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 산행일/집결 : 2018년 7월 14일(토) / 경춘선 강촌역(10:30)
◈ 산행코스 : 강촌역-매표소-등선폭포-금선사-작은초원-큰초원-용화봉-<원대복귀>-뒤풀이(등선식당)
◈ 산행자 : 6명 (종화, 재홍, 윤환, 경식, 원무, 양기)
◈ 동반시 : "만남과 이별" / 조병화
◈ 뒤풀이 : 닭백숙, 더덕구이에 소·맥주 / '등선식당'< 등선폭포 입구, (033) 261-1443 >
요즈음 날씨가 너무 무덥다. 장마전선을 태풍이 만주 쪽으로 밀어 올려버리고, 중국 대륙에서 밀수입된 뜨거운 공기가 우리나라를 덥쳐서 자리잡고 있어서 이렇게 뜨겁다고 한다. 더군다나 올라간 장마전선은 거기서 사망하시고 밑에서 올라오는 태풍은 중국으로 진출하니 이놈의 땡볕은 언제쯤 힘이 빠질까?
간단하게 안주를 준비해서 집을 나서니 지하철을 타기도 전에 등줄기에 물이 흐른다. 경춘선을 타려고 줄 서 있는데 경식이가 왔다. 둘이서 야그도 하고, 잠시 졸아 보기도 하고, 강촌역에 약 20분 늦게 도착하니 네명이 반갑게 맞이한다.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들... 대충 악수를 하고 에어컨의 도움을 받고자 얼른 식당으로 부터 나온 차에 올라 등선폭포 입구로 이동하였다.
기획력 뛰어난 이 총장님이 미리 예약하여 치밀하게 준비한 보람으로 쉽게 왔다. 그래서 이미 뒷풀이 장소도 결정 되어있다. 등선폭포 입구에서 장수, 지평, 잣막걸리 등 종류별로 한 병씩 사서 각자 나눠 넣고, 등산로 입구로 가니 매표소에서 아주머니가 입장권을 사야만 된단다. 하지만, 65세 이상으로 우기고 무사 입장... 그런데 요즘 등산 입장료 받는 곳이 없는데, 왜 받는지 의심스럽다. 이 산에 있는 절에 국보 또는 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지도 않는 문화재 관람료를 내는 것도 기분 안 좋은데 여기는 그것도 아니니 더욱 찜찜하다.
잠시 삼악산을 소개하는 자료를 살펴보면 삼악산은 춘천시 서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양강, 의암호를 지나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푸른 강변을 끼고 남쪽 검봉, 봉화산과 마주하여 솟은 산이다. 주봉이 용화봉(654m)이고, 청운봉(546m), 등선봉(632m) 셋이라 해서 삼악산이라 하는데, 악산 답게 제법 험하고 거칠다.
산 곳곳에 갖가지 모양을 한, 크고 작은 기이한 바위가 많다. 봉우리 사이의 주능선은 바위로 되어있고, 계곡이 뚜렸하다. 산세는 작지만 단조롭지 않아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삼악산 남쪽의 골짜기 초입은 마치 동굴속을 들어가는 것 같은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유명한 등선폭포를 위시하여 크고 작은 폭포가 5개나 있고, 그외 오래된 사찰들이 절벽 위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산중에는 등선폭포와 상원사, 흥국사가 있으며 등산로를 따라가면서 발아래 펼쳐지는 춘천시 전경과 봉의산, 중도와 붕어섬, 의암댐 등이 같이 어우러진 경치가 일품이다.
매표소를 지나 금강굴을 끼고 나오니 좁은 협곡으로 등선 제1, 제2폭포가 차례로 나타나고 계단을 따라 오르면서 승학폭포, 백련폭포, 옥녀담, 비룡폭포, 주렴폭포를 만난다. 무덥기는 해도 시원한 물줄기 물보라를 보며 오르다 보니 약간은 더위를 잊는다. 혹자는 금강굴과 폭포 6곳, 옥녀담을 일컬어 등선 8경이라고도 한다.
예전 겨울철에 하얀 얼음으로 피복된 폭포를 보고서 너무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오르다 보니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한 모금하고 다시 오르니 금방 흥국사 밑 삼거리에 도착했다.
흥국사는 자료에 의하면 894년경 궁예(弓裔)가 창건한 사찰이며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궁예는 이곳 터가 함지박처럼 넓으므로 궁궐을 지었다고 하고, 왜(와)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서 사용했으며, 궁궐을 지은 뒤 흥국사를 창건하고 나라의 재건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당시 절옆 산성 가운데 궁궐이 있던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어 대궐터로 부르며, 왜(와)데기와 칼싸움을 했던 곳인 칼봉, 말을 매 두었던 말골, 군사들이 옷을 널었던 옷바위(의암)가 당시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고 하며, 고려시대에는 규모가 큰 절이었으나 현재는 조그마한 암자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흥국사는 보잘않고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을 올라서니 '작은 초원'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초원은 아니다. 왜 그렇게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오래 전에 나무가 이렇게 울창하게 자라기 전에는 여기에 풀이 좀 있었나 싶다. 조금더 올라가 등산로를 약간 비껴가는 옆길에 자리를 잡고 오순도순 가지고 온 음식을 먹었다. 역시 막걸리는 땀을 흘리고 난 후에 마시는 게 최고의 맛이다. 이맛에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며 간단히 마치고 자유 의견에 따라 일부는 휴식하고, 세 사람은 정상을 향하여 출발이다. 조금 더 오르니 '333계단'이 나온다. 이름만 그렇지 평범한 오르막길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 돌로 만든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지도 않아 세어 볼 수도 없고, 계단 만든 돌이 흩트러진 조금 불편한 깔닥고개일 뿐이다.
이번에는 '큰초원'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 곳에도 풀은 없다. 다만 조금 더 넓은 평지에 긴 의자 몇 개가 있고, 휴식하는 세 사람이 보일 뿐이다. 우리는 그냥 지나쳐 바로 정상으로 올랐다. 용화봉 정상에는 사람이 제법 많다. 용화봉(654m) 표지석의 증명사진을 찍으려고 한참 순서를 기다린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 보니 멀리 또 가까이 산봉우리가 오밀조밀하고 춘천시내가 바로 눈아래고, 중도와 붕어섬이 확연하다. 붕어섬은 어쩌면 그렇게 붕어를 꼭 닮았는 것인지...
우리도 단체 및 개인 사진을 남기고 오던 길로 다시 내려와 일행과 합류하여 등선폭포 위에 도착하니 세족을 하는 산객들이 많다. 우리도 한 자리를 차지하여 얼굴도 씻고, 발을 씻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오늘 흘린 땀냄새까지를 씻어낸 것 같다.
미리 예약되어 있는 등선식당에서 닭백숙에 소·맥주로 뒷풀이를 하며, 오늘의 동반시(조병화 시인의 '만남과 이별')는 내가 낭독하였다.
"만남과 이별" / 조병화
만남의 기쁨이
어찌 헤어짐의 아픔에 비하리
나를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나를 슬프게 한 사람이나
내가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내가 슬프게 한 사람이나
인생은 그저 만났다간 헤어지는 곳
그렇게 만났다간 헤어져 가야 하는
먼 윤회의 길
지금 새로 기쁨으로 만났다 한들
머지않아 헤어져야 하는 슬픔
어찌 이 새로운 만남을 기쁘다고만 하리
눈물로 눈물로 우리 서로 눈물로
숨어서 울며, 웃으며 헤어져야 할
이 만남과 헤어짐
정이 깊을수록 더욱 마음이 저려지려니
이 인생의 만남을
어찌 그 헤어짐의 아픔에 비하리
조병화 시인(1921. 5.2 ~ 2003. 3.8)은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호는 편운(片雲)이다. 1941년 3월 경성사범학교 보통과를, 1943년 3월 경성사범학교 연습과를 졸업하고, 1945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물리화학과를 수료하였다. 1959년부터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1972년 경희대학교 문리대학장,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장을 지내고 1981년 인하대학교 문과대학장, 1982년 인하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시인협회 심사위원장, 세계 시인대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작품으로는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 '먼지와 바람 사이', '밤의 이야기', '어머니', 시선집 '꿈' 등이 있고, 수필은 '왜 사는가',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등이 있다. 국민훈장 동백장·모란장, 금관 문화훈장을 받고, 아시아 자유문학상, 서울시 문화상, 예술원상, 삼일문화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고향인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에 그의 작품과 유품을 전시하는 조병화문학관이 있으며, 매년 5월 우수한 시인과 평론가에게 시상하는 편운문학상이 있다.
뒷풀이 장소에서 닭백숙을 먹는데, 미각이 확실한 양기 친구가 백숙에 마늘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냄새가 다르다. 주인장께서 깜박 잊고 넣지 않았다고 한다. 죄송한 마음에 감자전을 서비스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입맛이 돌아갔으니 더덕구이를 하나 추가 주문하여 먹어보지만, 그것 또한 질이 덜 한 것 같아 얼른 자리를 일어섰다.
끝으로 더운 날씨에 어려운 산행에 참가한 친구들이 대단하고, 그들의 건강을 우러러 본다. 요즘 산행에 참석하는 인원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출석율이 좋은 종화, 문형, 양기, 경식, 윤환, 황표 등등 이외에는 보기 어려우니 앞으로는 좀더 많은 친구들이 같이 했으면 한다.
무릎, 허리 등등이 아프다고 2군으로 내려간 친구들은 한동안 적당히 단련 했으면 빨리 1군으로 올라와서 실전에 등판해 주기 바란다. 우리에게도 주어진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
2018년 7월 20일 염재홍 씀.