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자의 길<시>1;1~6
오늘 우리는 큐티로 접목된 강해 설교를 듣고자 원합니다
그러나 설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큐티가 Quiet Time으로 조용한 묵상을 뜻하듯이
우리도 말씀을 되새김질로 나누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목도
복된 자의 길로 정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오늘 본문은 주된 제목은 복이 있는 사람으로
큐티 세미나를 할 때
즐겨 인용하던 본문이요 제목인데
오늘은 복된 자의 길로 길에 대한 이야기로 나누고자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살아가 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뚜렷한 답을 할 수 있는 분은 삶의 가치와
사는 목적과 그 방향성이 나름대로 세워져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태어났으니 살아간다거나
주어진 운명 부여잡고 되는 대로
혹은 팔자대로
대충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개념이 없이 비전도 없이 또는 삶의 가치나
사는 목적과
살아가는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목사님들에게 하나만 묻겠습니다?
여러분 왜 사시나요?
대답을 잘 못 하거나 머뭇거리지 말고
나는 예수 때문에 살아요..라고 용기있게
주변의 눈치 보지 말고
담대함으로 답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로 산다고 고백하는 일이 바로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결론이 예수로 끝나기를 소망하는데
저와 여러분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오직 예수
누구와 부딪치기라도 하면 오직 예수
꼬집히고 뒤틀려도 오직 예수께 의지하는 일이 바로
복된 길이요
이 길이 예수와 동행하는 길임으로 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 믿기 이전에는 오직 돈과 출세와 명예만 바라고
세속적이며
인본주의적 삶을 살아 왔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오직 말씀에 올인하며
4자와 8자를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9자가 보였고 이제는 10자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 말이 어렵나요? 아닐 것입니다
제가 예수 믿기 이전
저의 삶의 방식은 수주와 팔자가 주를 이루었고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 갔지만
지금은 십자가 여정 속에서
오직 말씀에 의존하며 구원의 십자가 여정을 걷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시편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계시가 아니라
땅 위에 사는 인생들이 하늘 위로 전하는 진실한 소리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복된 길과 헛된 길로 제목을 잡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거나 설교를 준비할 때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묵상의 방향은 상당수 달라질 것인데
오늘은 우리가 그동안 했었던 복 있는 사람이 아닌
복된 길과 헛된 길입니다
그러나 복된 길, 헛된 길 하니까 흑백논리요 이분법이라
두 길 중 하나는 빼고 복된 길만 선택하여 나누고자 원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지금 복된 길을 걷고 계신가요, 그러신 줄로 믿겠습니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시로 토라 즉 율법의 길에서
감사의 문을 여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성도가 가야 할 길의 목적지를 알려주시고
말씀으로
그 길의 동행이 되어 주시며
마침내 그 길의 끝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옳았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6절이 이것을 말하는데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래서 저와 목사님들은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고 계시는 사모님들에게도
이렇게 말씀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왜 사느냐 묻는 다면
우리는 저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명답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누기를 소망하는 것들 중 하나는
의인인데
우리는 그 의인을 성도라 적용하고자 합니다..
성도의 인생과 삶의 길이 때로는 어둡고
종종 헷갈리며
자주 거칠어 보여서 피해 가고 싶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주셔서
성도가 만날 수 있는 모든 환난과 고난과 곤경에서
건져 주시는데 그 말씀이 시편107편 20절입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아멘
그래서 저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그 심령 안에
말씀이 뿌리가 내리며
나처럼 완악하고 강퍅하고 한 고집하는 자도 변한다..이렇게 적용합니다
그리고 한 말씀을 더 인용하여 보태고자 하는 것은
욥기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말씀으로
새 힘과
위로를 얻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 가장 잘 하는 혹은 성공한 목회와 설교는
가족의 입에서
더 가까이는 사모의 입에서 나오는 아멘을 들을 때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은 내 설교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니
아마도 내가
비록 많은 숫자를 모으지는 못했어도
성공한 목회자요 설교자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하신가요
말씀 즉 하나님의 가르침인 율법, 토라를 말하는데
이 말씀을
즐거워하며 따르는 자들의 길을 하나님이 끝까지 건사해 주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그 마지막 순간에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날, 모든 계절에 말씀의 호위를 받기에
조금도 모자람 없을 것을 믿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참으로 많이 살펴 본 본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목이
복된 길과 헛된 길이니 제목에 맞춰 적용하면
복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오’를 해야 할 때
당당하게 용기를 내서 남의 눈치 세상 눈치
권력이나 내 유무익의 눈지 보지 않고
치우침도 없이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의 꾀와
그 길에서
그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단호히 거절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와 동행하며 복된 길을 걷는 자라는 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요..아닙니다,
융통성도 때로는 필요하다고요 그러나 구별된 융통성이어야 합니다
악인들은 악의 상태가 점증하다가 결국은 오만한 자의
삶의 방식으로
굳어지매..이런 자들과 이런 삶의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상대를 경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나만이, 내 기득권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우겨됩니다
타협도 존중도 예의도 없이 나만이 최고로 결론짓게 됩니다
그리고 내 생각만 옳다고 판단하며
상대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삶, 그게 오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복된 자의 길을 걷는 자는 악인의 그럴듯한 충고와
조언을
단호히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말씀과 함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받는 것을
즐거워 하는 자가 걷는 그 길이
복된 자의 길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롬12;1~2에서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그렇습니다..저와 여러분 결국은 인간이 지닌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사는 길이 바로 복된 길이오
세상의 길은 헛된 길임을 알고 믿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거절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할 때
1절은 버리고
2절을 선택하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2절과 3절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리고 이렇게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자에게는
3절의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아멘
복된 길을 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반복하여 중얼거리며 되새김질로 자기 것을 만듭니다
그러나 단지 입술의 욾조림에 만족해 하지 않고
이 말씀이 입에 있고
그 마음에 있어서 이를 실천할 때 가장 기뻐합니다
신30;14절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아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심비에 새기고
피부에 이식시키며 세포가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기자는 [이 말씀은 좀 길어서]
6장 8절과 9절만 소개하는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절은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그렇습니다..말씀의 눈높이을 정해 놓고
그 말씀을 생활화 하며 살라는 뜻입니다..이런 삶의 태도고
율법을 즐거워하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의 삶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 모든 일이 잘될 때뿐 아니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에도 말씀을 묵상하며
주신 말씀 그대로 살아가는 일에서
행복을 누리는 자가
복된 자의 길을 가는 자라는 사실을 믿고
저와 여러분 모두는
오직 말씀에만 의존하며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말씀이 주는 복을 마음껏 누리며 만끽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3절을 다시 살펴 보니까
복된 삶은 조건이 아니라 환경으로 주어짐을 알게 합니다.
그곳이 어디이든 비옥한 곳에 심겨지면 됩니다.
그리고 그 장소가 시냇가이고
시냇가에 심겨졌을 때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시냇가가 어디입니까?
말씀의 시냇가
교회의 시냇가에 심겨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4,5입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현실 세계에서는 악인들의 꾀가 그럴싸해 보이고
그 길이 탄탄해 보이며
그들의 앉은 자리가 당당해 보일지라도
그들의 진짜 미래는
바람에 날리는 껍데기와 같습니다
그들의 인생이 어느 한 때, 위세를 떨치며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앞에 이르면
자신이 살아온 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의인의 모임에 끼지도 못할 그들의 헛된 삶을
추종할 까닭은 추호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가벼이 여기는 인생은 가볍습니다.
말씀을 거부하며 자기 마음대로 산 인생의 운명은 빈손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망해 봐서 알고 매맞고 돌아와 봐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처럼 하나님의 콜을 많이 받아 본자가 있을까 할 정도로
하나님의 수없는 콜을 받았지만 번번히 외면하고
불순종하다가
매맞고 돌아와 보니 전도서 기자가 고백한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여기서 빈손은 열매 없는 삶인데
중심없이
시류에 휩쓸리는 인생은 아무리 많은 것을 이뤘다 해도
바람에 나는 겨처럼 부질없을 뿐입니다.
시인은 무의미한 삶
열매 없는 삶이 곧 심판이라 말합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공허한 마음을
말씀으로 채우고
욕망으로 들뜬 마음을 말씀으로 잠재우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6절입니다.
[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길은 두 길 밖에 없습니다. 복된 길과 헛된 길 뿐이라는 사실에
우리 모두는 겸손해야 합니다
복된 길은 의인의 길이고 헛된 길은 악인의 길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길
즉 복된 자의 그 길은 아스팔트를 깔아 놓은 탄탄대로나
꽃가루를 뿌려놓은 아름다운 길이 아닌
돌층계요
돌계단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 길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이요
좁은 길로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과 인정하지 않으시는 길
그 길이
의인의 길이요 악인의 길입니다.
이렇게 길은 단 두길 뿐으로 *믿고 말씀을 따르는 길과
*믿지 않고 멋대로 사는 길입니다.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막 사는 길이 멋져보일 수도 있지만
그 길은 멸망과 심판이 있는데
여러분이 너무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대로 사는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된 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무시하며 사는 악인이
하나님과 평생을
동행하는 의인보다 나은 것처럼 보여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세상이 몰라 주어도
내가 비록 큰 숫자 많은 숫자를 모으지는 못했어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그 삶이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길임을 믿고
오늘고 믿음으로 복된 길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