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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흙처럼 아쉬람》이 있었다.
흙처럼 아쉬람 흙집학교 초급반 81기
흙처럽 아쉬람 흙집학교 중급반 74기
어단리
그곳엔 흙이 있었고 바람이 있었다.
그곳엔 석양의 붉은 노을이 구름을 품었고 별과 달이 하늘에 안겨 있었다.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 3리 739번지(033-766-7755, 010-7314-7766) 원주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치악산(1288M) 능선이 남남서로 내려오다 다시 하늘로 솟구치며 빚어진 백운산(1087M) 아랫자락에 둥지를 틀어 산세와 어울리며 서녁의 덕가산을 바라보는 흙처럼 아쉬람은 첫 만남의 모습부터가 평화로움이었다.
옹기종기 흩어진 듯 모여 있는 황토색 흙집들은 아주 오래전 민가와 인적이라곤 없던 산 속을 헤매며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던 군사 훈련중에 만난 시골 마을의 반가움보다 진한 정감을 빚어내며 이성보다는 감성을 이끌어내는 촉촉한 부드러움으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바깥 기온과는 전혀 다른, 온기도 아니면서 냉기도 아닌 피부가 소망하는 최적온의 강의실은 요람의 품속처럼 몸의 어떠한 저항도 자극하지 않는 무중력과 같은 쾌적함으로 흙과의 원시적 교감의 더듬이를 일깨우고 있었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존재, 살아있는 존재’라며 ‘흙은 우주와 더불어 움직이는 생명’임을 강조하시던 교장선생님의 흙집학교 초급반 81기 이론교육에 접하면서 흙과 자연 그리고 우주에 대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며 실제 흙집에 대한 개념과 건축이론에 다가서게 되었다.
흙집 설계하기, 기초공사, 골조공사에 대한 강의가 각론에서 총론까지 세밀하면서도 종합적으로 폭넓게 전개되며 흙집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며 첫날의 저녁을 맞았다. 저녁에는 상호 인사와 자기소개 시간으로 하나가 아닌 우리, 81기 공동체의 세포들이 흙집을 지향하는 동행자로서의 친밀감으로 결속되어지는 기쁨에 젖어들게 되었다. 괴산, 용인, 동탄, 의정부, 울산, 정선, 전주, 문경, 정읍, 강릉, 중급에 합류하신 서울, 부산의 흙집 열망 동지들의 이해와 소통은 훗날 흙집짓기 공동체로 이어지리라는 기대 속에 유쾌하고 정갈한 숲속의 깊은 밤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방심한 나의 코골이 소리로 불면의 밤이었다는 공동체의 탄식을 들은 둘째 날 아침엔 달팽이처럼 집을 등에 지고 어디론가 깊은 계곡으로 숨어들고 싶었지만 겸손과 아량으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동지애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점심시간에 호저면소재지의 문구사에서 귀마개를 구해다가 나누어 드리는 것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죄송한 마음은 아직도 가슴 한 곳에 남아 가셔지지 않는다.
둘째 날의 흙처럼 난방시스템(벽난로+구들침대+목초액 자동채취장치) 만들기 학습에 이어진 물과의 대화 시간에는 참으로 묘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수맥을 찾으면서 방향과 폭과 깊이, 물의 양의 측정을 물과의 대화로 풀어나가는 선생님의 엘로드는 ‘모든 것은 자신의 파동 에너지와 다른 존재의 파동 에너지의 상호작용으로 존재한다.’는 교장선생님의 ‘생명론’과 융화되며 모였다 흩어지기로 화답하고 있었다. 엘로드를 통한 수맥찾기 체험은 수강생들의 의구심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의 손에 전도된 초극세 파동은 ‘수맥이 있으면 클로스 해 주렴!’ 나의 조용하고 낮게 읊조리는 말에 따라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며 수맥의 소리를 전해주었고 교장선생님의 이론을 증거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구들 놓기 강의에서는 온돌에 대한 아련한 유년의 향수가 따뜻한 온기로 실핏줄을 타고 가슴으로 저며드는 그리움 같은 애틋함이 있어 잠시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천장공사, 지붕공사, 벽체공사, 설비공사에 대한 이론으로 둘째 날을 마무리 지었다.
셋째 날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지어진 흙처럼 아쉬람의 흙집들을 견학하며 흙집에 대한 시야를 넓히며 내가 지어야할 흙집에 대한 구상의 틀을 요모조모 설계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총정리와 건축 인허가 절차, 건축비, 자재 안내, 시공안내, 빌더 풀 제도에 대한 안내를 끝으로 오전 강의와 2박 3일 여정의 초급반 학습을 마치었다.
기초반만 마치고 떠나는 분들에 대한 고별식도 치를 새 없이 새로 합류하신 분들과 81기 중급반 실습교육이 바로 시작되었다. 건축현장의 기초공사가 되는 거푸집을 설치하고 해체하는 실습에서 직각과 수평 작업을 익히며 콘크리트 압력을 지탱할 수 있는 지지대의 설치 방법까지의 세밀한 교육과정에서 나는 이미 토목공이라도 된 듯 자신감이 넘치고 활기에 차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며 일과를 마무리 하였다.
넷째 날에는 전동공구 사용법 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흰 머리카락이 더 많아진 이제야 이런 공구를 만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우울했다. 우리나라 초중등 학교에 목공실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기껏 특성화고의 목공반에서나 기능 올림픽 대회에 준비하고자 목공예실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기본생활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교육은 초중등 교육에서 이루어 져야 하지만 ‘실과’ 교과로 남아있던 흔적마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요리나 텃밭가꾸기 정도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의 관심에 따라 창의적체험활동 시간을 편성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더욱이 내 집을 내손으로 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의 먹거리를 내가 농사짓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고 할지라도 기본 생활의 지식이나 체험만은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듣는 것은 10%, 읽은 것은 30%, 본 것은 50%, 체험한 것은 90%를 기억해 낸다고 하는데 의식주에 대한 기본 교육내용을 아예 흔적마저 없애버렸으니 두뇌나 근육에 의식주에 관련된 기능이나 기술이 아예 사라진 우리 교육을 어찌할거나 걱정이다.
2년 전에 북유럽 교육기관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스웨덴의 얄라베르그 기초학교의 목공실에 갖춰진 공작대는 물론이고 각종 공구와 공작용 자재가 공구 전시장이라고 해도 그렇게 다양하게 전시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공구들이 기능별로 잘 정돈 활용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소속된 학교에도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아주 기본적인 여건이라도 조성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하고자 했지만 유휴 교실이 없고 당장 예산을 편성할 수 없어 미룬 것이 벌써 2년이나 지나고 말았다. 그곳의 학생들이 공구들의 사용법은 물론이고 실제 공작물을 제작하며 목공과 건축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배우고 있다는 안내를 받던 그 때를 기억하며 스웨덴 학생들과 나의 나이 차를 비교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무튼 전동공구를 사용하며 목재를 설계에 맞게 재단하거나 접합하는 과정에서 안전한 공구 활용법을 충분히 익힌 후에 사개맞춤 부재 치목 실습으로 들어갔다. 기둥, 도리, 보 자재에 먹줄을 치고 오전에 익힌 공구 다루는 기술로 치목을 하였다. 한옥의 기본 치목을 익히고 직접 톱질과 끌질로 자르고 깎고 다듬어 맞추니 어엿한 사개맞춤으로 기둥과 도리가 완성되어 모두 흐뭇한 표정들이었다.
다섯째 날, 어제 제작한 기둥과 도리의 골조 결합 위에 서까래를 다듬어 걸고 평고대를 설치한 후 송판을 재단해 깔았다. 찰주의 폭과 깊이, 서까래의 각도를 세밀하게 계산하고 다듬어진 재목들이 치수에 맞게 조립되어지는 과정이 흥미와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1조와 2조로 나뉘어 하는 작업도 웃음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어 작업능률을 높여 주었다. 부직포를 깔고 숯과 황토를 올리면 그야말로 천연단열이 되리라는 즐거운 상상도 함께 곁들이는 기쁨도 맛본 행복한 하루였다.
여섯째 날 오전에 지붕 작업이 계속되었다. 합판으로 지붕을 덮고 처마 후레싱 설치 후 방수 시트를 깔았다. 그리고 아스발트 싱글을 재단하여 지붕을 마감하니 목조 주택의 골조와 지붕이 완성되었다. 실전에서는 공기가 드나드는 통풍구가 설치되어야 하지만 모형 작업이라 생략하였다.
오후에는 구들 놓기 실습을 하였다. 고래 아랫바닥에 비닐, 수돌이, 비닐, 흙을 깔고 고래의 높이를 600㎜ 규격으로 할 때 벽돌 7장을 쌓으며 고래뚝을 놓아야 하지만 최근에는 신소재 제품인 ALC블럭으로 고래뚝을 놓았다. ALC블럭은 줄고래든 허튼고래든 필요에 따라 목공용 톱으로도 자유롭게 재단할 수 있어 구들뚝을 아주 쉽게 놓을 수 있었다. 함실뚝과 아랫목부넘기, 윗목부넘기를 마감하고 함실(600㎜)과 아랫목개자리(400㎜) 윗목부넘기(150㎜)까지 참숯, 빈병(자갈), 황토로 경사지게 채우고 윗목부넘기는 좁은 통로를 만들어 연기가 잘 통과하도록 하였다. 윗목개자리와 연도와의 높이를 100㎜, 연도는 300×300, 굴뚝개자리는 연도 하단부보다 300㎜ 깊게 하고 건축면적에 따라 굵기가 적합한 연통(150㎜ - 200㎜)을 세우면 고래가 완성된다. 연통의 길이는 처마 끝보다 1m 높게하고 연통갓을 씌운다. 필요에 따라 목초액 수집용 연통을 달면 목초액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고래가 완성된 후 구들장을 놓았다. 구들장 또한 화산암이 가볍고 단단한데다 열에 잘 견디는 재질이고 규격화된 제품이라 치수만 정확히 계산하면 쉽게 놓을 수 있어 온돌 설치가 어렵지 않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불목돌인 이맛돌(500×1000×80)을 함실 위에 놓고 구들장(500×500×50)을 붙여 놓은 다음 벽체 부분의 접합 부분에서 연기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황토몰탈 마감에 필요한 50㎜ 간격을 두고 구들장 놓기를 끝마쳤다. 구들바닥은 흙처럼 아쉬람 개발품인 천연 황토몰탈로 마감하면 친환경 자재이면서 찰져서 마감자재로 우수하다는 설명을 듣고 흙집시공 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구들 실습을 마치고 크랙이 가지 않는 미장용 황토몰탈을 만들었다. 모래와 황토의 비율에 따라 접착력이나 균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환경 여건이나 필요에 따라 배합비율 실험을 한 뒤에 황토몰탈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임을 실제 배합 과정에서 체득할 수 있었다.
일곱째 날은 흙 벽체 만들기 실습을 하였다. 흙 벽체 즉, 황토벽돌 조적 실습인데 무엇보다 바닥 기초의 수평이 중요하였다. 물론 첫 단을 쌓을 때 수평잡기를 정확히 하면 되겠지만 바닥부터 수평잡기를 잘 하면 상단까지 수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수평 기술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황토벽돌과 황토벽돌 사이에 접착용으로 들어가는 미장용 황토몰탈의 균일한 두께와 점도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였다.
얼마 전에 황토벽돌 공장을 찾아가 황토 집짓기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안내해 주셨던 분이 66㎡(30평) 기준의 건축물 벽체에 대략 1,000만 원 정도의 황토벽돌과 미장용 황토가 소요되고 일반적으로 황토벽돌 조적 인건비는 재료비와 정비례 한다고 설명하기에 내가 벽체의 황토벽돌은 내가 직접 쌓을 계획이라고 했더니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건축주가 손수 황토벽돌을 조적하는 경우, 많은 분들이 쌓다가 비뚤어지거나 수직이 되지 않아서 결국은 조적 전문가들께 의뢰하고 만다고 한 이야기가 떠올라서 내가 과연 황토벽돌을 바르게 쌓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단, 두 단, 세 단을 쌓으면서 내가 충분히 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은 수평과 수직으로 정확하게 줄을 띄우고 미장용 황토몰탈을 일정 두께로 배치하며 황토벽돌을 쌓아가니 어렵지 않게 벽체가 완성되어 졌다. 벽체는 외부와 내부를 같은 규격의 300×145×125인 ‘흙처럼 3호 황토벽돌’을 사용하고 외부와 내부 사이에 숯단열재를 채울 공간 100㎜를 합산하여 벽체 두께는 125+100+125=350㎜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지을 집의 벽체를 400㎜로 하고 싶지만 흙처럼 ‘2호 황토벽돌인 300×145×150’을 사용하게 되면 황토벽돌이 더 무거워져서 쌓을 때 힘이 부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의 황토벽돌 쌓기 실습은 내가 황토벽돌을 조적할 수 있는 기능 습득과 자신감 충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주며 내가 손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의지가 굳어지는 순간들을 제공한 귀중한 시공간들이었다.
오후에는 아궁이 아취 만들기를 하였는데 오전의 일직선 벽체 쌓기와 다르게 아취형의 아궁이 황토벽돌 쌓기 기술은 좀 더 고급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학적 사고에 건축공학이 접목되어야하고 아궁이가 거실에 설치될 경우에는 예술성도 가미되어야 하는 흙집 공간의 핵심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궁이는 연기가 잘 배출되면서 최소의 연료로 난방과 보온을 유지하며 화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장치 또한 설계되어야하고 가족들의 공동 문화공간까지도 겸할 수 있도록 조성되게 꾸며야겠다는 계획도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1조와 2조가 몰두해 만들은 아취형 아궁이에 각조가 서로 자기조의 작품이 우수하다고 우겼는데 사실 최초 작업으로 보면 모두가 만족할 만한 작품들이었다. 시간들이 넉넉했다면 훌륭한 작품들이 나와 전시하거나 특허 출연하여도 될 정도 까지도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저녁에는 흙처럼 아쉬람 흙집학교에서 제공하는 종강 축하 외식 만찬이 있었다. 외식이라는 의미는 그동안 우리들에게 매일 매끼니 식사를 제공해 주신 마을 입구의 맛나가든 아닌 곳에서 식사한다는 것을 뜻한다. 매끼니 식사에 신경을 써주신 맛나 사장님 할머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우리밀 칼국수와 청국장, 토종닭, 고추, 상추, 오이, 생선 조림, 모두 그리운 음식들로 남아 있다. 우리 동기생의 음식에 대한 품평(?) 한마디에 발끈하시곤 푸짐해진 식탁을 선사한 할머님과 총대를 지셨던 동기생님께도 즐거웠던 시간들을 제공해 주셨음에 감사드린다. 한국과 러시아의 월드컵 축구 중계방송을 시청하려는 흙집학교 연수생들을 위해 새벽잠을 포기하신 맛나식당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거듭 감사드린다. 또한 고기를 아껴 두셨다가 싸가지고 아쉬람으로 오시어 귀여운 지킴이에게 주시다가 공격을 당해 수난을 겪으신 동기님도 맛나식당과의 인연으로 남아있으리라 여겨진다.
내일이 끝나는 날이고 오늘은 회식이다. 역시 이별 전야의 만찬은 즐겁다. 회포와 미래를 겸한 식탁에서는 그간의 체험들이 흙집으로 건축되어졌고 그 건축의 노동에는 중급반 74기들이 함께하자는 결의들이 입법되고 있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갔고 우리들의 흙집들도 구체화 되어 갔다.
여덟째 날, 마지막 수업은 원형 흙집짓기의 기초부터 마무리까지의 강의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수료증을 받으면서 황토흙집 전문가로서 금방이라도 황토집을 지을 수 있는 듯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작별의 시간을 맞았다.
저는 이제 흙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이렇게 흙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불어넣어 주신《흙처럼 아쉬람》흙집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고제순 박사님과 무더웠던 어느 날 오후의 시원한 수박과 막걸리 그리고 족발과 순대로 즐거움을 더해 주셨던 사모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첫댓글 ^^ 늦었지만 수료를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