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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부자(눅 12:13-2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아들 가인과 아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동생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과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열둘 아들 가운데, 열 명의 형들이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웅덩이에 빠뜨렸고,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이번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홍 전 국회의원은 경제전문가입니다. 그의 딸이 중학생인데, 외할머니로부터 8억원이 넘는 상가를 증여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가의 절반은 홍의원의 처남이 증여받고, 절반을 부인과 딸이 반반씩 나누어 증여받았다고 합니다. 그 상가를 한 사람이 증여 받으면, 엄청난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세 사람이 나누어 가짐으로, 증여세를 덜 납부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증여세를 덜 내기 위하여, 쪼개기 수법을 사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들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장모로부터 8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증여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인과 딸 사이에도, 수상한 거래가 있다고 합니다.
딸은 중학생입니다. 엄마와 딸 사이에, 중학생인 딸이 엄마에게 2억 2천만원을 연이율 4.6%로 빌려, 올 연말에, 1,012만원의 이자를 지불하기로 하는 “금전소비대차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중학생인 딸에게 2억 2천만원이 왜 필요했을까요? 필요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 연말이 되면, 딸은 엄마에게 원금 2억 2천만원과 이자 1,012만원을 지불할까요? 지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딸에게 2억 2천만원을 증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증여세를 한 푼도 안 내기 위하여, 딸에게 빌려 준 것처럼, “딸에게 증여한 것이 아니다. 딸에게 빌려 준 것이다”라고 서류를 꾸몄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있으면, 죽기 전에, 살아 있을 때, 자녀들에게 미리 증여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도 없어서, 못 주는 것이지, 있으면 왜 못 주겠습니까? 있으면, 다 줄 것입니다.
돈이 필요하면, 중학생인 딸이 엄마에게 2억 2천만원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빌린 돈으로 투자해서, 이익을 많이 남겨, 이자로 1천만원을 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돈 관계는 정확하게 해야 하니까, 엄마와 딸 사이라 할지라도, 채권채무 관계를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저에게도 돈이 많이 있어서, 우리 애들에게 마구 마구 퍼주고 싶습니다.
어쩌면, 부모의 마음은 동일할 것입니다.
그런데 홍 전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 “부의 대물림”을 아주 강하게 반대했던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는 “과다한 상속이나 증여가 이뤄질 경우, 부의 대물림으로, 많은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꺾을 수 있기에, 적정한 제어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래도 이 집안은 참 좋은 집안입니다. 돈 때문에 싸우는 집안이 아니라, 가진 돈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들에게 물려주려고,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다 동원했으니, 돈 때문에 싸우는 집안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봐야 합니까?
가족간이나 형제들간에 돈 때문에, 다투는 집안들이 많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재벌가에서, 형제간 또는 가족간 재산이나 경영권 분쟁은 늘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경영권을 둘러싼 극심한 분쟁으로, 그룹 자체가 여러 회사로 동강나거나, 심하면, 쇄락의 길을 걷기도 하는 사례들이, 여러 있습니다.
대표적인 재벌그룹으로 삼성, 현대, 롯데, 한진, 두산, 진로, 한화, 금호, 효성 등의 2세간, 형제간 재산 싸움이나 경영권 분쟁은,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재산이 상속되었거나,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하게, 경영승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년전, 미국에서는 투자의 귀재라고 하는 워렌 버핏,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같은 대부호들이 미국 공화당의 “상속세폐지법안”을 반대하며, 오히려 가진 사람들의 상속세율을 더 올려야 한다는 공개적인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일들이 돈에 관련된 문제들입니다.
돈은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엎드리는 유일한 권력이라고 말합니다.
재산 앞에서는 피를 나눈 형제도, 부모도 없는 세간의 재산싸움을 보면서, 돈 앞에서 한없이 추악해지는 인간의 단면을 엿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모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살아갑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돈은 있어야 합니다.
저도 돈을 좋아합니다. 돈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마음껏 쓰고 싶습니다.
돈이 있으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도, 이것 저것 다 생각해 보고, 다 따져보고,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것마저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그것은 부도가 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도가 났다는 것은 산산조각 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돈이 없으니까”라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정말 로또를 사서 긁어 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매주 로또를 사서, 열심히 긁어보아야 할까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면, 욕심 많은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모가 남겨준 유산 때문에,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 동생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하시고,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어떤 정당한 권리를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탐심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는 그 사람의 잘못된 마음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다툼은,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야고보 사도도,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약 4:1-2)라고 믿는 자들의 분쟁을 책망하였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세상은 평화롭습니다. 욕심이 있기 때문에, 다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욕심 때문에 다투는 자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여,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둘러선 많은 무리들을 위하여,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 그들을 교훈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크고 좋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농장은 소출이 풍부했습니다. 창고가 부족할 정도로 소출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심중에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곡식을 잘 보관한다는 것이, 매우 큰 문제였습니다.
요즘은 돈을 잘 관리하기가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걱정이 많습니다.
“이 돈을 어찌할까? 이 주식을 어찌할까? 저 부동산을 어찌할까? 그 사람에게 빌려 준 돈을 어찌할까?”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세금을 많이 거두겠다고 하니까, 여러 채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집을 팔아야 하나, 저 아파트를 팔아야 하나,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하나”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의 입에서도, “어찌할까?”가 그치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부자는 큰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답게,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두리라”고 하며, 큰 창고를 지어, 곡식을 보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곧 크고, 튼튼한 창고를 지었습니다.
일군들은 곡식 가마를 메어다가 창고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부자의 마음은 흐뭇하였습니다.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쌓인 재물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자가 이렇게 창고를 증축하고, 자기 만족 속에 빠져 흥얼거리고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일반적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될 수 없습니다.
엄청난 부를 물려 받았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금방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 모로, 지혜와 능력이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고, 게으른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될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업을 잘하는 사람,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지혜와 능력과 부지런함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물론 수단과 방법이 올바르게 하는 경우입니다.
횡령과 배임,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 도시개발구역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미리 땅을 구입하는 것, 살인, 강도, 도둑, 사기 등과 같은 온갖 불법과 탈법을 동원하여, 돈을 버는 경우는 존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 부자를 향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보았을 때, 분명히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인데, 하나님은 왜 그를 어리석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왜 그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무엇이 어리석습니까?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인 것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잘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기에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인가? 부자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부자는 인생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또 언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모릅니다. 한치 앞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연약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성경에서도, 성경 밖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고, 또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자기를 향하여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는 먹고, 마실 것만 넉넉하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6년도 배당수익으로 얼마를 벌었을까요?
와병으로 몸져누운 상황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에도 1,900억 정도의 배당수익을 올려, 8년 연속 국내 총수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1,900억을 벌었지만, 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엄청나게 있겠지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가 지금 그 많은 돈으로 인하여, 행복할까요?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부자는 재물만 넉넉하면, 인생 문제는 다 끝난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돈이 셀 수 없이 많으면, 오래 오래 생명 연장하면서,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고 한들, 그래도 그 생명이 끝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부자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둘째, 부자는 인생의 참된 보람과 기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때로는 먹고 마시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순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음식에 관련된 방송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음식을 어떻게 해야, 영양가가 있고, 맛이 있는지, 우리 몸에 좋은 음식은 어떤 것인지, 어떤 식당이 가장 맛있는 식당인지, 음식을 할 때에는 어떤 재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음식에 관련한 별의별 좋은 이야기들을 다 해 줍니다.
그 방송만 봐도, 먹고 싶고, 그것을 그렇게 해 먹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생의 보람과 기쁨이, 먹고 마시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먹기 위하여 삽니까? 살기 위하여 먹습니까? 힘든 질문입니다.
못 먹어도, 못 입어도, 못 즐겨도, 보람과 기쁨 속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반면에 가진 것 때문에, 더 많은 괴로움을 당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어떤 아는 분이 땅도 있고, 가끔 20-30년 된 산삼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돈도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70세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분들의 공통적인 이야기가 “산삼을 많이 먹어서, 일찍 죽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하도 많이 먹어서, 일찍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좋은 것 많이 드시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 합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만 못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마 4:4)
행복은 마음에 있습니다. 육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육신의 쾌락만 추구하는 인생은, 곧 망가지고, 비참해지고 맙니다.
허랑방탕하면 패가망신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이, 결코 성공이나 실패의 기준이 아닙니다.
많이 소유하면 성공이고, 적게 소유하면 실패인가요?
옛날 선비들은 “청빈”을 강조했고, 또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 실패한 사람들인가요?
호의호식한다는 것이, 결코 성공의 결과이거나, 행복의 내용은 아닙니다.
가져서 행복한 사람보다는 가지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가져서 행복한 사람도 있고, 가지지 못해서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좀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날마다 고생하며 분투해야 합니다.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좀더 좋은 옷을 입으려고, 그리고 나중에 잠시라도, 좀더 편하게, 노후를 보내려면, 지금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게을려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6-8)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마시고 편히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과 의미입니다.
목적과 의미가 달성될 때, 보람이 있고, 보람이 있는 인생이라야, 기쁨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때, 참된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있을 때, 무엇을 할 때, 보람과 기쁨을 느끼십니까?
셋째, 부자는 재물을 모을 준비만 했지,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바로 여기서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모으는 데는 지혜가 있는데, 쓰는 데는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현인들은 말합니다.
“돈이란 모으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돈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 써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하여, 잘 먹지도 않고, 잘 쓰지도 않습니다. 알뜰하게 살아갑니다. 절약합니다. 그런데 가끔 좋은 물건들이 있는 곳에 갑니다. 그곳에서 감언이설에 속아, 몇 십 만원, 몇 백만 원씩 물건을 구매합니다. 가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가고, 사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사게 됩니다.
돈을 모았지만,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엉뚱한 곳에 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돈이 복이 아니라, 화가 될 때가 있습니다.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인생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돈을 많이 모은 것이, 자식에게 화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엄청난 돈을 모았는데, 자녀는 그 돈을 가지고 흥청망청 사용합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아주 망가져 버립니다.
우리는 모을 계획, 모을 준비도 해야 하지만 어떻게 잘 쓸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돈을 잘 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이요,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전화번호부에 있는 광고를 보고, 음식을 배달 시켜 먹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있는 앱을 이용합니다.
배달앱 가운데 “배달의민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앱을 통하여, 한 번도 배달을 시켜 먹은 적이 없지만, 그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이사가 개인재산 1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앞으로 3년간 개인 지분을 처분해 1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배우고 싶었던 미술을 제대로 못 배우고, 전문대를 나와서, 나중에야 학점은행제로 학위를 취득해, 대학원까지 마쳤다”며, “서른 초반에는 개인 사업을 하다 실패해 큰 빚을 지기도 했던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너무나 감사한 일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세상에 대한 감사함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하면서,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 대표는 100억원 가운데, 절반 정도를 저소득층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음식 배달 라이더들의 안전·복지 문제, 회사 구성원들의 퇴직연금 문제, 고독사 문제 예방 등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김 대표는 “공개적인 SNS에 글을 올려 알리는 것은 저도 인간인지라 공개적인 약속으로 저 스스로의 의지를 지키고자 하는 뜻으로 이해해 주기를 부탁한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사재 환원을 공개한 배경을 밝혔습니다.
지난 2011년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한 김 대표는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비롯해 배민라이더스(외식배달), 배민프레시(반찬·집밥 새벽배송), 배민쿡(레시피·쿠킹박스), 배민키친(공유주방) 등을 운영하며 푸드테크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매출 849억원, 영업이익은 25억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지금껏 이용해 본 적이 없는데, 한번 이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는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도서 11:1-2절을 보면, 전도자인 솔로몬은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38절을 보면,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0:3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했습니다.
돈을 움켜쥐는 삶보다는 나누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나누고, 베풀고, 섬기고, 사랑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돈을 잘 사용하고 계십니까?
사용할 때를 잘 모르면 저한테 가져오십시오.
제 주변에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오후에 아는 목사님이 이곳 목회를 정리하고 캄보디아로 들어가십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를 세워, 신실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들어가십니다.
“기도하다가 생각나면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위하여 기도후원을 할 뿐만 아니라, 물질 후원도 해야 합니다.
넷째, 부자는 이 세상살이를 위해서는 많이 준비하였지만, 영생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는 오직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세상살이에 대한 계획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물샐 틈 없이, 자기의 인생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여러 해를 계획에 넣었습니다.
그는 평안도, 즐거움도, 그 계획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에는, 내세가 없었습니다. 영생에 대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살이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위해서는, 별 관심도 없고,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하면, “다음에 믿지요. 나이가 들면 믿지요. 돈 많이 벌면 믿지요.”라고, 자꾸 자꾸 미루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학업, 취직, 결혼, 자녀 출산과 양육, 자동차 구입, 집 장만 계획 등,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그 계획 속에, 영생을 위한 계획이 없습니다.
7-80년의 짧은 인생은,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영생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 비유를 끝내시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이 부자의 어리석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재물은 많아서 부자였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요하십시오. 열심히 일하여, 돈 많이 버십시오.
저는 가난 자체를 좋아하거나, 칭송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지혜롭게 살아서 부요해 주십시오. 저는 돈 많은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이들과 자녀들이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고, 월급도 많이 받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사업이 잘되고 부요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재산만 많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어떤 자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일까요?
첫째,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믿음에 부요한 자입니다.
믿음에 부요한 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공의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선과 의에 대하여 무능할 뿐 아니라, 전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구세주가 아니면,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합니다.
그는 구원자를 찾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는 십자가의 은혜와 회개하는 자들이 받는 사죄의 은혜를 믿습니다.
그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주님을 소망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금보다도 귀합니다. 믿음이야말로 참으로 귀한 보배입니다.
바다에 침몰한 몇 백년된 보물선을 찾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과 돈을 쏟아 부는 것처럼, 귀한 보배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몸부림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가난하십니까?
비록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하더라도, 믿음에는 부요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됐다. 나는 부요하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부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믿음에 더욱더 부요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재산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부요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자기의 창고보다 하나님의 창고를 더 부요하게 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우리의 마음이 그곳 하늘에 있게 됩니다.
보물을 하늘이 아닌 땅에 쌓아두면, 우리의 마음은 땅에 있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입니까? 땅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땅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보물을 땅에 있는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신 28:12)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투자합니다.
그는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자기의 재물을 나누어 줍니다.
그는 자기의 소유라고 자꾸만 움켜쥐지 않고, 손을 펴서 써야 할 곳에, 돈을 잘 사용합니다.
그는 절대로 이기적인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고 즐기자”며, 쾌락주의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는 방탕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는 “내 것, 내 것”하면서, 자기 중심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보물을 쌓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며, 나누며,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을 투자해서, 천국의 보화를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진정한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심히 헐벗고 가련한 상태에 있지는 아니합니까?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말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계 3:17)
그러나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여러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라,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주님,
오직 주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만을 따라가겠습니다.
오직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만을 따르겠습니다.
오직 주님이 주신 생명만을 누리며 살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늘에 두겠습니다.
주님의 것을 주님께 다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나누며 사용하겠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