람이 아니었음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불평이 생기면 우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조국을 헐뜯고 저주하는 악한 자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사상을 가진 자들이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① 무신론자들은 근본적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므로, 따라서 자기밖에 모르는 자들입니다. 참보다는 거짓을 더 좋아합니다. 진리의 지식이 없으므로 분별력을 상실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의 말을 쉽게 믿고 따라가지만, 바른 말에는 아예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감사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② 이들은 조국으로부터 온갖 특혜와 복을 다 받고 살면서도 조국에 감사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조국을 이렇게 세워주신 분,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해 주신 분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합니다. 더 나아가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감사 대신에 온갖 악한 말을 만들어 유포하며 헐뜯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그들 자신이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③ 일반적으로 공산 치하에서 사는 사람들은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항상 받아먹고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얻어먹고 사는 사람은 남에게 나누어줄 줄을 알지 못합니다. 생산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땀 흘려 일한 농부가 양식의 귀중함을 알고 양식의 기쁨을 압니다. 전투에 나가 피를 흘리며 싸워본 사람이 조국에 대한 뜨거운 감사를 알고, 그 자유의 소중함을 압니다. 그러나 책상머리에서 글줄이나 읽다가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고를 알아줄 지식도 없고, 조국을 이렇게 발전시키기 위해 피땀을 쏟은 선열들의 노고를 알아줄 지식이 없습니다. “눈물 젖을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의 맛을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노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 노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노동자들을 위하여 살 수 있을까요?
2.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1) 우리나라는 옛날 단군 임금님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① 가을에 추수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東濊)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삼한(三韓)의 농경의례(農耕儀禮) 등의 추수감사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우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농사를 잘 짓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온 백성이 함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②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가장 기본적인 예의로 알고 후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예의의 기본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이런 놀라운 복을 받고 사는 것이 모두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겼던 일에 대한 보상인 것입니다.
③ 유교의 가르침도 그 결론은 항상 하늘, 곧 하나님을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도 없고, 이 우주가 우연히 생긴 것 같아도, 조금이라도 자세히 살펴본 사람은 결코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질서가 너무도 정연하여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성현들이 도(道)를 깨달으려고 평생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유학자는 부지런히 책을 읽으면서 도를 찾으려고 했고, 불교의 중들은 밤 새워 목탁을 두드리면서 수도하는 것은 자기의 육체적 욕구를 이기고 도를 깨달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2) 최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부터 우리나라를 칭찬하는 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① 다음에 소개하는 글은 조선일보사의 워싱턴 특파원 이하원 기자가 보내온 소식입니다. 그는 취재현장에서 미국인들로부터 “한국에 감사하고 있다는 말을 꼭 써주세요.”라는 말을 듣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 평화봉사단원(Peace Corps)들과 6·25 참전용사들을 만날 때다. 지난 2월 13일 설을 맞아 열린 북버지니아 한인회 모임에서도 그랬다. 떡국을 나눠 먹고 ‘훈민정음 티셔츠’를 선물 받은 평화봉사단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을 고마워했다. 70년대 경북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척 하비(Hobbie)씨는 “100여 국가에 평화봉사단원이 파견됐지만, 은혜를 잊지 않고 초청해서 대접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텍사스주의 댈러스시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회’ 정기총회장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 당시 한 참전용사는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통해 구해준 프랑스로부터는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고 했다.
우리가 고마움을 표해야 할 이들에게서 오히려 한국에 대해 “고맙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인 교민사회와 한국 기업, 정부의 활동이 결실을 거두고 있음을 뜻한다. 미국의 교민 사회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전용사와 평화봉사단원들을 위한 ‘보은(報恩)활동’을 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한국이 잘 살아줘서 고맙고, 보람을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삼성과 LG가 2006년부터 주미(駐美) 대사관을 통해 6·25 참전용사들에게 배포한 2000대의 휴대폰은 큰 화제가 됐었다.
정부는 올해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으로 초청하는 참전용사를 1000명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평화봉사단을 초청하는 프로그램도 확대 개최된다. 이런 활동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미 정부와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국이 “감사할 줄 아는 나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가 개최하는 한국관련 세미나에서는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처음으로 원조를 주는 국가가 된 것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조 도노반(Donovan) 국무부 동아태 수석차관보는 지난 3월 2일 미 평화연구소(USIP) 세미나에서 이를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우리가 미국인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기회가 많아질 때 갈등은 줄어들고 외교 문제 해결이 쉬워진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나라’로 새겨진다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기자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에서 보고, 느끼고 있다.』
②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인 차윤이라는 분이 쓴 <천대받아온 6.25참전유공자>라는 글에서 몇 마디를 소개합니다.
『엊그제 6.25전쟁 참전유공자인 군대동문을 만났다. 그는 지금 미국에 이민 간 지 5년이 되는데 가족방문차 잠시 한국에 들렀다고 한다. 무슨 말끝에 필자로부터 금년에 있을 대대적인 ‘6.25 6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눈에 눈물이 가득해지더니 소리까지 내며 운다. 울면서 하는 말이 이렇다. 부상까지 입은 6.25 참전유공자로서 자기의 한국에서의 생활은 ‘비참’ 그 자체였다. 특히 지난 두 정권 밑에서 자기는 국가유공자 대접은커녕 ‘미국이 주도한 무익한 전쟁의 하수인’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 공무원 직에서도 물러나야 했었고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모든 것 다 버리고 이민을 갔다. 그러나 이제는 늙고 쇠하여 현지 생활도 너무 어려워져서 가능하면 다시 돌아와 고국에서 죽고 싶은 생각에 지금 잠겨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우는 것은 이제서야 조국이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참전용사들을 인정해주게 됐다는 새로운 현실을 보고 감격해서 눈물이 나고, 또 억울하고 분한 과거신세에 대한 서러움에 복받쳐 우는 탓도 있지만 그 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서 오늘을 못보고 세상을 등진 동지들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어 울음이 나온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자기가 이민 갈 때만 해도 살아남은 6.25 참전용사가 약 60만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현재 생존자는 겨우 30만 밖에 안 되며 이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6.25전쟁을 바로 알고 직접 체험한 세대는 몇 년 후에는 이 세상에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므로 이 6.25 참전용사들이 생존해있을 동안만이라도 6.25전쟁에 대한 진실이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 밝혀져야 될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잘못되어온 교육이 확실히 시정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영영 내외적으로 ‘후레자식’들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나라꼴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원인을 깊이 살펴보면 결국 6.25를 잘 모르거나 잘못 배운 세대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기가 막힌 것은 그때 우리를 도와줬던 남들은 오히려 6.25를 바로 알고 있는데 6.25 당사자인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데 있다. 그 증거는 허다하다. 지금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6.25는 미국이 시작한 전쟁이라고 믿고 있어서 인천상륙작전을 주도한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틈만 있으면 허물어뜨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라든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까지만해도 나라를 지키는 간성을 기르고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졸업반생도의 30% 이상이 미국을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라든지, 현재도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6.25가 무엇인줄 아느냐는 질문에 4학년쯤 되는 아이가 답하기를 “선생님이 ‘육이오’가 아니고 ‘육점이오’라고 부르라고 하시면서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침략했기 때문에 ‘육점이오’가 바른 호칭이라고 가르쳐주셨어요…”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멀리 가서 알아볼 필요도 없다. 우리들 자식, 손자를 불러놓고 몇 마디 이야기해보면 금방 나타날 일들이다. 고급공무원을 지낸 어느 친구는 손자들한테 물어보기가 오히려 겁이 난다고까지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한국의 이러한 현실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이렇게 잘못된 6.25에 대한 인식 때문에 혹시 한미동맹에 금이 갈까 봐 재미교포 Hanna Kim은 어린 나이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무려 435명의 미 하원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하여 ‘한국전 참전용사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데 크게 기여함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6.25전쟁 휴전일을 ‘한국전 참전용사 휴전일’로 지정하고 성조기를 조기로 게양하도록 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김 씨는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피 흘리며 도운 나라들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이 보은(報恩)활동에 나서 감동하고 있다” 면서 “한국과 미국의 한인사회가 6.25 60주년을 맞는 올해 더욱 적극 나서게 되면 한국의 이미지도 한층 좋아질 것”이라고 오히려 완곡하게 자기의 맺힌 심정을 토로하는 기사를 봤다.
3. 감사가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1)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그러므로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사람이라야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복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힘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복을 못 받은 사람, 무기력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시간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은 사람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십니다.
2)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마음에 깊이 느끼면서 우리 삶을 감사로 충만케 해야 하겠습니다.
① 지난 달에 있었던 “열방을 품는 연합 기도성회” 첫날 저녁에 아이티 지진 참사 현장에 학생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일에 대한 보고와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이 미국에 산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사람들인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이 멕시코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로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필리핀에 다녀오고도 많이 변했지요? 젊은이들이 세계를 자꾸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나라에 사는지를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② 더 나아가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번 집회에 박다니엘이라는 정신과 의사가 한 분 오셨습니다. 그는 은혜를 받고 사명감이 뜨거워져서 의사 일은 제쳐놓고 이렇게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여 살고 있다고 합니다.
③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에 감사하는 민족을 찾으십니다. 미국이 하나님께 감사를 잘 했는데, 요즘에는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이 많아서 감사할 일이 생기기보다 오히려 불행한 재앙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감사하면 온갖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온갖 불행한 일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2010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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